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인간은 흙이나 벌레나 지렁이나 구더기 같이 별로 가치 없는 존재”라고 선포하고 있음을 알아보았습니다. 목사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아주 하찮은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목사들이 자꾸만 목사 직분을 무슨 별종의 거룩한 존재인양 포장하기 일쑤이므로 뜻있는 평신도들의 마음은 울적해질 수밖에 없어집니다.
목사들이 ‘목사 권위의 보증 구절’로 인식하는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목사들은 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아보고, 개인적인 반론(성경이 의미하는 진정한 뜻)을 제기해 보겠습니다.
▣ 민수기 12장 및 16장의 사례
뭐니 뭐니 해도 맨 먼저 민수기 12장 및 16장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신도의 목회자 존경 및 복종의 근거를 제시할 때, 수많은 목회자들이 인용하기를 즐겨하는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먼저 12장은 모세와 구스 여자 사이의 재혼문제에 대해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미리암과 아론을 크게 나무라시며 특히 미리암에게는 문둥병이 발하게 하시고 모세의 중보기도로 겨우 용서를 받습니다(민12:1-16).
다음 16장에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레위 지파인 고라가 다단/아비람/온 및 족장 250명과 당을 지어 모세 및 아론을 대항합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너무도 엄하여, 지진으로 생매장시키고 250인을 불살라 버리고 염병으로 14,700명을 죽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17장에서 유명한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사건을 통해 아론의 영적 권위를 완벽하게 보증해 주십니다.
이 2곳의 본문에 대하여 대부분의 목사들은 전통적으로 이렇게 해석하기를 좋아합니다.
즉 ‘모세에게 반항하다가 징계를 받은 미리암 및 고라일당처럼, 오늘날도 목사에게 복종하지 않고 대항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 있으니, 평신도는 목사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목사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택함을 입은 자이므로, 무조건 복종해야 하며 이는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덧붙이곤 합니다.
더욱 나쁜 것은 비록 들어내 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의미상으로는 거의 협박 내지 저주에 가까운 발언을 하는 목사들마저 있기까지 합니다.
전문가인 목사의 해석임에도 불구하고 이는 엄청난 오해이며 왜곡입니다. 성경의 참 뜻과는 거리가 먼 착각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아래와 같이 해석하고 싶습니다.
우선 민 12장 및 16장의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미리암 및 고라일당이 오해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즉 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아니면 자신들을 포함한 상당수의 지도자급들에게) 성령이 동일하게 임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도 하나님과 대화하고(민12:2) 자기들 위에도 하나님이 임재 하신다(민16:3)는 주장이었지요.
어떤 면에서는 이들의 주장에 일말의 타당성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크게 오해한 것은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모세와 그 외 사람들에게 임한 성령은 의미가 다릅니다.
잘 아시다시피 신약시대와는 달리, 구약에서는 성령이 특정인에게 한시적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았고(상당수의 선지자들도 이에 포함됨), 성령이 일생동안 임한 경우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구약의 성령 임재의 특성은 한시성(예 ; 민11:16-30)과 제한성이라고 해도 크게 잘못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아주 특이한 분이었습니다. 모세는 평생 동안, 특히 부름 받은 이후 40년 동안에는 성령께서 항상 함께 하신 분입니다.
모세가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른 위상을 지닐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는 하나님께서 직접 지명하신 ‘하나님의 대리자’였다는 점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6장까지를 보면, 완강히 거절하는 모세의 등을 억지로 떠밀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5번을 거절했고, 나중에 다시 3번 더 따졌고, 수십 년 후에 다시 한번 하나님께 하소연하였습니다).
누가 직임을 부여하였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에게 지도자의 직분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이에 비하여 미리암이나 고라일당은 누가 직임을 부여하였나요? 모세입니다. 모세의 중재를 통해 직임을 부여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모세와 나머지 직분자들은 그 격이 달랐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대리자였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출4:16, 출7:1). 다른 직분자들의 직무도 거룩하기는 했으나(민16:9), 하나님의 대리자는 결코 될 수 없습니다!
모세의 위상에 비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세는 특이한 분입니다.
모세의 특이성을 살펴볼까요?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는 직임은 3가지입니다. 왕,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입니다. 기름부음은 엄밀한 의미의 구약교회가 형성되기 이전인 족장시대에는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모세의 출애굽 이후 광야교회부터 본격화된 제도입니다.
모세는 기름부음을 받았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인간이 부어주는 기름부음을 받은 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모세는 어떻게 권위를 위임받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성경에서 어마어마한 모세의 영적권위의 근거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에게 성령세례를 베푸셨다는 사실입니다(출3장). 이후 얼마나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셨든지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날 정도였습니다(출34:29).
성경에서 모세를 칭찬하는 표현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친구’, ‘하나님과 대면하여 아는 자’, ‘이름으로도 아는 자’ 등등 이루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표현들이 수도 없이 기록되어 있을까요?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으면 왕/선지자/제사장 직분 중 한 가지를 수행하게 됩니다. 그러면 모세의 직분은 무엇이었을까요? 모세오경을 세밀하게 읽어보면, 모세는 놀랍게도 왕/선지자/제사장의 직분을 동시에 예표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 세 가지 직분을 가질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이십니다. 주님만 이 3직을 지니실 수 있으시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모세가 유사 3직을 지녔습니다. 비록 희미한 그림자로서 예수님을 예표하는 수준이기는 하지만, 분명 모세는 3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가 단순히 개인적 해석에 불과할까요? 신18:15절을 봅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모세’이며, ‘그’는 ‘예수님’입니다.
모세의 인식이 무엇입니까? 모세 자신은 예수님과 같은 격의 직분자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자기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모세의 직위는 어마어마합니다, 놀랍습니다. 제2위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비견될 정도로 대단한 직임인 것입니다!
자, 이제 모세와 다른 직임자들 사이에는 엄청난 위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시 민12장 및 16장으로 돌아갑니다.
미리암 및 고라 일당은 뭔가를 잘못 알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대리자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에게 대항한 것은 누구에게 대항한 것입니까? 미리암과 고라 일당은 모세가 아닌 하나님께 대항한 것이었습니다. 성경도 이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음을 증거하고 계십니다(신24:9, 민27:3).
그래서 이를 용납하실 수 없으셨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불순종하는 자들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겉보기에는 모세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한 것 같으나 실제로는 하나님 자신의 권위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모세의 위상만 차이가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의 임무도 무척 특이합니다. “그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신5:5)는 말씀을 보면 모세의 임무가 나옵니다. 중보자입니다!
신약에 와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 한분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모세가 중보자라고 합니다. 이것도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이런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모세의 위대성에 대해 별도로 묵상해 보면 많은 은혜가 될 것입니다.
이제 민12장 및 16장에 대한 총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현대의 일부 목사들이 본문을 들어 평신도의 순종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목사는 평신도에게 순종을 강요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목사 직임은 구약의 제사장이나 선지자 직임과 다릅니다.
더욱이 앞서 살펴본 모세의 위상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모세의 자리(마23:2)에 앉으려 하는 목사가 있다면 이는 분명 ‘교만한 자’라는 평가를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민12:3(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말씀에 비추어서도 목사를 모세에 비교해서는 아니 됩니다. 온유란 겸손이라는 말과 바꾸어 쓸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비천하다’(humble)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3절의 의미는 ‘모세는 자신이 비천한 자이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자임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스스로 높이지 않았습니다. 반역하는 자들을 징벌할 때도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십니다(민21:4, 16:5).
여하튼 민수기 12장 및 16장을 들어 평신도를 영적으로 압박하는 목사가 있다면 그의 주장이 성경의 완벽한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면서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명쾌한 해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