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대해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심판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합니다. 바로 앞의 비유둘에서 주님의 심판이 주제이고(35-48절) 또 이어지는 설명과 비유들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51-59절) 앞뒤 문맥이 심판을 예언하는 가운데 49,50 절이 끼어 있는데 주님의 개인적인 생각을 드러내신 말씀입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심판을 하러) 이 땅에 왔는데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더 이상 원할 것이 없다는 반어적인 표현입니다.) 아직 불이 붙지 않았다 즉, 심판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50절에 "나는 받을 세례(십자가의 대속죽음으로 구원과 심판을 나눔)가 (남아)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라고 그 심정을 토로한 것입니다. 오직 죄인(스스로 병자라고 겸손히 인정하는 자)을 구원하고 의인(건강해 의인이 필요없다는 교만한 자)을 심판하러 오신 목적에 따라 모든 사역과 가르침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그 십자가 죽음(당연히 재림도 포함 됨)이 완성될 때까지는 당신의 마음이 한 시도 평안할 날이 없다는 것입니다.
불에 대해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심판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합니다. 바로 앞의 비유둘에서 주님의 심판이 주제이고(35-48절) 또 이어지는 설명과 비유들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51-59절) 앞뒤 문맥이 심판을 예언하는 가운데 49,50 절이 끼어 있는데 주님의 개인적인 생각을 드러내신 말씀입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심판을 하러) 이 땅에 왔는데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더 이상 원할 것이 없다는 반어적인 표현입니다.) 아직 불이 붙지 않았다 즉, 심판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50절에 "나는 받을 세례(십자가의 대속죽음으로 구원과 심판을 나눔)가 (남아)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라고 그 심정을 토로한 것입니다. 오직 죄인(스스로 병자라고 겸손히 인정하는 자)을 구원하고 의인(건강해 의인이 필요없다는 교만한 자)을 심판하러 오신 목적에 따라 모든 사역과 가르침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그 십자가 죽음(당연히 재림도 포함 됨)이 완성될 때까지는 당신의 마음이 한 시도 평안할 날이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