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1장
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ㅡ>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무슨 뜻인지요?
주님의 말씀들이 상징적 비유법을 사용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1. 사탄의 거처가 광야에 있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종교관념일 뿐 사탄은 인간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활개치며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일에 훼방을 놓습니다. 그리고 세상 주술사는 일시적 부분적 축사만 가능하다는 뜻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사람을 언제 어디서나 삼키려고 노립니다.(벧전 5:8)
2. 그 집이라고 정관사가 붙었습니다. 일시적으로 귀신이 빠져나온 그 사람을 가르킵니다. 그런데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기에 사탄이 삼키기에 적합다는 뜻입니다. 집이라고 표현한 것은 사탄이 거하는 장소라는 의미로 물 없는 곳(광야)에 대비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탄은 사람이 없는 곳에선 활동할 이유도 필요도 없고 1에서 답변드린 대로 오직 사람만 조종 농간 할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이 됩니다.
3. 상징적 의미로 일곱이라는 완전 충만한 숫자로 표현했기에 다시 사탄에게 완전히 정복당한다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귀신이 쫏겨나갔어도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사탄의 노예로 묶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당들이 일시적으로 능력을 발휘해 질병치료나 축사를 해도 나중에 더 큰 병이나 더 많은 귀신이 들게 해서 굿을 더 크게, 더 돈이 많이 들게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실제로 그런 예가 됩니다.
물 없는 곳이란 단순히 강이나 호수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KJV 영어성경이 Dry Places라고 번역했듯이 광야, 황야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의 종교관에는 사탄의 거처는 광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은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런 개념을 염두에 두시고 상징적 의미로 표현하여 이어지는 25, 26절의 의미를 강조하려 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 당대에 축사의 능력을 나타냈던 바리새인들이나 주술사들은 일시적으로 불완전하게 귀신을 쫓아내거나 흉내만 내다가 실패했지만(행19:13-15)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완전하게 귀신을 쫒아낸다는 전체문맥(눅11:14-26) 상의 주제를 쉽게 이해시키려는 표현인 것입니다. 어쩌면 유대인들은 거라사 지역에서 군대 귀신들이 예수님에 의해 쫓겨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에 들어갔지만 강으로 뛰어들어 몰살했던 사건(막5:1-20)을 기억하고 있기에 주님의 이 표현이 의미하는 바(예수님만이 사탄을 물리치는 참 선지자이자 메시아라는 진리)를 더욱 실감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