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9:2,3 마이다스의 손을 가진 신자

조회 수 543 추천 수 41 2009.09.09 01: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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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다스의 손을 가진 신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창39:2,3)


신자들 사이에 기도나 위로로 주 안에서 만사형통하게 해달라는 간구를 자주 나눕니다. 형통(亨通)이라는 말은 어떤 장애나 환난도 겹쳐지지 않고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간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신자의 삶을 보호, 인도해준다고 해서 만사형통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요셉이 범사에 형통케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왜 그렇게 안 해주시는지, 또 그 이전에 그렇게 소원하는 것이 옳은지, 만약 틀렸다면 어떻게 소원해야 하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본문의 뜻은 요셉이 “번영의 사람”이 되어서 하는 일마다 주위 사람들이 봐서 충분히 알 정도로 이전보다 현저하게 더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요셉이 했었기 때문에 이전보다 나아졌지 다른 사람이나 이전에 맡았던 사람이 했더라면 그렇게까지 좋아지지 않았으리라는 뜻입니다. 과장해서 비유하자면 그리스 신화의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는 마이다스의 손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마이다스로 변한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성경이 “만사를 형통케 해주었다”고 말하지 않고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표현한 것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요셉은 형통하는 자인 반면에 우리는 그렇지 않은 자라는 뜻입니다. 일의 종류나 처한 상황에 따라 형통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 본인의 상태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해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의 대상은 신자 자신이지 신자가 당면한 일이나 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선 요셉은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철부지로 사방이 완전 막힌 곳에서 혼자서 만사를 헤쳐 나가야 했습니다. 정말 자기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항상 함께 하시지만 그는 전적으로 그분만 의지했지만 우리는 언제나 일부는 내가, 사실은 거의 다 내가 담당하려 하고 정 내가 할 수 없는 부분만 하나님께 맡기려 들지 않습니까? 요셉은 온전한 믿음으로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임했던 것입니다.  

당연히 그는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어떤 일을 겪더라도 아주 정직하고 성실하고 겸손했을 것입니다. 매순간 성령의 인도를 구하므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현실적 상황만 따져도 낯선 이방 땅에서 어린 청년이, 그것도 노예 신분에서 취할 태도란 항상 정직, 성실, 겸손뿐이지 않겠습니까? 가뜩이나 그곳의 관습과 문화는커녕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잘 모르는데 사기, 나태, 교만으로 대했다간 바로 목숨이 날아갈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형통이란 아무 어려움 없이 일이 뜻대로 순순히 잘 풀린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뜻이 요셉과 하나님 중에 누구의 뜻일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여 그분이 형통케 해주셨으므로 하나님의 뜻입니까? 둘 다 아닙니다. 주인인 보디발의 뜻입니다. 요셉은 아직 나이 어린 노예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슨 큰일을 이룰 재간도 없었고 주인이 아예 맡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일이라도 절대로 게으름 피우지 않고 눈가림도 하지 않으면서 주인이 시키는 대로 완벽하고도 깔끔하게 일 처리를 했다는 뜻입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이기도 했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엡6:5-8) 요셉은 바울이 기록할 성경 내용을 전혀 몰랐지만 이 말씀 그대로 행했던 것입니다. 그는 보디발에게 성실하게 충성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그러는 것이라고 간주했고 나아가 그렇게 하다보면 반드시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하여 주시리라 확신했던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 뜻대로 온전히 행한 그를 하나님이 형통케 해주지 않을 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된 까닭이 그의 성실성과 믿음 때문만이 아니었고 더 중요한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애굽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며 또 범사에 형통케 해주심을 당신께서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제 갓 20세 전후의 청년으로 문화와 관습과 언어가 전혀 다른 이방 땅에 온 외국인이었습니다. 그럼 본인의 자질과 능력만으로는 그렇게 될 리 없었다는 뜻입니다. 자연히 주위 사람들로선 그의 배경에 어떤 신적인 가호와 권능이 작용했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애굽은 우상숭배의 나라였습니다. 바로의 궁전에서부터 맨 아래 서민들 나아가 노예들까지  수많은 우상들의 신탁에 따라 나라전체가 움직였습니다. 그곳에 참 하나님을 아는 자라고는 오직 요셉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섬기는 신은 이상하게도 어떤 형상이나 깎아 만든 제단이 전혀 없었습니다. 보디발과 애굽 사람들이 그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에게 제단도 없이 언제 어디서나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분명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신이 이뤄낸 결과는 자기들이 하는 것보다 만사에 현저하게 나아진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로선 요셉이 믿는 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나아가 자기들 신들보다 훨씬 우월한 신이 따로 있음을 감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애굽 사람들이 그런 권능을 보고서도 여호와를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 믿지도 않을 자들 앞에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 자랑만 한 셈입니까? 아닙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12:2,3)

요셉이 성실하게 된 것도 보디발이 그에게 호의를 갖게 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사기꾼 아비의 기질을 물러 받았을 요셉이 이방 땅에서 자기 계책대로 요령껏 살아갈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이 막으시고 대신에 성실하고 헌신된 마음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요셉 때문에 보디발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오로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당신께서 성실히 이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또한 범사에 형통하려면 아브라함의 언약에 참예하여야 합니다. 그의 영적 후손이 되었으니 믿음으로 기도하면 형통한다는 단순한 뜻이 결코 아닙니다.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언약에 부름 받았다는 확고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이 자기를 통해 주위에 흘러들어가게 하겠다는 헌신과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주위 사람이 그렇게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또 그렇게 바뀐 인생관 위에서 요셉 같이 쉬지 않고 기도하며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 실제 삶에선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어떤 일을 도모하든 그 일과 상대를 그리스도께 대하듯 정직과 성실과 겸손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범사를 형통케 하려고” 믿음을 동원하지 말고 “자신부터 형통하는 자”로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자기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형통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자가 만사를 형통케, 즉 자기 주위를 바꿔 달라고 간구하면 잘 안 되는 대신에 자기를 바꿔 달라고 하면 오히려 주위가 바뀌니 말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이 간단한 진리를 잘 알고도 실천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도의 내용 하나만이라도 하나님 뜻에 온전히 따르겠다고 제대로 바뀌면  얼마든지 요셉처럼 마이다스의 손이 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6/11/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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