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05:12-19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조회 수 412 추천 수 0 2018.07.10 11:47:21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새벽기도 설교 (4)

 

“그 때에 그들의 사람 수가 적어 그 땅의 나그네가 되었고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떠돌아다녔도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그들을 억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그들로 말미암아 왕들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105:12-19)

 

나그네의 삶은 선택이 아니다.

 

구약성경의 150편의 시편은 몇 가지 주제로 나뉜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지키셨음을 찬양하는 역사시도 셋 있는데 본 시편은 그중의 하나다. 본 시가 다루는 역사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언약을 맺고 그 후손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지만 젓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된 것까지이다. 성경으로 치면 창세기 12장에서 여호수아서까지다.

 

본문 앞의 1-11절은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여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라고 그분의 성품과 속성에 대해 감사 찬양했다. 이어서 12절부터 당신께서 그 언약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루어 가는지 시적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적 표현이란 어떤 사건에 대한 자신의 깨달은 바와 그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담아낸다는 뜻이다. 그 기간 동안의 이스라엘 역사의 경과는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어떻게 이해 해석 반응했는지 살펴야 한다.

 

먼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당시에 숫자가 적었다고 회상한다. 언약의 수혜자가 될 만한 특별한 자격이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따라 그분의 백성이 되었다는 뜻이다. 또 땅에서 나그네 되어 이 족속 저 족속의 땅으로 떠돌아다니는 중에 그분의 은혜와 권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까지 이스라엘의 최초 족장들의 삶이 그랬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였어도 이 땅에선 형통과는 거리가 먼 나그네의 삶을 살게 하셨다. 그것이 현실적 안락과 형통이 인생의 본질이 아님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영원한 본향은 천국이며 이 땅에선 그곳에 이르기까지 잠시 우거(寓居)하는 과정일 뿐이다.

 

이스라엘의 육신은 세상 안에 거하면서 세상의 방식으로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영혼은 하늘의 신령하고 거룩한 것으로 채워야 하는 신분이다. 요컨대 세상에 속한 사람과는 다른 정확히 말해 정반대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 불려나왔다면 나그네 같은 삶은 선택이나 의무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이 땅이 전부라고 믿기에 이 땅의 풍요를 좌우하는 물질에만 제한 받는 자와 정반대여야 한다. 하루하루가 영원한 본향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이기에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한다. 당신의 백성에게 풍요를 약속하지 않은 하나님을 잘 모르겠다면 세상으로부터 불러낸 그분의 뜻을 모르는 셈이며 신자라고 할 수도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복

 

그럼 이스라엘이 그분의 언약 백성이 됨으로써 받은 복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다른 이들의 훼방과 대적을 막아주신 것이다.(14-16절) 쉽게 말해 가나안 땅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하거나 굶어서 죽지 않을 정도만 보호해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게 사는데 장애가 되는 것만 제거해 주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세상 사람과 다른 삶을 살도록 불려나왔다. 세상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산다. 반면에 신자는 이웃을 위해 희생과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며 주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섬겨야 한다. 그렇게 살아감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아니 충족될 만큼의 삶의 여건을 만들어주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재물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않음을 세상 나라에 속한 자들이 눈으로 보고 확인하게끔 하는 뜻이다. 당연히 평생을 나그네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말하자면 평생을 일용할 양식을 채워주면 조금 지겹긴 해도 누구라도 하나님 뜻을 따르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종종 비상한 방식으로, 주로 고난의 모습으로 그것도 도무지 감당치도 못하고 심지어 이해하기도 힘든 정도로 이끄신다. 때로 신자가 상상도 못한 상황에 마주치게 하여서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기도 한다.

 

야곱 가문도 기근을 만나 굶어죽게 되었다.(16절) 그 전에 별 문제 없이 풍요롭게 살고 있을 때에도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이방 땅의 노예로 팔려가게 했다. 야곱은 다른 아들들로부터 요셉이 들짐승에 물려죽었다는 거짓 보고를 받는 바람에 그 후로는 큰 슬픔과 속에 지내게 되었다.

 

이런 저런 불행이 야곱 가문을 덮쳤어도 그 배경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은 완벽하셨다. 전혀 하자나 부족이 없다. 신자의 궁극적인 소망도 그분의 완전하심에 두어야 한다. 요셉의 발이 차꼬에 메이고 몸은 쇠사슬에 묶였다.(18절) 보디발의 집에서 청지기 직분을 잘 수행하다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신 분인가?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19절) 요셉의 고난은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이 이를 때까지 일시적인 고난이었을 뿐이다. 이만큼 신자에게 위로와 힘과 능력과 소망이 되는 약속이 없다. 언약 백성이 누리는 복의 본질이다. 아니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것 자체가 그 언약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뜻이지 않는가?

 

그 의미를 더 깊이 따지자면 첫째, 하나님이 신자를 누명 고난 핍박에서 반드시 신원(伸冤)하여 구원해주시는 당신만의 때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신자로선 당장에는 그때가 언제일지 전혀 알 수 없다. 되어져 가는 상황을 잘 살펴도 그런 판단을 도무지 할 수 없다. 때론 갈수록 고난이 더 겹친다. 요셉의 경우도 그랬다. 그러나 신자의 모든 문제와 고난은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뿐이다.

 

둘째 그분의 구원의 때가 반드시 있다는 것은 그 전에 당신만의 완벽한 계획이 다 마련되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신자가 겪는 문제와 고난은 그 계획된 목적지로 가기 위한 필연의 과정이라는 뜻이 된다. 히브리인 노예 출신의 요셉이 인간적 계획과 수단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비상한 방식만이, 바꿔 말해 신자가 죽도록 고난을 겪게 해서라도 하나님만이 그 일을 가능케 한다.

 

셋째 하나님이 계획하셨다면 그 계획은 절대로 선하고 의롭다. 당신의 영광이 드러나는 동시에 신자에게도 유익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다. 하나님 그분은 완벽하시다. 신자가 모르는 사이, 태어나기도 전에, 아니 창세전에 그분은 완벽한 계획을 마련하셨다. 그럼 그곳으로 가는 과정도 완벽하고 그 열매도 완벽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신자다.

 

문제는 그 중간 과정을 보는 신자의 시각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는 전혀 하자가 없이 완벽하나 그것을 거쳐야 하는 신자에겐 현실적 불편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며 실제로 죽음과 방불한 흑암으로만 둘러싸인 절망에도 처한다.

 

그렇다면 믿음이 하는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터널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기도하고 인내하면 선한 결말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만이 아니다. 끝이 선할 것이라는 것, 최소한 그분의 뜻에 의롭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미 계획되어 있었던 사실이다.

 

믿음이란 그래서 그 선한 결론을 잘 분별하여서 지금 겪고 있는 고통스런 삶에 그 결론을 제대로 적용해 나가는 실력이다. 고난을 끝까지 인내하며 이겨내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견뎌내기만 한다면 시작과 끝은 선하나 중간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 된다. 또 신자 본인에게 발전과 개선이 없다. 주변 환경의 부정적인 측면만 소멸된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를 향한 뜻이 이 땅에서 인고의 세월만 지내게 하고 그래서 인내력만 키우는 것이 다일까? 아무리 따져 봐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의 영광을 신자를 통해서 드러내고 신자도 그 영광에 참여시키기 위해서 그런 고통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요셉이 부모 형제와 감격적인 재상봉을 한 후에야 하나님이 우리 가문 즉, 언약의 백성을 기근에서 보호하려고 자기를 먼저 애굽에 보내어 그 힘든 고생을 하게 만드셨다는 고백을 했다. 자기에게 그런 고생이 없었다면 이런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그마저 하나님의 아브라함을 향한 언약을 실현해나가는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사백 년이 넘도록 야곱 후손들이 또 다시 고된 노예 생활을 거쳐야 했다. 그런데 그 오래고 고된 노예 생활도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정로말 하늘의 뭇별처럼 창성 강건해지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완벽한 섭리였다. 따라서 언제 출애굽이 될지 또 가나안 땅을 정복할지는 그들로선 여전히 모르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고 말 것이다.

 

믿음의 선조는, 언약 백성이라면 하나님이 언약을 이뤄나가는 중간과정에 기꺼이 동참하여, 대부분이 고난의 모습이지만, 자신을 수고 희생하며 걸어가야 한다. 단순히 참아내어선 후손의 믿음도 인내력 늘리는 수준밖에 안 된다. 육신적으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지라도 그 영혼은 넘치는 기쁨과 감사로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언약백성이 반드시 지녀야 할 그런 참 믿음을 후손에게 전해야 한다.

 

이는 물론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시작도 나그네요, 끝도 나그네 상태다. 결국은 신자의 마음이 문제다. 하나님의 언약에만 바탕을 둔 가치관과 인생관이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 믿음은 그것의 현실 적용이다. 세상 형통에 초점이 모이면, 아니 조금이라도 관심을 쏟으면 중간 과정은 괴롭기만 하다. 나아가 하나님 뜻은 물론 전개되어가는 사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어서 인내는커녕 불평과 의심만 늘어난다.

 

반면에 어차피 이 땅의 삶은 나그네로 시작하여 나그네로 마친다는 인생관이면, 사실은 그런 확신을 갖는 것이 믿음의 본질임, 자연히 그 중간의 고통도 별 것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대신에 그 불편함 가운데 내포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아 순종하게 된다.

 

언약 백성인 신자가 기억할 것은 오직 하나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응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고난은 아무리 길어도 그 응답의 때까지 뿐이다. 그럼 고난이 심해지고 겹칠수록 응답의 때가 가까워져 간다는 반증이다. 최소한 끝날 때는 반드시 있고 주님의 영광은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만 기억해도 된다. 끝을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면 중간도 걱정할 필요 없다. 불평 의심으로 끝만 오기를 기다리며 지새우는 대신에 현재 감사와 경배를 선하신 하나님께 돌리며 기쁘게 영광스런 종착지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4/21/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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