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4-9) 가짜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19) - 2024년 추수감사절 설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1:4-9)

 

너무 부족한 추수감사절. 

 

매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은 미국의 국가 명절인 추수감사절입니다. 종교 박해를 피해 1620년 처음으로 매사추세츠주의 플리머스로 이주한 영국 청교도인들은 낯선 기후와 풍토로 농사짓는 데에 큰 고충을 겪었습니다. 주변의 인디언이 옥수수 재배법을 가르쳐 주어서 첫 수확을 얻게 되자 그 인디언들을 초대해 감사의 식사를 나눈 것이 기원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이를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며 교회나 가정에서 함께 모여서 성찬을 나눕니다. 

 

그런데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는 한국의 추석처럼 기독교 신앙과 상관없이 세상 모든 족속에게 고래로부터 다 있었습니다. 영국 청교도들을 도와준 그 인디언 부족도 틀림없이 가을 수확을 축하하는 고유의 전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농업 같은 일차 산업에 종사하는 자가 적어진 현대에는 그 해에 현실의 삶에서 더 풍성해진 것들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안타깝게도 작금 교회에서마저 말 그대로 단지 추수만 감사하는 절기로 축소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신자도 당연히 추수를 감사해야 하나, 올해의 현실적 축복만 감사하면 굳이 교회 절기로 지킬 필요가 있는지 한 번쯤은 심각하게 재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도 이스라엘에게 보리 수확을 감사하는 초실절과 밀과 과일 등 모든 수확을 기념하는 맥추절, 두 번의 추수감사절을 지키라고 명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외에도 애굽 노예 시절의 고충과 출애굽의 은혜를 회상하는 유월절, 고달팠던 광야 방황 동안의 보호를 감사하는 장막절, 바벨론에서 유대인 말살 음모에서 지켜준 것을 기념하는 부림절 등도 지키라고 명했습니다. 신약의 바울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했는데, 범사에는 좋은 일뿐만 아니라 불행과 고난도 포함됩니다.

 

교회가 일 년에 한 번 따로 날을 정해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려면 하나님이 진정으로 신자들에게 받고 싶은 감사를 올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통상적인 인사를 끝내고 격려의 말을 전하는 본문에서 참된 감사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우선 바울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지만 감사는 반드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해야 하지 자기가 받은 축복만 기뻐하면 감사가 아닙니다. 그가 또 항상 감사했으니까 좋았던 일만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올해에 신자의 삶에 좋은 일도 있었겠지만, 이 시대의 특성상 오히려 고달픈 일이 더 많았을 텐데 그마저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인생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선하시며 특별히 당신의 자녀로 삼은 신자에겐 무한한 인자와 전능하신 권능으로 평생토록 함께하십니다. 무엇보다 신자 일생을 당신만의 거룩하고 완벽한 계획과 일정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따라서 신자의 인간적 감정과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들고 괴롭기만 한 고난에도 그분의 선하심은 풍성히 내포되어 있습니다. 또 그런 힘든 일들이 아무리 많이 겹쳐도 결국은 당신께서 합력하여서 선으로 이끄십니다. 그런 은혜를 한두 번이라도 체험적으로 깨달은 신자는 차츰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신묘한 은혜를 깊이 체험했어도 현실 삶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만 감사하면 자칫 기복주의적 신앙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합력하여 이뤄주신 그 선한 결과만 감사하거나, 또는 앞으로 어쨌든 결과가 좋아질 것을 믿고서 감사하면 결국 자신에게 더 좋아진 일만 감사하는 셈입니다. 나아가 많은 시련을 겪으며 자신의 믿음이 성숙해진 것을 감사해도 어쨌든 자신에게 일어난 좋은 일이 됩니다. 신자는 자기가 현실적, 정서적, 영적으로 좋아진 일에 마땅히 감사해야 하나 그것만 감사하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때는 감사하지 못합니다. 솔직히 우리 모두 그렇게 해왔으니까 항상 범사에 감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에게 항상 감사하되 두 가지 조건을 붙였습니다. 첫째는 ‘예수 안에서’이고 둘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한 것입니다. 신자로서 예수 안에서 만난 형제 성도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당연히 감사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데, 이는 그런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이미 강조했듯이 바울은 자기에게 좋은 일이 생겼기에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인사말이라서 그렇기 하지만, 그의 서신서 전체를 살펴봐도 자신의 개인적인 형통에 대한 감사는 전혀 없습니다. 물론 성경 기록에 없어도 그의 삶에 더 즐겁거나 반대로 더 힘든 측면들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는 자기 믿음이나 생각에 별다른 흔들림이 없이 항상 범사에 감사했던 것도 분명 사실이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하나님이 신자에게 첫째로 바라는 바도 신자의 주변 여건과 일어나는 일들이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오로지 신자가 당신의 자녀답게 점점 거룩해지기만 바라십니다. 그렇게 되는 데에 필요하거나 도움이 되는 방향과 목적으로만 현실의 풍요와 궁핍을 번갈아서 당신의 완전한 뜻과 계획대로 주실 뿐입니다. 요컨대 그분은 신자더러 이런저런 일을 하라는 것에 앞서서 이런저런 사람부터 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바울을 포함한 모든 신자에게 바라는 감사도 당연히 현실적 형통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올해 감사절에 가장 먼저 되돌아볼 사항도 내가 과연 하나님이 나에게 바라는 바 대로의 그런 신자가 되어 있는지 또는 최소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은 했는지여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조금 더 거룩해지는 데에 올해 겪은 고난들이 도리어 큰 도움이 되었다는 감사까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감사 

 

바울에게 좋은 일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너희를 위하여’ 감사한다고 했듯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거기다 이어지는 기록을 보면 계속 강조한 대로 현실적으로 풍성해져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성숙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먼저 “예수 안에서” 감사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예수를 믿어서 좋은 일이 생겼고 그 일에 대해서 바울은 감사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안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생긴 좋은 일로 크게 세 가지를 열거합니다. 첫째로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족하므로”라고 합니다. 모든 일 다음에 ‘곧’이라고 했으므로 그 좋은 일은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서 족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모든 인생사의 이치를 분별해서 다른 이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가르치신 대로 되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인들이 인생을 거룩하게 살 수 있는 영적 지식에 충족해졌다고 감사한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 죄인이 성령의 간섭으로 십자가 복음을 깨닫고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내주해 주시고 그분이 당신의 뜻과 계획에 따라서 방언, 예언, 믿음, 능력 같은 은사를 각 사람에게 적합하게 나눠주십니다. 그런 은사는 그리스도가 그들 속에 내주하고 계신다는 견고한 증거가 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에 대해서 바울은 감사한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는 처음 두 가지 변화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결과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알게 된 자는 이미 영생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 영생을 소유했다는 보증이 바로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것과 또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 인생의 목적지이자 종착지는 부활 생명을 받아서 주님과 함께 세세토록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왕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신자는 이미 죽은 자나 그때까지 살아 있는 자나 홀연히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고통, 슬픔, 특별히 죄와는 영원히 결별하고 오직 온전한 사랑으로 서로를 섬길 수 있도록 그 구원이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엄청난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이 천국의 영광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 영광이 완성될 재림을 기다리고 있으므로 감사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컨대 바울은 자기가 가르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예수 안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이방인의 사도라는 자기 소명에 충성한 결과에 대한 감사가 됩니다. 비록 편지의 인사말이었어도 그는 항상 그렇게 감사했으므로 따로 감사절 예배를 드려도 틀림없이 이와 똑같이 감사했을 것입니다. 이는 또 바울 같은 사도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제자들더러 만나는 이마다 복음을 전해서 제자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도 바울처럼 예수 안에서 제자를 만들면 동일한 감사가 절로 우러나올 것입니다.

 

참된 감사란 단순히 입술의 공치사로 그쳐선 안 되고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선물도 함께 드려야 합니다. 모세 율법에서 감사절에 해당하는 화목제를 드릴 때 아무리 가난해도 감사의 징표로 비둘기나 적은 양의 곡물이라도 바치라고 명한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일 년에 한 번 드리는 감사절 예배에선 더더욱 그분이 가장 기뻐하시는 선물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이 신자에게서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두 말 필요 없이 바울처럼 올해 동안 예수 안에서 자기 주변에 맺은 복음의 열매일 것입니다.

 

감사가 아닌 꾸중

 

그런데 바울이 정작 감사한 내용이 사실은 지금껏 말씀드린 것과 조금 다릅니다. 알다시피 고린도 교회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이 서신을 쓰게 된 목적도 그들의 잘못을 꾸중하고 제대로 가르쳐서 올바른 믿음 위에 다시 세우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꾸중을 지금 처음으로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후에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고전5:9)라고 언급했습니다. 현재의 고린도 전서가 첫 편지라면 굳이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라고 과거형으로 표현했으므로 이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원본은 실종되었으나 일차로 충고하는 편지를 보냈음에도 여러 잘못이 제대로 고쳐지지 않았기에 다시 더 강하게 견책하겠다는 뜻입니다. 

 

‘음행하는 자’란 정상적 결혼 관계 밖에서 부정한 관계를 맺는 사람을 말하는데. 그런 자와 사귀지 말라고 이미 경고했다고 합니다. 그런 자는 교회가 정당한 절차에 따라 다스려야 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출교시켰어야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교회 안에 음행하는 자들이 있기에 바울은 이 둘째 편지에서 더 엄중하게 야단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은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인데, 특별히 한 교회 안에 일시에 그 모든 문제가 다 발생했습니다. 고린도는 상업적으로 아주 융성한 이방 도시로 온갖 쾌락과 죄악으로 가득 찼는데 당시의 ‘고린도스럽다’는 유행어가 성적으로 아주 문란하다는 뜻일 정도였습니다. 고린도 교인들도 알게 모르게 그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에 고린도 교회는 마치 교회 문제의 박람회장 같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후대 신자들이 이 서신서 하나만으로도 교회 사역의 문제들을 처리하는 영적 원리를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아들이 아비의 처와 관계하는 식의 음행 말고도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교인들 끼리 파당을 지어서 분쟁했고, 예배에 은사를 무질서하게 사용했고, 부활 교리 및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신학적 혼란이 있었으며, 그런 혼란의 결과로 극단적인 도덕적 방종과 그 반대의 금욕주의에 오염되었고,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었기에 결혼과 이혼에 어떤 기준을 세울지 혼선이 생겼고, 성도 간의 다툼을 교회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에 소송을 제기했고, 우상에 바쳐진 고기를 먹어야 하는지 논란이 생기는 등의 문제들이었습니다. 

 

바울은 편지의 서두인 본문에서 그 많은 문제 중에서 특별히 그리스도 복음으로 얻은 지식(5절)과 신자가 된 보증으로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는(6절) 점 두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플라톤의 이원론에서 발단한 영지주의 이단이 교회에 서서히 침투해서 영적인 혼란은 물론 그리스도 안의 자유로 신앙을 실천하는 일에 많은 폐해를 조성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는 간단히 말해 물질은 악하고 아무 의미가 없는 반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과 영혼만 가치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물질계에서 눈을 돌려서 세상을 움직이는 이치에 대한 영적 지식을 가지면 구원을 얻는다고 오도했습니다.

 

그런 주장에선 필연적으로 상반되는 양극단이 파생됩니다. 물질인 육체가 범하는 죄는 아무 의미가 없기에 성적 범죄는 저질러도 된다는 도덕적 방종이 묵인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자유를 정확히 몰라서 그 헛된 주장에 현혹된 일부 고린도 교인들이 예사로 음행을 한 것입니다. 이미 영적으로 완전함을 이루었으므로 보편적인 도덕적 종교적 계명들을 더 이상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거짓 가르침마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로 선한 영을 더 거룩하게 가꿔야 하니까 극도로 금욕하는 경건주의가 나타났으며, 그런 거짓 가르침에도 속아넘어가서 완전한 구원을 얻으려고 세상 이치를 깨달을 지식을 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의 은혜를 온전히 깨달아야 얻으며, 또 그 구원 진리에 대한 지식은 모든 영적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족하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면 잘못된 그런 양극단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신자는 그분을 닮아서 도덕적으로 의롭게 살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연약한 인간 본성으로 때로 죄를 지어도 주님께 겸손히 나아가 진솔하게 고백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에 대한 온전한 지식만이 극단적인 반도덕주의와 경건주의가 왜 틀렸는지 정확히 알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문제 많은 교회에 감사

 

바울이 그렇게 문제 많은 교회를 꾸중한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굳이 감사한다고 말한 까닭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서두에서부터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싫어서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드렸던 바울이 감사한 내용도 사실 그대로 그의 순전한 진심이자 본심이었습니다. 

 

그들이 십자가 복음의 지식을 알게 되었고 또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이 분명한 사실이므로 그에 관해 감사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 교회를 개척하면서 십자가 복음을 직접 가르쳤고 그 가르침을 받아서 믿게 된 많은 신자에게 성령의 은사가 드러난 것도 보았습니다. 일차로 그들이 예수 안에 들어온 것에 감사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 했듯이 그들은 실제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갖고서 기대하고 있었으며 바울은 그 일에 대해서 감사한 것입니다. 비록 교회 안에 문제들이 많아도 그들이 예수 안에서 동일한 믿음을 가진 형제자매로서 동일한 재림의 소망을 키워가고 있음에 감사한 것입니다.

 

자신의 이 편지로 제대로 가르치면 자기들 잘못을 깨닫고 고쳐나갈 것을 기대하면서 미리 감사한 것입니다. 그들이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진리를 더 정확히 알게 되어서 자기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 것입니다. 이 편지로 온전히 회개하는 자는 참 신자의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 확실하므로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끝까지 완악하게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자에게까지 감사한 것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고린도 교인들 전부가,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이지만, 복음 안에서 형제 된 자들이라고 여겨선 안 됩니다. 바울이 예수 안에서 감사한다는 말에 다시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성령의 간섭으로 진정으로 거듭난 참 신자들을 향해서 쓴 편지입니다. 비록 조직체 교회에 소속은 되어 있어도 예수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교인들도 많고 그들은 이 편지를 받고도 뉘우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감사했던 진짜 의미는 본문 마지막에 나옵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8절)고 미래형으로 말한 대로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주께서 남겨둔 참 신자들의 믿음과 그런 믿음으로 사는 거룩한 삶을 주님이 끝까지 붙들어 주실 것을 알기에 그에 대해서 진정으로 감사한 것입니다. 교회 안의 많은 문제들로 순전한 신자마저 믿음이 흔들리고 있고 또 도덕적으로도 일부 오염되어서 책망할 일이 많아도, 주님이 반드시 책망할 것이 없는 믿음으로 성숙시켜 주신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기”(9절) 때문이라고 선언합니다. 미쁘시다는 헬라어 ‘피스토스’는 영어로 faithful로 번역되었듯이 ‘믿을만한, 신뢰할 수 있는, 충성스러운’의 뜻입니다. 일차적으로 신자의 믿음이 좋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에게 그 용어를 적용합니다. 당신의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이신지라 신자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고 반드시 주께서 재림하여서 부활 영광으로 그 구원을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서신의 말미인 15장에는 부활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진짜로 감사한 내용을 한마디로 줄이자면 하나님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지금 이루시고 있는 “그분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알게 하고, 자라게 하고, 완성하게 하는 그 일을 그분이 지금 신실하게 이루고 계시기에 감사한 것입니다. 자기는 그분의 일에 단지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였을 뿐이며, 또 그렇게 쓰임 받은 일에도 아주 감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꾸중하는 편지를 쓰게 된 일도 감사하며, 이 편지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맺어질 여러 성령의 열매를 기대하면서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부터 이처럼 모든 일에 감사하니까 신자더러도 똑같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가짜 감사가 넘치는 교회 

 

이제 단순히 하나님이 올해에 부어주신 현실적 축복에만 감사하는 일이 얼마나 성경적으로 부족하고 부적절하며 자칫 기복주의로 빠지게 된다고 말씀드린 뜻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께 받은 복에만 감사하는지, 진정으로 하나님 그분께 감사하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올해에 나를 고달프게 만들었던 여러 고난과 불행에도 당연히 감사해야 합니다. 그 일도 선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선한 목적으로 나에게 일으키신 일이지 않습니까? 

 

내 주변이 풍성해져서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바라시는 바대로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자랐는지 점검해서 조금이라도 자란 부분이 있을 때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신자임에도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삶대로 살고 싶어서 또 주변 사람들 앞에 나를 더 높이려고 하나님의 능력만 구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조금이라도 나아진 점이 없으면 추수감사절 예배도 의무적으로 참석해 평소 주일보다 더 풍성하게 교제하는 교회의 연례행사로 그치는 것입니다.

 

바울과 같은 감사여야만 신자가 드려야 할 참 감사입니다. 자기를 통해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자기 주변에 행하시고 있고 그 열매가 하나씩 열리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혹시 지금 너무 큰 고난에 처해 있어도 그분의 영광이 반드시 그분의 때와 방식으로 드러날 것을 설렘으로 기대하며 미리 감사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실 삶에서 축복받은 것에 관한 감사도 그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다면 얼마든지 참된 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신자가 그분의 일에 쓰임을 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헌신해야만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그런 헌신이 없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 삶의 현실적 진보라도, 미리 그런 헌신의 기도가 없었어도, 그분만의 신묘한 뜻이 역사한 결과라고 분명히 인식한다면 참된 감사가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자신에게 주신 소명이 달성되길 간절히 기도하고 충성했다면 비록 올해에는 그 열매가 안 열려도, 심지어 그 반대로 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언젠가 반드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낼 것을 알기에 바울처럼 미래형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완전히 성숙해진 믿음으로 아주 진지하고도 심오한 감사를 해야 한다는 권면이 아닙니다. 기독교적인 계명으로 굳이 강요하려는 뜻도 아닙니다. 바울의 말처럼 단순히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본문 말씀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진리를 아는 지식이 있으면 충분한 것입니다. 그 지식은 한마디로 예수 믿은 후로 자기 삶과 일생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안에 붙잡혀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설명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체험적으로 아는 것이 그런 지식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1,32) 

 

신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신분과 특권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를 정확히 알면 당연히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면 인간으로 누리는 그만한 자유도 없습니다. 불신자 때는 아예 알지도 못했던 자유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서 주시고 인도해 주셔야만 누릴 수 있는 자유이며, 그런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예수 안에 거한다는 뜻입니다. 

 

신자는 나같이 보잘것없고 추악한 죄인을 구원해서 영생 안으로 들어오게 해주신 것만도 평생을 두고 감사해도 모자랄 판입니다. 평생 감사해야 한다면 당연히 항상 하나님에게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과, 처해 있는 환경, 만나는 모든 사람 등이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무대이자 각본입니다. 신자가 된 것, 함께 믿음을 가진 성도와 교제 할 수 있는 것,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 무엇보다 그분의 제자로서 복음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것들은 세상 사람이 절대 알 수 없는 축복입니다. 

 

추수감사절에 자신에게 베풀어진 올해의 현실적 축복만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그분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재정 고문, 수호천사, 요술 램프의 하인으로 대접하는 꼴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자기가 그분께 헌신한 일을 통해서 자신과 그 주변에 얼마나 많이 드러났는가에 감사해야 예수 안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했던 열매를 하나님께 감사의 선물로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많은 신자가 불신자들과 똑같이 세상에서의 형통과 출세를 바라면서 단순히 예수님의 이름만 빌려 뜨겁게 기도해서 어쩌다 얻은 현실 축복만 감사하고 치웁니다. 죄송하지만 그런 감사와 또 그런 식의 믿음을 부추기는 거짓 목회자들도 초대교회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처럼 꽤 되니까 참으로 비참합니다. 이제는 그런 가짜 감사를 드리는 가짜 추수감사절은 교회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아버지로선 집을 나가서 방탕하게 살던 아들이 돌아오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사탄에게 미혹되어 죄의 노예였던 한 불쌍한 영혼이 십자가의 은혜로 다시 당신과 화목하고 예수 안에서 친밀하게 당신과 교제 동행하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습니다. 신자는 그런 하나님의 큰 기쁨에 함께 참여하는 것만이 그분께 드릴 진짜 감사인 것입니다. 

 

(11/2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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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4-9) 가짜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9)

(고전1:4-9) 가짜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19) - 2024년 추수감사절 설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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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4
  • 조회 수 174

(롬1:16-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8)

(롬1:16-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8)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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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7
  • 조회 수 201

(합1:2-6) 북한군을 빨리 죽여 주십시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7) [1]

(합1:2-6) 북한군을 빨리 죽여 주십시오.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7)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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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0
  • 조회 수 282

(왕하9:5-7) 북한보다 남한을 징벌하실 하나님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6) [2]

(왕하 9:5-7) 북한보다 남한을 징벌하실 하나님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6) “그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아 있는지라 소년이 이르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나이다 예후가 이르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누구에게 하려느냐 하니 이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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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3
  • 조회 수 288

(마10:1-7) 열두 제자 선택에 숨겨진 비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7) [1]

(마10:1-7) 열두 제자 선택에 숨겨진 비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7)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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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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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25 & 3:7) 원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신자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5) [2]

(창2:25 & 3:7) 원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신자들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rd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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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0
  • 조회 수 318

(막1:14-20) 참 믿음인지 판단하는 기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6) [1]

(막1:14-20) 참믿음인지 판단하는 기준.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6)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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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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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6:1-6) 평안하고 형통한 인생을 사는 비결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4)

(창26:1-6) 평안하고 형통한 인생을 사는 비결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4)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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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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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18-25) 원색적 복음이 실종된 기독교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5)

(고전1:18-25) 원색적 복음이 실종된 기독교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5)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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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29
  • 조회 수 197

(왕하5:9-14) 행위 구원으로 변질된 믿음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3)

(왕하 5:9-14) 행위 구원으로 변질된 믿음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3)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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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22
  • 조회 수 326

(마7:1-5) 예수님은 인간을 전혀 믿지 않았다.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4)

(마7:1-5) 예수님은 인간을 전혀 믿지 않았다. 새롭게 읽은 신약성경 (14)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보라 네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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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5
  • 조회 수 293

(창16:11-13) 하나님의 예정에 들었다고 확신하는가?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2)

(창16:11-13) 하나님의 예정에 들었다고 확신하는가?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2)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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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8
  • 조회 수 496

(창16:7-10) 살피시는 하나님과 눈물 흘리는 하나님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1) [1]

(창16:7-10) 살피시는 하나님과 눈물 흘리는 하나님 새롭게 읽은 구약 성경 (11)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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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1
  • 조회 수 226

(왕상18:1-6) 하나님이 숨겨둔 변절자가 되어라.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0) [2]

(왕상18:1-6) 하나님이 숨겨둔 변절자가 되어라.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0)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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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18
  • 조회 수 242

(롬5:1) 신자가 믿은 후 가장 먼저 행할 일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3)

(롬5:1) 신자가 믿은 후 가장 먼저 행할 일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3)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5:1) 신자로서 첫걸음 예수를 믿고서 교회에 출석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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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11
  • 조회 수 211

(행20:22-25) 두 얼굴을 가진 성령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2)

(행20:22-25) 두 얼굴을 가진 성령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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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04
  • 조회 수 178

(삼상1:9-11) 서원은 악하니 하지 말라.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9) [2]

(삼상1:9-11) 서원은 악하니 하지 말라.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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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28
  • 조회 수 298

(행28:1-6) 성육신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1)

(행28:1-6) 성육신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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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14
  • 조회 수 265

(삿7:5-7) 기독교 부흥의 최고 비결 -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8)

(삿7:5-7) 기독교 부흥의 최고 비결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8)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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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7
  • 조회 수 256

(신3:23-29) 하나님의 비전을 최대한 줄여라, -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7)

(신3:23-29) 하나님의 비전을 최대한 줄여라.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7)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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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30
  • 조회 수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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