레10:6 조의(弔意)는 표하되 명복(冥福)은 빌지 말라.

조회 수 670 추천 수 40 2010.01.23 15:47:28
조의(弔意)는 표하되 명복(冥福)은 빌지 말라.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과 이마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아서 너희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케 하라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의 치신 불로 인하여 슬퍼할 것이니라."(레10:6)


약 20년 전에 미국 몰몬교에서 나찌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무참하게 죽은 수백만 유대인들을 대신해 침례 받아주는 운동을 전개한 적이 있습니다. 사후에도 그럼 구원이 이뤄진다는 뜻이었습니다. 유대당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공식적으로는 중지했지만 자기들 교인들에게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아주 의로운 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예수 믿지 않은 채 죽으면 남은 신자로선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지옥으로 찾아가 만날 수만 있다면 정말로 간절히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처럼 지옥으로 떨어진 자가 다시 산다면 정말 생명을 걸고 가족을 전도하려 들 것입니다. 이런 애끓는 심정에 편승하여 산 자의 공적을 통해 죽은 자의 구원도 가능하다거나, 죽은 자에게도 회개의 기회가 더 있다고 가르치는 이단들이 종종 있습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그럴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16:26) 사람이 죽으면 한 번의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살았을 때에 예수를 믿지 않고는 구원은 영영 불가능합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가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하자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켜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비와 형제들더러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고 엄하게 명했습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렇게 해서 죽음을 면하라고 했습니다. 역으로 말해 그렇게 하면 똑 같이 죽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믿지 않고 죽은 가족을 위한 아쉬움이 아무리 크더라도 절대로 이단의 가르침이 그런대로 의롭다고 여기어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시적인 계명을, 그것도 제사장들이 어겨서 심판 받은 것과 일반 불신자의 죽음은 다른 차원일 것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어떤 면에선 이들은 한 번만 어겼지만 불신자는 평생에 걸쳐 하나님을 완악하게 끝까지 거역한 죄인이지 않습니까? 불신자가 죽으면 아무리 부모, 자식, 부부였다 할지라도 산 자와는 이미 모든 관계가 완전히 끝나버린 것입니다. 더 이상 미련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불륜에서 난 아들이 죽을병이 들자 살려달라고 간절히 여호와께 기도했지만 죽음을 통보받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기도를 멈추고는 일어섰습니다. 또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는 평상 업무로 복귀했지 않습니까?(삼하12:20)

머리를 풀고 옷을 찢는 행위가 단순히 슬픔을 표시한 것이라고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이는 여호와께 자신의 죄를 회개하거나, 억울한 일을 신원하거나, 큰 재앙에서 구원해달라고 간구할 때에 자신의 진정성을 드러내고 또 현재 상황이 아주 심각하고 위급함을 드러내는 표식입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에 다른 사람의 죄가 개입되지 않았으며, 억울한 죽음은 더더욱 아니며, 죽은 후에 구원해 달라는 것도 아예 말이 안 됩니다. 제사장 정도 되면 머리를 풀고 옷을 찢는 것의 의미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음에도 그렇게 함은 심판이 부당하다고 하나님께 대드는 격입니다. 당연히 이 또한 죽음을 면할 길이 없는 큰 죄입니다.  

신자가 가까운 불신자의 죽음에 대해 애도할 수 있습니다. 아니 자연히 슬프고 애통해집니다. 하나도 나쁜 일 아니며 오히려 선한 일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죽은 자의 운명에 산 자가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일이 없는지 궁리하거나 그런 꾐에 넘어가면 그야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도를 넘어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겠다고 덤비는 꼴입니다. 심판과 구원은 오직 그분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장례식에서 조문할 때에 사용하는 용어에 각별한 조심을 해야 합니다. “삼가 조의(혹은 애도)를 표합니다.”라는 것은 괜찮으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아주 틀린 말이 됩니다. 조의나 애도는 살아 있는 유족들더러 슬픔을 극복하고 힘을 내시라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이미 죽은 자에게 복을 비는 것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자 이미 끝난 심판에 어떤 식이 되었든 영향을 미쳐보자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그들 나름대로는 아주 어려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레위 결혼으로 일곱 형제들과 결혼한 여자는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 때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는다면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마22:32)고 결론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죽음 이후의 영역을 관장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이 관여할 바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는 순간에, 기독교에선 사실은 예수 믿는 순간이지만,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리신 영원한 결정이므로 당연히 그 어떤 것으로도 수정이나 번복이 불가능합니다.

바꿔 말해 인간이 관심을 가질 바는 오직 살아 있을 때의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신6:4,5)해야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생명을 걸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해야 합니다. 신자가 하나님과 반대편에 있는 것들에 마음이 가거나 성품이 좌우되거나 힘을 쏟으면 바로 나답과 이비후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는 불을 담아 분향하는 것과 동일한 죄를 범하는 셈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촉구했습니까?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의 치신 불로 인하여 슬퍼할 것이니라.” 우선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어서 고인의 명복을 비는 행위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대신에 형제가 죽은 슬픔은 애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뜻은 죄를 철저히 저주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부터 철저히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내가 지금 현재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심판과 구원을 주관하시는 오직 한분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겸비하여져 언제 어디서나 자기 몸을 온전한 산제사로 바치는지 말입니다. 당신께서 명하지 않은 것을 하는 신자를 너무나 싫어하시는 분임을 철두철미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최근 하이티의 가혹한 재앙에 대해서도 신학적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사두개인들의 완악함을 닮는 것입니다. 신자를 필두로 모든 이가 그분 앞에 겸비해지는 것이 급선무일 뿐입니다.  

심판과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인간이 절대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너무나 자명(自明)한 원리를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 땅까지 내려와서 주시는 십자가 복음 외는 구원의 길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공적을 보태어 더 좋은 혹은 확정적인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고도 교만한 시도일 뿐입니다.

성경 66권이 말하는 절대적 진리는 모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형수로 스스로는 도무지 죄 사함을 입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의 몰몬교를 비롯해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이라고 천명하면서도 구원에 이런저런 조건을 다는 모든 종파들은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불로 분향하는 것입니다. 자기들 회중까지 죽음의 심판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이라면 이미 말한 대로 영원하며 절대적입니다. 당신의 독생자의 죽음과 맞바꾼 구원인데 어찌 변경 번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찌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분을 사랑함에 생명을 걸지 않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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