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30:7-9 신자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조회 수 473 추천 수 11 2011.10.28 20: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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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30:7-9)


한국이 가난을 벗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자 모든 이의 인생 목표가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에서 해방되는 생존(生存)이었습니다. 이제는, 최근의 극심한 불경기로 조금 빛이 바래졌지만,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아름답게 사느냐는 웰빙(Well-Being)입니다.  

미디어에선 “죽기 전에 꼭 해보아야 할” 일들의 리스트를 앞 다퉈 발표하고 있습니다.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 보아야 할 영화, 읽어야 할 책, 먹어야 할 음식, 해야 할 일 등의 백선(百選)이 난무합니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모두 공감할만한 객관 타당한 기준으로 선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대중으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얻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 리스트들을 흥미롭게 살펴봅니다. 꼭 해보고 싶다기보다는 일반의 높은 평가를 받는 일들이 과연 어떤 것인지 살피려는 뜻입니다. 물론 개중에는 저의 취향과 일치하는 것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죽기 전에 그런 일을 다해보는 것도 결코 나쁘지는 않다고 여겨지지만, 문제는 시간과 돈이 부족하니 그림의 떡으로 치부합니다.  

솔로몬의 측근으로 현자(賢者) 중의 일인으로 보이는 아굴도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소원을 빌었습니다. 백 개가 아니라 단지 둘 뿐입니다. 소원이란 원래 쉽게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 아니어야 합니다. 자기 힘에 크게 넘치는 일입니다. 신자라면 하나님에게 인도와 도움을 끊임없이 구해야 하고, 불신자라면 돈과 시간을 최대한으로 축척해야 가능해지는 평생의 목표입니다. 또 당연히 죽기 전에 꼭 달성하고 싶고, 실현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기자가 원하는 그 두 가지 일이 무엇입니까? 너무나 하찮은 일이지 않습니까? 허탄과 거짓말을 멀리하게 하고, 부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일용할 양식만 달라고 합니다. 큰 권력, 명예, 재물은커녕 하나님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정직하게 살며 굶지 않을 정도로만 해달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로 쳐도 웰빙 바람이 불기 전의  그저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렸던 상태로 되돌아가는 셈입니다.

과연 이 두 가지 일이 평생의 소원 거리가 될 법이나 합니까?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신자가 간구할 주제로선 너무나 빈약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죽기 전까지 그렇게 해달라고 하니까 평생을 두고도 제대로 달성되지 못한다는 뜻 아닙니까? 그럼 매일 매일을 바로 이 문제만 갖고 씨름하고 기도한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신자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이에 동의하십니까?

먼저 일용할 양식은 당시의 경제 형편으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였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본 잠언의 저자는 솔로몬 왕의 측근입니다. 먹고 사는 데에 큰 지장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오히려 왕을 자문하는 현자로서 가장 신경을 써야만 하는 과제를 말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거짓을 말하지 않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 지위 때문에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치부하지 않도록 빌었습니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자신의 직위에 성실히 충성하겠다는 뜻입니다.  

그가 맨 먼저 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허탄이 자기와는 무관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사물이나 일을 뜻합니다. 거짓을 말하는 것은 도덕적 잘못이기 이전에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왕에게 아부하거나, 판단을 굽게 하는 것 등을 뜻합니다. 흔히들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 거짓말도 하고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일을 하지만 자신은 절대 그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기자가 구한 것이 문자적으로는 둘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상 하나입니다. 재물에 대한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자신이 더럽고 추해지는 것이 가장 싫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죽기 전에 해야 할 백 가지는 시간과 돈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달성해도 여전히 허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최고의 비경을 탐험해도 즐거움은 잠시 뿐이고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시간과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은 구태여 소원이라고 말할 것까지 없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어지간해선 달성하기 힘들어야 참 소원이지 않습니까? 작금 유행하는 웰빙 식의 백선 모든 리스트는 한 음절, 한 단어로 바꿀 수 있습니다. 바로 “돈”입니다. 돈이 웰빙을 보장해준다고 믿고 오로지 열심히 돈 버는데 모든 시간과 돈을 소비합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러니 하게도 많은 이들이 막상 웰빙은 미처 이루지도 못하고 죽습니다. 간혹 약삭빠른 자는 어차피 백 가지는 불가능하니까 한두 개의 자기 취미 생활에 몰두합니다. 그리고 그 자체에 자기 인생의 모든 의미와 가치를 다 걸어버립니다. 지금 자기가 좋아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다른 구십 아홉 가지는 하지 않아도, 혹은 권력 명예 재물이 부족해도 행복하다고 스스로에게 자기 최면을 걸면서 말입니다.  

본문의 잠언 저자는 그런 것은 참 행복이 결코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돈 자체를 배격한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가난에 빠지지도 말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왕의 자문으로써 왕에게 잘 보이려는 것만도 아닙니다.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니 최소한 그분의 이름에 절대 누가 되지 않는 모습으로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하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웰빙을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찾는 자와, 그분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들 특별히 돈에서 구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주인으로 섬길 수는 결코 없습니다. 본 저자는 그 중에 하나 즉, 평생토록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는 것만을 간구한 것입니다.

정작 본문에서 주지해야 할 사항은 바로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 거창한 종교적 업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열방을 가슴에 품고 이 땅을 변화시키며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식이 아닙니다. 물론 당연히 그런 비전을 품고 그렇게 되도록 주님의 인도를 구하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신자로서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고 허탄해진다는 것입니다.

돈과 시간만으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것이 진짜 소원입니다. 또 돈과 시간으로 안 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성취시켜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나 간단합니다. 쓸 데 없는 일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말고(허탄), 자기 업무에서 절대 부정부패하지 말고(거짓말), 일용할 양식만으로 검소하게 사는 것입니다.

아직도 본문이 신자의 평생 소망으로 별로 실감이 나지 않습니까? 그러나 평생을 두고 이 셋을 진짜로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자가 과연 우리 중에 몇 있겠습니까? 저는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또 이것 외에 신자가 구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따로 무엇 있습니까? 정확히 말해서 이것도 안 되는데 다른 거룩하고 거창한 일을 구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야말로 허탄한 종교적 사치에 불과해지지 않겠습니까?

신자가 정말로 이렇게 살 때에 주위 사람들에게 신자로서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이름을 높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의 첫 째 가는 책무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허탄과 거짓이 없고 참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 있음을, 아니 실제로 누리고 있음을 다른 이들이 보고 알게 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만 바로 자신이 믿고 전하려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절대적 진리이자 거룩한 능력으로 비쳐지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 맥락에서 다윗도 한 가지만 구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27:4) 좁게는 사울이나 주위 대적에서의 해방을 구했고, 또 성전 건축에 대한 소망의 자락을 살짝 비췬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과의 영영한 아름다운 교제를 소망한 것입니다.

시간과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만이 허탄하지 않고 참 소망으로서의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시간과 돈이란 결국 이 땅에서 가시적 결과를 목표로 삼기 때문입니다. 또 이 땅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언젠가 썩기 마련이므로 허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간과 돈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만이 영영한 가치를 가지며 당연히 오직 하나님께로만 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시간과 돈이 없어도, 부족해도 얼마든지 성취가 가능한 것입니다. 예컨대 사랑, 공의, 소망, 믿음, 거룩, 정직, 진리, 아름다움 등을 비롯해 본문이 말하듯이 허탄을 버리고 거짓말 하지 않으며 부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아서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시간과 돈과는 무관하게 얼마든지 가능한데도 사실은 가장 어려운 과제이기도 합니다. 정말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싸워야 겨우 달성될까 말까 합니다. 오늘 승리했다고 내일의 승리를 담보 내지 예약하지 못합니다. 또 다시 똑 같은 열성과 믿음과 힘을 동원해서 싸워야 합니다. 정말 죽기 전까지, 매일매일 꼭 이루어야 할 일들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 끈질기게 우리를 꽁꽁 묶으려 들기 때문입니다. 내 본성이 나를 묶고 있으니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바로 그 일이 주님의 영광을 위한 첫 걸음이자 가장 큰 걸음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수백, 수천억 짜리 예배당 건축도 시간과 돈만 있으면 수년이면 달성됩니다. 반면에 그 안에서 은혜롭고 효과적으로(?) 예배드릴 수천, 수만 명의 신자들이 본문처럼 간구하는 일은 죽기 전까지 제대로 달성되겠습니까? 아니 믿음의 참 목표가 바로 이일임을 알기라도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더더욱 죽기 전에 정말로 꼭 이뤄야 할 신앙의 참 과제가 아닐까요?  

실은 한국에서 기독교가 자꾸 쇠퇴해가는 이유도 바로 이 웰빙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사실은 지구상의 대부분이 아직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존을 추구했습니다. 또 그 때는 하나님을 찾고 믿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자들마저 하나님을 이용해 웰빙을 추구하니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빛이 세상에게 비춰지는 것을 막고 있는 셈 아닙니까?

8/3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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