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신6:6-9)
하나님을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사랑하라는 구약 최고의 계명, 세마를 실천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가르치되 무슨 일을 하든 평생을 두고 항상 가르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조금 문제입니다. 손목과 미간에 붙이고 또 집안 곳곳에 붙여 놓으라고 합니다. 어딘가 형식적 심지어 미신적인 냄새까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실제로 이 말씀대로 행했을 뿐 아니라 신6:4,5의 말씀을 조그만 두루마리에 써서 작은 상자에 담아 어깨에 달고 다니거나, 대문에 걸어두고 들어가고 나가고 할 때마다 그 상자를 만졌습니다. 찰톤 헤스톤이 주연한 영화 벤허에 보면 그 만지는 태도로만 유대교 신앙에서 기독교 신앙으로 바뀌는 모습을 무언(無言) 중에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에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 말씀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무슨 뜻으로 이 말씀을 하셨을까 뿐 아니라 심지어 내가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모든 신자가 그렇게 하긴 하지만 너무 표면적으로 하고 치웁니다. 심하게 말해 국민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문자적 의미만 따지고 그칩니다.
본문의 경우도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이 쉐마를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도록 하기 위해 곳곳에 붙이도록 했다라고만 생각합니다. 문자적 의미에서 하나도 진전된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표현법, 단어와 문단의 구분 등등 문법적인 분석마저 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문자적인 의미마저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한 번 읽고서 의미가 떠오르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본문을 문자적 분석만 제대로 해 보아도 그 의미는 훨씬 풍부해집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대조 되는 두 곳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우선 손목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볼 수 있는 위치이며, 미간은 본인은 볼 수 없지만 남에게는 항상 그것도 가장 보이기 좋은 곳입니다. 쉐마를 본인과 주위 모든 사람이 언제든 보고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 문설주는 집 안이고 바깥 문은 집 밖입니다. 이 또한 본인과 지나가는 행인 모두 항상 가장 잘 보이는 위치입니다. 요컨대 사람이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마음에 두고 절대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하나님의 의도가 전부 파악 된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신자 쪽에서 해야 할 일의 한쪽 측면에서만 해석한 것입니다. 손목에 부치는 것은 당연히 본인이 잊지 않고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미간에 붙이는 것은 남들도 그 말씀을 볼 수 있도록 하라는 의미를 넘어서 자기가 실제로 그렇게 실천하고 있는지 남들이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담배를 끊으려고 결심하면 자꾸 그 결심을 주위 사람에게 이야기하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남들이 감시자 역할을 해 줄뿐 아니라 본인도 남들 앞에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끊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신자는 세상 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자로서 항상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로선 전부가 신자이므로 다들 쉐마를 부치고 다녔고 구태여 따로 증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서로 격려하고 도전을 주라는 뜻입니다. 나아가 자기들 공동체를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이끌어 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전부 이마에 이 말씀을 써 붙이고 다니면 서로 부끄러워서라도 갈등과 분쟁이 좀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문설주는 집 안이며 바깥 문은 집 밖입니다. 신자가 집안에 있느냐 외출하느냐의 경계가 됩니다. 하나님이 집 안에만 붙이지 않고 특별히 안과 밖 두 곳으로 구분해서 붙이라는 것은 지나는 행인들더러 보라는 뜻도 되지만 신자의 출입(出入)을 하나님이 지켜 주시니까 당신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1,6)
결론적으로 쉐마를 본인이나 남들에게 눈에 가장 잘 띄는 신체나 집안 곳곳에 붙이라는 뜻은 항상 보고 잊지 말고 실천하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하나님은 신자가 언제 어디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을 하든 그 곁에서 함께 하여 지키고 인도하겠다는 뜻입니다. 그 일을 하게하고, 그 사람을 만나게 하고, 또 지금 그런 형편으로 살게 한 것, 집에서 누워 자든지 앉아 쉬든지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오직 하나 하나님이지 다른 어떤 신(神)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이렇게 사랑하니까 너희도 실제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표시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신자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여 쉐마를 잊지 않고 잘 지키는가 지켜 보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이 신자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사실을 제발 좀 먼저 알아달라는 뜻입니다.
오늘날의 신자도 집안 곳곳에 성구를 많이 붙여두고 있습니다. 남들에게 괜히 자신의 신앙 수준을 내보이고 신자입네 자랑하려 붙여선 안 됩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결단과 헌신을 위한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쳐선 절대 안 됩니다. 물론 그나마 그렇게라도 붙여 놓음으로써 잊지 않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더하게 되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러나 참 신자라면 정말 그 말씀이 살아서 본인에게 역사하여야 합니다. 자기 생명을 걸고서라도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 인생을 살리고 죽이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누가 봐도 그 말씀대로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그렇게 살았더니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웃의 생명마저 살리고 풍성하게 해 주는 섬김까지 있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오직 하나인 하나님 앞에 오직 하나인 신자로서 오직 하나 헌신만 있어야 합니다.
2/23/200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