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막6:30,31)
대부분의 평범한 미국 사람들이 갖는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은 한마디로 조기은퇴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투자이자 지출인 주택구입을 주로 30년 장기상환 모기지로 하니까 일면 이해가 됩니다. 어떻게 하든 그 부채를 일찍 상환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후에 주택을 구입하니까 30년을 상환하고 나면 사실상 은퇴할 나이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주택자금 상환이 바로 은퇴와 연결되며 심지어 그 후는 그 주택을 담보로 역 대출을 받아 은퇴 자금으로 사용합니다. 미국이 지금 세계를 모든 부문에서 리드하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이제 조기은퇴는 전 세계인의 꿈이 되었습니다. 노후에 여유 있게 살 수 있도록 미리 대비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아예 일찍 은퇴하겠다는 것은 어떡하든 일하지 않고 놀고먹겠다는 심보입니다.
요한 사도가 에베소의 감독관으로 있을 때에 취미로 비둘기를 키웠습니다. 다른 장로 한 명이 사냥에서 돌아오다가 집에서 비둘기와 노는 것을 보고 하찮은 일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점잖게 꾸짖었습니다. 요한이 마침 그 장로의 활시위가 느슨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짐짓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장로는 “나는 활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 늘 시위를 느슨하게 한다네, 만약 항상 시위를 팽팽하게 당겨 두면 활이 탄력을 잃어 막상 사냥할 때에 쓸모없게 된다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요한은 “지금 나도 내 마음의 활을 느슨하게 해놓고 있다네. 그래야 신령한 진리의 화살을 더 잘 쏠 수 있거든”이라고 대꾸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취미생활, 휴가, 건전한 오락 등은 필수적입니다. 잠시 쉬어야 할 때 쉬지 않으면 자칫 큰 병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국고속도로 출입구에 붙어 있는 표어처럼 남들보다 10분 먼저 가려다 영원히 먼저갈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의 가장 기초적인 뜻은 바로 휴식입니다.
인간이 해와 달의 운행에 맞추어 일 년을 12달로, 한 달을 30일로, 일주일을 7일로 나누는 달력을 발명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당신의 창조 섭리 안에 이미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해와 달과 지구를 그런 주기로 돌게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인간은 스스로 발명한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발견하여 응용한 것뿐입니다.
다른 말로 일주일이 7일이며 또 그중 하루를 쉬는 것이 달력에 따라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전에 이미 하나님이 인간 육신은 일주일 중 6일간은 일하고 하루는 쉬어야 그 생체리듬을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모든 창조의 초점과 목적은 인간에 있었기에 해와 달의 운행조차 인간의 활동에 맞춘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인간도 이 물질계의 한 구성요소인지라 자연 질서에 순응해야만 한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순서가 뒤바뀐 것입니다. 인간을 위해서 자연이 존재합니다. 인간이 자연을 욕심대로 훼손, 처분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을, 더 정확히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포함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분의 뜻에 맞게 아름답고도 거룩하게 가꾸어야 합니다.
따라서 모든 인생의 목적은 그분의 일을 평생토록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휴식도 단순히 피로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준비여야 합니다. 정작 열심히 일해야 할 때를 대비해 힘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처럼 주말을 신나게 놀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열심히 일하기 위해 주말에 쉬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뒤바꾼 것은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순서가 아닙니다. 당신도 먼저 열심히 일하신 후에 안식일을 제정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중에 하루를 따로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한 것은 그날 하루는 거룩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 나머지 6일간도 거룩하게 보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거룩한 것같이 당신의 모든 피조물이 거룩해지길 원하십니다. 시간 또한 당연히 당신의 피조물이므로 일주일 전부가 거룩해져야만 합니다.
그런데도 주일 하루, 그것도 신자만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마치 그분의 유일한 목적인양 오해하는 신자와 교회들이 많습니다. 주일날 교회에서 하루 봉사하기 위해서 일주일의 삶을 희생하라고 가르칩니다. 주일 하루 거룩하게 보내면 나머지 날도 자동적으로 거룩해지는 양 착각하며 심지어 주일만 잘 보내면 나머지 날은 다 깽판을 쳐도 괜찮다는 식입니다.
미국식 사고와 조류가 세상을 선도한지 오래다 보니 심지어 교회마저 거기에 물들어 버렸습니다. 작금 미국에서 가장 각광 받고 있는 신학이 무엇입니까? 긍정주의 신학입니다. 언뜻 겉으로만 보면 크게 하자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그 속을 까뒤집으면 적극적으로 일해서 적극적으로 돈을 벌자는 것 아닙니까? 오직 조기 은퇴가 꿈인 미국 사람들에게 당연히 가장 잘 어필하고 있습니다. 조기 은퇴란 일 하지 않고 놀고먹겠다는 것이 삶의 목표입니다. 신자마저 세상에서 조기은퇴 하는데 하나님의 힘을 빌리지 못해 안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런 사고가 천국에 대한 기대마저 완전히 물을 흐려 놓았습니다. 천국에는 아무 하는 일 없이 놀고먹을 수 있으리라고 잔뜩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일하느라 너무 고생했으니 이제 마음 놓고 쉬어라”가 천국을 운행하는 근본 원리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영악하지 못해 남들보다 풍요롭게 살지 못한, 즉 조기 은퇴를 달성 못한 불쌍한 신자들의 보상이 천국일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 착각은 이 땅에서부터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손해보고 멸시 당한 것을 주일날 와서 보상 받으려는 잘못된 신앙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쌍한 내 편이므로 천국에 상급을 잔뜩 쌓아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저 나쁜 세상 놈들에게는 지옥이 기다린다는 복수심입니다. 주일 말고는 일주일 중에 사는 낙(樂이) 없습니다.
신자에게 주일은 일주일 내내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많았고 또 세상에서 정말 거룩하게 살았던 것이 진정한 축복이자 기쁨이었다는 것을 주님 앞에 나와 일일이 보고하는 날입니다. 성경이 왜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까? 일주일 내내 주 안에서 자신의 인생 목적이 분명하게 서 있고 그대로 살고 있다면 얼마든지 기쁠 수 있다는 뜻 아닙니까? 물론 때때로 영적으로 피폐해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요한 사도처럼 주일날 주님으로부터 영혼에 새 힘을 얻어야 하지만, 주일 하루만 잘 지내자고 새 힘을 얻는 것이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예수님의 제자가 안식을 어떻게 취했습니까?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예수님께 고했다고 합니다. 일주일 내내 세상과 사람들을 주 안에서 거룩하게 다스렸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하나님이 맡기신 일들을 잘 수행했다고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서 ‘잠간만’ 쉬라고 했습니다. 밥도 못 먹을 정도라 밥이라도 먹고 힘을 내라는 것입니다. 다시 힘을 내어 그 일을 하러 나가라는 것이지 않습니까?
신자가 천국에 가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과 세세토록 왕 노릇 하는 일을 하러 가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신자가 이 땅에서 주일 날 열심히 믿었으니까 커다란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고 그 이후에는 완전히 은퇴하여 편안하게 보낼 수 있으리라 예상, 아니 아예 굴뚝같이 믿고 있습니다.
천국 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 이 땅에서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해야 합니다. 그 때에 “주일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했습니다”라고만 보고할 것입니까? 그러면 예수님은 뭐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수고했다. 나의 기쁨에 참예하라”고 할 것 같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신자가 일하다 잠시 쉰 것인데 그것 말고 진짜 네가 한 일이 무엇이냐?”라고 되물을 것입니다.
그 때에 혹시 “저는 그것만이 신자가 할 일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요? 괜히 밖에 나가 일하려다 주일까지 제대로 못 지킬까봐 다른 날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땅에 파묻어 두었는데요?” 그 다음에 주님이 하실 말씀이 무엇이라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까?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마25:30) 천국에서 다시 지옥으로 내려 보낼 리는 없지만 무익한 종이라고 했습니다. 천국에서 할 일에도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 사람이 갖는 인생의 목표와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조기 은퇴가 아니라 그 반대로 가능한 아니 죽을 때까지 은퇴를 미루는 것입니다. 신자가 해야 하는 일에 은퇴란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이 이 땅의 사역의 마감이자 절정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형을 당하기 직전까지 로마의 지하 감옥에서 복음을 전하고 또 성경을 저작했습니다. 심지어 본인은 그런 극심한 환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주 안에서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빌4:4)고 권면했습니다. 자기가 항상 기쁘지 않는데 기뻐하라고 권할 리는 없습니다. 그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그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으로 지켰기” (딤후4:7)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일을 하십니다. 신자가 영생을 얻는 것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끝없이 놀고먹는 휴식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일에 참예 하는 것입니다. 고생하고 수고한 것의 보상이 아닙니다. 신자가 영생을 선물로 받아 얻게 되는 안식은 영원한 안식이 아니라 완전한 안식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그분의 일을 할 때만 얻을 수 있습니다.
신자만이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누리고 천국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의 천국은 열심히 일해 여유자금을 마련해서 조기 은퇴하여 두루 여행 다니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현실이 후패하고 육신이 괴롭더라도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바로 얻어지는 영생은 그 여정을 위한 출발이며, 진정한 영생을 얻은 자라면 조기 은퇴가 아니라 갈수록 주님의 사역을 더 열정적으로 하고 싶어집니다.
따라서 신자가 평생토록 간구해야 할 기도제목은 이 땅의 육신의 삶을 다하고 주님께 이곳에서 행하고 가르친 일을 낱낱이 보고하러 가는 그 순간이 가장 기쁘고, 믿음이 강하며, 영혼에 활력이 넘치게 해달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말입니다.
11/30/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