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참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5:14)
바울은 자기는 하나님에게 완전히 미친 반면에 사람들에겐 오직 사랑으로만 대한다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기를 본받으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자기를 자랑하려는 뜻은 결코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랑이란 자기 실력과 노력으로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해 남들보다 월등한 결과를 이뤄냈을 때에라야 그 효력이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 공로는 하나 없이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남들도 자기처럼 되도록 간절히 소원하고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를 신령하고 경건하게 변화시켜 주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장 먼저 그분 앞에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 그대로 나아갔더니 성령이 주의 두려움을 알게 해주었고 또 자기 인생에 대한 거룩한 소명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 온전히 자기의 전부를 내어드렸더니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그 자리에 이르도록 자기를 한 걸음씩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로선 당연히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으며 하나님과 세상 앞에 오직 복음 전도자로 알려지기만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넘치는 사랑이 어떤 모습이었다고 설명합니까? 대적에게서 구해주고 부족한 것이 없이 넘치도록 채워주며 사람들로 존경 받고 사회적 명예를 얻었다고 합니까? 그런 뜻은 일언반구도 비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어서 모든 사람 또한 죽은 것이 강권하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죽은 모든 사람 중에 바울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예수가 자신을 죽인 것이 오히려 그분의 너무나 큰 사랑이었다고 고백한 셈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그 사랑을 모르는 자들에게 나눠주겠다고 합니다. 남들도 자기처럼 그분에 의해 죽임을 당해라고 선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람들이 자기를 아무리 미쳤다고 비난해도 평생을 걸고서 말입니다.
물론 자기 육신이 죽었다 부활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기 내면의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엡4:22)이 죽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입은 새 사람”(엡4:24)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사건을 겪고 어느 누구를 만나도 성령의 인도 아래 내면의 새 사람이 충만해지기에 자기를 죽인 살인자(?) 예수만 자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전도하는 것이 아무 자격 없던 자기를 구원해 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면 여전히 인간적 의가 앞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해야만 합니다. 성령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자신의 옛사람을 죽이는 대신에 충만해진 새 사람이 자연스럽게 겉으로 터져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하신 새 생명이 다시 태어난 자기 속에서도 빛을 발하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당신의 옛사람을 죽인 예수가 진정 세상 사람들 앞에 자랑스럽습니까? 바꿔 말해 예수를 알기 전의 당신이 정말로 죽도록 추하고 더러우며 밉다고 여겨졌습니까? 대신에 예수를 알고 난 이후의 당신이야말로 그분의 넘치는 사랑과 은혜 가운데 인간다운 참 모습을 회복했다고 확신합니까? 그래서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자기를 내어 보일 자신이 있습니까?
11/19/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