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은혜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도대체 너희는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요7:19)
율법은 이방인들에게 준것이 아니라 모세를 통해서 선택받았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후손은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졌고 야곱의 열두 아들에게서 이스라엘 열두지파로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한 가족을 이루도록 허락 하셨습니다. 가족단위에서 한 족장시대를 지나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하에 애굽이라고 하는 제국에 이주를 시켜서 사대만에 큰 민족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말은 선지자 이사야와 현 남포교회를 섬기시는 박영선 목사님의 트래이드이기도 합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그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무한한 자유와 풍성한 하나님의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것은 먼저 율법을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겠다는것이 아니라 시내산에서 이미 백성으로 인정하신 후에 주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구원에 적용시켜 본다면 사람이 먼저 율법을 지켜서 즉 어떤 선한 행위나 자기 의로움이나 공덕을 쌓아야 구원해 주겠다 혹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인본적이고 종교적인 모든 생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좀더 살펴본다면 하나님의 선민 이라고 자랑하는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앞에 무슨 쓸모가 있다거나 이방인들에 비하여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끗하다거나 특별해서 택함을 받은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것도 그가 선하고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간절히 소원해서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당시 갈대아 우르라는 땅에서 우상을 만들어서 먹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각종 형상들을 만들어서 팔았지요. 그러니까 아브라함도 별수 없이 당시 이방인들과 별로 다를바 없는 하나님 보시기에 똑같은 죄인일 뿐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지극 정성을 들여서 제단을 쌓았다거나 전혀 없었습니다. 순전히 하나님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주저함 없이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수 있었던 것도 하루아침에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뜨거운 믿음이 생긴 것이 아니라 그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간섭하셨고 개입하셨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걸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느날 믿음이 충만했던것이 아닙니다. 구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뭔가 의롭고 잘나서 남들보다 죄가 좀 적어서가 아닙니다. 오직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로우심과 사랑하심으로 인하여 받은 것입니다.
이런 모든것을 종합해 보았을 때 이스라엘은 완전한 소망이 없는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결국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노예와 같은 처지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맺은 언약을 기억하신 것입니다. 그 언약이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니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창12:1~2) 라고 하신 언약이었습니다. 아브라함쪽에서 뭔가를 한 것이 전혀 없지요?
그리고 그 약속대로 애굽에서 약 사백여년간 이스라엘을 번성케 하셨고 약속대로 모세를 보내사 홍해를 건너서 시내산 앞에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모든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이미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발랐던 당시 사람들은 장자가 죽는 사망의 재앙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꼭 이스라엘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모세와 이스라엘백성들의 말을 듣고 순종했던 사람들은 다 살았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노예들의 말을 믿은 것입니다. 나중에 홍해를 통과한 무리들을 살펴보면 중다한 잡족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애굽에서 살던 많은 다민족들이 있었는데 그들가운데 모세의 말을 듣고 준행한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내산에 모아서 하나님은 영광가운데 율법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건너가서 살아갈 가나안 땅은 이제 분명한 구별을 요구하고 있는것입니다.
그곳에는 이미 수 백년간을 정착해서 살고 있는 이방족속들이 있습니다. 그 민족들은 각자의 생각에 좋은대로 행하던 민족들입니다. 이미 죄아래 타락한 인류의 하는 짓이라는게 죄 밖에 더 있을까요? 요즘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한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종교를 포함해서 어디 제대로 살아가는 민족 보셨습니까? 인간이란 다 그런것이지요. 많은 학문과 교양이 인간 본성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수 많은 고행과 명상이나 수련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죄의 속성은 사람을 빠르게 부패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은 평화를 원하지만 만들수도 없고 지킬수도 없습니다. 이미 성경은 증거하기를 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이 거룩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수 있어서도 아닙니다. 구약의 정신은 ‘너희가 율법을 지키면 살리라’ 입니다만 한사람도 예외없이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제사장들은 지킬수 있었을까요? 선지자들은 율법에서 과연 무죄할까요?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율법을 다 지켰을까요?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무었입니까? 죄를 깨닫게 하고 죄를 죄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주재를 알아라고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교만함은 언제나 신의 자리를 넘보고 있습니다. 죄의 본성이 그래요. 죄는 언제나 하나님과 독립적인 존재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죄는 하나님과 사람을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아담의 자유의지로 선악과를 먹은 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청산해버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인간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지만 죄가 그것을 끊어버린 것이었지요.
그 죄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어둠에 같히게 만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악이요 어둠의 세계입니다. 그 캄캄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은 아우성을 치는 것입니다.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자기 백성들이 알지 못했습니다. 거절했습니다. 미워했습니다. 배척하였습니다.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은 그 율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율법따로 삶이 따로 분리되었습니다. 이미 율법을 어겨서 죽을 수 밖에 없는 백성들을 살리시려고 제사법을 만드셨습니다. 제사장을 세우고 범죄한 백성들을 속하여 주셔서 새롭게 살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만 사람들은 그것마져도 악용과 오용과 남용을 하고 여기까지 온것입니다.
그러므로 해마다 송아지의 피로 어린양의 피로 그 많은 죄를 덮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의의 법이 오실 때 까지 임시적으로 맡겨진 것이었습니다. 그림자요 모형이었습니다. 이제 그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알지 못했습니다.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이렇게 의로우셨지만 악의 세력과 보이지 않는 죄의 세력에 의하여 거센 저항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좀더 깊숙히 들여다보면 죄가 공격을 당하는 것입니다. 죄의 실체가 예수님때문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폭로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숨어있었던 위장했었던 악의 실체를 예수님께서 훤히 밝혀주시자 큰일이 난 것입니다. 율법의 뒤에 숨어서 이스라엘을 농락하고 지배하던 세력들이 깜작 놀란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그동안 다스려온 악의 세력들이 위기의식을 느낀 것입니다. 그동안 백성들로부터 누려온 그들의 기득권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주동자들이 바로 유대인이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이며 백성들의 장로들과 율법사들이었습니다. 대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환영할리가 없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을 등에 업고서 잘먹고 잘 살았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율법에 정통하다 자신했으며 백성들을 정죄하는데 빨랐습니다. 정결식을 행하고 이래에 두번 금식하며 십일조를 정확하게 성전에 드렸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흠이 없는 경건한 부류입니다.
백성들은 그들을 보면서 흉내를 내면서 자기 만족에 사로잡혔습니다. 이미 율법의 정신은 없어지고 조상들이 스스로의 해석에 따라 만든 유전들을 앞세워서 율법은 다만 형식이며 구색일 뿐 사람의 계명이 율법위에서 수백년간을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배해 왔던 것입니다. 이 백성들은 무엇이 참인지도 모르는체로 속아서 살아온 것입니다. 한마디로 거짓에 속아서 살아가고 속임에 취해서 그것이 진실인것으로 오해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그러나 너희중에는 율법을 아는자도 없고 지키는 자도 없을 뿐더러 하나도 없다는 주님의 탄식입니다. 모세를 너희가 아느냐? 모세를 너희가 믿느냐? 그가 너희에게 준 율법을 받지 않았느냐? 그 율법을 너희가 알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는 전부가 율법을 지키지 못했구나 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못받습니다. 율법을 우리가 지킬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대신 율법을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지만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그 약속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바랄수 없는 중에 은혜를 입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등지고 제 갈길로 갔었던 이스라엘을 찾아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이미 선지자들로 약속하셨던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정한 기한에 맞추어서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 아들로 인하여서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허락 하셨습니다. 그 유일한 조건이 새 언약안에 들어온 자들입니다. 이방인들이나 본 자손들이나 할것 없이 누구나 그 아들을 믿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율법은 종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잘 지키면 상을 주고 못지키면 심판을 받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 아들로 인하여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 아들의 십자가로 구속을 입었고 죄 사함 받았으며 원수에서 자녀로 신분이 옮겨졌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새 법을 주셨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법으로 우리 마음판에 세기셨습니다. 그 새로운 언약은 하나님께서 심어주셨기에 변할수 없습니다. 취소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벗어나려해도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기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안에 거하는 삶은 그 속에 정죄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기때문입니다. 바울사도가 그랬잖아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은바 되었다고요.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고 그 것을 확증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죄인 이었고 연약하였고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심으로 증명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받았습니까? 이제는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나누시기를 소망합니다. 아직도 율법을 지키나 못지키나로 갈등하십니까? 그것은 내가 아직도 율법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끊임없이 우리를 고발합니다. 죄책감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은혜는 우리를 사랑으로 세워줍니다. 용서합니다. 긍휼히 여깁니다. 정죄하기전에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행하심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그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비록 우리의 믿음이 불완전하고 육신이 연약하여서 때때로 실패하고 좌절을 경험하겠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만일 무엇이든지 완전하다면 내 믿음으로 나를 구원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의 믿음 좋음이 조건이 되며 공로가 되어서 내 의로움으로 하나님앞에 서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지 못한 사람을 손가락질 하면서 나는 이렇게 하는데 넌 왜 못하는가 할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누가 과연 하나님앞에 당당하게 설수 있을까요?
구원은 나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먼저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이라
오늘날 우리가 은혜아래 있다고 한다면 율법으로 조목조목 따지면서 누구를 가르치고 설득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직 그의 은혜. 그의 사랑이 먼저이며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어떻게 반응 하시겠습니까? 각자 적용해 보신다면 어떨까요?
오 주님.
그렇습니다. 저는 율법을 지키지 못합니다.
율법앞에서 언제나 죄인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주님의 긍휼을 소망합니다.
나는 주님을 위하여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것을 주님 아십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나를 잡아주옵소서
주님은 나를 다 아십니다.
나의 모든 허물을 아십니다.
그렇기에 주님만이 나의 도움입니다
나의 모든것 되시는 주님만을 의지할수 있도록
믿음을 허락해 주옵소서
주의 은혜만을 원하고 원합니다
영원하신 주님의 사랑만을 소망합니다.
주의 은혜아래 있게 하옵소서
2008-03-20. 작은자. http://pray119.ohp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