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7:3,4 고자질 잘 하는 신자

조회 수 698 추천 수 18 2009.09.09 01: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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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질 잘 하는 신자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창37:3,4)


요셉이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비 요셉의 잘못이 아주 큽니다. 원인 제공을 그가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형제들 중에 더 깊이 사랑해 평소부터 형들의 시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만약 요셉이 평소 아버지의 편애를 받지 않거나 괄시를 받았다면 사태의 진전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더라는 꿈 이야기를 요셉이 자랑삼아 했어도 완전히 헛소리로 치부하거나 오죽 괄시를 받았으면 그런 꿈까지 꾸게 되었나 오히려 동정을 샀을 것 아닙니까? 안 그래도 꼴 보기 싫던 차에 꿈 이야기를 두 번이나 듣게 되니 완전히 불난 곳에 기름 부은 꼴이었습니다.

그가 얍복 강나루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싸워 이겨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믿음이 견고해졌는데도 늦둥이에겐 그 믿음도 아무 소용이 없었나봅니다.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에게서 91살에 정말로 힘겹게 난 아들인데다 그 엄마마저 일찍 죽고 없었기 때문에 유별난 총애를 할 수밖에 없는 나름대로의 사정은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장자에게나 입힐 채색 옷을 어려서부터 지어 입힐 정도라면 너무 심했습니다.

요셉에게 형들의 언사가 불평했다는 말은 히브리인들로선 누구라도 만나면 건네는 “샬롬(화평)”이라는 인사말조차 형제간에도 나누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완전히 형제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했습니다. 평소에 쌓였던 미움이 얼마나 컸으면  그를 제거하는데 형들의 의견이 만장일치가 되었겠습니까? 거기다 요셉 본인도 아주 철이 덜 들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꿈을 꾸었다면 평소 형들의 미움을 감안해 떠벌리지 않고 속에 담아 두었어야만 했습니다. 아니면 아비의 총애만 믿고 형들에게 자랑할 정도로 아주 교만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형들이 아직 청소년이었던 동생을 타국에 노예로 팔아넘긴 잘못은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이 큽니다. 그러나 본인과 야곱의 잘못이 일의 발단이 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의 선조가 될 사람들 중에 한 명도 빠짐없이 그야말로 천륜을 어기는 큰 죄에 공범으로 참여한 셈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여전히 연약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여실한 증거입니다. 어려서부터 죽기 직전까지 죄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인생만사 새옹지마(人生萬事 塞翁之馬)라는 말처럼 요셉은 감옥의 죄수에서 일국의 총리가, 그것도 외국인이, 되는 일대 반전을 이뤄냅니다. 그가 노력해서 된 일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다 마련해 놓으신 계획에 따라 때가 차매 이뤄졌을 뿐입니다. 야곱과 요셉의 허물에다 형들의 죄까지도 합력해서 선으로 돌려 놓으셨습니다. 오직 한 가지 그들을 이스라엘 지파의 선조로 당신께서 주권적으로 택하셨다는 그 이유 때문으로 말입니다.

그럼 요셉처럼 신자가 자신의 실패, 허물, 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그런 큰일에 선택 받을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 답은 전혀 없다.”라는 설명이 맞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따른 것입니다. 요셉 본인으로선 라헬에게서 늦둥이로 태어나서 아빠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려는 생각은, 아니 꿈도 꾸지 못했지 않습니까?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지 않은 것을 구태여 인간이 설명해내려고 시도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이란 인간의 짧은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는 것을 함의(含意)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이해의 범위를, 아니 상상력의 범위마저 훨씬 넘어선다는 것은 그분의 너무나도 오묘한 신비일 뿐입니다. 신비란 믿음조차 도저히 다 포용할 수 없기에 오직 두렵고 떨리는 경외감으로 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요셉의 경우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각자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잘 알아 믿어 보겠다는 뜻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 그분께서 우리를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나아가 우리의 모든 상처, 허물, 약점, 수치, 고통, 특별히 죄악을 다 감당하시고 당신의 독생자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주실 줄은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 머리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그분의 절대적 주권으로 우리를 선택해 은혜를 베풀어 주신 너무나 오묘한 신비였을 뿐입니다. 믿음은 너무나 당연하며 죽을 때까지 항상 두렵고 떨리는, 공포심이 아닌 진정한 존경과 감사와 순종함 즉 온전한 경외감으로만 그분 앞에 서야 합니다.

그 경외심에 어떡하든 복을 받아보아야겠다는 의사는 도저히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나 같은 자마저 의롭다 하시고 너무나 크고 오묘한 은총과 권능으로 보호 인도해 주시는데 또 다른 요구를 어찌 감히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도무지 부끄럽고 말도 안 되는 염치 아닙니까? 나아가 우리 모두가 야곱처럼 견고한 믿음을 가져도 죽을 때까지 죄의 권세에 놀림을 당할 수 있으니까 더더욱 그분만 경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절대 간과해선 안 될 진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상상력조차 훨씬 넘어선다는 것은 결국 세상의 형통을 얻을 수 있는 세상 방식은 그분 앞에는 완전 무용지물이 된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대중이 가는 길과는 많이 다른, 아니 아예 반대의 길로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신자는 세상과 거역하는 그 길을 믿음으로 묵묵히 순종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또 그 길의 끝에는 반드시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라고 인내하며 소망해야 합니다. 요컨대 세상의 음해, 멸시, 핍박, 환난은 신자의 거의 일상사입니다. 만약 그것들이 해지면 오히려 그분의 오묘한 신비가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반증인줄 깨달아야 합니다.
          
요셉의 경우가 바로 그렇지 않습니까? 그가 살았던 파란만장한 인생의 절대적 방향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해 이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어려서부터 세상과는 다른 길로 걸어갔습니다. 아주 비범하여 비정상적인 아이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문 바로 앞 절에서 성경은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록 형들 앞에 교만했고 세상사는 지혜가 모자란 철부지였다 해도 어쨌든 형들이 범하는 잘못에는 동참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것도 왕따가 되어 더 미움을 살 줄 알면서도 말입니다.

고자질 잘 하는 입만 싼 아이라고 요셉을 쉽게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아버지가 알아야 할 큰 잘못이었을 것입니다. 딸 디나의 사건에서 보듯이 사기꾼 아비의 기질을 물려받았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아비가 자식을 특별히 총애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자기의 좋은 점을 그대로 빼닮았거나, 자기가 평소 꼭 고쳤으면 하는 약점을 갖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보완하는 장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다른 형제들과 달리 사기성이 전혀 없이 오히려 순수하니까 더 좋아했을지도, 성경의 명시적 기록은 아님, 모릅니다.

결국 신자가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에 동참하여 종국에는 그분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길은 바로 세상을 고자질하는 자로 서는 것입니다. 그 바람에 인간들 사이를 이간질 시켜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셉과는 달리 오직 하나님 앞에 고자질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죄악에 탐닉하여 너무나 황폐해진 이 땅의 모습을, 물론 자신의 것부터 포함해서, 있는 그대로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애통한 심정을 갖고 철저히 회개하는 중보의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기도가 참 기도가 되어 그분의 권능을 입기 위해선 신자부터 세상의 잘못에 절대로 동참해선 안 됩니다. 그 결과로 세상에서 따라오는 어떤 불이익과 핍박을 감수해야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왕따가 되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아니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며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또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지금 당신은 하나님의 그 오묘한 신비를 맛보고 있습니까?

5/19/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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