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8:13,14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 은혜

조회 수 554 추천 수 15 2009.09.09 01: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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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 은혜


혹이 다말에게 고하되 네 시부가 자기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에 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을 인함이라.”(창38:13,14)


성경이 말하는 죄악의 성격과 심판의 기준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바와 상당히 다른 경우를 종종 봅니다. 며느리 다말과 관계를 맺은 사건 그 자체만 보면 유다로선 큰 잘못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며느리인 줄 미리 알았다면 절대 그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이 사건 전에 아내인 수아의 딸이 죽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홀아비로 여행길에 나섰다 아직 혈기 왕성한 장정인지라 창녀를 돈으로 사서라도 시쳇말로 객고(客苦)를 풀려 했던 것이지 않습니까? 비록 셋째 아들이 장성했는데도 혹시 화가 생길까 염려하여 며느리에게 계대 결혼을 시켜 주지 않음으로써 시아버지가 원인을 제공했어도, 그것을 빌미로 창녀로 분장하여 관계를 맺은 다말이 오히려 더 잘못한 것 아닙니까?

반면에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9절) 여호와께서 바로 죽여 버렸습니다. 자기 기업을 계속 독차지 하려는 욕심이 앞섰지만 어쨌든 이 일은 정식 부부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오난보다는 다말이 더 심한 것 같은데 오난은 죽음의 벌을 받았고 대신에 성경은 유다의 입을 빌려 “그(다말)는 나보다 옳도다”(26절)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녀는 그리스도의 선조가 되는 영예마저 누렸지 않습니까?  

그러나 유다에게 사실은 홀아비 신세라는 사정을 봐줄 여지가 전혀 없는 큰 잘못이 있었습니다. “딤나 길 곁에 나임 문”은 당시 가나안 지방의 우상을 숭배하는 신전 입구의 문을 말합니다. 또 그 신전에선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기 위해 남녀 사제들과 음란한 성관계를 맺었는데 특별히 양털을 깎는 계절엔 더 그랬습니다. 다말은 양털 깎는 잔치 때에 신전 입구에서 여자사제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유다가 다말과 관계를 맺은 것은 이방 신전의 여사제와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을 가진 셈입니다. 그는 형제들과 떨어져 나와 살면서 가나안 땅의 풍습에 상당히 젖어들었던 것입니다. 성경이 38장 서두에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친교를 맺었으며,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했다고 이미 예시한 그대로였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까지만 해도 가나안 여인과 통혼을 엄격히 금했습니다. 그러다 유다 때에 와선 고향을 등진지 너무 오래인지라 현실적으로 가나안 여인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하나님을 아는 백성들이 그들의 풍습에, 특별히 우상 숭배에 결코 물들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어쩌면 유일하게 용서받지 못할 정도로 저주하는 죄를 유다는 범했던 것입니다.  

그의 둘째 아들 오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계대 결혼의 뜻은 하나님 자녀들의 혈통과 기업과 믿음을 순전하게 보존하려는 뜻입니다. 단순히 형제들 간에 다툼 없이 재산을 나누는 방식이거나 과부가 된 형수를 돌보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오난은 아내가 된 형수와  관계를 맺을 때마다 매번, 아마 하나님도 회개하는 기회를 주려고 몇 번은 참아주었을 테니까, 땅에다 설정을 했을 것입니다. 형수를 기업을 함께 이어갈 아내로는 전혀 대우하지 않고 단순히 성욕을 분출하는 창기로 취급한 큰 죄였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안중에 안두고 우습게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가장 큰 죄는 당신과 당신의 뜻을 배역하는 것입니다. 유다나 오난이나 성적인 부정을 떠나 바로 그 죄를 범한 것입니다.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하므로” 심판을 받은 이유도 틀림없이 가나안 우상숭배에 깊이 물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다는 아들들을 여호와의 자녀로 양육하는데 실패 했습니다. 정작 본인부터 이방 족속과 교제하기 바쁘다보니 필연적으로 생기는 결과입니다. 모든 죄의 출발이 하나님을 멀리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반면에 다말은 오직 유다 가문을 이을 상속자를 낳고 싶어 했습니다. 그녀가 성욕을 주체 못해 시아버지를 유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우상 숭배 신전의 창기가 되고자 하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습니다. 유다와 관계를 맺자마자 바로 창기 흉내를 중지하고 수절하는 “과부의 의복을 도로”(19절) 입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친정에서 근신하고 있었습니다. 천륜을 어기는 근친상간의 죄와는 내면적으로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다말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소원하며 그분의 뜻에 맞게 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인간들의 추한 죄악의 모습 가운데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신비한 은혜가 숨겨져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다말이 그리스도의 선조가 되었다는 익히 알고 있는 뜻이 아닙니다. 우선 단 한 번의 관계로 임신이 되도록 했습니다. 다말의 소원을, 틀림없이 기도했을 것임, 하나님이 들어 주신 것입니다. 유다는 대신에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두고두고 자기 잘못을 뉘우치게 될 것입니다. 성적 욕망을 절제하지 못했다는 단순한 죄책감이 아니라 가나안 풍습에 물들어 우상숭배까지 흘렀던 그 큰 죄를 말입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장남과 차남을 잘못 양육해 하나님의 벌을 받았는데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유다가 죽은 아들 둘을 너무 안타까워했고 또 자기 죄를 회개했기 때문에 보상의 뜻으로 준 은혜가 아닙니다. 쌍태가 형성된 것은 며느리와 관계를 맺는 추악한 죄악 중이었으므로 유다의 아픔이나 회개와는 상관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후손이 하늘의 뭇별처럼 많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신실히 지킨 것입니다. 당신의 기업이 될 두 명의 후손이 죄악으로 잃게 되자 당신께서 그 자리를 채워주신 것입니다. 또 새로 태어난 두 아들만은 정말 당신의 자녀답게 잘 키워보라고 다시 기회를 준 것입니다. 죄악 중에 난 아이들이니까 유다로선 자기부터 그런 죄악을 다시는 범하지 않고 또 아이들도 자기를 닮게 해선 안 되겠다고 단단히 각오하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쌍둥이 중에 팔을 내민 앞 아이를 제치고 뒤 아이가 먼저 나왔습니다. 동생이 형의 자리를 뺏은 셈입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나 신기하지 않습니까? 야곱이 범한 잘못을 유다에게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이삭이 에서를, 또 그 아들 야곱은 요셉을 편애하여 그 자식들이 잘못 자랐듯이, 며느리와 상관하게 된 너무나 엄청난 죄악의 뿌리가 결국 유다도 동일한 잘못을 범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그가 자칫 죄악의 씨인 쌍둥이를 멀리하고 셋째 아들 셀라를 편애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미리부터 경고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악을 판별하고 상벌을 주는 기준이 인간의 판단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분은 우주의 근원이자 중심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 중심으로만 운행됩니다. 그렇다고 독선적인 기분파나 신경질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은 절대적 진리이자, 선이자, 아름다움으로 완전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어떤 형태로든 그분과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멀어지거나 굽는 데서부터 죄악은 발단됩니다. 인간이 의롭고 거룩해지는 것도 응당 그 반대입니다.

그분의 생각과 길은 우리와 다릅니다. 아니 너무 높습니다. 또 그것이 이뤄지지 않고 헛되이 돌아가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사55장) 그럼 우리가 잘 이해되지 않는 어려운 환난이 닥치면 그 속에 놀랍고도 신비한 섭리와 은혜가 풍성히 숨겨져 있으며 현재 그것을 향해 가고 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최소한 우리를 더 성숙하고 거룩하게 변화시키기 위해 각성과 회개로 인도하실 것 아닙니까? 유다와 다말에게 죄악 중에도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의심과 불만을 버리기는커녕 왜 날로 더 쌓아 갑니까? 이유는 오직 하나 그분이 나와 다르고 높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가 되어도 자꾸 내가 옳고 높아지고 싶은 것입니다.  

6/5/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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