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3:16) 예수님 대신에 구원 교리만 믿는 신자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10)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성경을 읽지 않는 신자

 

제가 부족하나마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30여 년 해오면서 가장 안타깝게 여겨지는 사항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영원한 영적 진리가 계시된 성경이 말하는 바를 정확히 파고들지 않고 설렁설렁 읽고 치우는 신자가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그 필연적인 결과로 자기 믿음을 성경에 부합되도록 삶에 실현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싶은 소원이 있는 신자라도 성경을 잘 모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곤혹스러워합니다.   

 

본문은 주일학교에서 가장 먼저 암송하게 할 만큼 성경 전체 내용을 대변한다고 해서 ‘작은 성경’이라고 불립니다. 이 짧은 문장마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라고 간단하게, 즉 기독교의 구원 방안으로 이해하고 치웁니다. 물론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절대적 진리로서 니고데모가 밤중에 주님을 찾아왔듯이 신자들이 가장 알고 싶은 구원의 길에 대한 정답임에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성경을 대충 읽으니까, 본문의 문자적인 뜻조차 제대로 살펴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구원의 길을 믿으라고 하지 않았고, 당신을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신자가 믿어야 할 대상은 구원 얻는 방법이 아니라 예수님 그분입니다. 구원 얻는 방법은 아무리 잘 믿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그것도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로 믿어야만 합니다. 

 

같은 의미를 두고서 언어유희를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본문의 문자적 의미조차 모른다는 또 다른 증거가 있습니다. 주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신자가 죽고 난 후에 예수 믿었던 보상으로 영생을 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곧바로 얻게 되고 천국 입성도 확정된 것입니다. 

 

바꿔 말해 예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써 확정된 구원은 절대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간혹 죄를 지으면 구원이 취소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신자가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영생을 얻은 것이 아니며 그 전에 예수를 믿은 것도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성경에서 구원 얻는 방법만 배우고 치운 것입니다. 심지어 한 번 받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배운 신자도 자꾸 죄를 짓게 되니까 그런 의심을 합니다.

 

그나마 지은 죄가 괴로워서 회개하는 차원은 긍정적이라 이해해 줄 만합니다. 현실 삶에 조금만 힘든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나를 싫어하는가, 아직 내가 구원받지 못했는가 불안해하니까 더 큰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에는 신자더러 이 땅에서 형통하게 해준다는 목적은 아예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사도들과 초대 신자들은 거의 다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을 정말로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어 신자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의미인지 체험적으로 절감해서 죽기까지 그 의미를 어떤 방식으로든 주변에 증명해 내야 합니다. 믿음을 키워서 하나님의 종이 되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 계시된, 정확히 말해서 예수님 그분이 보장해 준 신자의 신분과 특권에 합당하게 실제로 풍성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과 행위

 

많은 신자의 믿음이 이렇게 어정쩡해진 까닭을 역설적으로 따지면 그동안 교회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는 진리, 즉 구원 얻는 방안을 너무 강조한 탓도 큽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의미를 신자들로 오해하게끔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 그분을 믿는 부분이 실종되거나 매우 부족해진 것입니다.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은, 거꾸로 따져서 믿음이 아니고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같은 말을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었든 인간 쪽에서 산출되는 것으로는 절대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성품, 자격, 신분, 능력, 공로, 선행 등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합격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절대적 전제입니다. 원죄 하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단절 되어서 스스로는 어떤 순전한 선도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독교가 고안한 종교적 가설이 아니며, 모든 세대 모든 인간이 영적으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죽음의 절망 가운데 빠져 있다는 것이 엄연한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그 믿음은 행위의 반대어라고 할 수 있으며, 행위 구원은 절대로 틀렸다는 것이 핵심적인 본질입니다. 반면에 신자들은 믿음을 사전적인 의미로 즉, 믿어 보려 하거나 믿고 있는 인간의 사고 차원으로만 이해하고 적용합니다. 믿음이 인간의 사고 차원이 되면 어쨌든 인간 쪽에서 생각하는 활동을 했기에 인간의 공적이 되어버립니다.

 

예컨대 정확히 이해가 안 되어서 잘 믿어지지 않아도 믿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분명 인간의 공적입니다. 또 십자가 복음을 전해 들었을 때 쉽게 이해하고 믿을 수 있었다고 말하면 자신의 영적 분별력으로 믿은 것이니까 마찬가지로 인간의 공로가 됩니다. 반대로 복음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자는 영적 수준이 낮은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예수 십자가 구원은 인종 신분 계급 지성 등 어떤 것으로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은혜로 하나님이 베푸는 것입니다. 믿음이 사고 차원에 그치면 자칫 믿음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인간 쪽에서 노력하여 생성 성숙시키려는 믿음은 분명히 인간의 행위가 됩니다. 그리고 자기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믿음은 어쩔 수 없이 계속 흔들리므로, 많은 신자가 지금껏 곤혹스러워하듯이 아무리 교회 생활 오래 했어도 영생을 얻었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는 그 믿음은 행위를 전적으로 부인하므로 하나님이 심어 주는 믿음이어야만 합니다. 이 둘의 차이가 어떠한지 알려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경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임 상태였던 아브라함 부부는 아들을 주어서 그 후손으로 큰 나라를 이루게 해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 보려고 노력은 했습니다. 육신적으로 도무지 불가능한데도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까 분명히 그대로 믿어 보려는는 사고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놀랍게도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라고 선언합니다. 여호와의 약속을 믿었다고 하지 않고 여호와 그분을 믿었다고 합니다. 그 약속은 도무지 믿을 만한 내용이 아니지만, 그것을 말씀하시고 이루실 분이 여호와이므로 결코 불가능하지 않고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주목할 사항은 그들 부부가 단번에, 심지어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신 그때에도 실은 그렇게 온전히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약속을 처음 받고서 이십오 년가량 지난 후에나 겨우 그렇게 믿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고난을 겪었고 그때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영적인 씨름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또 얼마나 자기들을 사랑하고 있으며, 그래서 자기들 인생을 당신만의 거룩하고 완벽한 계획과 일정으로 이끌고 계시는지 점점 더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브람은 나이 백 세가 될 즈음에 비로소 여호와가 하시는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순전하게 확신하는 수준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가 결국 그렇게 될 것을 아시고, 정확하게 말해 당신께서 그렇게 만들어갈 것이므로 미리 당신을 믿기에 의롭다고 칭해 준 것입니다. 본문에 적용하면 아브라함은 구원 얻는 방법을 믿은 적은 한 번도 없었고, 하나님 그분을 온전히 믿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다시 강조하지만, 구원 얻는 방법을 믿는 것은 인간의 의가 되어버립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십자가의 대속 죽음의 은혜에 의거해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이라, 인간 쪽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 그분의 의입니다. 

 

아무리 위대해 보여도 인간의 의는 썩어 없어질 누더기와 같습니다. 모세와 다윗은 살인자요, 바울도 사실상 스데반을 죽인 자요, 베드로는 스승을 세 번이니 부인했습니다. 신구약 시대를 대표하는 믿음의 최고 의인 네 명의 의가 그러했습니다. 인간은 평생토록 그런 누더기를 벗어보려고 노력해도 스스로는 도무지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 상태에 처한 대표적인 인물인 니고데모가 자신의 그런 비참함을 절감했기에 밤중에 주님을 몰래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주님도 그래서 대뜸 성령으로 그 영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선포하지 않습니까? 

 

성령으로 거듭나야 예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있기에 자기 노력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엄격히 말해서 구원과 관계없습니다. 물론 구원받기를 뜨겁게 소원해서 성경을 열심히 읽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노력은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아브라함처럼 자기 삶과 인생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온전히 절감할 수 있는 영적 씨름을 지속해야 합니다.

 

신자들이 본문을 구원 얻는 방안에만 주목하여 대충 읽고 치우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전반부 말씀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한 근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는 가운데,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포함된다고 확신해야 합니다. 또 그런 사랑으로 죽음의 절망에 빠진 나를 살리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을 온전히 체험한다면, 당연히 예수님 그분을 온전히 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믿음은 그래서 하나님이 주님의 십자가에 실현한 사랑을 절감한 자가 자연적으로 그 사랑에 걸맞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그 구원의 은혜를 믿으려 노력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온전히 믿어진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이자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님이 나를 개인적으로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실 뿐 아니라, 당신께서 먼저 나를 찾아와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까지 나를 위해서 내어주신 세상에 없는 열정과 끈기로 나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사랑하고 계신다는 점을 전혀 의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살인자들의 믿음

 

우리는 꿈도 꾸지 못하는 살인죄를 저지른 모세와 다윗도 하나님과 온전한 사랑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먼저 모세는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 군병을 자기 의분에 못 이겨서 죽여버렸습니다. 도망자 신세가 되는 바람에 노예로 고생하는 동족을 섬기는 사람이 되겠다는 인생 목표를 일단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시 이방인들이 사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서 목자가 되었으나 80 노인이 되기까지 하나님은 내내 침묵했습니다. 이젠 자기 인생마저 거의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불현듯 임재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젊었을 때 품었던 꿈을 실현할 때가 되었으니 당장 애굽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습니다. 모세는 자기 꿈을 포기했으나 하나님은 전혀 잊지 않고 계셨습니다. 말하자면 그분은 팔십 년 동안 단 한 시도 모세를 떠난 적이 없었고, 그 반대로 그에게 이스라엘을 지휘 통솔할 지도자 훈련을 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를 맞상대하도록 애굽 왕자가 되어서 애굽에 관한 모든 지식을 얻도록, 또 이스라엘의 광야 방황을 지휘하도록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서의 경험을, 철저하게 쌓게 한 것입니다. 

 

모세로선 출애굽한 후에야, 그리고 하나님을 배역한 이스라엘의 40년간 광야 방황을 이끌면서 하나님이 왜 자기로 지난 80년간 완전 실패로만 보였던 시련을 겪게 했는지 비로소 제대로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 놀랍고도 신묘한 섭리와 권능 앞에, 특별히 자기를 너무나 사랑하고 계셨다는 사실에 진정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재했던 것 같았던 그 오랜 시간에 오히려 바로 곁에서 자기를 항상 붙들고 계셨기에 그분을 원망하며 의심 분노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을 것입니다.  

 

다윗의 경우는 현실적 형편이 모세와 매우 달랐으나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는 똑같았습니다. 소년 시절 양을 치고 있을 때 곰이나 사자의 습격을 받았지만 하나님이 지켜 주셨습니다. 그런 시련을 통해서 돌 팔매질의 최고 고수가 되었는데, 나중에 골리앗과의 싸움에 대비케 하려는 하나님의 훈련이었습니다. 그 전투에서 이적적인 은혜를 입고서 하루아침에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고, 사울 왕의 장남인 요나단 대신에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왕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에게 승리한 영광은 잠깐뿐이었고 온갖 고난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무엇보다 부하의 아내와 간음을 저질렀고 그 사실이 들통날까 두려워서 그 부하마저 죽여 버리는 엄청난 죄를 범했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엄중한 경고를 듣고선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그 후로는 언제 어디서나 여호와께 겸손히 자기를 완전히 비워서 내어드렸습니다. 인생의 그 수많은 시련이 그를 기도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준 것입니다.

 

간음과 살인이라는 엄청난 범죄를 통해 다윗은 너무나도 부끄럽고 추악한 자신의 영혼을 발견했습니다. 그 후로는 평생토록 자기 쪽에서 내세울 의라곤 하나도 없기에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 바라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그의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이 평생토록 자기를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무엇보다 자기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입니다. 그도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길이 아니라 그분을 온전히 믿었기에 하나님도 그를 의롭게 여기며 당신의 마음에 합한다고 인정해 준 것입니다. 

 

구약성경이 말하는바

 

구약성경 전체가 말하는 바가 한마디로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 하나님께 원망 불평한 반면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회개를 촉구했고 그 말을 듣지 않으면 벌을 주어서라도 고치고 다시 용서해 주었다는 기록의 반복입니다. 이스라엘이 잠시 정신을 차리지만, 다시 잘못하면 하나님도 다시 선지자를 보내어 야단쳤으나 이스라엘은 끝까지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끈질긴 배역 죄악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의 끈질긴 용서와 사랑의 기록이 구약입니다. 그 사랑은 한 번도 약해진 적이 없으며 벌 줄 때도 오직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부모의 심정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순전히 믿고 따른 적이 없고 대신에 자기들을 높여달라는 떼만 썼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결말이 어떻게 되리라 다 아셨기에 태초부터 계획해 놓은 대로 당신께서 직접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마련했기에 인간의 타락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계획하신 때가 차매 예수님이 하늘에서 인자로 내려왔습니다. 주님은 삼 년밖에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인간을 어떻게 통치하는지, 그래서 인간이 그런 하나님에게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등을 당신의 사역과 특별히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충분하고도 완벽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요1:9,10)라고 선언하고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요1:14)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이번에도 자기 땅에 직접 오신 하나님이신데도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당신의 독생자를 죽이실 만큼 그 백성을 끔찍이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진짜 본심을 보여주었고, 그와 동시에 그들이 당신을 거역 대적한 죄를 당신의 독생자를 죽이실 만큼 너무나도 애통해한다는 심정도 여실히 보여주었는데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공사역의 막바지에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한탄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마23;37,38) 구약 시대 내내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어 회개하기를 촉구했으며, 마지막으로 주님이 직접 오셔서 그랬음에도 완악한 인간들은 오히려 주님을 십자가에 죽여버렸습니다. 

 

그런 엄청난 배역 가운데도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를 깨닫고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당신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혈통, 육정,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며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게 한 은혜였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택하심에는 불공정함이 전혀 없습니다. 분명히 수많은 선지자를 보냈고 주님이 직접 오셨음에도 너희가 원하지 아니했다고 주님은 지적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데 ‘뿅’하고 공짜로 믿음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니고데모처럼 자신의 영적 실체가 너무나 가난하고 비참함을 깨닫고 계속 갈등해 왔던 자들이 구원받은 것입니다. 

 

신자가 되었다는 것

 

예수 믿어서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실제로 하나님의 친자녀가 된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나자마자 부모와 생이별을 당해서 계속 고아로 고생하며 지낸 사람에게 친부모가 먼저 찾아와 고아원에서 데리고 나와서 그 부모 집으로 들어간 셈입니다. 고아로 지내며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나쁜 짓을 하며 고생하는 동안에는, 혹은 나름대로 자수성가하여서 의롭고도 성실하게 살았어도, 한시도 빠짐없이 자기 존재의 뿌리가 없어서 허전하고 갈급했을 것입니다. 

 

그런 고아가 친부모를 만나서 함께 살게 된 기쁨은 평생 동안에 겪어본 것 중에 최고로 클 것입니다. 그런 기쁨을 만끽한 자는 오직 부모님의 뜻대로 착실하게 살면서 이전의 삶으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도 친부모가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해 끈질기게 계속 찾았으며, 심지어 다른 아들의 생명이 희생당하는 어려움 끝에 기어이 자기를 찾아냈다는 사실을 알면 그 부모의 사랑을 절대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그 부모가 자기를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며 나아가 모든 것을 다 베풀어 줄 것이라는 점도 전혀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철저한 원수가 되어서 신자들을 핍박했던 바울이야말로 죽어 마땅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이 먼저 찾아와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해 주고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서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종이 되게 했습니다. 그런 생생한 자기 체험을 회상해 본 바울로선 예수 믿은 신자의 신분과 특권을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모든 것을 주신다고 해서 신자가 소원 계획하여서 기도하는 대로 풍요와 사치를 양껏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들과 함께 주신다고 했으므로 십자가 영광의 빛을 더욱 세상에 비출 수 있도록 신자의 삶의 모든 차원을 거룩하게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라고 단언한 것입니다. 많은 것들을 열거했으나, 한마디로 하나님과 친자녀의 관계가 된 것을 끊어낼 존재나 사건은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폐가 있지만 하나님 그분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인간 부모도 고아원에서 자기 자식을 찾아왔기에 아무리 그 자녀가 잘못을 범해도 절대로 다시 고아원으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동일한 믿음의 여정

 

우리도 성경이 열거하는 믿음의 위인들과 동일한 믿음의 여정을 걸을 수 있습니다. 한 성령 안에서 한 주님을 한 믿음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순전히 믿은 후에, 혹은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자기 노력으로 믿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도, 지난 세월을 곰곰이 따져보십시오. 하나님이 자기를 당신의 의로운 손으로 꽉 붙들고 계셨다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특별히 당시로는 이해도 안 되고 오히려 하나님이 실존한다면 그분을 원망하고 싶었던 심한 고난과 불행들마저도 당신을 제대로 알게 해주려고, 또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도하려는 그분의 완전한 섭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껏 셀 수 없이 많은 일이 일어났으나 세밀하게 잘 따져보면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아귀가 맞물려서 필연적인 결과로 이어지도록 하나님 그분이 역사하셨다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태어나기 전부터도 하나님이 자기를 지금의 부모와 환경에 처하도록 계획해 놓으셨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본문 전반처럼 하나님이 자기를 이처럼 사랑하사 당신의 품에서 자기를 놓아준 적이 한 번도 없음을 알고서 가슴 벅찬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깨달음은 성령의 간섭으로만 가능합니다. 또 그런 경험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지만,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 성령이 역사하면 그분이 정하신 시기와 방식으로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완전히 항복하게 됩니다. 자기 심령의 깊숙이 숨겨진 어둡고 부끄럽고 치사했던 것들까지 하나 감추지 않고 쏟아내며 오직 주님의 조건 없는 긍휼과 은총만을 간구하는 그런 순간이 옵니다. 사람에 따라 일회적이거나 혹은 점진적일 수 있고, 또 아주 격렬한 감정이 일시에 따르거나, 잔잔한 평안의 마음이 조금씩 채워질 수 있습니다. 어느 경우가 되었던 예수님이 나를 아시고 먼저 찾아와서 당신의 사랑으로 품어주셨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히 인식하고서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을 알게 되면 그전에 예수 십자가를 몰랐던 자신의 삶이 너무나 비참했기에 완전한 절망과 사망이었다고 자각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출석해서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따랐지만, 그분의 능력만 빌려서 자신의 형통과 안락을 빌었던 것이 전혀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죄었으며, 나아가 그분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을지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한 죄인이 당신에게 어떤 어리석은 짓을 해도 심지어 원수가 되었어도 택한 자라면 그가 완전히 벌거벗고서 전부를 당신에게 온전히 바치기만을 바라고 계속 기다려주시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동전, 집 나가서 허랑방탕하게 부모 재산을 낭비한 탕자 같은 주님의 비유가 전부 십자가 사랑을 계시한 것이지 않습니까? 이제 곧 십자가에 죽어서 당신의 원수 죄인들을 향해서 하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확증해 보일 테니까 제발 깨닫고 그 은혜를 순전히 받아들이라는 의미로 미리 교육시켜 준 것입니다. 그 비유들에서 양과 동전과 탕자가 먼저 돌아오길 소원 노력한 것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목자와 동전 주인과 탕자의 아버지가 목매달다시피 간절히 또 끝까지 그들을 찾았던 것입니다. 

 

구원은 그래서 고아가 자신의 온전한 신분을 되찾듯이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참 생명을 다시 받는 것입니다. 그 일은 참 하나님만이, 그것도 독생자 하나님의 생명과 맞바꾸어야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그런 사랑 안에 평생토록 잠겨 있으며 그 품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신분으로 완전히 바뀐 자가 신자입니다. 믿음은 그래서 그 사랑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자 본인에겐 당연히 그럴 마음이 없지만 친부모인 하나님이 절대로 그렇게 떨어져 나가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는 안심이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 참믿음을 갖고 계십니까? 쉽게 말해 세상이 아무리 요동쳐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벗어날 수는 절대로 없으니까 평안하게 지내고 있습니까? 비록 육신이 연약하여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와 고난들로 자기도 모르게 불안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때도 있지만, 다시 십자가의 사랑 앞으로 돌아올 실력이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구원의 방안만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3/23/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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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16) 예수님 대신에 구원 교리만 믿는 신자.

(요3:16) 예수님 대신에 구원 교리만 믿는 신자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10)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성경을 읽지 않는 신자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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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23
  • 조회 수 122

(요3:13-15) 여전히 사탄에게 붙잡힌 신자들

(요3:13-15) 여전히 사탄에게 붙잡힌 신자들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9)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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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16
  • 조회 수 131

(요3:13-15) 예수님의 십자가가 실감나지 않는 신자 [1]

(요3:13-15) 예수님의 십자가가 실감나지 않는 신자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8)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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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09
  • 조회 수 198

(요3:13-15) 모세의 놋뱀에 숨겨진 의미

(요3:13-15) 모세의 놋뱀에 숨겨진 의미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7)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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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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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13) 예수로 인해 실족하는 신자

(요3:13) 예수로 인해 실족하는 신자들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6)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3:13) 하늘에 계신 예수님 구원의 길을 물으러 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성령으로 사람의 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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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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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9-12) 땅의 일도 믿지 못하는 신자.

(요3:9-12) 땅의 일도 믿지 못하는 신자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5)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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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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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6-8) 예수님도 설명할 수 없는 성령의 거듭남

(요3:6-8) 예수님도 설명할 수 없는 성령의 거듭남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4)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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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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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1:12-14) 주의 종이 갖추어야 할 첫째 가는 자질 [2]

오늘 (2/3, 월) 이곳 엘에이 소재 미주장신대(장로교 신학대)의 신학생 채플에서 전한 설교입니다. (실제 설교는 대화체라 아래 원고와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 ******************************* (빌1:12-14)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첫째가는 자질 미주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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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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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6-7) 육에 머무는가? 영으로 났는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5)

(요3:6-7) 육에 머무는가? 영으로 났는가?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3)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3:6-7) 육에 머문 니고데모 구원의 확신이 없었던 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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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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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4-5) 예수님과 선(禪)문답을 해본 적이 있는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5)

(요3:4-5) 예수님과 선(禪)문답을 해본 적이 있는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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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26
  • 조회 수 159

(요3:1-3) 천국 열쇠를 사용하고 있는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3)

(요3:1-3) 천국 열쇠를 사용하고 있는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3)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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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19
  • 조회 수 180

(창22:1-3) 매일 반복되는 하나님의 시험 - 새롭게 읽은 구약 성경 (21) [1]

(창22:1-3) 매일 반복되는 하나님의 시험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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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12
  • 조회 수 339

(호14:1-3) 진심만으론 많이 부족하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20)

(호14:1-3) 진심만으론 많이 부족하다.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20)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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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5
  • 조회 수 179

(롬8:31-34) 올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았는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2) [2]

(롬8:31-34) 올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았는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2) / 2024 송구영신 예배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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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29
  • 조회 수 341

(행1:6-11) 초림보다는 재림을 기념하는 성탄절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1)

(행1:6-11) 초림보다 재림을 기념하는 성탄절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1) / 2024년 성탄 주일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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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22
  • 조회 수 296

(행1:6-8) 혼란한 비상 시국에 신자가 취할 행동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0)

(행1:6-8) 혼란한 비상시국에 신자가 취할 행동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20)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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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5
  • 조회 수 439

(느2:17-20) 하나님을 청소부로 만드는 신자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9)

(느2:17-20) 하나님을 청소부로 만드는 신자들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9)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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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08
  • 조회 수 206

(고전1:4-9) 가짜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9)

(고전1:4-9) 가짜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19) - 2024년 추수감사절 설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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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4
  • 조회 수 244

(롬1:16-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8)

(롬1:16-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8)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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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7
  • 조회 수 287

(합1:2-6) 북한군을 빨리 죽여 주십시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7) [1]

(합1:2-6) 북한군을 빨리 죽여 주십시오.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7)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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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0
  • 조회 수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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