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우리동네엔 도둑고양이들이 너무 많다. 밤낮없이 이 고양이들은 울어댄다. 어느날엔 마치 패싸움하 듯 여러마리의 고양이들이 모여서 요란스레 울어댄다. 전에 없이 많은 고양이들의 울음소리에 놀란 우리집 고양이는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겨버렸다. 밥을 먹고나선 자기 밥그릇을 수건같은 것으로 덮어 놓는 것이다. 자기먹이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존재를 성난 고양이들 사이에서 숨기고 싶어 그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바리새인임을 잘 안다. 그래서 고백도 자주한다. 그런 고백 속에선 진정 고치고 싶어서 하나님게 아뢰고 있었는지, 아니면 이 바리새인임이 드러났기에 부끄러워 그저 하나님께 하소연만 하고 있었는지를 요즘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진정으로 낫고 싶다면 정말 세세하게 고백하면서 치료해 주십사 부탁을 드려야 마땅하건만, 지금껏 바리새인임이 아파요~~, 슬퍼요~~ ... 이렇게 심령의 아픔만 호소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피뿌리심의 은혜로 지옥백성이 마땅한 이 죄인이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런 구원의 은총을 받았다. 이 감격은 어찌 잊을 수있으며 어찌 지울 수 있겠을까. 종일토록 감사만 드려도 부족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이다. 그런데 그런 은혜위에 또 풍성한 은혜는 너무도 여물고 단단한 자아의 껍데기를 하나씩 하나씩 벗겨가시는 성령님의 손길이시다. 그건 은혜이건만 무어가 그리 아프고 슬픈지.. 그 슬픔과 아픔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건 바로 나의 자존심과 체면이라는 괴물이 내 안에 마치 애굽의 바로왕처럼 도사리고 앉아 있기에 그러하다. 이런 바로왕이 내 안에 보이면 난 그만 우리집 고양이처럼 이상한 너울을 쓰고 도망가고만 싶다. 하나님께 아프다고요 말씀드리고 사람들 앞에서는 그만 숨어버리고 싶은 이상한 습성이 있다.
뭉퉁그려서 바리새인입니다라는 고백 보다는 이제 세세한 나의 잘못된 습성들을 주님께 고하며 고쳐주십사 기도드려본다. 단단하고 여문 이 옛자아의 껍데기를 하나씩 하나씩 벗겨주심에 감사만 드리길 소원하면서.. 그리고 이 이상한 너울쓰고 자꾸 도망가고픈 너무도 이상한 습관들을 하나님께 아뢰어 고쳐주십사 기도드린다.
모세가 걸친 수건조차 주님의 영광 앞에서는 다 벗겨질 것이라고 하는 고후3장 말씀이 위로가 됩니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