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다음은 레위 가족인데, 립니 가족과 헤브론 가족과 마흘리 가족과 무시 가족과 고라 가족이다. 고핫은 아므람을 낳았으며, 59 아므람의 아내의 이름은 요게벳인데, 그는 레위가 이집트에서 얻은 딸이다. 요게벳은 아므람에게서 아론과 모세와 그 누이 미리암을 낳았다.
60 아론에게서는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태어났다.
61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금지된 불을 주 앞에 드리다가 죽었다. 62 난 지 한 달 된 사람으로부터 그 위로 등록된 모든 레위 남자는 이만 삼천 명이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그들에게만은 땅을 유산으로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이스라엘 자손이 등록된 명부에는 오르지 않았다. 63 이들은,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 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인구를 조사할 때에, 그들이 등록시킨 이들이다.
64 등록된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인구를 조사할 때에 등록시켰던 사람은 한 명도 들어 있지 않았다. 65 주께서, 그들이 광야에서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제외하고는, 그들 가운데서 어느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민수기26장>
싯딤에서 발람의 궤계를 이용한 발락의 전략은 어느정도 효과를 얻었습니다.
사실은 그 효과가 오늘날에도 계속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미 성도들은 치열한 전쟁터로 내어몰린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믿는다는것은 즉시 싸움터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원래 치열한 생존 경쟁을 넘어서서 끝없는 무한경쟁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전부 죽기살기로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조금 아는 상식으로 보아도 한 생명이 태어나기까지 엄청난 싸움을 싸우고 승리한자만이 세상에 나와서 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게 진정한 평화가 있을까요?
진정한 평와를 우리가 누릴 수 있을까요? 결론적이지만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는 자아가 죽는것입니다. 죽음만이 유일한 평화의 가장 가까운 의미입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또다른 세계가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렇다는 성경을 믿는자와 불신하는 자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말이 길어 졌군요. 인생에게 진정한 평화는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과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의 삶을 대비하여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조차 헷갈려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 많다는것이 안타깝습니다. 심지어 겉으로보면 예수를 잘 믿는것 같은데 결정적으로 그가 예수와 전혀 상관 없다는 것에 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면 예수와 전혀 상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예수와 절대적으로 연결이 된 자들이 있다는 것이 충격적입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그것을 알수가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기록된 성경이 그 열매들로 알것이라고 기준을 밝혀주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문화적이거나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정과 삶의 현장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쉽게 예수안에 있는것처럼 오해하거나 착각속에 일생을 속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이 절대적으로 예수 안에 있을것이라고 전혀 의심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자기와 같은 문화와 사상과 생각과 형식을 준수하거나 동참하지 않는 자들을 걱정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나는 등록신자이기에 하늘나라 가는 티켓은 이미 확보한것이고 다만 상급을 더욱 높이기 위한 일거리만 남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날때부터 부모의 신앙이 하나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엄마가 권사요 아빠가 장로요 이모부가 목사요 외삼촌이 전도사요 등록교회 신자요 세례받았으며 교인들의 숫자가 수 만명이 넘는 부흥된 교단의 소속된 교인이라는 자긍심입니다.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교인이며 거기 출썩을 5년 10년 이상한 것이 자랑입니다. 우리교회는 주님이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축복받았고 그러한 교회에 등록되었다는것이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도 자랑스럽게 우리교회 한번 와보라고 말하는것이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잘못은 아닙니다. 당연히 자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주님의 뜻과 목적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곳인가를 살펴야 하는데 그것은 안중에도 없고 다만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받는 유명한 곳이라는 것으로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아는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염병으로 죽은 이스라엘이 2만4천명이었습니다.
죽은 이유가 발람의 사술에 넘어간 것 때문이었으며 그 현상이 미디안의 여자들과 음행을 한것이었고 그 중심에 이스라엘의 종족들 가운데 두령들이 앞장을 섰다는 것입니다. 열두지파의 대표들입니다. 지도자들이 먼저 모압의 여자들과 그들을 섬기는 제사의 재물을 먹고 절을한 것입니다. 당연히 여자들을 이용한 음란한 의식들이 그들의 마음을 훔쳤을 것입니다. 난잡한 의식들과 행위들을 단지 다른 민족들의 고유한 풍습이라고, 하나의 문화적인 행사라고 경계심을 무너지게 하였겠지요.
성경대로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세상은 속삭입니다.
너희들은 너무 폐쇄적이며 극단적이고 지나치게 판단한다는식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신이라는데 각자의 고유한 문화를 무조건 거부할만큼 속이 좁은가하고 자극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벌써 몇년전부터 세계 민속 축제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한바탕 문화행사를 개최합니다. 또한 건강을 미끼로 교묘하게 들어온 요가라든가 명상수련등으로 이미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종교로 들어오면 반대가 있기때문에 스포츠와 건강을 접목시키거나 음악이라는 대중적인 관심으로 포장해서 들어옵니다.
묘하게도 불교나 천주교 할것없이 소위 명상기도 관상기도니 무슨 호흡법이니 기공이니 기체조니 요가니 다이어트니 하면서 실 생활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교회들은 이에 대하여 무방비로 노출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문화를 역이용해서 교회의 부흥을 꽤하려고 수용하는 곳들이 있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정말로 분별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싯딤에서의 이스라엘의 수치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이스라엘이 한바탕 곤욕을 치뤘습니다. 그리고나서 전열을 정비하기 위하여 인구조사를 합니다. 두번째 조사입니다. 시내산에서 인구조사를 한 이후 두번째입니다. 싸움에 나갈 만한 남자의 숫자를 세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여정에 필연적으로 이스라엘은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니의 은혜로 이집트에서 종살이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전혀 불가능한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제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입성하는 일만 남았습니다만 그 땅으로 들어가는데 저절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투준비를 철저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의 싸움은 영적 전쟁이라고 합니다.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랍니다.
11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비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12 우리의 싸움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와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엡6장)
악마의 간계를 간파하는 것이 싸움입니다.
이 세상은 어두운 곳이며 그 배후에 바로 사단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어두운 세력속에 포로로 잡혀 있었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출을 받아 빛가운데로 옮기어졌다는 것입니다. 빛과 어두움은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것이 바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행하던 것들에게서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교회를 다니고 세례를 받았고 직분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전에 행하던 어두운 일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것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으로 부터 들어온 문화나 가치에 포로가 되었다면 심각한 것이 아닌가요? 그것이 혹시 여러분이 자랑하는 그 교회라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주님의 길과 전혀 다른 길이라면 그래도 그것을 붙잡고 기도만 하고 있으시렵니까? 집단이나 어떤 단체에 등록이 되었다고 여러분의 영혼이 보장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비록 무식하지만 교회를 비난하고 불의한 삯군들의 행태를 까발렸더니 교회를 비방하며 어지럽히는 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변명한번 할랍니다. 제가 비난하는 글을 읽을 대상들이 누구인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는 개혁이 필요 없으며 음부의 힘이 건들수 없습니다. 그러한 주의 몸된 교회를 제가 감히 비난할 수 있을까요? 저는 거룩한 교회라는 이름을 함부로 도용하는 집단들을 향하여 비난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이용하면서 정작 성경에 가르친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집단이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저 간판걸고 지역 이름달고 특정 교단을 앞세워서 감히 교회라고하면 그곳이 교회라고 성경에 나와 있는지요? 또한 삯군들과 같은 불의한 짓을 일삼으면서도 그러한 사실이 만천하에 들어났음에도 그러한 사람이 특정 신학교와 교단에서 안수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목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자들을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을까요? 그 고귀한 피로 그러한 삯군들을 옹호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마음이 참으로 궁금합니다. 얼핏 들으면 엄청난 사랑과 믿음으로 충만하신 분들 같습니다만 그러한 삯군들의 거짓말에 속아서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행위로 고통하고 방황하는 영혼들은 안보이시나 봅니다.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르로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잃어버린 한 영혼의 비명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주께서 당신을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세상에서 불러내심은 바로 거짓과 삯군들을 밝히 드러내고 늑대가 온다고 소리쳐서 달아나게 해야하는 일로 부름을 받은것을 아시는지요? 그저 목사도 연약한 사람이라 실수도 있고 잘못도 있으니 기도하면서 회개할 때까지 덮어주자고 하는 이들에게 묻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다 회개할것 같았으면 이사야는 왜그렇게 바보같은 예언을 하였으며 예레미야는 23년동안 목이 곧은 백성들과 관원들과 왕들과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였을까요?
선지자들이 전부 믿음이 없어서 이스라엘의 배역과 불의함을 보고 골방에서 눈물로 기도하면 될것을 왜 그렇게 쓴소리를 하여서 매를 자초하였을까요? 아모스나 호세아나 하박국은 기도나 할것이지 왜 그렇게 흉한 것만을 말해서 화를 자초하였을까요? 특히 예례미야선지자는 모두가 평안하다고 애굽을 의지하던 이스라엘을 향하여서 바벨론에게 손들고 항복하라고 하였다가 죽을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삯군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합니다.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고 금식하고 주께 부르짖기만 하면은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선지자들이 회개를 촉구하던 내용이 무엇입니까? 너희들의 불의한 길을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그 길로 가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은 예수를 믿으라는 것에서 예수의 뜻데로 살라고 하는것입니다. 단지 예수 이름을 부르고 믿고 고백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의 방향을 완전히 돌려서 주님과 함께 살아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한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좁은길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 길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내어쫒는것만으로는 어림도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즉 예수의 아버지, 곧 우리의 아버지의 뜻데로 행하는자라는 것입니다.
내가 과연 지금 어디에 속해 있는지 잘 살펴야할 시기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봉사와 섬김과 나눔들이 과연 아버지의 뜻과 얼마나 상관이 있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혹시 내 이기심과 욕심과 업적과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하는 섬김인가 누군가의 이목때문에, 아니라면 사회적인 신분때문에, 아니면 회사의 유익과 사업의 수단때문에 그냥 아버지의 뜻과 상관 없거나 다름에도 모른척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버지의 뜻과 반대지만 그래도 눈감고 일을 하면 엄청난 유익으로 소속한 곳이 성장한다는 이유로 강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기에 혹시 불의하고 아버지의 뜻과 다름에도 그것때문에 고통받는 이웃들이 있어도 괜히 나섰다가 손해볼까 두려워서 잠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시끄러워지면 교회에 덕이 안되니까 덮어버리고 그저 좋은게 좋은거라고 은혜만을 강조하지는 않습니까?
백성들의 영혼이 아버지의 뜻과 다른길로 가는것을 알면서도 지금 누리고 있는 기득권 때문에 입다물고 다른 소리를 하고는 있지 않습니까? 성경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저 골방에서 눈물로 기도만 하고 있으시렵니까? 기도하실 분들은 계속 기도하십시오.
모세가 기도하였다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선봉장이 되어서 싸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기도만 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서 악의 간계를 가려내고 분연히 일어나서 싸우는 것입니다. 군사로 징집이 된것이지 가만히 세상의 풍조에 떠밀려서 흘러가는 존재로 부름을 받은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는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자리에서 모든 이론들과 사상과 문화와 풍속을 거스리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땅에 정착한 여러 족속들이 그 땅을 더럽혔고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으로 들어가거든 그들의 풍속을 본받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율례와 법도를 주신 이유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처럼 이스라엘도 거룩하게 살라는 목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시고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하심은 이 불의한 세상에서 동일하게 거룩하신 아버지의 성품으로 살기위한 부르심이고 그것은 당연하게 세상의 불경건함과의 싸움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속은 어떡하든지 하나님을 대적하게 합니다.
발람의 간교함처럼 이스라엘로하여금 하나님의 진노를 받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징계를 받도록 유혹하는 것이 세상의 문화이며 모든 가증한 풍속입니다. 복음으로 거듭난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일생을 그러한 싸움을 싸운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평화를 노래합니다. 그리고 문화와 풍속을 통해서 인류애를 주장합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 없이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잘 먹고 잘살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종교와 사상과 지식들과 과학의 발전과 지성으로 충분히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기는 믿어도 교회를 다니기는 다녀도 세상과 동떨어지게 구별되거나 특별하게 튀지 말라고 압력을 가합니다. 예수를 믿는것은 자유지만 강요하거나 예수만이 구원이라고 가르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들과 보조를 맟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세상과 벗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과 가까이 하는것은 하나님과 원수라고까지 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라는 이름으로 혹시 세상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도 그것으로 얻는 부요함과 유명해짐과 세상으로 부터의 달콤한 칭찬때문에 정면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면서도 하나님의 뜻데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는 않습니까? 말씀이 분명히 지적하는데도 말씀과 다르게 행하면서도 여전히 기도만 하고 있자고 할 수 있습니까? 진군 나팔을 불어야 하지 않습니까? 양각나팔을 힘껏 불러야 할 때가 아닙니까?
광야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던 자들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고 다 죽었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과 광야에서 새롭게 태어난 세대들만이 살아 남았고 그들은 이제 가나안으로 들어가기까지 무수한 전쟁을 위하여 준비되었고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불의함을 보고도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나 하자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비난하지 말고 긍휼히 여기며 기도해주자고 합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소리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거짓 삯군들을 위함이 아니라 그들에게 유린당하는 한 영혼이라도 사실을 바로 알고서 빠져 나오기를 위한 외침입니다.
내 백성아 그곳에서 나오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거짓과 불의의 삯을 사랑하는 그런 자들로부터의
영적인 출애굽을 위하여 저는 소리치겠습니다. 소리치고 도망할 지언정 저는 소리치겠습니다. 싯딤에서의 교훈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12:2)
2009/05/17.ⓒ사랑그리고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