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6-8) 혼란한 비상시국에 신자가 취할 행동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20)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6-8)

 

위에서 주신 권세

 

한국은 지금 나라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큰 소용돌이에 빠졌습니다. 한밤중에 대통령이 갑자기 비상계엄을 선언했고 미처 방송 중계를 접하지 못한 해외교포들은 두고 온 조국에 전쟁이라도 난 줄 알고 크게 겁에 질렸습니다. 이번 계엄은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이 반대하는데도 대통령 혼자서 밀어붙인 것 같습니다. 

 

한국 국민은 군사독재의 폐해를 많이 겪은지라 계엄을 비판하는 소리가 훨씬 더 많습니다. 결국 어제 12/14일에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했고 최종 판결은 헌법재판소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 마지막 재판이 법에 따라 공정하게 이뤄지고 모두가 승복하여서 한국 사회가 더 이상의 혼란 없이 조속히 안정을 되찾길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현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이번 사태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종합적인 평가는 후대 역사가들이 내려줄 것입니다.

 

비상계엄에 대해 각계에서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자, 한국의 한 크리스천 청년이 저에게 개인적으로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바울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13:1)고 가르쳤는데, 신자가 대통령 탄핵에 찬성해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카톡으로 제법 길게 대화를 나눴으나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으므로 제가 답변한 핵심 요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자가 현직 대통령에게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는 이차적인 문제이다. 하나님이 대한민국에 정해주신 권세는 민주주의 법치제도이므로 그것에 먼저 복종해야 한다. 예수님의 성육신 정신에 따라서 대통령의 개인적인 허물은 용서해 주되 그가 행한 통치 행위는 법규에 따라 심사 판단되어야 한다. 신자도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이번 사건에 대해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치적 의견에 따라서 행동해도 된다.”라고 답변해 주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이 한국 사회를 다스리라고 내려주신 권세는 대통령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5년마다 계속 바뀌지만 민주주의 체계는 현재로선 대안이 없는 최선의 제도로 영속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적인 법치에서 최고 권위는 헌법이 가지므로 비상계엄도 탄핵도 결국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으로 판결하게 됩니다. 그 판결에 사람마다 다 만족하지 못할지라도 대통령을 포함해서 모든 국민이 순종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물론 헌법을 해석하는 판사도 인간인지라 100%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부족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여겨지면 선거로 정권부터 바꿔야 합니다. 그 후에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다시 올바른 정치 성향을 지닌 판사를 세워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전에 진보와 보수 양측 정치가들은 민주적인 법률 체계 안에서 매사에 서로 양보 타협 조정 합의해야 합니다. 끝까지 합의가 안 되면 일차적으로는 헌법재판소에, 최종적으로는 국민의 판단이 반영되는 선거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가능하면 보수와 진보 진영이 정권을 교대로 담당해서 전 정부의 미비점을 수정 보완해 주고 자기 정부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미국은 그런 전통을 잘 지켜오고 있어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올해 대선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화당의 트럼프가 당선되었으나, 민주당 측에서 굳이 일일이 물고 늘어지지 않는 까닭은 선거에 의해 민주적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미국은 법규와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므로 아무리 비상식적인 언행을 일삼는 트럼프라도 초법적인 통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무리하게 극단적인 정책을 시행하면 사 년 뒤 선거에서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면 됩니다. 

 

대통령보다 민주주의 체계가 상위에 있듯이, 모든 신자가 끝까지 순전하게 복종해야 할 대상도 권력자보다는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입니다. 권력자가 하나님의 뜻을 대놓고 위반하는데도 신자가 무조건 복종할 의무는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복종한다는 뜻은 당연히 성경에 계시 된 영적 진리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최종 보루가 헌법이듯이 성경에도 헌법에 해당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십계명 중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는 첫 계명이 그것입니다. 바울이 권력자에게 순종하라고 말한 계명은 이 헌법에 해당하는 첫 계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지에 관한 하위법규인 셈입니다. 

 

이스라엘을 회복할 때

 

그런데 여전히 문제는 어떤 권력자에게 어디까지 순종하고 불순종할지 구체적인 계명들은 성경에 없다는 것입니다. 일반 신자로선, 심지어 목회자들마저 특정 권력자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지 정확히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번의 한국사태나, 미국 대통령 선거 후 신자들마저 서로 편을 갈라서 원수처럼 대립하며 미워하고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삼위 하나님이 태초부터 영원까지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정확히 가르치려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신자가 세상만사를 보이지 않게 거룩하게 섭리하시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당신의 삶으로 본을 보여주려는 뜻이었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신자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예수님이 승천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본문 기사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죗값을 대신 갚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후 제자들과 교제하다가 사십 일째 되는 날인 지금 하늘 보좌로 올라가서 그동안 잠시 내려놓았던 성자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회복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죽기 전에 또 부활하신 후에 당신께서 하늘로 올라 갔다가 다시 오신다고 여러 번 가르쳤습니다. (마24:30, 26:64, 요20:17, 21:22-23 등) 제자들은 바로 오늘이 스승과 지상에서의 마지막 만남인 줄은 미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스승에게서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것 같은 비장한 분위기는 느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6절)라고 평소에 정말로 알고 싶었던 문제를 질문했습니다. 주님이 죽음마저도 이겨내는 큰 능력으로 이제는 조국을 다윗 왕국 때의 영광스러웠던 모습으로 회복시켜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간절함 바람을 드러낸 것입니다. 

 

지금 유다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서 경제적 수탈과 정치적 학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레위 지파 아론 가문의 장손이 죽을 때까지 맡아야 할 대제사장 직분마저 로마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자를 수시로 임명하고 파면했습니다. 비록 로마가 식민지에 종교 문화 전통 등의 자치권을 허용했으나 그것을 관장하는 공회는 로마 편에 붙은 사두개파와 유대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바리새파가 서로 다투느라 바빴습니다. 유다를 행정적으로 통치하는 왕권은 로마 황제에게 큰 뇌물을 바쳐 온 에돔 족속 헤롯 가문이 틀어쥐고 있습니다.

 

일반 서민들은 로마 총독, 대제사장, 헤롯 왕 세 통치자를 모시면서 세금도 이중 삼중으로 물어야 했으므로 경제적으로 궁핍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바리새파는 제대로 감당하지도 못할 수많은 계명과 관습을 제정해서 일상생활의 모든 차원에서 종교적인 멍에를 지도록 강요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현실 삶은 더 피폐해지고 정파 간의 다툼이 끊이지 않으며 로마 제국은 더욱 강대해져서 민족의 장래에 희망이라곤 도무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연히 사방 대적을 정복하고 오히려 이방 족속들이 자기들에게 조공을 바쳤던 다윗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모든 유대인의 절실한 소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권력자에게 순종하라는 바울보다 더 나아가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원수를 사랑하고 가르쳤습니다. 제자들로선 저에게 질의한 한국 신자 청년과 같은 딜레마에 빠져 어떤 세속 권력자들에게 어디까지 순종해야 하는지 분별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차라리 전부를 갈아엎는 혁명을 일으킬 자가 나타나길 은근히 바라며 예수님이 지상에 더 남아서 그 역할을 맡아주길 기대했을 것입니다. 

 

성령이 세울 새 왕국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는데도 제자들은 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스라엘의 번영만 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당신께서 세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삼 년을 가르쳤고 부활 후에도 재확인해 주었는데도 아직도 그런 엉터리 질문을 하느냐는 투로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당신께서 행할 일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이스라엘을 회복해 주는 때가 지금인지 묻자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만 대답했습니다. 그때를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했으므로 성부 하나님과 주님도 이스라엘이 회복되길 바란다는 뜻입니다. 제자들로선 지금 바로 그렇게 해주길 원했으나 주님은 당장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차이만 있습니다.

 

대신에 주님은 너희는 오직 땅끝까지 복음만 전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당신께서 마지막 날 밤에 약속한 대로 당신을 대신해서 신자를 가르치고 보호 인도할 성령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오직’이라고 강조했으므로 성령이 오면 그 권능을 입고서 복음 전파의 일에만 전념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스승이 십자가에 달리신 골고다 언덕에서 이미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들의 지금 질문은 주님이 부활하시고 사십 일이나 지났으나 여전히 실패했던 그 언덕에 머물러 있는 꼴입니다. 다윗 왕국의 영광을 재건해 주지 않는 스승에게 실망하고서 부인 배반 도망쳤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시 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제자들더러 이전의 처절했던 실패를 씻고서 새로이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처절한 실패를 겪었기에 성령이 인도해 주시는 새출발이 얼마나 보람과 의미가 있는지 제대로 깨달을 것이며, 또 그래야만 이전처럼 도망치거나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바라면서 그렇게 명했으므로 너희가 복음을 전파하면 그렇게 된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빨리 많이 전하면 그 회복의 시기도 단축될 것입니다. 가장 먼저 유다에서부터 십자가 복음을 전하라고 명했으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부터 회복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바라는 이스라엘이 회복하는 방식과 그로 인한 결과가 본문의 상태에서 제자들이 기대 예상 소망했던 바와는 일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나라로 변모시키라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변함없이 당신만 섬기는, 성경 전체의 헌법인 첫 계명처럼, 당신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껏 그 일에 실패했으나 이제 성령의 권능을 입으면 그 일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만찬 때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온전히 깨닫게 해줄 것이라고 약속해 주었습니다.(요16:8-11) 먼저 주님을 믿지 아니한 것이 죄라고 했는데, 당신께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그 은혜를 끝까지 거부하면 심판받게 됩니다. 의는 본문처럼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서 다시 당신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십자가에서 더 이상 정죄함이 없는 하나님의 의를 실현했다는 것입니다. 심판은 세상 임금인 사탄을 당신께서 이겼다는 뜻인데, 신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함에 사탄의 온갖 훼방과 세상의 핍박이 따를 것이지만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는 권능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승천 직전에도 너희가 그런 성령의 권능을 입으면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다시 다짐해 주었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므로 신자들이 새롭게 회복시킬 하나님의 나라는 유다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족속을 포함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인간사회에서 서로 차별 멸시하는 인종 신분 문화 전통 도덕 종교 등의 모든 장벽을 깨트려서 서로 간에 사이를 막는 담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그런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치적 분쟁과 갈등도 그 나라를 세우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성령의 권능을 받고서 그 인도대로만 따르는 참 신자에게 사람끼리 차별하는 일이 더 이상 문제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주님의 뜻은 죄에서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면서 그분의 공의를 실현하는 온전한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세상 안에 있되 세상과는 달라야 합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만 속하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성도들의 모임으로 가득 차야만 비로소 이스라엘이 올바르게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목적지 다른 길

 

제자들이 로마에서 정치적으로 해방된 다윗 왕국의 재현을 소원한 것은 이스라엘이 회복되지 못한 원인이 로마 같은 사악한 세력이 자기들 같은 의로운 민족을 억압한 탓이라고 여겼다는 뜻입니다. 주님도 그런 현실적 이유를 틀렸다고는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유다 사마리아 땅끝까지 모든 족속의 죄를 씻어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 주변에서부터 세우라고만 명했습니다.

 

로마를 물리치는 일이 급하지 않다는 뜻이므로 로마가 이스라엘 회복에 최고 큰 방해 세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첫째 원인은 바로 너희까지 포함한 인간의 죄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로마인이나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성령의 견책을 받지 않으면 모두가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이 세대의 모든 권력을 쥐고서 세상 주인 행세를 하는 로마도 언젠가는 자기들 죄악으로 하나님의 때와 방식으로 반드시 심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와 시기는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했으므로 로마의 심판에 대해선 그분께 맡겨 놓고 전혀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외부 세력으로부터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그 억울한 사정을 하나님도 아시고 안타까워 하시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할 문제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유다 너희부터 성령의 거듭남으로 죄에서 온전한 씻음을 받지 않으면 로마에서 해방되어도 여전히 사탄의 영적인 노예로 남게 되고, 그것이 정치적 억압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뜻입니다. 나아가 주변 이웃의, 로마도 포함해서, 영적인 사정도 너희와 똑같으므로 그들 또한 죄 씻음부터 받을 수 있도록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함께 바란 것처럼, 한국이나 미국의 진보와 보수 진영은 나라가 평안하고 부강해지길 소원한다는 점에선 일치합니다. 어느 한쪽도 나라가 완전히 거덜 나서 멸망하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거기다 양쪽 다 성경적 규범에서 합당하거나 또는 부족한 측면을 일부씩 다 갖고 있으며, 또 각기 옳다고 믿는 바를 최선을 다해 실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일반 시민도 본성적으로 아주 사악한 자 말고는 인간사회의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려고 각자가 옳다고 여기는 정책에 동참해서 적극 협조합니다. 절대로 어느 한쪽만 성경적으로 옳다거나 그 반대로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양쪽 다 극단적으로 치달아서 성경적으로 완전히 틀린 모습을 보일 가능성은 항상 있습니다. 예컨대 보수에선 이전의 나치 독일제국이나 최근 미국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운동처럼 자기 종족 혹은 나라만 부강하면 되고 그렇게 되는 일에 다른 나라는 얼마든지 희생당해도 된다고 주장하면 틀린 것입니다. 진보에선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의 절대적 진리는 아예 거부하면서 물질과 인간이 세상을 다스리므로 인간이 물질을 공평하게 분배하여 인류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하면 틀린 것입니다. 

 

현재 인간사회가 겪고 있는 온갖 갈등, 고난, 재앙 등은 최초 인간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벌을 받은 결과입니다. (창3:17-19) 당신을 거역 대적했기에 너희도 한번 고생해 보라고 하나님이 앙갚음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마저 자기 발아래에 두고서 자기만 높이려는 본성에 묶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어진 인간들이 서로 사랑으로 섬기지 않고서 자기만 풍요로워지려고 하니까 서로 간에 갈등 균열 다툼이 생긴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이스라엘마저 다른 민족은 아예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죄인이라고 정죄했습니다. 그런 이방 족속인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으면서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은 둘째치고 자기들이 제정한 규정들을 온전히 지키지 않는다고 동족까지 이방인과 똑같이 멸시했습니다. 강압적인 정복자 로마가 그 원인을 제공했지만, 이스라엘을 다시 다윗 왕국처럼 만들어 달라는 요구는 엄격히 따져서 자기만 높이려는 본성이 반영된 잘못입니다. 로마처럼 악한 나라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들 선조 아브라함과 맺은 그와 그의 후손으로 모든 민족에게 여호와를 알게 해주는 복의 근원으로 세워 주신다는 그 언약을 깡그리 무시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워버리는 것은 하나님 그분을 부인하는 죄가 됩니다.

 

인간 사회 문제는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마찬가지로 인간이 고안한 도덕, 법률, 종교로는 절대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인간 밖의 여건과 삶의 방식만을 바꾸려 들어선 인간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해결책도 죄에 찌든 인간이 만들었고 그 해결을 받을 당사자도 죄에 찌든 인간입니다. 정치만 해도 보수 진보 각기 장단점이 있으니까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에 따라서 장점이 잘 살아나거나 반대로 단점만 더 드러납니다. 인간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에는 인간의 문제는 절대 고쳐지지 않습니다. 

 

지금껏 어떤 의롭고 합리적인 정치제도라도 인간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 줍니다. 최선의 방책인 민주제도 아래에서도 현재 온갖 복잡한 문제와 갈등이 계속 더 많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인간을 지으시고 인간보다 인간을 더 잘 아시는 하나님 당신께서 오셔서 십자가 대속 죽음으로 그 근본적인 원인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자기만 높아지려는 모든 인간의 본성이 인간사회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는 진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 본성을 성령으로 완전히 죽여서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주시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이 모든 인간에게 좋은 소식, 복음(福音)이 되는 것입니다. 

 

전도가 아니라 증인

 

신자들이 본문에서 결정적으로 부족하게 이해하고 있는 차원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항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주님이 단순히 땅끝까지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즉 증언하는 행동을 하라고 명하지 않았고 한 인격체 전부의 변화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그것도 수동태 형식으로 약속했으므로 성령의 권능을 입으면 당신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주님이 보장한 것입니다. 

 

당연히 말로서 복음에 대해 증언해야 하나 반드시 말로 전한 내용과 실제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주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마28:19,20)고 명했다고 기록합니다. 삶의 모범이 따르지 않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를 제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랍비의 교육 방법도 제자들과 합숙하면서 스승이 말하고 행동하는 그대로 따라 하게끔 하는 식이었습니다. 주님이 삼 년간 제자들과 동고동락하는 공동체를 이루고서 모든 사역의 현장에 그들을 동참시킨 까닭입니다. 

 

사도들에게서 올바른 가르침을 받은 초대교회 교인들도 증인이 된 삶을 살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신약성경이 완비되기 전이고 요즘처럼 체계적인 전도 훈련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예수님이 이 땅에 살았던 삶의 모습 그대로 살았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을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날마다 성전에 모이길 힘쓰고 집에서 떡을 나눠 먹었기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더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해주었습니다. (행2:43-47) 귀족과 그들의 노예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한 형제의 신분이 되어서 서로를 진실한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고 했는데, 초대교회와 신자들에게 예수님만이 그 머리가 되어서 그들의 모든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이 주관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의로운 삶이 온갖 죄악으로 부패한 로마 세계의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가서 양심에 큰 찔림을 주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하고 신체적 접촉까지 함으로써 자기들의 부활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삶은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요 하늘의 더 아름다운 본향을 바라보면서 세상과 다르게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이 땅의 형통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서 걸어가니까 세상의 온갖 조롱 멸시 핍박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 복음도 어떤 세상 세력도 막을 수 없이 로마 제국에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습니다. 주님이 말한 증인은 헬라어 ‘말티스’로 목격자(witness)라는 뜻인데, 순교라는 영어 martyrdom 의 어원이 됩니다. 초대 신자들이 복음을 말로만 전하지 않고서 언제 어디서나 죽음도 막을 수 없는 예수님의 거룩한 증인으로 타락한 세상 앞에 서있었던 것입니다. 

 

복잡한 정치적 종교적 갈등으로 유대 백성들과 제자들이 크게 고통받으며 혼란스러워했던 이스라엘이나 작금의 요동치는 한국을 회복시킬 수 있는 예수님의 방안은 세상이 어떠하든 신자가 세상 안에서 십자가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앞이 안 보이는 혼돈 속에서, 신자가 누구에게 복종해야 하는지는 이차적인 문제로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신자는 오직 예수님이 이 땅에서 걸었던 길만 따라가면 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5-17) 쉽게 풀어서 말하면 하나님은 인간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더 많이 전파되어 더 많은 이가 그분의 증인으로 살도록 하는 목적으로 창조되어서 또 그런 방향으로만 주관 통치하신다는 뜻입니다. 

 

어떤 인간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해하여 친밀하게 교제하고 있지 않은 이상 결국에는 온갖 이상하며 추악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번 한국사태는 그런 인간들이 모인 인간사회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는 성경 진리가 여실히 드러난 한 가지 예일 뿐입니다. 신자로선 몸은 세상 안에 살 수밖에 없지만 영적으로는 그런 세상의 혼돈과 멀찍이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이 땅에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만 전념해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분명히 옳은 일을 현실 정치에서 최선을 다해 실현하는 일까지 하지 말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그럼에도 신자로서 마땅히 세워야 할 하나님 나라의 일은 하지 않고 정치 현장에 적극적으로 그것도 도덕적으로 의로운 모습으로 참여해 봐야 하나님은 외면하십니다. 실제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가장 열렬히 사랑했고 공의로운 정치로 회복되기를 바랐던 베드로가 그렇게 하려다가 주님으로부터 어떤 말씀을 들었습니까? “사탄의 자식아!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보다 인간의 일을 먼저 생각한다.”는 큰 꾸중만 들었지 않습니까? 

 

신자가 오순절 성령을 받기 전 베드로처럼 되려고 열심을 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어떤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매일 성령의 의로운 인도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삶을 죽기까지 살아가야 합니다. 신자들이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번 사태와 같은 일들이 인간사회에 반복해서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12/1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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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6-8) 혼란한 비상 시국에 신자가 취할 행동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0)

(행1:6-8) 혼란한 비상시국에 신자가 취할 행동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20)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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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5
  • 조회 수 177

(느2:17-20) 하나님을 청소부로 만드는 신자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9)

(느2:17-20) 하나님을 청소부로 만드는 신자들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9)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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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08
  • 조회 수 125

(고전1:4-9) 가짜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9)

(고전1:4-9) 가짜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19) - 2024년 추수감사절 설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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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4
  • 조회 수 208

(롬1:16-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8)

(롬1:16-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8)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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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7
  • 조회 수 235

(합1:2-6) 북한군을 빨리 죽여 주십시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7) [1]

(합1:2-6) 북한군을 빨리 죽여 주십시오.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7)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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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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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9:5-7) 북한보다 남한을 징벌하실 하나님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6) [2]

(왕하 9:5-7) 북한보다 남한을 징벌하실 하나님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6) “그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아 있는지라 소년이 이르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나이다 예후가 이르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누구에게 하려느냐 하니 이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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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3
  • 조회 수 316

(마10:1-7) 열두 제자 선택에 숨겨진 비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7) [1]

(마10:1-7) 열두 제자 선택에 숨겨진 비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7)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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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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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25 & 3:7) 원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신자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5) [2]

(창2:25 & 3:7) 원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신자들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rd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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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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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14-20) 참 믿음인지 판단하는 기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6) [1]

(막1:14-20) 참믿음인지 판단하는 기준.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6)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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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13
  • 조회 수 317

(창26:1-6) 평안하고 형통한 인생을 사는 비결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4)

(창26:1-6) 평안하고 형통한 인생을 사는 비결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4)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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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06
  • 조회 수 220

(고전1:18-25) 원색적 복음이 실종된 기독교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5)

(고전1:18-25) 원색적 복음이 실종된 기독교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5)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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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29
  • 조회 수 202

(왕하5:9-14) 행위 구원으로 변질된 믿음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3)

(왕하 5:9-14) 행위 구원으로 변질된 믿음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3)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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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22
  • 조회 수 331

(마7:1-5) 예수님은 인간을 전혀 믿지 않았다.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4)

(마7:1-5) 예수님은 인간을 전혀 믿지 않았다. 새롭게 읽은 신약성경 (14)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보라 네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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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5
  • 조회 수 297

(창16:11-13) 하나님의 예정에 들었다고 확신하는가?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2)

(창16:11-13) 하나님의 예정에 들었다고 확신하는가?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2)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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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8
  • 조회 수 499

(창16:7-10) 살피시는 하나님과 눈물 흘리는 하나님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1) [1]

(창16:7-10) 살피시는 하나님과 눈물 흘리는 하나님 새롭게 읽은 구약 성경 (11)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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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1
  • 조회 수 241

(왕상18:1-6) 하나님이 숨겨둔 변절자가 되어라.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0) [2]

(왕상18:1-6) 하나님이 숨겨둔 변절자가 되어라.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0)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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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18
  • 조회 수 255

(롬5:1) 신자가 믿은 후 가장 먼저 행할 일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3)

(롬5:1) 신자가 믿은 후 가장 먼저 행할 일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3)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5:1) 신자로서 첫걸음 예수를 믿고서 교회에 출석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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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11
  • 조회 수 213

(행20:22-25) 두 얼굴을 가진 성령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2)

(행20:22-25) 두 얼굴을 가진 성령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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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04
  • 조회 수 180

(삼상1:9-11) 서원은 악하니 하지 말라.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9) [2]

(삼상1:9-11) 서원은 악하니 하지 말라.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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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28
  • 조회 수 310

(행28:1-6) 성육신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1)

(행28:1-6) 성육신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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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14
  • 조회 수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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