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19:1-8) 말씀대로 행하여 받는 복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19:1-2)
신자가 율법을 읽고 그대로 실천할 때에 얻는 유익을 묘사한 시편 119편은 시편 중에서 가장 깁니다. 히브리 알파벳으로 각 문단의 첫절을 시작하는 알파벳시편(acrostic)입니다. 히브리 알파벳은 자음만 22자인데 각 철자마다 8절씩 한 연을 이루어 총 176절로 구성되었습니다. 히브리 문학의 특징대로 반복 평행법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율법, 증거, 법도(도), 율례, 계명, 판단, 말씀, 규례 등은 모두 율법을 나타냅니다.
첫째 연(1-8절)은 첫 알파벳인 알렙으로 시작하는데 주제는 말씀대로 행하여 얻는 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복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기자의 표현 그대로 옮겨봅시다. 첫째, 불의를 행하지 않고 주의 도를 행합니다.(3절) 둘째,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는 부끄럽지 아니합니다.(6절) 셋째,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웁니다.(7절) 그래서 넷째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7절) 거기다 기도 형태이긴 해도 내 길을 굳게 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5절)
지금껏 많은 한국교회에서 배워온 신앙의 유익과는 많이 다릅니다. 잘 믿으면 현실적으로 크게 형통한다고 합니다. 잘 믿는 것을 풀어쓰면 교회생활 성실히 하고 기도 뜨겁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긴 해도 그것도 따지고 보면 윤리적으로 불신자보다 착하게 사는 정도인데다 그보다는 교회활동에 열심을 내는 것이 그분 말씀에 순종하는 내용의 거의 전부입니다.
구약 시대 신자도 잘 믿으면 현실적 복을 받는다고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멀리하고 의를 행하게 되고, 그럼 자연히 부끄러울 일이 없으며, 말씀을 실천하여 진리임을 깨달음으로써 주님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 주의 말씀이 가르치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고 그대로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주님 말씀만 바로 가르쳐도 지금처럼 성경이 말하지 않는 복을 신자들이 추구 내지 기대할 리가 없습니다. 말씀을 그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목회자가 자기 생각을 주입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신자들이 기대하는 것에 맞춰 왜곡했다는 뜻입니다. 현실적 복을 받는다고 해야 사람들이 교회로 많이 몰리고 그 결과 목회자가 얻는 이런저런 유익도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확히 알면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내 도덕적 종교적 행위대로 비례하는 보상을 그분께 전혀 바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의로워지고 부끄럽지 않게 된 것만으로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주님 말씀대로 살 때에만 내 길이 굳게 정해집니다. 현실 형통을 목적으로 주님을 찾거나 심지어 그것을 기대하며 말씀을 실천하는 자는 형통이 없으면 의심 불만에 빠집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로 치장만 했지 사실상 공중권세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죄로 타락한 세상 사람과 동일한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불신자보다 조금 더 선하게 사는 것도 마찬가지 결과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이 심어준 양심으로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견고한 기준이 없는 인생 길은 결코 견고해질 수 없습니다.
기자의 마지막 기도를 보십시오. 나를 아주 버리지 마십시오. 내가 잘 믿었는데 왜 이 모양입니까라는 불만과 정반대입니다. 주님이 자기를 버리면 불의를 행하게 되고 인생 길이 굽어서 요동치며 무엇을 하든 부끄러워지며 주의 지혜에는 무지하여 어리석은 자기 생각만 고집하게 됩니다. 지금 당신은 바로 이런 것들이 너무 싫어서 언제 어디서나 주님 말씀대로 순종합니까? 아니면 현실에 형통과 풍요이 부족해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이 너무 싫어서 뜨겁게 기도만 합니까?
(1/4/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