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사랑(4) (눅15:11-32)

조회 수 477 추천 수 30 2011.05.14 08:31:20
                
▣ 아가페 사랑이 지니는 또 다른 의미 찾기

지난주에는, 같은 본문을 가지고, 탕자의 비유에 담겨진 둘째 아들에 대한 하나님 사랑의 의미를 일부 살펴보았습니다. 둘째는 자신의 과오에 연연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온 단순한 행동만으로 아버지를 기쁘게 하였음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일차적인 기쁨은 단순히 우리가 돌아오는 것(회개)입니다. 그냥 돌아오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에서 놓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맏이의 신앙입니다. 사실 맏이는 성숙된 신앙 즉 장자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지막 순간에 잠시 실수함으로써 아버지의 칭찬을 잃는 아쉬움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신앙 경륜이 길고 신앙심이 깊은 성도님들이 빠지기 쉬운 조심해야 할 점입니다. 포도원 주인 비유에서 꾸중들은 ‘먼저 온 자들'과 잃어버린 양 비유에서 아무 언급이 없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통해서도 배워지는 교훈입니다. 솔직히 ‘먼저 온 자들’이나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은, 오늘 본문의 맏이와 마찬가지로, 행위적으로 볼 때 아주 잘한 자들입니다. 다만 그들은 뭔가 중요한 것 하나를 놓쳤기 때문에 성경은 이를 살짝 가려 놓은 것입니다. 오늘은 평상시 잘 다루지 않고 따라서 숨겨져 있는 맏이의 신앙에 대해여 살펴보기 원합니다.

▣ 맏이(장자)의 신앙

먼저, 맏이는 어렴풋이나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아들과 함께 한 집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묘한 여운을 남기는 부분입니다. 솔직히 아들 입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 좋을까요? 요즘 젊은이들이라면 거의 전부 아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아무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해도, 거북살스럽고 불편한 점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은 분명 부담되는 일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상당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맏아들은 이를 아무 불평 없이 실행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그대로 따르는 잘하는 일입니다.

맏이는 자신의 소임을 잘 감당하는 훌륭한 일군입니다(25절). 오늘도 놀러갔다 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종일 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해가 저서 어두울 때까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책임을 다하는 능력의 사람이며, 믿고 맡길만한 훌륭한 사람입니다. 아버지도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분명 묵묵히 일하는 참 일군입니다. 교회에서 이러한 사람을 발견한다면 아마도 목사님들께서 무척 좋아하실 것입니다.    

맏이는 순종의 사람입니다(29절). 수년 동안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고 모두 따르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맏이는 행동에 무게가 있습니다. 둘째가 가볍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흔들림이 없습니다. 맏이다운 진중함 입니다. 특히 남자에게 꼭 있어야 할 좋은 점입니다. 맏이인들 아버지를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아들들의 마음은 다 똑같지요. 그러나 맏이는 자제를 합니다.  

이렇게 좋은 신앙을 가진 맏이인데 뭐가 잘못입니까? 맏이에게 부족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는 거의 완벽했습니다.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잘못(?)은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깨닫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이 모두 그의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신임도 자기 것이었습니다(아버지는 맏이를 더 신임할까요 둘째일까요? 묻지 않아도 되는 질문입니다). 혹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맏이 자신이 어떤 결정(잔치)을 내리더라도 아버지는 허락하셨을 것입니다. 맏이는 사실상 아버지 재산을 긍정적으로 관리(사용)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누릴 수 있는 권한 말입니다. 그 권한은 둘째처럼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어린아이의 삶이 아니라, 동생을 생각하고 아무 조건 없이 나누어 줄 수 있는 장성한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맏이는 이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속박된 상태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 - 모든 것을 마음대로 사용(누림)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 장자신앙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로 그것이다.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장자권’을 도외시하면 올바른 이해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장자권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한 결과입니다.

지난번에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창조 이후 인간에게 주어진 첫 명령은 “세상을 다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관리권이지요. 이 말씀을 뒤집어서 읽는다면 ‘세상 만물에게 신이 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좋은 것이라고 느끼기 쉽습니다. 물론 좋은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자에게는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대단한 책임이 따릅니다. 결코 쉬운 직분이 아닙니다.  

장자권의 최초 실패자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가인입니다. 동생 아벨을 잘 이끌어 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실패하였지요. 이 실패는 결국 최초의 살인이라는 죄악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가인은 실패한 장자권자입니다. 그 결과 장자권이 어디로 이어졌습니까? 성경은 이 장자권이 셋 →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유다 → 다윗 → 예수님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실패자는 에서입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우습게 알았습니다. 그 소중한 의미를 짐작도 못하고 그것을 팥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팔아버리고 말았지요. 후일 울면서 후회했지만 때는 늦고 말았습니다(히12:17). 이 잘못이 결국 하나님의 무리에서 떨어지는 비극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는 실패한 장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야곱의 장자 루우벤, 유다의 장자 엘, 다윗의 장자 압살롬,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가룟 유다 등이 그들입니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은 모든 민족의 장자인 유대민족의 실패입니다. 유대민족은 하나님의 장자 민족입니다. 다른 민족을 보살펴야 하는 것이 중요한 책임입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은 자신들의 우월성만을 내세웠습니다. 다른 민족(사람)을 멸시하고 천대할 줄만 알았지 가엾게 여기고 인도하려는 마음이 아예 없었습니다.  

장자권의 뜻은 한자를 통해 더욱 잘 나타납니다. 한자에서 형(兄)은 ‘사람(人)을 대신하여 말하는 입(口)’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인이며, 하나님께 동생의 애로를 대신 아뢰는 대언자인 것입니다(동생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이 의미는 선지자와 제사장 제도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 왔던 것이고, 드디어 예수님께서 명실상부한 ‘대제사장’(히8:1)이자 ‘대언자’(요일2:1)의 소임을 완성하셨던 것입니다.

장자란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어마어마한 권한이 주어져 있습니다. 사실 권한만으로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방불할 정도입니다. 거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속박되다 보니 기가 죽어버렸습니다. 맏이처럼 재미가 없습니다. 반드시 회복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장자란 자기 자신만 구원받는 것으로서 소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는 직분입니다. 그에게는 책임져야 할 동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동생의 관리권을 장자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자신도 구원받고 동생도 구원시켜야 하는 이 막중한 책무 - 장자의 책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참 뜻인 장자의 책무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고 온전히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가상칠언 중의 하나인 “다 이루었다”는 말씀 중에는 ‘장자권의 완성’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고전15:20)라고 하십니다. 장자라는 말씀이지요. 장자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어마어마한 축복의 존재입니다. 젖이나 사모하는 어린아이의 초보신앙(히5:12)에 머무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 장성한 분량(엡4:13)인 장자신앙에까지 이르러야만 합니다.

▣ 나가기

지금까지 4주에 걸쳐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중요한 의미는 대충 살펴보았다 하겠습니다.

이제 총정리 하겠습니다. 하나님 사랑인 아가페는 일단 하나님께 붙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탕자비유의 둘째 아들 = 초보신앙). 이는 단지 출발점일 뿐이며 결코 우리의 도착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우리의 종착점은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그 동역의 의미는 장자권에 있습니다(탕자비유의 맏아들 = 장자신앙 → 궁극적 목표는 예수님=엡4:13절의 “장성한 분량”은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장자의 책임은 막중합니다. 이 같은 장자의 책임을 자각할 때라야 비로소 하나님 사랑(아가페)의 진의를 조금 깨우쳤다고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믿는 자 모두가 장자권의 비밀을 깨달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하나님 사랑) 영적인 동생들을 이끌어 감으로써(이웃 사랑) 하나님과 함께 천국을 건설해 가는, 즉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장성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둘째 아들이기보다는 맏이의 삶을 살기 바라십니다. ‘나' 개인을 뛰어넘어 ‘우리'(동생, 공동체, 교회)를 생각하는 것 - 이것이 장자권의 의미이고 하나님이 목표하시는 우리 믿음의 종착점이며 곧 아가페 사랑의 진정한 의미인 것입니다.

믿음의 장인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의 삶이 바로 장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장자를 ‘함께 일할 동역자'로 여기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쁨으로 장자(동역)의 삶을 살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장자가 되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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