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0:5-8)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이 이 땅을 섭리하시는 원칙에 관해 크게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분은 사랑이신지라 사랑으로만 이 땅을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사랑으로 다스리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 이미 들어온 자에게만 그렇습니다. 이 땅 전체를 다스리는 원칙은 다릅니다.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한 가지 목적으로만 통치하십니다.
그 영광을 드러내는 실질적인 기준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죄는 철저히 미워하시되, 그 죄를 당신처럼 철저하게 미워한다고 고백하는 자는 끝까지 사랑하는 원칙입니다. 죄는 반드시 응징하되 죄에서 구원 받기를 원하는 자는 한없는 긍휼로 대하는 방식입니다. 고의로 완악하게 당신을 거역하는 죄인에게는 엄격한 공의로, 십자가 앞에 엎드린 돌아온 탕자에게는 따뜻한 사랑으로 대하십니다. 이처럼 사랑과 공의가 신실하게 실현되는 것이 바로 당신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영광은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습니다. 우선 이 땅에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직접 오신 것 자체가 그분의 영광이었습니다. 또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한 가지 목적으로 사역하셨고 끝내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사흘 후 무덤에서 부활하실 영광이 예비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군왕과 종교적 지도자들과 사단, 즉 세상의 모든 권세가 다 힘을 합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그들이 못 박은 것은 육신의 몸뿐이었지 그분의 영광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어느 누구라도 절대로 훼손할 수 없습니다. 아니 당신께서 그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다스리는 원칙이 바로 영광인데 만약 조금이라도 훼손된다면 이 땅이 존재할 가치와 목적이 상실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자는 심판을 모면할 길이 결코 없다는 뜻입니다.
본문도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는다.”고 확언하고 있습니다. 신자는 그 영광을 인정한 자, 더 정확하게는 그분께서 당신의 광채를 직접 비춰준 자입니다. 당연히 신자라면 구원 이후에는 오직 그분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또 그렇게 살기로 헌신하여 실천하는 신자에게 이제 당신께선 무한한 사랑으로 대해주십니다. 어찌 신자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지당한 말씀인데 본문은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있습니다.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신께서 찬송을 하되 우상을 향해서는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하나님이 찬양을 돌릴 대상은 이 천하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은, 아니 그분만이 찬양을 받을 분입니다. 인간더러 다른 대상에게 찬양을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에 드러난 당신의 최고의 영광을 본 자는 우상을 찾을 리도 없고 자연히 찬양을 오직 여호와께만 돌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연 작금의 교회와 신자들이 그러고 있습니까? 깎아 만든 우상에 찬양하는 자는 물론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하나님을 대체하는 우상은 너무 많습니다. 돈, 명예, 권력 뿐 아니라 종교적 행위, 프로그램, 심지어 심리요법, 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습니다. 진정한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에 의존하고 또 그 힘을 기쁘게 여기는 것이 바로 현대판 우상숭배입니다.
쉽게 풀이하면 찬양은 어떤 대상을 아주 기뻐하는 것이며, 감사는 자기를 위해 수고한 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현대판 우상 숭배를 하는 자들은 겉으로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그 내면을 뒤집어 보면 주님 대신 돈을 비롯해 자기가 소원해서 얻게 된 것을 기뻐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에게는 그런 것들을 자기에게 조달해주느라 수고하셨다고 간략한 인사만 하고 치웁니다.
다시 말하지만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온 자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원칙은 사랑입니다. 신자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이었든 주님께 모든 것을 바치는 자입니다. 당연히 주님께로부터 신자가 받을 것은 사랑뿐인데 역으로 신자가 하나님께 바칠 것도 찬양뿐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불신자를 다스리는 원칙이 그 영광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것이라면, 신자를 다스리는 원칙은 신자로부터 받을 찬양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작금의 신자들은 정작 찬양은 현대적 우상들에게 돌리고 하나님에게는 형식적 감사만 하고 있습니다. 신자들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불신자의 위치로 다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참 영광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발견하지 못하니까 헛된 영광으로 대체 하려 합니다. 하나님이 당분간은 묵인하실지 몰라도 더 엄격한 심판이 그런 교회와 신자들에게 먼저 부어지리라는 것을 짐작도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하십니까? 하나님께 감사는 의외로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찬양이란 단순히 찬송가를 열심히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아주 기뻐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어떤 형편에 있든 그분이 너무 좋아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찬양을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으시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 붙드는 당신의 진짜 자녀에게는 무한하신 사랑을 베풀어 진정한 찬양이 저절로 우러나올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찬양을 다른 대상에 돌리는 자에게는 엄격한 심판이 반드시 따를 것이라는 뜻도 되지 않습니까?
5/15/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