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는 어떻게 전도해야 하나요?
[질문]
사이코패스'들은 살인을 하거나 남을 해치더라도 감정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는데... 영적 존재인 인간에게 양심 자체가 없다면, 정말로 양심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양심으로 전제되는 선과 악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죄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구원으로 어떻게 이끌어야 할까요?
[답변]
겉은 멀쩡하면서도 눈도 깜짝 하지 않고 연쇄 살인 같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자를 일컫는 사이코패스(Psychopath)가 감정적으로 아주 냉담하고 무관심한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히틀러처럼 자신의 나쁜 행동에 대한 후회가 전혀 없고 심지어 자신을 마치 신(神)처럼 대단한 존재로 평가한다고 합니다. 기질적으로도 발정, 광신, 자기현시, 의지결여, 폭발적 성격, 무기력 등의 특징을 드러냅니다.
최근 미국의 범죄 심리학자들은 생리학적으로 검증해 감정을 지배하는 뇌의 전두엽의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겨서 감정호르몬인 세로토닌이 일반인의 15% 정도밖에 생성되지 않는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병들을 단순히 생리학적 결함으로 치부하는 것은, 심리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결과론적 분석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과중된 스트레스를 내면적으로 제대로 처리가 안 되어 쌓이다 보니 그 부분을 관장하는 뇌에 차츰 이상이 생기게 되느냐, 아니면 단순히 뇌에 이상이 생겨서 정신 질환이 나타나느냐를 따지자면 전자가 사실상 옳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면서부터 뇌에 이상이 있어서 선천적 장애가 되는 경우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아담의 원죄 이후에 모든 인간의 영혼이 타락해 있으며 피조물 전체가 벌을 받아 왜곡되어 있습니다. 죄악이 만연하고 흑암의 권세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있는 곳에는 지극히 적은 선과 그와 비교도 안될 만큼 엄청난 악이 산출됩니다.
따라서 아무리 선천적인 생리적 결함의 장애들이 나타나도 사실은 긴 세월에 걸쳐 온갖 종류의 죄가 누적되고 그 외연(外延)이 확장된 결과입니다. 특별히 정신 질환의 경우는 더더욱 죄와 결부됩니다.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인지라 모든 행동과 말은 사고(思考)에서 비롯됩니다. 비유컨대 자동차가 스스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 때문에 움직이듯이 머리로 죄를 짓는 것이지 손이나 발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인간의 머리는 타락된 영혼의 통솔 하에 있습니다. 외부의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 감기 같은 육신의 병과는 달리 정신질환은 인간 본연의 영혼과 연관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현재 앓고 있는 정신질환이나 뇌 자체의 생리적 결함이 어떤 특정한 죄를 범해 벌 받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정신질환들이 최초에 생기게 된 계기가 누적된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이코패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히 감정이 메말라져 있고 타인을 아예 의식하지 않는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이나 사회에서 사랑과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한 결과 아닙니까? 또 죄의식이 없게 된 까닭도 단순히 양심이 완전히 말살되었다기보다는 외부 상황에 대해 자신의 감성이 거의 반응을 하지 못하기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말하자면 정신질환의 경우 단순히 외부로 드러나는 증상과 부작용과 결과 등만 분석하여, 그것도 그 환자만 대상으로 해선,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두엽의 호르몬 이상은 이미 상당히 심해진 사이코패스의 질환이 어떤 경로를 통했던 특정 시점에 특정인에게 나타나는 외적 결과일 뿐입니다.
그리고 사이코패스가 죄의식이 전혀 없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최근 한국의 최대 연쇄살인마 유영철은 검거 직후 "여성들은 몸을 함부로 굴리는 일이 없고 부유층은 각성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또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선 오히려 사이코패스는 법정에서 참작해주는 정신질환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국은 정신장애 항변이라고 해서 법정에서 피의자의 범행 당시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고 입증되면 무죄선고를 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합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범행을 저지를 때 그것이 범죄라는 것을 본인이 알고 있다고 보며 오히려 사이코패스로 판단되면 '위험한 범죄자'로 판정하여 종신형을 선고한다고 합니다.
어떤 흉악한 연쇄 살인범도 일말의 양심은 반드시 있습니다. 유영철의 경우도 분명히 선악간의 판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그도 담당 검사가 아들 이야기를 꺼내자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심지어 보험 살인하여 받은 돈을 아들에게 주기 위해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지 않습니까? 만약 그런 자들에게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틀림없이 자기보다 훨씬 더 흉악한 천하의 악당이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사이코패스는 감정이 메마르고 매사에 무관심하며 자기밖에 모르니까 현재 자기가 하는 일을 판단할 이성이나 감각이 많이 떨어진 것입니다. 또 양심의 가책은 분명히 느끼지만 의지를 동원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는 억지력이 약해진 것입니다. 기본적 양심이 완전히 없어진 살인 기계나 로봇 그 자체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을 닮게 창조한 도덕적 존재인 인간은 아무리 타락했어도 그분의 형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에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완전한 천치바보나 귀신들린 자라야 선악간의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사이코패스는 평소에는 겉으로 멀쩡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또 연쇄 살인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다른 형태의 사이코패스도 많다고 합니다. 정치가나 사업가가 수단 방법을 전혀 가리지 않고 아주 비정하게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삼자가 보기에는 정상으로 비췹니다. 나아가 외부적으로 악이 크게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말세가 다가오면 어떤 현상이 생긴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까?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며.”(딤후3:1-4)
특별히 부모를 거역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있는 그대로 다 분출하고,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고, 사나우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는 것들이 사이코패스를 비롯한 정신질환의 특징들 아닙니까? 사탄이 옛날에는 귀신들리는 직접적 모습을 자주 동원해서 인간을 노예로 묶었습니다. 차츰 과학이 발달하여 미신을 부인하게 되자 인간 정신을 갖고 농간하고 있습니다. 죄악이 쌓인 결과이긴 하지만 현재는 다중인격, ADHD, 자폐증, 사이코패스 등등 이전에는 없던 온갖 형태의 정신질환이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감정이 메말라 무관심해졌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 사이에 참 사랑이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온전한 사랑의 공동체는 둘째 치고, 전통적인 윤리 기준이라도 바로 서있는 가정마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당연히 매사와 부모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에게 무정해지고 조급해지고 사나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 사이에 사랑과 관심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가정부터 살려내어야 합니다. 유영철이 아들 이야기에 눈물을 흘렸듯이 어떤 흉악범이라도 반드시 그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아킬레스건이 있게 마련입니다. 부모나 자식 같은 가족이 살인범의 감정을 메말린 주범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다시 그 감정을 되살릴 도화선 역할도 맡을 수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귀신들려 발작이 일어나지 않는 한 어떤 장애자도, 정신질환자를 포함해서 그나마 부모의 사랑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합니다. 뇌성마비나 다운신드롬 같은 중증 장애자를 섬기는 사역을 할 때에 본인들보다 그 부모가 은혜를 더 받습니다. 정신질환도 주로 부모에게서 학대 내지 무관심을 받아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회복시킬 책임과 능력도 사실은 부모가 쥐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부터 복음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 누리게 하여서 부모로 장애자를 변화시키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부모의 사랑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여전히 연약하고 어리석고 죄를 짓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27:10) 오직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만이 어떤 장애자라도 고치고 돌볼 수 있습니다.
말세의 징조 중에 가장 큰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위에 인용한 디모데후서의 바로 이어지는 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 초대교회 당시부터 교회를 어지럽힌 이단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러나 정말 이 세대의 영적상태에도, 어쩌면 더 확실하게 적용되는 경구입니다.
말세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온갖 현상이 발생하는데 그럴수록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경건의 능력뿐이라는 것입니다. 현대 과학이나, 깨인 인간의 지성이나, 심지어 아무리 그 수준이 떨어졌다 해도 기본적인 도덕성과 종교성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적 상태와 사회적인 병리현상은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다운증후군이나 뇌성마비 같이 명백한 생리적 결함으로 인한 장애가 아닌 이상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고치지 못할 정신질환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성령의 권능으로 역사하면 십자가 은혜 안으로 인도하지 못할 자도 없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한 연쇄살인범이 누구의 말도 전혀 듣지 않았지만 감옥 안에서 사형을 기다리며 읽은 성경 속에서 원수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십자가 앞에 항복하여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아래에 이 홈피의 “말씀단상” 사이트 # 274 “신자로 만들려 하지 말라”는 제 글에서 인용한 부분을 참조바랍니다.)
죄의 본질이자 결과는 분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죄가 인간 사이에 만연하면 심지어 부모 자식 간에도 분리가 일어나 자식이 자기를 낳아 길러준 부모마저 거역합니다. 또 그 모든 죄의 출발은 최초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과 분리되면서 일어났습니다. 지금은 그 분리가 더 크게 벌어지고 있으며 그 틈을 늘리는 힘이 바로 사탄입니다. 바울이 디모데 후서에서 지적한 말세의 특성들이 갈수록 심화될 것인데 그런 현상 중의 두드러진 일례가 바로 사이코패스입니다.
성경적으로 말해 사이코패스의 원인은 한마디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자기를 극도로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과 사회의 무관심이 증대되자 서로 간에도 분리가 급격히 확대되었고 그중에 특정한 사람에게는 감성이 완전히 메말라버리는 현상까지 발생한 것입니다. 결국에는 본인 스스로도 감지하는 그 간격을 돈, 살인, 원수 갚는 일, 발작, 폭행, 남을 깔고 뭉개고 올라가는 일 등으로 메워보려고 발버둥 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이코패스의 경우도 분명히 양심은 있지만 죄에 대한 억지력이 현격히 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된 원인도 바로 죄이며 하나님과의 거리가 가장 멀리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를 고치는 해결책도 하나님뿐이기에 더더욱 주위 사람들부터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부모와 자녀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본인에게도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며 십자가 복음의 은혜 가운데로 초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오직 성령의 권능이 본인에게 강하게 역사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은 오늘날에 그 증세만 조금 약하다 뿐이지 사이코 패스가 아닌 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언제든 범죄로 치달을 수 있는 중증만 미국에선 백 명 중에 한 명이라고 합니다. 한국이라고, 심지어 신자라고 크게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자면 악플을 무차별로 달아 다른 이를 정신적으로 살인하고, 심지어 직접 자살로 이끄는 행위야말로 사이코패스 증상 아닙니까? 교회 안에서도 무정하며, 사나우며, 복수하며, 조급하며,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며, 경건의 모양만 있지 능력이 실종되고 있지 않습니까?
한 마디로 교회와 성도마다 십자가 복음의 진리가 온전히 바로 서며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성령의 은총과 권능을 간절히 사모하지 않는 한 인류에게는, 심지어 교인 스스로에게도 아무 소망이 없는 시대에 다다른 것입니다. 예수가 없는 인간은 누구라도 그 일말의 양심이 살아 있어도 하나님을 끝까지 부인할 것입니다. 영혼이 타락한 결과로 그 깊은 내면은 무슨 일을 해도 공허하며 갈급해 합니다. 한 마디로 그들 모두가 정신질환자입니다. 더더욱 십자가 복음의 은혜와 권능만이 사이코패스를 비롯한 모든 이에게 유일한 소망일 뿐입니다.
7/1/2009
아래
일본에 희대의 살인범으로 토키지 이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방해 하는 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무조건 죽여 버릴 정도의 흉악범이었습니다. 캐나다 여자 선교사 두 명이 감옥으로 찾아가 복음을 전했지만 콧방귀도 뀌지 않아 성경이라도 읽어보라고 주고 갔습니다. 그가 성경을 읽어내려 가다가 바로 본문(눅22:33,34)에서 그만 그 인생이 뒤집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그 구절에서 멈추었다. 마치 커다란 대못이라도 박힌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그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내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강퍅한 내 마음이 변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사형을 집행하러 온 간수가 본 것은 야수가 아니라 오히려 얼굴에 광채가 나며 웃음을 띤 얼굴이었습니다.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톰 휴스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