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6:7) 왜 “예수의 영”이라고 했는가요?

조회 수 485 추천 수 0 2019.03.28 14:49:57

(행16:7) 왜 “예수의 영”이라고 했는가요?

 

[질문]

 

사도행전16장에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는 것이 막히는 상황이 전개가 되는데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성령"이 허락 하지 않는다'고 하면 좋을 듯하고 사도행전의 분위기와도 어울릴 듯한데 1. 왜 "예수의 영" 이라 했을까요? 2. "예수의 영"이라면 뭘까요? 한글 성경으로 "예수의 영" 이라는 표현이 이곳 밖에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특별히 성경이 그렇게 기록된 이유가 있지 않나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답변]

 

다들 예사로 넘길 텐데 질문자님처럼 성경을 세밀히 보시는 습관을 갖는 것은 아주 바람직합니다. 성경 해석에 관한 질문들의 답변에서 제가 누차 또 매우 강조하는 사항이 둘 있습니다. 본문 자체의 객관적인 뜻을 찾되 앞뒤 문맥과 반드시 비교해 보라는 것입니다. 거기다 그 책의 주제와 저작의도와 수신자들의 당시 상황까지 감안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전문사역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첫째는 신자 스스로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이 질문도 그러합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는 별칭처럼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의 복음 전파에 성령이 강력한 역사한 사실을 기록한 신약성경의 유일한 역사서입니다. 그럼 말씀하신 대로 성령이라고 표현하면 알기 쉽고도 자연스러울 텐데 뜬금없이 또 유일하게 “예수의 영”이라고 하니 조금 어색하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셨는데 혹시나 영혼이 따로 이 땅에 남아서 역사하는 것은 아닌지 의아하기도 합니다.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8)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16:6-10)

 

사도행전은 역사서이므로 일차적으로 일어난 사건의 경과에 주목해야 합니다. 상기 구절에서 사도들이 처음에 가려고 예정 내지 목적했던 선교 지역이 두 번은 막히고, 마지막 한 번은 (예정과 계획에 없던?) 새로운 지역을 지시 받습니다. 이 세 번째 지시는 바울 개인에게 환상으로 임합니다.

 

반면에 앞의 두 번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계시가 있었는지 불명합니다. 아마도 바울 일행들의 기도 가운데 공통적으로 그런 응답을 받았거나, 여러 정황상 도무지 계획을 변경하지 않으면 안 되었거나, 마찬가지로 꿈이나 환상으로 지시 받았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저자 누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아무리 믿음이 좋고 성령에 충만한 사도들이 계획 기도할지라도 막상 그 길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들로 하여금 두 번 계획을 포기시키고 한 번 새로운 지시를 주셨던 존재가 서로 다를 리는 결코 없습니다. 요컨대 사도행전 주제대로 성령님이 그렇게 역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 번의 표현이 각기 다릅니다. 먼저 6절은 ‘성령’이 전하지 못하게, 7절은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고, 10절은 ‘하나님’이 복음 전하라고 부르셨다고 합니다. 동일하신 존재의 동일한 역사를 각기 성령, 성자, 성부로 표현만 다르게 했습니다.

 

상기 구절은 그래서 초대교회 당시에 이미 삼위일체의 교리가 확정되었거나, 최소한 사도들 사이에 동일하신 세분 하나님이 계신다는 인식이 확립되어 있다는 성경의 분명한 내증(內證)인 셈입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의 영혼이 이 땅에 남아 있다고 여긴다면 하늘보좌에 앉아 계셔야만 할 하나님이 땅에 내려오셨다는 식이 되어버립니다. 둘 다 불합리한 생각일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의 영”은 주님이 완전한 인간이라는 차원에서의 영혼이라는 의미는 전혀 없으며 성령을 달리 말한 것일 뿐입니다. 저자 누가가 의도적으로 세 번의 동일한 성격의 성령의 역사를 성삼위 이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그 본질과 속성과 권능에서 단 하나 차이가 없이 창조 때부터 영원까지 동시에 공존하시되 단지 그 위격(three persons)만 다르고 사역의 역할 범위 차원을 달리할 뿐입니다.

 

특별히 예수의 영이라고 표현한 것은 예수님께서 예언하셨던 또 다른 보혜사 진리의 영(요한복음 14:15-21, 16:5-15 참조)이라는 의미를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은 예수 십자가 대속구원의 진리입니다. 사도들이 가는 곳마다 그 복음 앞에 죽어 마땅한 죄인들이 변화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들의 믿음과 섬김의 공동체인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런 사역의 열매들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의 결과이자 그 배경에는 주님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고 있다는 뜻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처음 또 다른(원어로도 서로 다른 different가 아니고, 모든 면에서 동일하지만 개체만 다른 another라는 뜻) 보혜사를 주신다는 약속을 하시기 전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고 권면했습니다.(요14:15) 그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자 보혜사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는 약속도 그들에게 실현되었습니다. 사도들과 그들의 공동체 안에 예수님의 권응과 사랑이 영으로 즉, 성령으로 와계셨던 것입니다.

 

3/2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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