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오해하셨습니다.
이제 사실을 밝혀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우리는 예수믿는자 라고 합니다.
믿는자들은 예수를 모든 삶의 영역에서 주인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성령으로 행하고 성령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밝히 증거하기를 누구든지
'성령으로 하지 않고서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다' 고 합니다.
예수가 나의 주님이라고 믿는다는 것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그의 삶의 모든 가치,영역,사고,
존재의 목적이 예수의 말씀이 표준이며 기본이며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따르기에 손해를 볼 수도 있으며
억울함도 감수하며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내어 주는 자들입니다.
만일 그러한 일들을 애써 피하고 모른척 하면서 현실적인 안정과 이익 때문에
당연히 거절해야할 관계를 거절하지 않는다면 그는 거짓 믿는자입니다.
여기서 신앙인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라거나 완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때로 순간적으로 육신의 연약함과 타락한 본성으로 유혹에 넘어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에게 찾아오시는 주의 성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의 심령을 향하여
부지런히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저 죄가운데 빠졌으니 그대로 망해버려야 한다고
버려두시지 않고 계속해서 죄인의 양심을 건드리시며
말할 수 없이 탄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죄인이지만 성령의 찌름을 알고
회개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며 그렇게 애통하며 주께 나아오는 자들을
붙들어서 새롭게 빛가운데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때가 바로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충돌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우리는 다시한번 성령의 소욕에 따르기로 결단하는 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죄된 상태를 보면 도저히 부끄러워서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누구를 바라 보라고 합니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바라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를
대신 담당하신 예수를 바라 보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로 예수를 바라보고 다시한번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이루신 구원의 주요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우리의 눈과 마음과 영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는자가 살았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보고 바로 죄인이 죽은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와 함께
우리의 죄가 못 박혔다는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하고 외면한다면 어찌되겠습니까?
하나님의 긍휼함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못 믿겠다고 외면한다면 주 예수의 무한하신 속죄와 깨끗케 하심과
대속의 공로가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의로워져야 한다는 사람들은
결코 십자가의 예수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는 스스로 결단하며 법을 잘 수행함으로써
스스로의 구원을 이루어야 할 뿐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의로움과 거룩함을 위하여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과 거룩함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께서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루신 구원을 믿음으로 바라 보는것입니다.
다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정리합니다.
교회를 평생을 다닌것 하고 예수를 믿는것 하고 다릅니다.
목사요 장로요 집사요 하는것 하고 예수를 믿는것 하고 다릅니다
기독교인과 예수를 믿는것 하고 다릅니다.
이것을 오해하는 것때문에 이런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목사가 그럴수 있는가?
어떻게 장로가 그럴수 있는가?
어떻게 사모가 그럴수 있는가?
어떻게 집사가 그럴수 있는가?
어떻게 교회가 그럴수 있는가?
어떻게 교인이 그럴수 있는가?
당연합니다.
그런 타이틀과 직분과
예수를 구주로 믿는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교회나갑니다' 하지 않습니까?
혹은 장롭니다. 무슨무슨 교회 집삽니다. 이러지는 않습니까?
평생을 교회는 다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이 혹시 있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교회 목사님이 유명하고 부흥도 했는데
만일 십자가의 예수와 아무런 상관 없는 길로 가거나
교인들에게 십자가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를 말해주거나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모든것을 다 이루신 구원의 복음을 누리는 목사라면
결코 성경에도 없는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잘 내고 지키는 것이
복받는 길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안에서 하나된 사도들이
그들의 일생을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지 성경은 증거합니다.
오늘 자칭 주의 종이라하는 목사의 삶에서
만일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이단이며 삯군이며 가짜라는 증거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안에서 자유함을 가르쳤습니다.
날과 달과 절기들에 대하여 누구든지
그리스도인들을 폄론(시비하거나 문제삼거나 따지거나 정죄하지 못한다)
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날이 주님이부활하신 날이며
매일 매일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시간들임을 말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할일입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의 피의 공로 때문에 죄사함을 받았으며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 영생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전해주어여 합니다.
그것 외에 다른것을 지켜야 하고 행해야만 한다는 자들이있다면 삯군들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는 오늘날 주일성수해라 십일조를 바쳐라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피로 사신 바 된 거룩한 성도들이 바로 교회요 형제요 지체이며
그러한 모임이 바로 신약의 교회의 본질이며 그런 교회의 머리가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의 구원얻은 성도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안에서 십자가로 구원얻은 신약의 성도들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책망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이 오셔서
모든 성도들에게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자세하게 성경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필요에 의하여 만들어진 조직과 종교단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이 주인이기에
성령의 인도하심과 전혀 다른길로 행하며 다른 길로 갈 수 밖에 없으며
오히려 성경을 통해 진리의 길로 가려는 성도들을 거스르고
훼방하고 핍박할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진리를 증거하셨지만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내세운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같은
종교 전문가들이 빌라도의 손을 빌려서 십자가에 죽이기 까지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당시 예수를 거절하고 미워한 유대인들이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인것과 같은 행동을 똑같이 한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러므로 속으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 생각하지 말고
도끼가 나무에 이미 찍혔으니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을 것을 충고하였듯이
오늘날 스스로 믿는자라고 말하며 주여 주여 하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착각은 자유지만 끝가지 오해하면 정말 불쌍한 자가 되어 슬피 울며 이를 갈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성경을 자세히 주의하여 읽어보아서 분별하여서...
불의한 자들의 모임에 계속 함께 있다가는 큰일 납니다.
멸망받을 장소에 있으면 소돔성에 미련을 두고 있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같이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시고 부활하신 분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한분 외에는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주 예수를 바라봅시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주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것이 믿음으로 의에 이른
성도들이 가장 기초이며 기본입니다.
2009/05/24.ⓒ사랑그리고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