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믿는 것인데
그렇다면
기복 신앙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봐야 하나요 ???
죄송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믿는 것"이라는 전제부터가 맞는 것인지 적어도 제가 믿는 기독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호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행복의 조건과 기준이 바뀌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신뢰하기에 고난을 통해서도 행복을 얻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여러의미로 행복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믿기에 따라오는 것이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고난을 참고 영생을 얻어 천국이라는 장소에 가서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종목표인 듯 많은 교회들이 가르치는데 물론 영생과 천국도 아주 중요합니다만 그것만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라면 그것도 주객전도이고 하나님이 성경에서 보여주시는 참뜻을 오해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고 그분만이 내가 속한 곳인줄을 알게 되었으며 예수님을 통해 다시 회복된 그 관계안으로 오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부름에 응답한 것이지 그밖의 모든 것들은 (행복, 천국, 영생)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내가 받는 것이고 그것을 이유로 믿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어느 고아가 있습니다. 그 고아는 어렸을때의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보아도 자기는 고아였고 자기 부모가 누구인지, 자기는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는채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어느 메신저가 와서 사실 당신 부모는 살아계시고 당신을 애타고 찾고 계신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 그 고아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부모를 만나려고 가지 않겠습니까? 그 고아가 "내 부모는 부자이십니까? 내가 받을 유산은 많습니까?" 따져보고 갈지 안갈지 결정하겠습니까? 미국에 갓난애기때 한국에서 입양되어 온 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이 있는데 적어도 제가 아는 한 그들이 자기의 부모가 누군지 찾아볼땐 단순히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소중함때문이지 그 부모가 혹시 부자일지 모르니까 그래서 내가 행복해질수도 있으니까 내가 한번 찾아봐야겠다라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유산을 받으려는 것만이 목표인 자식을 부르시고 싶겠습니까 ?
저는 하나님으로 돌아가야하는 단 한가지 이유는 원래 그분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나를 만드셨고 나는 그분께 속하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창조신이 악한신이거나 나를 망하게 하는 신이라면 도망가야겠지요. 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선하시고 완전하시다고 증언하고 있고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그 자체에 관심이 없다면 잘못된 것을 목표로 믿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호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오직 하나님만으로 행복한가'입니다.
기독교는 그래서 사람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서 존재하는 많은 종교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제가 기독교와 교회에 반발감을 가지고 있을때 누군가가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때는 기독교의 우월감을 얘기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콧방귀를 뀌었습니다만 그런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행복만을 위해 전해지는 복음은 하나님의 참뜻과 사랑을 종교로 끌어내리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잘못 믿고 있는 것이라면 목사님께서 조언해 주시기를 바라고 워커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썼지만 혹시라도 표현에서 무례한 점이 있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어메이징 그레이스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믿는 것'"이라는 전제뿐만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갖고 믿는다"는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하셨는데, 믿는 이유라는 표현을 쓰셨지만 '믿음의 이유'라는 표현은 여러 의미로 나눌 수 있습니다. '믿음의 계기', '믿음의 목적', '믿음의 근거'.
워커님께서 말씀하신 행복해지기 위해 믿는다는 것은 믿음의 목적이겠죠. 믿음의 계기나 믿음의 근거를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믿음의 목적은 문제가 있는 개념이라고 봅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믿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같습니다. 믿음은 어떤 진실이나 인물에 대해 자연히 발생하는 반응이지 의지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의지적으로 믿기로 선택하고 믿어보려고 노력하는 단계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아직 진정한 믿음(믿어진 상태)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댓글을 쓰다보니 원래 쓰려던 내용(믿음은 믿어지는 것이기에 어떤 목적을 위해 믿는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보다 생각이 더 발전되었는데, 계속 나아가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믿음(믿어진 상태)과 의지적 믿음(믿으려는-또는 믿는다고 하려는- 상태)으로 구분을 한다면 믿음의 목적이란 개념도 성립되지 않는 것은 아닌 것 같네요. 의지적 믿음으로서의 믿음(믿으려는 상태)이라면 믿음의 목적이란 것도 가능해보입니다.
다만, 하나님을 믿을 때는 어떤 목적을 위해 믿으려는 의지적 믿음에서, 믿어지는 믿음의 상태로 나아가셔야 합니다. (즉 믿어지는 믿음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어떤 목적도 하나님보다 크지 않고 클 수 없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행복보다 하나님이 크십니다).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 그 분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 하나님 그 분 자체를 구할 때 그래서 하나님이 믿어질 때 행복은 따라올 것입니다. 그 행복은 세상적으로 생각하는 행복과 다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오는 행복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이 참 행복일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으로 행복한가, 아니면 다른 조건이 충족되어야 행복할 수 있는가의 차이입니다.
행복의 조건, 혹은 행복의 기준이 하나님인 사람은 언제, 어떤 형편에 처하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자신의 모든 기쁨과 슬픔, 형통과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자 성령의 인도임을 참으로 알기에 처지와 환경이 그의 행복을 좌우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각자 나름의 기준과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 기복신앙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야망이든 소박한 꿈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필요를 나보다 더 잘 아신다는 사실과, 이미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