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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성은 기도로 무너진 것이 아니다.

조회 수 937 추천 수 1 2020.06.24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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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오래 전 서울강남 중심지에 있는 불교사찰 봉은사를 신자들이 줄지어 돌면서 절이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바람에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을 주도하는 선교 단체가 예루살렘 거리에서, 또 교회 단기선교 팀들이 중동의 회교사원 주위를 돌며 “땅밟기 기도”를 하여 현지인들의 반발을 샀던 적도 있었습니다. 캠퍼스 선교를 목적으로 기독 대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동일한 모습을 연출하지만 불신자나 타종교를 가진 학생들의 반발만 더 불러일으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의 첫 전투인 여리고에서 성 주변을 줄서서 돌기만 했는데도 하나님이 그 튼튼했던 성을 일시에 무너트리는 기적의 승리를 안겨주었습니다. ‘땅 밟기 기도’는 이 사건을 문자적으로 잘못 해석 적용한 데에 기인합니다. 나중에 갈렙이 가나안 정복을 마치고 땅을 분배할 때에 하나님이 베푸신 승리에 감사했는데 그 고백을 잘못 해석한 것도 땅 밟기 기도의 정당성 강화에 일조했습니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수14:9)

 

우선 갈렙이 가나안 전투 전부를 회상하며 한 말이므로 여리고 전투에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 “그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라고 했으므로 훨씬 오래 전에 모세가 말한 것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리고 성 전투를 비롯해 가나안 정복 전쟁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모세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이스라엘의 신세대들에게 출애굽 여정을 회상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강론했습니다. 알다시피 가데스 바네야에서 열 명의 정탐꾼이 스스로를 과소평가한 데에 겁을 먹고 하나님을 거역했던 구세대는 광야에서 방황하다 죽는 벌을 받았습니다.(민13, 14장)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신1:36)

 

그 때 굳건한 믿음으로 여호와의 명령대로 진군하자고 설득한 갈렙에게 그가 밟은 땅을 그의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신다고 성령이 모세의 입을 빌려 예언했습니다. 갈렙은 모세가 자기에게 예언해준 이 말씀을 회상한 것이었지 자신이 여리고 성 전투에서 땅을 밟으며 기도하라는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이방 땅에 객이 되어 있던 동족을 구출해 내어서 아모리 족속들의 땅으로 진군시켜야 하는 종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창15:13-21)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모세도 실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예언해준 말씀을 인용한 것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기 직전에 함께 소유가 늘어난 조카 롯과 한 목초지에서 더 이상 동거할 수 없어서 헤어지게 됩니다.(창13장)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13:14-17)

 

아브라함은 목초지를 선택할 권리를 롯에게 완전히 먼저 양보했으며 자신은 하나님이 어떤 땅을 주던지 기꺼이 받겠다고 말했습니다. 롯이 물이 많아 보이는 소돔 땅을 택하여 떠난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방으로 눈에 보이는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니면 즉, 그 땅을 밟으면 다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에 동참하는 모든 후손에게도 당연히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스라엘이 당신만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면 가나안 땅 전부를 당신께서 주실 것입니다.

 

살펴본 대로 갈렙의 고백에서나, 모세의 예언에서나, 특별히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는 땅 밟기 방식의 기도가 특정지역을 전도하는데 큰 능력을 발휘한다는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여리고 성 전투에서도 그런 언급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만 온전히 따르는 신자에게 그에 합당한 당신만의 과실을 맺게 해줄 뿐입니다.

 

특정 방식의 기도가 응답이 잘 된다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능력이 하나님 당신의 뜻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특정한 기도 방식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하는 내용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쳐도 세상 어떤 존재와 힘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자존하시는 하나님이 그럴 수는 없습니다.

 

기도 형식에 따라 기도의 결과가 달라지면 누구라도 그런 방식으로 기도만 하면 응답된다는 뜻이 되고 그것은 기도(祈禱)가 아니라 주문(呪文)입니다.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응답을 잘 받는 특정한 기도 방식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자는 그런 류의 가르침에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와 믿음의 내용부터 순전해져야 합니다.

 

이처럼 성경을 조금만 살펴봐도 땅 밟기 기도가 잘못임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기독교인들 가운데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특정한 지역에 특정한 어둠의 영적세력이 견고한 진을 치고 있다는 잘못된 가르침 때문입니다. 그 지역을 점령한 악한 영들을 무너뜨리려면 땅을 밟으면서 합심해서 뜨겁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이 재림하여 마지막 심판을 하시기 전까지 사탄이 공중권세 잡도록 하나님이 묵인했습니다. 특정지역에만 사탄이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전투를 벌리지 않아도 되는 땅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우상숭배나 이단종교가 유달리 성행하는 지역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골고다에서 대속 제물로 바쳐져 사탄에게 이루신 완전한 승리의 복음이 아직 순전히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일 뿐입니다.

 

사탄과의 영적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공격용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6:17)입니다. 마귀는 추악한 거짓의 아비인지라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거룩한 진리 앞에 완전히 무력해집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말씀으로 적그리스도와 같은 흑암의 세력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계19:13-15)

 

영적인 전투를 하면서 “무시(無時)로 성령 안에서 기도”(엡6:18)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신자의 일 년 365일 하루 24시간 전부가 영적인 싸움이므로 호흡하듯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여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전하는 자로선 진리의 말씀을 잘 깨달아 말씀에 의존한 싸움을 하게 해주시고 또 그 말씀을 전해 듣는 자의 심령에 찔림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믿음의 본질적 내용을 잘 담아낼 수 있는 형식 또한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형식이 본질보다 앞설 수는 결코 없습니다. 무엇보다 땅 밟기 기도는 살펴본 대로 관련된 성경말씀의 해석에서부터 잘못되었습니다. 그렇게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려는 의도는 좋으나 말씀의 의미와 어긋나는 기도이므로 기적이 일어나리라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동안 땅 밟기 기도의 성경적 오류는 상당부분 바로잡아졌습니다. 서두에 예를 든 물의를 일으킨 사건들 때문에 신자들도 땅 밟기 기도에 대해 뒤늦게나마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남은 문제는 많은 신자들이 여전히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의 땅 밟기로 무너졌다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간절한 기도 때문에 큰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이 작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승리의 요인 중에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광대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이고도 완전한 주권과 섭리의 관점에서 보면 그보다 훨씬 역할이 더 컸던 승리의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성경을 앞뒤로 연결해서 종합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습관이 거의 모든 신자에게 없습니다. 한 사건만 따로 떼어서 보거나 심지어 한 문장, 한 문구, 한 단어에만 초점을 맞추는 치명적으로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선 성경을 통해 신자들에게 계시해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절대로 온전히 찾아내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 기록된 본문 자체의 의미조차 정확히 깨닫지 못합니다.

 

여리고 성의 전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7일 간 침묵의 행진을 함으로써 기적의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그럼 왜 여리고 성에서도 한 번도 응전(應戰)할 시도조차 하지 않고 침묵만 했는지도 반드시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에 대한 해답은 이스라엘이 전투에서 승리한 경과만 기록한 본문에선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은 너무나 오묘하고 풍성합니다. 그분의 역사를 기록한 성경을 신자가 세밀하게 여러 번 정독하지 않으면 그 오묘한 은혜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습니다. 여리고 성 전투도 앞뒤로 연결해서 성경을 진지하게 묵상해보면 깊이 따져볼 내용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그렇게까지 세밀하게 따질 필요가 없지 않느냐? 믿음은 쉽고도 단순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당신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진리만 믿고 따르면 되지 않느냐?”라고 반발하는 신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진리를 모르는 신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간단한 진리만 알고 치우려면 구태여 성경을 일일이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개별 사건의 정황과 그 등장인물들의 믿음과 행위들이 각각 다르기에 하나님이 베풀어 주셨던 은혜와 권능 또한 각기 다릅니다.

 

아들이 학업 성적이 갑자기 떨어졌는데 아버지가 단지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만 해선 많이 부족합니다. 최근에 여자 친구가 생겼는지, 친구들과 휩쓸려 나쁜 짓을 하는지, 특정 과목만 싫어하는지, 오히려 부모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지 등등을 잘 관찰하고 진지하게 대화해야 합니다. 개별 상황에 따른 개별적 원인이 다 다르므로 그에 대한 해결책도 다 달라야 합니다. 모든 경우에 다 해당되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독려만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구태여 깊이 따질 필요 없이 순종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은 소망과 열정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래서 열심히 노력해보지만 번번이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이 잘못인지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파헤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각각의 경우에 무엇을 어떻게 왜 순종해야 하는지, 나아가 순종하지 못하는 잘못을 바로 잡아줄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성경을 통해 구체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여리고성 전투를 살펴보았더니 최소 열 가지 승리의 요소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숨겨 놓은 결정적인 비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제가 찾아낸 것인지라 여전히 하나님의 광대하심의 극히 일부, 그것도 겉핥기에 불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령이 역사하면 그 일부가 우리의 신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헤쳐보겠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엘에이 근교에서

 

6/20/2020

 

차례

 

들어가면서

 

여호수아의 기도로 여리고가 무너졌다. (수1:1-9)

육십만 개의 무덤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1:10-11 & 16-18)

여리고 주민들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2:8-11 & 23,24)

기생 라합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2:15-21)

제사장들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3:7-13)

신세대의 할례가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5:2-9)

유월절 제사가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5:10-12)

여호와의 사자가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5:13-15)

목숨을 건 순종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6:1-7)

하나님의 뜨개질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6:15-21)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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