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억누르는 것과 절제하는 것의 차이를 배우고 싶었다. ' 영성의 동산' '감정을 살려라' 에서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배우게 되는 것은 솟아나는 감정은 자연스럼인 것이며 그것은 나쁜 것이다, 좋은 것이다 라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가치중립적인 것이라신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나의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그것이 이렇게, 저렇게 자신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꽤나 먼길을 돌고 돌았다. 예수님 품속에서 걸어나와 너무도 멀고 먼길을 나 혼자 터벅이며 꼬불 꼬불한 길을 걸었다. 다시 예수님 품속임이 깨달아졌을 때, 그 곳은 바로 그냥 예수님 품속이였다. 그 곳에서 나 혼자 하염없이 터벅 터벅 걷는다고 생각했을 뿐이였다. 예수님은 그냥 그곳에 계셨건만..
두려워도하고 분노도 하며 또 그러면서도 이웃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걷던 길에서 생겨진 감정들로 인해 예수님 품속에서 떠나와 멀고 먼길을 혼자 걸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여러모양의 감정들로 인해 상처가 되어지고 분노도 되어졌을 때 난 무조건 억누르려만 했었다. 그리고 잘 절제할 수 있음이 믿음이기에 그런 믿음만을 추구하며 기도해왔다. 그런 감정들 속엔 죄악이 우선 처리되어야만 했건만 그 죄악은 가만히 두고 감정만 가지고 문제삼고 있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 뜻대로 행할 소원이 생기는 그 지혜가 능력이라신다. 지금껏 내 감정에 따라 내가 사랑하면 사랑이고 내가 화가나면 그건 이웃의 잘못.. 몽땅이 나를 기준하였기에 생겨진 감정이였다. 내가 사랑받기 위해 향방없이 달음박질 친 것, 나의 믿음 자랑하기 위해 행했던 일들, 그러면서도 그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 생각헀던 것이다. 그리고 돌아서면 왠지 부끄러웠고 무언가 나를 자랑한 것 같아 영 불편했던 지난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생겨진 감정들이 예수님 품속에 안겨서도 이리저리 꼬불한 길을 혼자 터벅거리며 걸었노라 생각되어졌던 것 같다.
귀한 말씀으로 가르침 받으며 그간 생각 속에서 예수님 품속을 떠나 먼길을 홀로 걷노라 착각하였던 이유가 바로 나의 어떠함을 위해 나만을 챙기기 급급한 죄악의 문제였음을 깨닫고 예수님 품속에서 운다. 이러한 나를 그래도 사랑하시어 그 품속에서 놓지 않으신 그 사랑이 너무도 감사하여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