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을 따지지 말라.

조회 수 534 추천 수 34 2009.11.12 01:57:18
예정을 따지지 말라.  '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6-17)


속담에 “소귀에 경 읽기”(牛耳讀經)라는 말대로 소는 글을 읽어 주어도 전혀 알아먹지 못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전도자가 가끔 느끼는 기분이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라고 부정의문문으로 그 당시 사람들이 그러했다고 하며 앞으로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중적 예언을 했습니다.  

바울은 바로 그 예언을 인용해 전하는 것을 믿기 힘들지만 그래도 믿음은 들음에서 나니까 반드시 전해야 한다고 합니다. 소귀에 경 읽는 것처럼 느껴져도 전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간 전도자의 지혜나 능력이 아니라 성령님이 간섭하여 구원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자로 전도를 망설이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은 십자가를 통한 인류 구속뿐 아니라 개인 구원도 예정되어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어떤 사람이 어차피 구원받도록 정해져 있다면 구태여 전도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또 바울이 예정을 말해놓고 본문처럼 스스로 믿도록 전하라고 권하면 성경 말씀끼리도 서로 상충되지 않는지 의아해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예정론을 더 확정지어 주는 내용입니다.

예정을 신학적 논리에 비춰 복잡하게 따지지 말고 간단히 접근해 봅시다. 믿을 갖는 것이 혼자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가 일어나거나 스스로 예수님에 대해 관심 내지 호감을 갖고 성경과 관련 서적을 연구해 깨달아서 가능한 일이 절대 아닙니다. 반드시 주위에 복음을 전해 준 사람이 있었고 또 그 들음이 계기가 되어 믿게 됩니다. 교리적 설명뿐 아니라 신자가 경건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도 들음의 일종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을 믿도록 계기가 되어 준 사람의 입장에서 따지면 그에게도 똑 같이 그런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꾸 죽 연결해 가면 전도자들의 고리가 생깁니다. 간단한 예로 복음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서양인 선교사가 생명을 걸고 전했기 때문에 신자가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 믿는 자들의 고리는 결국 열두 사도로 모아지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에게까지 연결됩니다. 따라서 예정되어 있기에 전도 안 해도 되지 않느냐는 말은 예수님이 구태여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지 않느냐라는 뜻과 같아집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십자가로 인류를 죄에서 구속하기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열두 사도들도 개인적으로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열 두 사도는 없었고 또 지금 신자 된 나 자신도 없는 것입니다.

바울도 스스로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갈1:15)로 인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1;1)라고 고백했습니다. 택정함을 입은 모든 세대의 신자들은 다음 세대의 예정된 믿음의 자녀들을 위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해 영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신자가 전할수록 소귀에 경을 읽는 것 같은 체험을 자주 하게 됩니다.   예정된 사람을 미리 알면 그들만 찾아가 전하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차세대의 예정자를 전세대의 신자에게 완전한 비밀로 해 놓았습니다.  

만약 구원이 예정된 자를 미리 알면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이 절대 건설 될 수 없습니다. 신자들은 자꾸 어차피 구원받을 최종 숫자는 변함이 없지 않느냐라는 점에만 주목해 전도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합니다. 그런 생각이 얼마나 틀렸는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들은 민족 전체가 택정함을 받았다고 자신했습니다. 출애굽과 홍해의 기적으로 구원을 맛보았고 거룩한 율법마저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구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경배하고 순종하기는커녕 온갖 죄악을 저지르고 우상숭배에까지 흘렀지 않습니까?

만약 택정함을 입은 자들을 미리 안다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지 상상해 보십시오. 우선 그 명단에 포함되지 않는 유기(遺棄)자들이 볼 때는 그야말로 불공평한 하나님이 됩니다. 무슨 짓을 해도 어차피 지옥 간다면 선악을 분별해 시행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택함을 입은 자들을 죽이려 들 것 아닙니까? 택함을 입은 자도 어차피 구원 받는데 즐길 것 실컷 즐겨도 된다고 여길 것 아닙니까? 이래저래 죄악만 만연합니다. 죄악에서 구원해 주어야 할 복음이 거꾸로 죄악에 더 불을 지르는 격입니다. 자기들 자녀 중에도 구원 받을 자와 아닌 자로 나눠지면 부모가 제대로 그 자식들을 양육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예정되어 있지 않고 누구든 착하게 사는 자를 구원해 준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이 구원관이 논리적으로도 틀렸다는 이유를 수도 없이 들 수 있습니다만 지금 논하고 있는 관점에서만 봐도 전도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됩니다. 남의 구원에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본인이 하나님의 합격점에 드느냐 못 드느냐 만이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비유컨대 대학 입학시험을 앞둔 고3 들이 무한 경쟁에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선하게 살겠다는 노력이 단순히 서로 구원의 가능성을 다투는 문제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자연히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됩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길 필요도 없습니다. 남들에게 나쁜 짓만 안 하면 됩니다. 대신에 서로 자신의 의를 자랑하기 바쁩니다. 지금 불신자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그렇지 않습니까?

따라서 예정되어 있으니 전도할 필요가 있느냐 의심하는 것은 이 땅에 사랑으로 섬기는 공동체 건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뜻과 통합니다. 전도란 단순히 구원 받을 사람의 숫자를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을 자의 최종 숫자는 하나님이 정하며 구원 자체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전도를 인간이 구원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으로 오해해선 안 됩니다.

대신에 전도는 이웃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부터 건설하려는 소망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후 예수님과 동행 하는 은혜와 기쁨이 너무나 귀하고 좋기에 그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이웃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주저하는 신자는 그런 기쁨을 지금 누리지 못하고 있는지 심지어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받았는지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구원은 예정이지 확정은 아닙니다. 구원 받을 자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도로 구원이 예정된 자의 구원을 확정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함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예정된 자는 죄악과 사단의 사슬에 묶여 괴롭고도 비참한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컨대 자식도 예정 밖에 있을 수 있으니 전도하지 않고 그냥 두겠습니까?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예정된 자를 구태여 찾아가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일이 결코 미련한 짓이 아닙니다. 전도란 하나님이 예정된 자들을 하나의 고리로 연결시키는 일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공동체를 만들어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미리 맛보라는 것입니다. 모든 세대의 신자는 바로 그 일을 위해 보냄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구원 숫자를 내 힘으로 늘리는 것이 전도가 결코 아닙니다. 이 땅에서 택정함을 입은 자들끼리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반드시 복음을 말로 또는 삶으로 남들이 듣고 보아 분명히 알게끔 전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열두 사도들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지 않았으면 우리 모두는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아무런 소망 없이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예정의 옳고 그름을 따지느라 우리 다음 세대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두고 보시겠습니까?

6/7/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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