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分福)이로다.”(전2:9,10)
기네스북에 따르면 1888년 15세 소녀가 그 원인을 알지 못하지만 5주 동안 하품을 계속한 것이 기록이라고 합니다. 하품은 얕은 호흡으로 무덥고 답답한 공기를 접하거나, 신경이 과민해졌거나, 피로 등으로 몸속에 산소가 부족할 때에 심호흡으로 산소를 단번에 많이 섭취 시키는 생리작용입니다. 창조주가 인간 몸에 미리 부착해 놓은 산소호흡기입니다.
만약 기네스북이 고대부터 있었다면 솔로몬은 여러 방면에 세계 최고였을 것입니다. 그는 현재로 치면 록펠러 같은 갑부에, 아인슈타인 같은 최고 지혜를 가졌고, 플레이보이 잡지를 창업한 휴 헤프너 같이 여자들 속에 파묻힌 인물이었습니다. 각각의 분야에 세계 최고가 되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그 셋을 다 가진 것은 아마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엄청난 기록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세계 최고를 세 개나 한꺼번에 다 누린 자가 인생의 허무를 주제로 한 전도서를 남겼습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자가 그랬다면 전혀 화제가 되지 않지만 솔로몬이 그렇게 말한 것은 플러스 무한대에서 마이너스 무한대로 떨어진 것입니다. 자기 마음과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다 가진 자가 그 결국은 공허만 초래하더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영혼의 하품을 세계에서 최고로 오래 한 자였습니다.
그가 왕으로서 율법에 금한 일을 많이 했고 또 인생 말년에 우상숭배로 흘렀지만 정말 위대한 한 가지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영혼의 하품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명백하게 밝힌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 뜻대로 사는 것 외에는 인생에 만족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없다고 했습니다. 솔로몬같이 다 갖춘 자가 절대적 허무와 절대적 행복을 대조했기에 후대의 모든 사람에게 그 타당성과 설득력을 입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고난이 닥쳐서 영혼이 곤비해지든, 쾌락을 즐겨봤지만 그 결국에는 헛되다고 느끼든, 인생에 참된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해 갈급해지는 것 자체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알기 쉬운 예로 동물은 육신의 하품은 해도 영혼의 하품은 하지 않습니다. 동물이 새끼를 구하려고 대신 죽는 경우 빼고는 그 삶이 괴로워 자살을 시도하는 법이 결코 없지 않습니까? 동물은 허무를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오직 먹고 마시고 자는 것만 해결되면 그저 행복한 존재입니다.
반면에 인간은 죽음과 절대자에 대해 어느 누구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영원에 비추어볼 때 자신의 인생과 삶이 얼마나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각자의 속에 하나님의 형상, 즉 하나님이 영혼의 산소 호흡기를 미리 부착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담의 원죄로 부패되었지만 그 호흡기가 미약하게나마 작동하므로 아무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인생의 허무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쉽게, 아니 끝까지 완악하게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여전히 세상의 헛된 것을 늙어 죽을 때까지 추구합니다. 예수를 모르는 모든 인간의 영혼이 사단에게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부착해 놓은 영혼의 비상 호흡기를 사단이 작동 못하도록 계속 방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더 화려하고 풍족하고 화끈하고 재미있으면 그 허무가 끝내질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솔로몬같이 세계 최고를 손에 다 틀어쥐었어도 허무하다고 느꼈는데도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기네스북의 소녀는 하품을 겨우 5주간 계속했지만 사실은 모든 불신자는 영혼의 하품을 평생 동안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속에 자기를 살도록 두었으며 그래서 살아 역사하시는 당신의 온전하고 거룩한 뜻대로 살지 않는 한 절대 인생의 허무를 없앨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성경의 진리를 빼고는 세상 어떤 사상, 철학, 종교도 다 허무할 뿐이며 사단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사악하고 죄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허무한 인생을 끝까지 하나님에게 의지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 해결해보겠다고 덤비기 때문입니다.
인간 스스로 인생이 허무하다고 느끼면서, 즉 허무한 인간이 다시 그 허무를 해결해보겠다고 덤비는 것은 자가당착일 뿐만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실제로 역사상 최고의 부귀영화에 지혜와 여성행각까지 갖춘 솔로몬이 말하자면 불신자가 사는 방식으로 절정에까지 오른 자가 허무하다는 결론밖에 내리지 못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것은 인생이 이미 허무하다고 깨달아 놓고는 오히려 또 다시 허무로 끝내겠다고 발버둥 치는 꼴입니다. 엄격히 말해 자살할 담력이 없어 마지못해 사는 것에 불과합니다. 동물처럼 먹고 마시고 누워 자는 것만 편하면 무슨 짓을 하던 관계치 않겠다는 작정입니다. 자신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심겨져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아니 하나님조차 인정하기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게 된 신자는 영혼의 호흡기를 정상으로 가동시키게 된 자입니다. 다른 말로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솔로몬 같은 최고 부귀영화도 예수님 없이는 헛되다는 것을 확실히 고백할 수 있게 된 자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지금 현재 정말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많이 가져도 더욱 불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도고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6:28,29) 들꽃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지 못하면 영혼의 하품도 멈출 수 없습니다. 요컨대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요 그분의 영광을 찾아 따르는 것만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4/26/2007
주님의 영광된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