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9:3,4 죽기 살기로 믿고 있는가?

조회 수 494 추천 수 18 2009.09.09 01:5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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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살기로 믿고 있는가?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總務)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창39:3,4)


예수 믿는 장로라면 정직하고 성실해 신뢰할만한 자라고 간주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돈을 빌려주거나 동업 상대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꾸로 사업상 유익이나 명예를 더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장로직분을 따낸 처세술에 능한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일쑤입니다. 신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치장으로 둔갑했습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기이(奇異)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고 어두운 데서 불림을 받은” 자입니다.(벧전2:9)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들을 하나님과 화목 시켜서 함께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어나갈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어둠 속에서 그들과 동일한 죄악을 일삼으면 자신뿐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너무나 큰 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앞에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기 위해 “신자를 형통하는 자”로 만들기 원하십니다. “신자의 만사를 형통케” 해주시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그 상황에서 신자가 거룩하게 변하여 당신의 일꾼이 되는데 가장 크게 도움이 되도록, 궁핍이든 풍요든 신자의 소원대로가 아닌 그분의 절대적 주권에 따라, 만사를 주관하십니다.

때로 하나님이 불신자도 겪지 못하는 극도의 환난이나 궁핍에 신자로 처하게 만드는 까닭도 그들로 신자의 주위여건을 보지 말고 그 사람 자체를 먼저 보게 하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신자로 하여금 그런 말도 못할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소망을 키우고, 심지어 현실적 형편이 더 나은 자기들을 도리어 위로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드러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로 자기들과 도저히 비교 못할 훌륭한 인격과 믿음을 갖춘 신자가 살아가는 방식과 그 인생관을 본받게 만들며 나아가 그를 그렇게 변화시킨 하나님의 은총과 권능을 발견케 하려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가 바로 그러합니다.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이 그를 청지기로 세운 것이 단순히 성실하고 정직해서만이 아닙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경호실장의 가정총무가 되어 모든 소유를 통괄하게 된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일입니다. 수십 년간 한식구나 다름없이 동고동락하여 생명까지 바치며 충성할 정도로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자가 아니고선 그 직분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합니다. 요셉 이전에 그런 청지기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또 그만한 집이라면 종과 노예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전임자를 그만 두게 하고 요셉으로 교체했습니다. 쉽게 할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때 요셉의 나이는 겨우 20초반이었을 것입니다. 외국인 요셉이 몇 년 만에 언어뿐 아니라 문화, 관습, 제도, 법률 등에서도 집안의 어떤 종보다 더 숙달되었다는 반증입니다. 그는 성실성 정직성 뿐 아니라 지혜에도 뛰어났던 것입니다. 시위대장 같은 최고위 관직을 맡은 자라면 당연히 사람 보는 눈이 예리하여 실력을 갖추지 않은 자를 함부로 임명할 리는 만무합니다. 물론 그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작용했지만, 요셉이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었는데도 순간적으로 최고 실력을 갖추게 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정말 주경야독하며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시쳇말로 죽기 살기로 공부하며 실력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간과해서 안 될 더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습니다. 고대에는 특별히 애굽에선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시위대장의 가정 총무가 상대해야 할 사람들과 일의 내용에는 복잡하고 중대한 것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일이 복잡하고 중대할수록 종교와 연관성도 당연히 깊어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보디발은 그 사회에선 이방종교를 믿는 요셉에게 총무를 맡겼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도 있고 자칫 잘못하면 질시, 반발, 비방 심지어 고소를 당할 위험마저 각오했던 것입니다.    

보디발이 주위의 곱지 않을 시선마저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성경이 기록한 그대로 그는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확실하게 보았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집안의 가족, 식솔, 종, 노예, 심지어 친척, 친지마저 보았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요셉은 성실, 정직, 신용, 지혜, 실력을 다 갖춘 바탕 위에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경우에 정말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바꿔 말해 요셉은 애굽 사람들에게 종교의 벽을 넘어설 만큼 선한 영향력을 끼쳐 감동을 준 것입니다. 그의 인격과 말과 태도에서 거룩한 모습이 절로 배어나왔습니다. 사람들이 나이 어리다고 함부로 대하지 못할 어떤 권능마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다 하는 일마다  자기들이 하는 것보다 훨씬 잘되었습니다. 단순히 실력만 좋으면 질투와 시샘을 초래하지만 인격과 행동과 결과가 말해 주니까 처음에는 몰라도 차츰 존경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가 알게 모르게 애굽인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빛이 그들에게도 비췬 것입니다. 보디발이 개종까지 하지는 않았겠지만 요셉으로 자유롭게 여호와 신앙을 갖도록 허용했을 것입니다. 믿음의 씨앗이 어떤 모습으로든 어떤 이에게라도 틀림없이 뿌려진 것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도 오직 하나입니다. 요셉이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여호와만 전적으로 믿고서 범사에 그분의 거룩한 인도만 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생명을 걸고 여호와를 찾았던, 시쳇말로 죽기 살기로 믿었던 것입니다.

신자가 빛과 소금으로 세상 앞에 서는 것이 단순히 정직하고 성실하고 선해서만은 안 됩니다. 불신자 가운데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람들이 반드시 신자의 뒤에 있는 그리스도부터 먼저 발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썩어 없어지는 밀알이 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총과 권능을 자신의 존재와 삶과 인생을 통해 직접 구현(具現)해내어야 합니다. 자신을 통해, 정확하게는 자신은 어떤 처지에 빠지든, 하나님의 빛과 의와 생명이 주위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썩어 없어지는 밀알이라고 해서 반드시 순교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순교를 각오하고, 즉 죽기 살기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따라야 합니다. 혹여 무조건 뜨겁고도 맹목적으로 믿으라는 말로 오해해선 안 됩니다. 실제로 언제 어디 어떤 경우에나, 아니 자신의 모든 것이 없어지더라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족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볼 때 극렬하게 반대하든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호응하든지 둘 중 하나의 반응만을 이끌어내어야 입니다. 신자가 죽기 살기로 믿으니까 그를 보는 불신자도 죽기 살기로 나눠져야 합니다. 종교의 벽을 허물어 참 생명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은 오직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뿐입니다. 신자가 밀알로 썩은 결과는 누구에게나 십자가 사랑을 드러내는 모습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사랑에 대한 반응도 받아들이든지 거부하든지 둘 중 하나이지 않습니까? 따라서 신자가 차지도 덥지도 않게, 즉 죽기 살기로 믿고 있는지 점검하는 기준은 그 외적 태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반응이 차지도 덥지도 않으면 신자도 그렇게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고후2:14-16) 당신은 지금 죽기 살기로 믿고 있습니까?

6/13/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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