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55:8-11) 하나님의 생각이 나와 어떻게 다른가?

조회 수 1051 추천 수 37 2007.05.23 18:5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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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55:8-11)



신자들에게 항상 곤혹스럽게 생각되는 것은 현실의 구체적 사건에 직면하여 과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가 가진 소원과 하나님의 계획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신자치고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생각에 미칠만한 수준이 안 된다는 원리 정도는 잘 압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이 수준에선 결코 못 미치더라도 그분 뜻의 큰 영역 안에만 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라는 불만은 있습니다.

쉽게 말해 “당신께서 싫어할만한 일만 아니라면 기도한대로 응답해주시면 어디가 덧나?”라는 생각이 우리 모두에게 자주 들지 않습니까? 예, 맞습니다. 성경에도 분명히 그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빌2:13) 한다고 했습니다.

신자로 당신의 기쁘신 뜻에 맞는 소원을 갖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오, 또 그것을 이루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신자가 자기가 갖는 소원이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라면 당연히 이뤄집니다. 예수님도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게에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고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는 우리 소원을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정확하게 맞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분이 싫어하지 않는 수준까지는 도달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이 정말로 자신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라면, 다른 말로 꼭 없어도 되는 것을 단순히 이기적인 욕심으로 얻으려 하는 것만 아니라면, 하나님은 당연히 응답해 주십니다.

그런데도 문제는 우리가 이기적인 목적이 아니라 정말 절실히 필요한 것을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자꾸만 하나님의 뜻이 아닌지 의심이 생깁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약속과 실제로 그분이 역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의 바로 그런 생각마저 틀렸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의 수준이 우리와 분명 다르지만 그래도 반드시 당신께서 약속한 것은 이뤄진다고 했습니다.

그럼 과연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틀리게 행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왜 자꾸 성경의 약속과 현실 사이에 괴리감이 그것도 아주 크다고 느낍니까? 우리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까? 솔직히 아니지 않습니까? 그 동안 그렇게도 많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했던 믿음이 비록 하나님 보시기에는 부족해도 우리로선 최선을 다해 노력할 만큼 했지 않습니까? 기도한 대로 일일이 응답은 안 되더라도 어느 정도는 결실을 거둘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본문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생각이 우리와 다르지만 당신께서 하신 약속은 반드시 이뤄주신다는 다짐을 무엇으로 보증하고 있습니까? 곡식이 열매를 맺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약속이 때가 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신자들이 잊고 또 잊어버리는 진리는 곡식이 열매 맺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입니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오직 하나입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무 조급합니다. 항상 지금 당장 바로 여기에서 필요한 것을 내 놓으라고 하나님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바로 기적을 베풀라고 떼를 씁니다.

혹시 나는 그렇게 기적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여겨집니까? 나는 절대로 대박을 터뜨려 달라거나 남들보다 더 잘 살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고 단순히 현재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환난에서 벗어나게만 해달라고 한 것뿐인 것 같습니까? 환난을 제발 없애달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기도했고 그것도 당장 구원하지 않으면 두려워 미치겠다는 뜻 아닙니까? 그 환난이 자기 잘못이나 죄에서 기인한 것인지, 사단의 방해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다른 생각이 있는지에 관해선 전혀 관심이 없다는 반증 아닙니까?

나아가 본문에서 하나님은 단순히 곡식이 열매 맺는 과정으로 당신의 뜻이 이뤄짐을 설명하지 않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곡물의 씨앗과  비유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씨앗이 뿌려진 것을 눈으로 확실히 볼 수 있다면 기다리지 못할 바보는 없습니다. 열매 맺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누구나 압니다.

하나님은 씨앗 대신에 비와 눈이 농사에서 하는 역할로 당신의 약속이 역사하는 원리와 방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와 눈은 단지 토지를 적시는 것으로 끝납니다. 곡물이 자라는데 겉으로 보이는 직접적인 역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비록 눈에 안 보여도 곡물이 자라는 것은 적셔진 토지에서 섭취되는 영양분 때문입니다. 땅이 적셔지지 않으면 싹도 나지 않고 열매는 당연히 맺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신실하게 그것도 대대로 이어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눈에 안 보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도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의심이 없어야 합니다. 현실은 힘들고 고달프지만 장차 열릴 풍성한 열매를 미리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환난 가운데도 소망이 있기에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우리보다 높고 다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진리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생각과 길을 자꾸 하나님의 생각과 길에 맞추려 드는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수준에 맞지도 않는 일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꾸 당혹되고 오히려 의아심과 불만마저 생깁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생각과 길을 그분의 생각과 길에 맞추려 들지 않는 것이 더 좋은 믿음입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무조건 우리 기분 내키는 대로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최소한 그분이 싫어하지 않는 범위 안에는 항상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당장에 그분의 기쁘신 뜻은 몰라도 그 뜻이 자기에게 이뤄지기를 소원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자가 믿음을 바로 세우려면 가장 먼저 그분의 길과 생각이 나와 다르고 높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모든 생각을 이어가야만 합니다. 말하자면 그런 전제가 없이 억지로 뜻을 맞추려 들면 들수록 그만큼 그분과 나의 거리는 멀어집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신자가 그분과 나의 차이가 너무나 깊다고 인식할수록 오히려 그 거리가 좁아집니다.

본문의 비유로 바꿔 표현하자면 어떤 씨앗이 언제 어디에 떨어지는지에만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씨앗이 떨어진 것을 확인하면 어떤 열매가 언제 열릴지 미리 알 수 있어 쉽게 인내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우리 모두 체험했듯이 하나님은 그렇게 확연히 눈에 보이도록 역사하지는 않습니다.

신자는 대신에 하늘에서 소리 없이 내리는 비에 주목해야 합니다. 아니 비가 내리기 이전에 구름이 생기는 것을, 또 구름 이전에 공기 중에 습기가 차면서 바람이 부는 것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신실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당신의 일을, 특별히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당신의 주권대로 이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뜻이 서서히 드러나거나 심지어 끝까지 전혀 알 수 없는 일에도 그분의 신령하고도 초자연적인 권능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종종 훨씬 더 큰 은총과 능력으로 드러납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열린 열매라 그 열매가 주는 유익 또한 더 오래 지속됩니다. 당장 환난을 없애주실 능력이 하나님에게 없는 것은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분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러면 그 효과와 은혜가 신자에게 절대 오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는 일에 그분만의 은혜가 함께 하지 않는 일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절대로 헛되이 그분에게로 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당신만의 뜻을 이루시며 신자에게 가장 형통하는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소망을 품고 오래 기다려서 얻는 열매야말로 그분의 가장 큰 기적이자 최고의 은혜입니다. 또 신자는 이미 그 열매만큼이나 놀랄 만큼 크게 성숙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환난 중에 있는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다릴 줄 아는 소망입니다. 최소한 그분의 생각과 길이 나와는 다르다는 분명한 인식입니다. 그런 인식이 있는 신자에 한해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헛되이 되돌아가지 않는 법입니다.

5/24/2007      

김광찬

2007.05.24 00:22:30
*.8.157.159

귀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

조인구

2007.05.24 03:35:18
*.168.134.141

허경조

2007.05.24 15:07:37
*.190.132.113

아멘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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