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그들이 계속 질문을 퍼붓자 예수께서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요8:7)
성경을 통해서우리가 알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입니다. 만일 성경에서 복음이외의 것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시간을 허비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일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복음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기에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성전에 앉아 많은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 현장에 일단의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이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려고 온것이 아닙니다. 당연하지요? 서기관이라함은 당시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여 가르치는 자들인데 그런자들이 새로운 젊은 랍비를 인정할리가 없지요. 바리새인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요즘식으로 하자면 나름 정통과 일가를 이룬 성공한 지도자들인데 어디서 검증도 안된 신참내기요 시골뜨기인 그저 세간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정도의 인물로 보는 그런 사람에게 스스로 겸손하게 배우려고 온다는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대형목회로 성공을 이룬 곳에서 겨우 신출나기요 무명의 젊은 사역자가 좀 이슈를 일으켰다고 냉큼 인정하고 환영하지는 않듯이 말입니다.
도대체 어떤자인가라는 호기심과 함께 자기 경내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경계의 끈은 놓지 않을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사실 오늘 예수님께 온것입니다. 많은 백성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한다는 소문을 듣고 시험하러 온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가르침이 상당부분 자기들의 수준과 다른것을 알았습니다. 어쩌면 그들 입장에서는 모세의 율법에 도전하는 이상한 교훈으로 백성들을 혼란하게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려고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기까지 철저하게 백성들을 통제하던 전통에 반하는 일을 거침없이 행하는 예수님이 신경이 쓰이질 않겠습니까? 요즘으로 한다면 주일에 시장도 가고 음식도 사먹고 장사도 하는 말하자면 교회안에서의 모임보다 야외로 간다든지 하는것입니다. 십일조를 헌금에서 제외한다든지 교회건물을 성전이라 하지 않는다든지 목사를 일반 성도와 평등하게 한 직분으로서 목회의 기능으로서 이해한다면 발칵 뒤집어지겠지요.
약간 비약을 하자면 설교를 비평한다고 하는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거나 예의 주시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말하자면 그동안 유지해온 전통주의에 새로운 사상이 들이밀어오는 격이며 그동안 금기시해왔던 문제들을 쏟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한 여인을 앞세우고 온것입니다. 그리고서 자랑스럽게 하는 말이 이것입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들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우리에게 명령했습니다.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요8:4,5)
아니 그런일을 왜 예수님께 찾아와서 말하는 것일까요? 겸손한것도 아니며 몰라서도 아니라는걸 누구나 알수 있습니다. 그곳에 모여있는 백성들도 저들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참 뻔뻔하기 그지 없지요. 인간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라면 어떤짓도 서슴없이 할 수 있습니다. 그 여인이 현장에서 잡혔는지 아니면 그들에게 사주를 받았는지 알수는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백성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죄인이었기에 끌려왔던 이용을 당하던 하였겠지요.
이들이 생각하는 것은 모세를 빙자하여서 예수님을 함정에 넣기 위함입니다. 그동안 인자와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해온 예수님이기에 만일 모세의 율법대로라면 여자를 돌로 쳐서 죽이라 할것이고 그렇다면 사랑을 전하는 말이 말짱 거짓이라는게 되니까 빼도박도 못하는 것이며 그들의 생각에 묘책중의 묘책인 것입니다.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예수님을 그들은 쾌제를 부르며 재촉을 합니다. 어찌할까요? 사실은 주위의 백성들에게 들으라는듯이 하는 것입니다. 봐라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그리스도가 아니다 잘못생각한 것이다 라는 것이죠. 저자는 거짓말쟁이다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말도 못하는것을 보라 이말입니다.
어쩌면 그 주위에서 말씀을 듣고 이분이 정말 그리스도인가하며 기대를 품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과연 저들의생각대로 우리가 속은것인가하며 생각하고 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이 귓가를 울립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라는 주님의 말씀에 모두들 크게 놀랍니다. 너희 가운데는 당시 현장에 있던 모두가 아닐까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적어도 나는 너희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만 죄인인가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아온 백성들은 상관이 없습니까? 아니 시간을 초월해서 오늘 우리들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까?
여인이 불쌍해서가 아닙니다. 여인만 불쌍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형편을 모르는 우리 모두가 불쌍한 처지아닌가요? 죄가 죄인줄도 모르고 나는 너희와 다르다고 생각하며 나는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고 나는 이것도 행하며 저것도 행하니까 나는 아니다라고 생각하십니까?
거기 둘러선 많은사람들은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다가 하늘의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위로부터 들려오는 그 소리는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소리로 들려졌습니다. 오늘 이시간에도 우리들의 마음에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바랍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쩌면 돌을 들고 던질 준비를 하는 그 자리에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꼼짝없이 돌을 맞아야 할 그 자리에 있는 저 여인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에게 그 여인이 누구로 생각 되어질까요? 여러분은 그 여인을 향하여 담대하게 돌을 던지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홀로 있는 여인에게 물으셨습니다.
“여인아, 그들은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선생님, 없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는 기억지도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빽빽한 구름속에 숨기시고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멀리 옮기시며 주의 등뒤로 던지시고 그 발로 밟으시고 도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향한 생각은 우리를 정죄하고 고발하며 무거운 짐을 지며 고통과 번민가운데 허우적거리는 불쌍한 인생들을 구원하시는 사랑으로 가득하십니다.
2008. 3. 26. 작은자.
<187장- 너희 죄 흉악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