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6:11,12) 2분의 행복을 위한 인생

조회 수 1047 추천 수 46 2007.04.30 18:38:42
운영자 *.104.230.149
헛된 것을 더 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나니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身後)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전6:11,12)



여자 테니스계의 철옹성 같았던 나브라틸로바를 신예 만들리코바가 꺾었을 때 한 기자가 그 감상이 어떤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어떤 큰 승리는 그것을 위한 모든 고생과 연습들이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전 세계를 소유한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그 느낌이 얼마나 갔는지 물었더니 “한 2분쯤”이라고 답했습니다.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었다면 엄청난 것입니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흘렸던 땀과 눈물은 그야말로 가치 있고 흘릴 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인생 최대의 기쁨도 잠시 잠깐입니다. 세계 정상에 올랐다면 며칠을 뜬 눈으로 새울 것 같은데도 2분 정도라니 너무 허망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비등해져 어느 정도 예견된 승리라 하더라도 너무 짧습니다.  

실제 정상에 오른 자의 고백이 그렇다면 단지 그런 순간적 기쁨을 위해 그렇게나 고생을 하다니 너무 허망하지 않습니까? 또 일단 정상에 오르면 수성(守成)하는 것이 더 힘들고 고된 싸움이 될 것도 빤합니다. 과연 그 짧은 승리의 쾌감을 위해 젊음을 다 바쳤을까요? 인간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영악하고 이기적입니다. 세계 챔피언으로서 명예와 자연적으로 따르는 부가 이 땅의 삶의 평생을 안락하게 보장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도서 기자는 지금 그런 삶은 신후에 즉, 죽은 후에는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으며 누구도 그에게 고할 수도 없다고 냉철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죽음으로 완전히 끝날 것을 죽어라고 소유하려 드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이냐고 탄식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꿈꾸는 자는 남들이 자기를 조금이라도 인정해 주지 않으면 삶의 기쁨, 의미, 가치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오직 사람들의 갈채만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엄밀히 말해 자기가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이 대신 살아 주는 인생입니다. 그러니 항상 진정한 자아 충족이 없으며 갈급하고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은 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간단한 이치입니다. 이 땅의 삶이 전부로 그것으로 끝이라고 믿으면 부귀영화가 최우선의 가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죽음 이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존재가 영속된다면 영원한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갈채는 더 이상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고 영원을 주관하는 이의 관심이 과연 무엇인지에 가장 먼저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그렇다고 사후 심판이 두려워 이 땅에서 선하게 사는 것을 생의 목적으로 삼으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죽음 이후를 진지하게 따져보고 진정한 인생의 목적을 심각하게 숙고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 자는 더 이상 사람의 갈채를 받으려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사모하고 그분이 원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려는 간절한 소망이 생깁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가치와 의미를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인생은 가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그런 소망이 살아 있고 하나님의 도움에 의지해 그렇게 헌신하는 한 성령님께서 반드시 거룩하고 신령한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며 그 은혜가 너무 귀해 주위에 나누고 싶어집니다. 정신적인 기쁨이라면 순간을 지속하기 힘들지만 그 영에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시기에 순간순간마다 채워지는 기쁨이 영원까지 지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영원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신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의 인정과 갈채에는 아무 관심이 없되 도리어 이웃의 안녕과 생명을 걱정하게 되는 자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이 되지 않고는 사람이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일이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불신자가 하는 일들이 그들 인생에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가치가 없기에 예를 든 대로 그런 큰 승리 뒤에도 단 2분간의 만족밖에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더 신비한 인생의 비밀은 따로 있습니다. 세상사람 가운데도 죽음 이후와 인생의 의미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성찰하는 자는 많습니다. 아주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종교성을 지니고 정말 평생을 두고 수도 정진하는 자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평소의 삶도 이웃을 위해 바치며 아주 의롭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전 평생을 걸고 씨름한 결과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십자가 복음에 대한 전도의 말을 들었고 심지어 스스로 심도 있게 예수님에 관해 연구를 해도 끝까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인정하면 자기 인생이 자기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것이 죽어도 싫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이 땅에서 사람들 사이의 갈채에 목말라 하고 오직 그 목적을 위해 살고 싶은 것입니다. 수양하며 의롭게 산 자로 신후에도 사람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 비해 신자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지성, 종교성, 도덕성 모두 그들에 비해 형편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아니 죽음 이후와 인생의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너무 소중하게 체험되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택하시고 먼저 찾아와 사랑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후부터는 날마다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신비 가운데 이미 들어와 있는 자입니다. 초자연적인 초월의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더 이상 이 땅에서, 나아가 신후에도 사람들의 갈채에는 관심이 없어진 것입니다. 또 신자가 하는 모든 일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드러낼 수 있기에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평생을 두고 감사할 일 아닙니까?

5/1/2007


mskong

2007.04.30 19:16:27
*.226.142.22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면 주님은 안아주시고...
천국을 체험하게 해 주시고, 변화산을 체험하게 해 주십니다.
이보다 좋은것이 또 있을까요? 과연 로또 대박이 이보다 좋을까요?

조인구

2007.05.01 03:19:06
*.91.56.201

아멘 아멘

허경조

2007.05.01 14:02:58
*.183.39.137

김추강

2007.05.01 17:27:50
*.169.40.167

목사님의 글을 읽고 은혜를 받으면서도 한편 궁금한 것이 생겨 짧막하게나마 질문을 드려봅니다. ‘비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사람들의 갈채만이 목적이고, 그들은 자기인생을 사는것이 아니라 남이 대신 살아주는 인생이다’ 라고 하셨는데, 너무 비약적인 표현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인간이라는 본성이 나아닌 다른 사람들에 반영된 가치를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사회적동물). 이렇게 본다면 신자들도 자기 인생을 사는것 은 아닐 것 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에 붙잡혀 사는 인생이니까요. '사람들의 갈채' 란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물론 달라지겠지만, 신자건 불신자건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발견해 나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인정해주신 인생이기때문에 의미있는 것이 첫째이겠지만, 다분히 사람들로부터의 인정과 서로 주고받는 영향력이 없다면,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는한, 그 삶을 건강하게 유지시켜 나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목사님처럼 이렇게 좋은 글을 통해, 혹은 전도를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으로 좋은 영향력을 주고 반응을 얻고 그로 인해 얻는 보람이 삶의 뿌듯한 기쁨을 준다면, 이런 것도 어떻게 보면 사람들로 부터의 긍정적인 인정과 갈채(?) 라고 할수는 없을까요?

운영자

2007.05.01 19:23:52
*.104.230.149

김추강님 아주 예리한 지적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대로 인간은 신자나 불신자나 남을 의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창조할 때부터 남과 더불어 살라고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우선 글을 쓰다보면 어떤 내용을 강조하고 또 그 의미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 부차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단순히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생기게 됨을 양해 바랍니다.

세상만사가 인간관계에서 파생하므로 모든 사람이 남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남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불신자뿐만 아니라 신자도 진정한 자아의 실현을 인생의 목표로 삼습니다.

그러나 불신자의 경우는 남들보다 자기가 현실적인 면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져야만, 즉 평균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야 인생의 만족과 보람을 느낍니다. 꼭 물질적인 면에서만 아니라, 지성, 권력, 명예, 인격, 도덕 등 어떤 면에서라도 자기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측면에서 남보다 앞서야 합니다. 남보다 앞선다는 것은 결국 남들이 그렇다고 인정해주어야만 합니다. 자기가 추구하는 분야에서 남들의 갈채를 받는 것과 자아실현을 동일시한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신자도 현실적 측면에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 정말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도록 노력하고 또 그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러는 것은 어디까지나 신자도 세상 안에(within the world) 살아야 하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리고 신자가 그 일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것도 자기가 남보다 앞섰다는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거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신자의 자아실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기에 이제는 사람들의 인정 여부는 우선순위에서 하나님보다 뒤로 밀린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면 사람들의 인정을 받든 안 받든, 받을 수도 있고 안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 무조건 무시하라는 의미가 아님, 신자에게는 아무 중요한 의미가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신자는 세상 안에 살되 세상에 속한(of the world) 자가 아니므로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자인 반면에, 불신자는 세상에 속했기에 세상 안에서 자기 힘만 믿고 사는, 즉 자기 스스로 자아실현을 하려는 자입니다. 세상 속에서 함께 산다는 측면은 신자도 동일합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하나님과 동행이 우선하므로 사람들의 인정 여부는 그 다음 문제가 됩니다.

나아가 그 무엇보다도 이웃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으려면 하나님을 먼저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분의 은혜 안에 거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신자입니다. 말하자면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진정으로 참된 인간관계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바로 그것이 진정한 자아실현임을 알기에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게 된 자가 신자입니다.

상기 글에 이런 내용이 구체적으로 다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전체 문맥의 뜻은 그러하므로 별다른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또 이렇게 부연해서 설명할 수 있도록 아주 좋은 지적을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김추강님께 감사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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