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전 세계가 아직도 코로나 사태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 년여 동안 모든 이가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행해야만 했습니다. 지금껏 전혀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현재 백신이 개발되어 접종 중이지만 언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전염병은 사실은 인류 역사 내내 항상 있어왔습니다. 지난 시절에는 교통수단이 미비했고 타지로 여행하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최초 발생지역을 철저히 봉쇄하면서 그 지역의 모든 것들을 불에 태우면 타지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행기를 이용한 국제간 여행이 보편화되어서 세계는 거의 일일생활권으로 변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코비나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모든 나라로 또 그 나라에서 모든 지역으로 번졌습니다. 쥐가 옮기는 역병이라 지역봉쇄로는 도무지 막을 수 없어 전 유럽을 오랫동안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14세기 흑사병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직업을 잃고 경제적으로 궁핍해진데다 집에만 박혀있어야 하니까 정서적으로도 아주 피폐해져가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사가 그러하듯이 이번에도 부정과 긍정의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부정적 반응은 더욱 절망에 빠져서 염세적이 되고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으로까지 도지는 것입니다. 긍정적 반응은 인간 생명이 너무나 미약함을 절감하고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탐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는 이유는 인간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인간에겐 하나님의 형상으로 닮게 지어진 흔적이 종교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같이 인간이 가진 어떤 능력도 아무 소용없이 완전히 무력해질 때에는 필연적으로 영적 차원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절대자에 대해서 부인 내지 대적하는 부정적 반응이 있는가 하면 기대 내지 소망하는 긍정적 반응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선 성경의 판매가 늘어났고 젊은이들 사이에 영적인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 통계로 증명되었습니다. 성경을 찾는 첫째 이유는 말씀드린 대로 연약한 인간이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로는 코로나 사태가 요한계시록에 예언이 되어있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결말날지 그럼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살펴보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에 참고해야 할 성경책으로는 요한계시록보다는 요나서가 나을 것 같습니다. 요나서는 사악한 도성 니느웨가 요나 선지자의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하루 만에 온 성중이 다 하나님께 회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세상이 니느웨처럼 타락했고 또 그 벌로 하나님이 코로나를 일으켰다고 말하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놀랍게도 역사는 니느웨에 BC 765년에 극심한 역병이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흥미롭게도 바로 그 2년 후인 BC 763년에는 일식 현상까지 있었습니다. 고대에는 일식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신이 어떤 큰일을 일으키리라는, 주로 심판에 대한 예언적인 징조로 간주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를 방문한 것이 이 역병과 일식이 발생하기 전인지 후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BC 780년대 초반에서 750년대 초반까지로 추정하므로 이 두 사건이 요나가 사역한 시기 중에 일어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럼 니느웨의 큰 회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요나가 메시지를 선포하기 전에 그 두 사건이 있었다고 추측하는 편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니느웨 백성에겐 요나의 심판이 곧 임하니까 그 전에 회개하라는 메시지가 정말로 실감나게 다가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요나의 니느웨 방문이 두 사건 이전이었을 경우도 따져봐야 합니다. 본문 강해에서 밝히겠지만 요나가 겪었던 전후 사정을 알게 된 니느웨 백성은 그의 메시지를 신중하게 들었을 것입니다. 자기들 식민지로 수탈당했던 약소국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단신으로 담대히 외치는 모습에서도 영적권위를 느꼈을 것입니다. 거기다 심판유예기간을 사십일이라고 확고히 못 박아 선포하니까 예사로 듣고 넘길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실제로 역병이 발생했고 일식마저 일어났으니 니느웨로선 더더욱 정신을 바짝 차렸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요나의 사역과 니느웨에 있었던 역병과 일식의 시간적 전후 순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두 사건으로 인해 많은 신자들이 요나서에 대해 그 동안 품었던 몇몇 의심의 고리는 쉽게 풀린다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이 니느웨에 그렇게 초자연적으로 섭리하여 그들로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면 요나서 기록의 역사적 진실성은 더 확실해집니다. 요나의 사역이 잘 이뤄지도록 사전 혹은 사후에 하나님이 간섭하셨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또 단 하루 만에 그 사악했던 성이 전부 진심으로 회개한 일도 얼마든지 가능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 때문이지만 그런 일련의 사건과 징후들로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상당히 열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 역병으로 니느웨 백성들이 많이 희생당했겠지만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의 더 거룩하신 뜻은 실현된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나서 전체가 말하는 바는 그분의 의로운 통치는 인간의 이해 수준을 뛰어넘어서는 차원에서 당신만의 방식과 시기에 따라 당신께서 완벽하게 이루시고야 만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29:29)
이를 코로나 사태에 적용하면 이런 혼란한 와중에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완벽한 뜻과 계획이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실현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전염병을 하나님이 주도하여 일으킨 후에 백성들로 당신께로 회개시킨다는 즉, 병 주고 약 주는 식은 결코 아닙니다. 역병은 전적으로 인간이 이 땅을 더럽힌 결과이며 하나님은 그런 사태를 간접적으로 허용만 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광대하시고 완벽하신 하나님이 니느웨에서처럼 이 사태를 통해서 신자는 물론 인간 공동체에 당신만의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신자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원리가 밝혀져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원리이지 구체적인 실천 방법까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기록된 때와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현대의 인간의 삶은 엄청나게 다양하고 복잡해졌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이 매뉴얼 식으로 삶의 지침을 주다간 성경 한 권을 보관하는데도 온 세상의 도서관을 다 동원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신자가 성경을 통해 실천해야 할 삶의 지침은 하나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아 그분의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5,6) 성경에서 인간 쪽의 행동 지침보다는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원리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요컨대 그분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전 공간과 전 시간을 아우르는 분에게 신자 자신의 인생과 삶을 전적으로 의탁하면서 그분의 마음의 크기에 맞게끔 적용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세대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의 바라시는 것은 하나입니다. 당신의 품 안에 거하고 당신을 기뻐하면서 교제 동행하자는 것입니다. 그럼 당신에 대해서 더 알아갈 수 있고 아는 만큼 거룩하고 활기찬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한탄하셨던 말씀을 코로나 사태를 지나는 오늘날의 신자들도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호4:1,6-7)
요나서를 통해 세상을 당신만의 뜻대로 섭리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자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현실적인 어려움 중에도 그분만의 오묘한 은혜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코로나 사태로 이전과는 사뭇 달라질 상황에 처해지더라도 당혹해 하지 않고 넉넉히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신 접종이 완료되면 이 사태도 끝은 날 것이므로 미리 마음의 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올해 신년 첫 주일 설교에서 살펴본 학개서 1:1-4에 대한 강론도 부록으로 첨부했습니다.
이번에도 설교를 마치고 나면 항상 그러하듯이 미진한 부분이 자꾸 발견되어 크게 아쉽습니다. 어리석고 연약한 인간 사역자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맡아 전하면서 겪는 피치 못할 숙명이라고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이 요나서 강해를 통해 코로나 사태를 새로운 관점으로 분별 판단해서 신앙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적용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미국 엘에이 우거(寓居)에서
1/27/2021
차례:
들어가면서
코로나사태에 신자가 행할 첫째 의무 (욘4:10,11)
그래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욘1:1-3)
이상하게 일이 자꾸 꼬이면? (욘1:4-10)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욘1:11-16)
내가 쫓겨났어도 다시 주를 바라보리라. (욘1:17-2:4)
복음의 네 가지 핵심과 코로나 사태 (욘2:5-10)
단답형 믿음인가? 논술형 믿음인가? (욘3:1-5)
하나님은 불신자의 기도에도 계획을 바꾸는가?(욘3:6-10)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 (욘4:1-4)
신자가 평생토록 행해야할 한가지 일 (욘4:5-9)
신자의 어쩔 수 없는 숙명 (욘4:10,11)
코로나 사태에 요나를 생각한다. (욘1:1,2 & 4:10,11)
부록 - 코로나 이후에;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학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