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로 전도하고 거짓말로 살아라.

출애굽기 강해 (18)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 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바로가 또 이르되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 하고 바로가 그 날에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에 쓸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짚을 줍게 하라 또 그들이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에게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니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출5:1-9)

 

 

아주 특이한 출애굽 사건

 

하나님은 애굽으로 가는 도중의 모세에게 죽을병이 들게 했다. 둘째 아들에게 할례를 하지 않은 잘못과 이방인 아내와 동행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려는 하나님의 사려 깊은 조치였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을 수행할 주역인 모세에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결격사유를 하나님이 완전히 제거시킨 것이다.

 

당연히 애굽에 들어갔더니 형 아론이 환대해주었다. 모세도 하나님이 계시한 내용을 히브리인들에게 전했고 하나님이 지시한 대로 두 가지 이적을 실현해보였다.(출4:30) 지팡이를 던져서 뱀이 되게 하고 뱀 꼬리를 잡아 지팡이로 변화시키는 기적과 손을 가슴에 넣었다 빼면 문둥병이 발하고 다시 품에 넣었다 빼면 깨끗하게 되는 기적이다.

 

모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과 그 보증하는 증거를 본 히브리인들은 그를 자신들의 구원자로서 자격을 인정했다. 출애굽 할 희망으로 가득 찼고 여호와가 자기들의 고난을 감찰하셨다고 머리 숙여 감사 경배했다.(출4:31) 반면에 바로와의 첫 대면은 모세가 걱정했고 하나님이 예언한 대로 바로의 비아냥거림과 멸시만 받고 아무 소득 없이 싱겁게 끝났다.

 

출애굽 사건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가 항상 그렇지만, 아주 특이한 점이 있다. 성경역사 중에 가장 독특할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강대국이 약소국을 점령해 종살이로 괴롭힌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노예 생활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뿐이었다.

 

첫째 노예들이 무력으로 봉기하여 압제자를 물리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로마의 스팔타카스 노예반란을 들 수 있다. 결국에는 로마에 진압되었지만 초기에는 검투사가 주축이 되어서 파죽지세로 승리했고 그들만의 나라를 세울 정도였다.

 

둘째는 더 강한 나라가 지배국을 패배시키거나 국제정세가 변화되어 어쩔 수 없이 풀어주는 경우다. 태평양전쟁에서 연합국에게 일본이 패하는 바람에 한국이 일제 강점기 36년에서 해방되는 경우다.

 

애굽의 노예 히브리인들은 자력으로 반란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다”(5절)고 바로가 걱정할 정도로그 숫자는 중다했지만 지난 사백 년간 애굽의 막강한 군사력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었다. 나중에 애굽의 고기 가마 곁이 그립다고 말할 정도로 노예 근성이 몸에 베이다시피 되었다. 애굽에 필적할만한 국가는 고대 바빌론 제국뿐이었는데 구태여 아시아에서 아프리카까지 건너와서 전쟁을 치러 국력을 낭비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히브리인이 출애굽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애굽이 스스로 망하든지 마음을 바꿔 너그럽게 노예 해방을 선언해주는 것뿐이었다. 강건한 히브리인들의 공짜 노동력으로 애굽은 더 부강해지지 망할 리는 없다. 또 스스로 풀어줄 리도 만무하다. 인간 사회의 상식과 방안으로는 히브리인들의 탈출은 불가능하다. 그 민족이 믿는 신이 말씀으로 지배국에 재앙을 일으켜 노예를 탈출 시킨 출애굽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세속 역사가 부인해도...

 

그러다보니 세속의 역사가들이나 불신자들이 출애굽 사건 자체의 역사적 진실성을 부인하거나 의문을 갖는다. 이는 아주 간단하게 반증할 수 있다. 모세의 이름은 이미 배운 대로 바로의 공주가 “물에서 건졌다”는 뜻으로 모세라고 지었다.(출2:10)

 

우리말로는 ‘모세’이지만 원래 발음은 영어성경의 표기대로 ‘모세스’(Moses)이다. 이는 람세스, 후트모스에서 보듯이 완전히 애굽식 이름이다. 히브리식 이름은 다니엘처럼 신 하나님이라는 뜻의 ‘엘’이 붙거나, 여호수아처럼 ‘여호와’의 이름이 붙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종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모세와 비슷한 이름은 유대인들에게 아무도 없다.

 

모세는 한국의 이순신 장군 같은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이다. 만약에 이순신 장군이 젊었을 때에 일본에 장기 체류했다면 일본 사회에 통용되는 일본식 이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절대 계속 사용하거나 기록에 남길 리는 없다.

 

유대인들은 가뜩이나 선민의식이 뚜렷했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만으로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매일 감사 기도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종교 경전에 모세를 그냥 그대로 기록했다. 사실이 아니면 결코 그럴 수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모세는 애굽에서 40년, 미디안에서 40년 살았기에 히브리 사회에서 생활한 적이 없다. 지금 출애굽에서 상대할 자는 애굽의 바로이며 출애굽 이후에도 광야에서 미디안 사람과 교류해야 한다. 그들에게 80년 동안 잘 통했던 이름을 구태여 바꿀 필요 없어서 그대로 사용했던 것이다.

 

세속의 역사에도 히브리인들이 애굽에 거주했었고 또 출애굽의 시기에 가나안 땅으로 넘어와 정복했다는 기록은 있다. 이미 따져본 대로 애굽이 히브리인들을 그냥 풀어줄 리는 절대 없고, 반란을 도모할 힘도 없었고, 타국이 도와준 기록도 없다. 그럼 뭔가 초자연적 간섭이 있었다는 것 외에는 합리적 설명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기독교 외부에서 논리적으로 성경의 기록을 반발 내지 부정하려고 예수님 이후 지난 2천 년간 끈질기게 시도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이 논리적으로 따질수록 성경의 기록이 진리임이 입증되었다. 오히려 그들이 성경의 진실성을 증명해준 것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자들이 성경을 소유하고 배우고 따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자 축복이다. 절대로 일반 종교처럼 하나의 경전으로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영원하고도 완전한 절대적 인 하나님의 진리이다. 인간의 죽고 삶을 결정짓는 그분의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다. 실제로 그 진리 됨에 우리의 모든 것 생명까지도 걸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가 특이하다는 것이 질과 양으로 풍성하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모든 이가 인정하게 만든다. 하나님 스스로 당신의 이름을 높이고 증명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하나님을 부인하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러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큰 죄이다.

 

출애굽을 해야 하는 이유

 

모세가 바로에게 출애굽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내세운 이유가 무엇인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광야로 사흘 길을 가야겠다고 했다.(1,3절) 여호와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바로로선 너무나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고센 땅에서 제사를 지내면 되는데 지난 사백 년간 꼼짝 않고 있다가 갑자기 처음으로 광야로 가야겠다고 한다.

 

이미 배운 대로 사흘 길을 간다는 것은 추적이 불가능한 먼 거리라는 관용어법이다. 이곳을 벗어나서 도망가겠으니 허락해달라는 것이다. 만약 그럴 양이면 반란을 일으키든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야반도주하는 것이 정상이다. 자 이제 도망갈 테니 막지 말라고 노예들이 와서 선포하니 우리가 봐도 황당할 뿐이다.

 

누차 말씀드린 대로 고대에선 각 나라의 신들끼리 쟁투하여 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지난 사백 년간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자기들 통제 하에 있었기에 바로로선 히브리 신은 아예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있으나 마나 하는 신으로 여겨왔다. 그러니까 “도대체 여호와가 누구냐? 아예 말도 안 되는 웃기는 이야기 그만하라!”는 식의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2절) 바로의 입장에선 그 자리에서 모세를 죽이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그에 대한 모세의 대답이다. 출애굽을 다시 요청한 것은 당연한데 3절 후반부에 뭐라고 말했는가? 만약 이 일을 허락지 않으면 여호와가 전염병과 칼로 칠 것인데 그 대상이 누구라고 하는가? 애굽이 아니라 ‘우리’라고 했다. 일부 주석가는 모세가 바로의 적개심과 분노를 누그러뜨리려고 애굽이라고 적시하지 않고 우리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3절을 다시 자세히 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났고, 우리가 광야로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 드리겠다고 앞의 세 번은 정확히 이스라엘을 지칭한다. 그런데 마지막 네 번째에 갑자기 애굽과 이스라엘을 통칭한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 벌 받을 자는 분명 히브리인이다.

 

바울은 자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히브리 신이 아무 잘못을 하지 않은 자기 백성을 친다고 하니 더더욱 이해가 안 되었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요청인데다 이런 말까지 들으니 히브리인들이 너무 괴로워 실성했나 싶을 정도다. 이왕에 공갈을 치려면 그럴듯하게 할 것이지 자기들이 벌을 받으니 내보내달라고 한다. 인간사회 통념으로는 황당무계할 뿐이다.

 

애굽 군대가 얼마나 강력한지 그 동안 다 겪었으니 어쩌면 정말로 사흘 길 가서 제사만 드리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즉, 도망가겠다는 뜻은 아닐 수도 있다고 짐작했을 수 있다. 그러니 바로가 내린 결론이 무엇인가? 히브리인들이 게을러서 쉬려고 거짓말한다는 것이다.(4,8,9절)

 

바로가 만약 이 단계에서 정말로 도망간다는 요청으로 받아들였다면 모세를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는 것이 정상적 반응이다. 당시 노예 신분에 바로에게 거짓말하다 탄로 나면 바로 사형이다. 히브리 신의 명령이라고 하니까 그나마 봐준 것이다. 히브리 신에 겁을 먹은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있으나 마나 하게 무력하게 당하는 신이었고 또 그냥 전부 지어낸 이야기라고 간주해 버렸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지어낸 모세(?)

 

성경기록으로는 아직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이곳이 처음이다. 그럼 이야말로 모세가 즉석에서 지어낸 거짓말인가? 구약의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은 말을 여호와의 이름을 들먹이며 말할 수는 없다.

 

모세의 믿음이 그 동안 성장한 것이다. 떨기나무 불 꽃에 임재 하신 하나님과 대화중에 마지막 다섯 번째는 명령을 거부하다 하나님이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을 이미 체험했다. 또 바로 직전에 둘째 아들의 할례를 하지 않은 잘못으로 자기가 죽을병에 걸렸다. 하나님의 공의는 완전하고 어떤 사소한 잘못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고 확실하게 깨달은 모세의 신앙고백이었다.

 

바로로선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스라엘을 벌준다는 의미는 말씀 그대로다. 우선 바로가 순순히 풀어준다면 애굽에 절대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와 애굽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전혀 모른다. 하나님으로선 그들로 당신을 알게 해주는 것이 급선무다. 당신을 모른다고, 나아가 당신의 백성을 대적한다고 무조건 벌주지 않는다.

 

실제로 아홉 번째 재앙까지는 애굽의 재산과 생명에 직접 손을 댄 것이 아니다. 모두 자연 재앙을 통한 간접적인 피해였다. 그 배후에 있는 애굽 신들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신들의 쟁투로 나라의 흥망성쇠가 바뀐다는 바로의 고정관념에 맞추어서 여호와만이 상천하지의 최고 강력한, 아니 유일한 하나님임을 보여준 것이다. 우상 신들은 능력만 없는 것이 아니라 실존조차 않음을 깨닫게 해주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출애굽을 요청하는 근거로 당신께 제사드림을 강조했다. 또 그러지 않으면 히브리인만 벌하신다고 했다. 그럼 출애굽을 시키는 하나님의 목적이 출애굽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출애굽만 시키려면 지난 사백 년간이나 그들을 방치할 리도 없고 지금 이렇게 바로에게 사전 통보할 필요도 없다.

 

그 동안 알게 모르게 히브리인이 우상숭배에 오염된 것을 제거하려는 뜻이다. 당신의 백성들로 우상숭배가 얼마나 추악한 죄악인지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출애굽으로 우상이 얼마나 무력한지 실제로 생생하게 보고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다. 나주에 수여할 십계명의 첫 계명, 당신 외에 어떤 신도 두지 말라는 계명에 철저하게 승복 순종케 하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상숭배가 가장 큰 죄이므로 반드시 징계하신다는 것이다. 실제로 출애굽 후 광야에서나 가나안 땅에 입경해서나 이스라엘 역사 내내 다른 죄들은 다 용서해도 오직 우상숭배만은 절대 용서하지 않으셨다. 본문의 모세 말처럼 전염병과 칼로 그들을 쳤다. 출애굽의 목적은 탈출이 아니었다. 하나님과의 교제 동행이었다. 모세는 지금 스스로 지어내서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간섭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이다.

 

어디선가 아주 익숙한 광경

 

출애굽기 강해를 시작하면서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하라고 당부 드렸다. 첫째는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담으로 듣지 말고 내 자신의 신앙생활에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둘째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발견해야 한다고 했다.

 

본문의 모세와 바로의 대면을 비유하면 이렇다. 북한의 김정은을 일대일로 대면해서 공산 독재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을 전부 남한으로 보내달라고 담판하는 셈이다. 우리더러 그런 큰일을 하라고 요구하시지는 않는다. 그런 일을 하려면 모세처럼 80년의 시련과 연단을 거쳐야 한다. 심지어 그가 살인한 것 같은 인생의 큰 좌절과 실패도 겪어야 한다. 우리 같이 연약한 자에게 하나님은 그런 큰일을 맡기시지도 않는다.

 

바로와 모세가 대면하는 장면에 어딘가 익숙한 점이 있는 것 같지 않는가? 불신자를 전도해 보면 동일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가? “세상에 다른 신은 없다. 예수 십자가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라고 전하면 이렇게 반발하지 않는가?

 

“예수가 누구관대 내가 믿는다 말이냐?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 예수는 로마의 사형수이고 기독교는 이스라엘의 민족종교이지 않는가? 차라리 한국 종교를 최소한 동양 종교를 믿겠다. 성경의 기적은 정말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고 후대의 인간 저자들이 꾸며낸 이야기지 않느냐? 의지가 약하고 게을러서 스스로 노력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전부 하나님의 은혜요 그분 덕이라고 한다. 기도 응답되는 것도 우연의 일치다. 기도 찬양 말씀 모두 정신적 위로를 얻으려는 짓 아니냐? 하나님을 믿느니 차라리 내 주먹을 믿겠다.”

 

한마디로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차라리 이전보다 두 배로 성실히 일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고난을 극복하라는 것이다. 그런 반응을 접하는 신자는 어떤 기분이 드는가? 너무 낙심되고 뭔가 복음을 잘못 전했는가 싶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모세는 바로가 코웃음을 치던 말든 여호와만이 유일한 참 하나님임을 깨달아라, 인정하라, 최소한 항거하지는 말라고 선포했다. 우리도 불신자에게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하나님이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을 인류에게 준 적이 없다고 선포해야 한다.

 

인간의 자격, 노력, 능력, 선행으로 하나님의 의에 합격할 자는 아무도 없다. 선행으로 천국 가야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자기는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자기 자랑이요 교만일 뿐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그런 교만은 그야말로 패망의 선봉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실현된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와 무한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인간이 정말로 인간답게 살아갈 길은 없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분이 누구인지 모르니 그분의 진노 아래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 우리의 죄 값과 형벌을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에 다 감당하셨다. 그 은혜를 절감하여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자에게 값없이 영원한 구원을 주신다.

 

거짓말이라는 비난에 대처하는 방법

 

이런 십자가 구원의 진리를 불신자는 황당한 거짓말이라고 반발한다. 아무런 선행도 않고 어떻게 구원을 얻느냐 게으른 탓이라고 비난한다. 우리가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야말로 “너희 스스로 얼마든지 선해질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보다 우위에, 아니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고 있는 것이다.

 

거짓말을 그만두라는 불신자들의 비난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믿든지 말든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방치해야 하는가? 모세는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 우리 또한 그래야만 하는데 그 방법은, 정확히 말해 그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말을 거짓말처럼 전했다면 행동과 삶도 전한 그대로 거짓말처럼 행하면 된다. 전한 말 대로 살지 않으면 불신자들이 반발하는 그대로 그 전한 말이 거짓말로 남는다.

 

신자는 무슨 죄를 짓든 예수 십자가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그 죄를 회개 자복하며 깨끗케 씻어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방식이다. 신자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거짓말처럼 살아야 한다. 알기 쉬운 예를 들면 이렇다.

 

회사에 백 명의 사원 중에 구십구 명이 부정부패에 가담할 지라도 신자 한 명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 가장 노른자위가 많은 이권을 다루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절대 하청업자로부터 봉투를 안 받아야 한다. 회식을 하고 가짜 영수증을 처리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까 당연히 아이들 학원비 줄 돈이 모자라 퇴근 후에 대리 운전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불신자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요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거짓말 하지 말라.” 정말로 거짓말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출애굽이 구약최대의 역사였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라. 하나님에겐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모세의 출애굽이 나의 출애굽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성경에 능통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했고 홍해를 건너자마자 바로 그분께 찬양의 예배를 드렸다. 바로에게 거짓말처럼 들렸지만 모세는 전한 말씀 그대로 실천했다.

 

모세는 바로가 진정으로 그 말씀 앞에 회개하길 바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부 거짓말로 받았다. 완악하게 버틴 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 줄 몰랐다. 일생일대의 실수이자 자기 인생에서 최고 큰 실패였다. 반면에 우리는 예수 십자가 진리의 말씀 앞에 항복하고 그분을 영접했다. 거꾸로 얼마나 큰 성공인지 모른다.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아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야 한다.

 

출애굽에서 약속을 신실히 지키는 큰 능력의 하나님만 기억해선 안 된다. 그런 은혜와 권능을 베푸신 목적을 깊이 새겨야 한다. 사흘 길을 떠나 당신께 경배하라고 했다. 우리는 세상이 절대로 추격할 수 없는 세상과 멀리 떨어진 곳에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 그분의 백성답게 거룩하게 그곳에서 살고 있어야 한다.

 

완전하고 영원한 절대적 진리에 입각해서 살기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거짓말 같은 삶이라고 오해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순전하게 교제 동행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불신 세상을 벌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반드시 전염병과 칼로 치신다.

 

6/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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