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 개월간을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 함이라 하라”(민11:20)
기독교는 진리입니다. 진리란 비진리(非眞理)의 정반대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과 진리인 것 두 가지로만 나뉘지 그 중간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진리란 자연적으로 배타성, 유일성, 독단성을 띌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유일한 구원의 길이면 그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마12:30)고 했습니다. 이런 부분에 신자가 괜히 자신이 없어선 안 됩니다.
흔히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성도들이 모든 것을 희생하며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해드리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전도와 선교에 열심이고 성전을 크게 건축하여 교회 사역을 확장하는 일 등입니다. 물론 그런 거창한 일들 가운데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만이 증거 된다면 당연히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이외로 신자 가까이 쉽고도 간단한 곳에 있습니다. 즉 신자가 하나님을 대하는 길은 그분을 영화롭게 하거나 본문처럼 멸시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미지근한 상태는 영적으로 죽어 있는 것입니다. 명목상의 신자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분을 영화롭게 하려면 가장 먼저 그분을 멸시하지 않으면 됩니다.
본문에서 멸시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고기를 못 먹어 허기지니까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라고 불평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고 직접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모세와 아론을 들 볶았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여호와께 들렸으므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목회자에게 절대 불만을 품어선 안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현재의 환경,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불만을 품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관 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없어지거나 약해진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공평한 섭리와 무한한 긍휼을 믿고 인내하며 그분의 구원을 소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이 정반대가 되면 됩니다. 현재의 환경과 사건에 불만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불만이 생기더라도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 이상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당신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너무 힘들어 사방 팔방이 막혀서 현실에선 도저히 대책이 서지 않는데 그래서 지치다 못해 생을 포기할까도 싶지만 그래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절대 놓치지 않는데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좋은 여건과 신나는 일이 벌어질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그분을 그리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선물을 사주어서 감사하는 것보다, 정말 제대로 먹이고 입히지도 못했는데 부모에 대한 존경을 버리지 않고 순종하면 오히려 부모가 눈물 흘리며 자식에게 감사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어려운 여건 가운데도 자기 할 일을 당당하게 해 나가는 자식을 보는 것만큼 부모에게 더 큰 기쁨이 있겠습니까?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환난 날이란 환경이 안 좋고 현재 고통스런 일이 생긴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 불만이 생길 수 있는 날입니다. 이스라엘처럼 고기를 너무 못 먹어 허기진 날입니다. 그 때에 주를 찾으면 바로 그것이 당신을 영화롭게 한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신자를 환난에서 건져 주는 기쁨을 만끽한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기뻐하면 당신도 기뻐한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신자도 죄인이라 무조건 고기만 많이 주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시지도 않을 뿐더러 신자에게 원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신자가 환난 날에 더더욱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서 자기 인생 전부가 오직 당신의 인도와 보호 속에 있음을 깊이 체험하여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인간을 다루는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면 사단 둘 뿐인데 사단에게 절대로 당신의 자녀를 넘겨주지 않은 것을 기뻐하시고 그것이 당신의 영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에게 당신에 대한 불만이 생겨도 절대 야단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만이 생겼는데도 당신께 무릎 꿇지 않는 것은 싫어하십니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해서 불만이 많이 생기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단 모든 의심, 불만, 불평, 원망, 불신앙을 오직 그 분 앞에만 토설한다면 말입니다.
전우주를 통틀어 하나님 한 분만이 영원한 진리로서 모든 선한 것이 오직 그분으로부터만 나옵니다. 범사에 그분을 인정하고 쉬지 말고 그분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 이상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분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자연히 알게 되며 또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허락하시며 이끌어가시는 이도 그분이십니다.
지금 혹시라도 주위 환경과 현재의 사건을 보니 하나님을 멸시하고픈 마음이 들었습니까? 오히려 그분을 영화롭게 할 기회입니다. 아니 바로 당신을 그분의 영화로 덧입힐 수 있는 순간입니다.
2/17/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