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래야한다고 맞장구를 치곤 했다. 누가 뭐래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었기에 그러했다. 매일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큐티를 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갖고 있었고 또 나름 하나님을 친정 아버지 보다 더 친근하게 느끼며 미주알 고주알 이런 저런 말씀을 자주 드리고 항상 문제 앞에선 우선 상의들 드리곤 했었다. 기도를 할 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로 마치지 않았다. 서른아홉대의 채찍을 맞으시어 온 살점이 떨어져 나간 그 등허리, 거긴 하얀 뼈도 보이는 것 같고 피가 엉켜붙어 도무지 사람의 몸이라 생각되어지지 않는 그 몸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휘청 휘청 올라가신 골고다 길을 생각하며 꺼이 꺼이 울며 내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쳤다. 그리고 내 손가락 굵기보다 더 굵은 그 가시면류관으로 이마에 푸욱 눌러씌움 당하셨을 때, 그 따가운 아픔 때문에 맘이 짜안하여서 어찌할 줄 모르겠는 맘으로 기도를 마치곤 했다. 그래서 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도 고통스런 고난, 삶을 포기하고 싶은 그 고난 앞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그 때 난 알았다. 지금껏 나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음을... 추악하기 짝이 없는 나의 죄악을 보며 경악하고 도무지 어찌할 줄 몰라 절절 매며 그간 믿어왔고 의지해왔던 그 보혈의 공로가 나를 비껴지나가는 듯, 스쳐 지나가는 듯 여겨져 가슴저몄던 시간, 너무도 엄청난 죄인이기에 난 그 보혈의 공로를 적용받을 자격이 콩알만큼도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제발 제발 그 십자가의 공로를 나에게 적용시켜 주십사 애타게 애타게 예수님을 바라보며 간절히 빌고 빌었다. 그리고 적용되어진 그 십자가의 공로를, 내 죄 사함 받았음의 그 감격을 그리고 예수님 품속에서의 그 따스하고 포근함을 그 때서야 비로소 온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 날부터 나는 달라졌다. 새벽기도 시간이 맘 설레이며 기다려지고, 눈을 감으면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내 맘도 그 구름속에 올려진 듯 새털처럼 가볍고 벅찬 나날이 시작되었다. 성경을 펼치면 그렇게도 딱딱하던 말씀이 술술 읽혀지고 읽을 때 마다 성경 부분부분 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의미가 오롯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내가 나를 어찌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내가 겪은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몰랐다. 회심에 대해 교회에서 단 한번도 가르침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그러했다. 혹여 누가 알면 어려운 고난 가운데 결국 실성했다고 손가락질 당할 것 같아 혼자 끙끙거리다가 운영자님께 조심스레 상담을 드렸다. 첫사랑이라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성경이 잘 이해가 될 것이라 더불어 말씀해 주셨다.
첫사랑? 그 말에 또 많은 의문이 생겼다. 그럼 그동안 신앙생활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였는가? 라는 그런 생각들, 그리고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라 말씀하신 그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하였고 회심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그래서 난 이 곳에 머무르며 귀한 말씀으로 조금씩 조금씩 여러 궁금한 것들을 배워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