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나타내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사회의 각종 부조리 내지 불합리한 현상을 접할 때마다 듣게 되는 “이놈의 세상, 확 망해버려야 해!”라는 푸념이 그것입니다.
정확한 판단입니다. 정말 망해야 할 정도로 잘못된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묘한 논리적 모순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제외한 세상이 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망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어찌하든 자신만큼은 제외되어야 한다는 이 사고체계야말로 이기적 자기변호 사상의 압권이라 할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도,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고 말씀하심으로써, 인간의 자기중심적 속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일단 자기가 살아 있어야 세상도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우연히 사마귀의 습성에 관한 ‘수풀 속의 무법자’라는 예화를 읽었습니다(별지). 수컷 사마귀의 자기희생이 처연합니다. 위 본문과 맥이 통하는 것 같아,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 말씀은 목회자들의 설교에서 자주 인용됩니다. ‘희생하라!’는 요지로 설명되곤 합니다. 바른 해석입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것도 옳습니다. 희생은 분명 고귀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희생의 실행자가 누구인가?’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문제가 생겨납니다. 모든 설교에 암시된 희생 실행자는 ‘너’입니다. 아무리 집중해서 들어도 ‘나’는 없습니다.
강대상 위에서 설교하는 목회자 자신의 ‘내가 희생하겠다.’는 다짐은 없고, 강대상 아래 성도들에게 ‘네가 희생하라.’는 강요뿐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땅에 떨어져 죽는 밀 한 알 = 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은 남에게 떠넘기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실행하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희생은 본성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인간에게 어울리는 덕목이 아닙니다. 입술로 남에게 떠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몸소 실천해야 할 십자가이기에, 역설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강조하는 것이고, 수컷 사마귀의 자기희생이 돋보이는 것입니다.
강대상에서 ‘타인희생’이나 강요하는 립 서비스 목회자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자기희생’을 실천하는 참 목회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 땅에서 이런 목회자들과 이를 본받아 닮으려 애쓰는 성도들이 합력하는 교회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 꿈은 이루어진다!’던데………
*************************************************************************************
<별지> 수풀 속의 무법자
일명 ‘수풀 속의 무법자’라고 불리는 사마귀는 생김새가 야릇한 곤충이다.
사마귀는 지구상에 약 1,600 종류가 있으며, 대부분 열대나 아열대 지방에 서식하고 있다. 아프리카나 말레시아의 사마귀는 나뭇가지처럼 생긴 것과 아름다운 꽃과 같이 생긴 사마귀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사마귀는 대체로 풀잎을 닮은 것이 많다. 사마귀의 몸 색깔은 보호색으로 되어 숨어 있기 편리하다. 대개 몸이 초록색이라서 풀잎과 구별하기가 어렵다.
사마귀는 앞으로 움직일 수 있는 머리와 큰 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낫처럼 생긴 앞발이 있어 먹이가 발견되면 다리에 걸어 정확하게 잘 잡는다.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수도 있다고 한다.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이유는 짝짓기를 하는 오랜 동안에 암컷이 사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함이라고 한다.
수컷보다 두 배 정도의 크기를 가진 암컷 사마귀는 수컷을 먹음으로써 교미 후에 부족해진 체력을 보충하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수컷이 짝짓기를 하는 도중에 자기가 암컷에게 먹이로 내어주더라도 더 많은 씨를 퍼뜨리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수컷은 짝짓기 중에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일부러 암컷의 입 가까이 기울여주기도 한단다.
한편 암컷 사마귀가 수컷 사마귀를 먹을 때는 머리부터 먹는다고 한다. 그것이 수컷 사마귀의 고통을 덜어주는 방법이기 때문이란다.
자기 한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생명을 탄생시키려는 것은 식물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을 때, 비로소 많은 열매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희생정신과 한 영혼을 향한 갈망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할 것이다.
설교를 듣고 있노라면 모든 대상이 "성도 여러분"입니다. 자신은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저분은 예수님과 같은 반열에 계시는 분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렇게 착각을 하고 계신 분이라고....
그런데 묘한 것은, 돌어서 생각해 보면 내 모습 또한 그와 동일하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없는 은혜를 받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저렇게 되면 안된다는 것과 나 자신이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동시에 깨우쳐 주시니 말입니다. 한 알의 밀알과 같은 희생 정신을 나부터 실천하겠노라 오늘도 다짐해 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