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4:13-17) 돈 많이 벌 새해 계획을 세워라.

조회 수 57 추천 수 0 2023.01.25 10:28:35

(약4:13-17) 돈 많이 벌 새해 계획을 세워라. 

2023 신년 예배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4:13-17)

 

신자는 계획을 세우면 안 되는가? 

 

간혹 이 땅은 썩어 없어질 곳이므로 현실 삶을 풍요롭게 꾸려나가는, 예컨대 사업을 확장해서 돈을 더 많이 버는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것은 신자가 해서는 안 되는 악한 일처럼 가르칩니다.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이 책임지고 채워주시므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올바른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망대를 지으면서 얼마나 경비가 들지 또 전쟁을 치르러 나가면서 적군의 군세를 계산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눅14:28-32) 당신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부터 태초에 세워진 계획에 따른 것이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주기도문에서 분명히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쳤습니다.(마6:11)

 

오늘의 본문 권면도 그런 무계획적인 삶을 살라는 가르침처럼 오해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특정한 도시에 가서 일 년간 장사하여 이익을 볼 계획을 세우는 장사꾼들에 대해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일 년을 머물겠다고 했으니 마침 새해 아침에 한해를 계획하는 일에도 해당될 것입니다. 어느 도시에 어떤 물건이 잘 팔린다는 사실을 잘 아는 자들이라 당연히 그에 합당한 판매방안을 마련했을 것입니다. 겨울이 없는 아프리카에선 방한복 대신에 선풍기를 팔아야 하듯이 말입니다. 

 

야고보가 그런 계획이 잘못되었다고 탓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계획한 대로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고 함부로 자랑하지 말라고 강조한 것입니다.(16절) 장사꾼들로선 오랜 경험과 모든 여건을 분석한 결과를 종합하여서 성공할 확률이 최고 높아지도록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경험했듯이 인생살이에는 예상치 못한 위험 요소들이 곳곳에 지뢰밭처럼 깔려 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땅은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이가 탐욕과 교만에 빠져 자기만 최고로 높이려고 무한경쟁을 하기에 온갖 죄악이 발생합니다. 특별히 금전적 이익을 다투는 일에선 모두가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악마처럼 되어 있습니다. 유능한 장사꾼일수록 실패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아직 일어나지 않는 장래 일에 대해 인간이 감히 성공할 자신이 있다고 자랑하지 말라고 명한 것입니다. 장사를 하다 보면 과거의 실적이나 현재의 재산은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는 내일 일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사항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7) 

 

대신에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고 말하라고 권한 것입니다. 교만한 말을 하느냐 겸손한 말을 하느냐의 차원이 아닙니다.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도 해야 하므로 하나님이 원래 계획을 완전히 망하게 하거나 장사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하도록 인도해도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장사꾼이 다른 도시에 일 년간 머무르면서 자기 계획을 세워서 그대로 열심히 장사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 일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또 하나님이 명하시면 언제든 자기 뜻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하나님이 죽음으로 인도해도 기꺼이 감당해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진 신자라면 아무 일도 계획하지 말고 완전히 내려놓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가르침에는, 솔직히 말해 그러면 하나님이 더 좋고 풍성한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기대가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들에 예상치 못한 고난은 물론 순교도 포함되어 있고 신자도 기꺼이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함부로 신자는 모든 손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고 가르쳐서도 또 그런 가르침에 귀 기울여서도 안 될 것입니다. 

 

안개처럼 허망한 인생?

 

이어지는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라는 말씀도 썩어 없어질 이 땅의 것들을 위해서 계획하고 노력해선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인생이 희미하고 정확한 모양이 없는 안개처럼 아무리 오래 살아 봐도 온전한 실체를 잘 모를 정도로 불확실하다는 뜻입니다. 또 금방 없어지는 안개처럼 인생이 우리 기대나 생각보다 훨씬 짧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아등바등 잘살아보려고 노력했던 지난 세월이 부질없었다고 느껴지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인생이 계획을 세워서 열심히 수행해도 하나님이 다른 길로 인도하면 그 수고와 노력이 안개처럼 허사가 될 것입니다. 자기 계획대로 성공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것부터 안개처럼 허탄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그런 자랑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므로 야고보 사도는 악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어떤 말씀이든 반드시 결론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17절)고 했습니다. 언뜻 앞의 진술과는 연결 고리가 없이 생뚱맞아 보입니다. 신약의 잠언이라는 별칭이 있듯이 야고보서는 삶의 간단한 격언들을 모아서 편집해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그럼에도 행함이 따라야만 온전한 믿음이라고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도 구체적인 부연 설명이 없다고 해서 임의로 해석해선 안 되고 그 주제에 맞추어서 따져봐야 합니다.

 

따라서 일단 선을 적극적으로 행해야만 합니다. 가만히 손 놓고 있어선 안 되며 야고보는 그러면 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선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합니다. 앞의 진술과 연결하면 장래 계획을 자랑하는 것은 악이니까 자랑해선 안 됩니다. 대신에 자기가 계획을 세워서 노력해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 대로 순종하는 것은 선입니다. 하나님이 실패로 이끌든 다른 일로 바꾸든 감사하며 따라가는 것이 선입니다. 신자는 이런 진리를 다 알고 있으니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역으로 따지면 그분을 배제하고서 순전히 자기 생각대로 계획을 세워서 실행하면 하나님이 실패로 이끌 것입니다. 대신에 하나님의 뜻에 맞게 계획을 세워서 겸손히 순종하면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합니다. 당신의 기분에 들지 않는다고 벌주고 기분에 맞추었다고 상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배제하면 인간 자신만의 교만과 탐욕이 앞서니까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에 그분의 선을 행하면 그 열매도 선하게 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이 성공으로 이끌어줄 것만 기대하고 의도적으로 선하고 거룩한 계획을 세워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하나님을 시험하려 들어선 안 됩니다. 하나님과 일대일로 거래하듯이 보상을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분의 보상이 목적이 됩니다. 장사치가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기 계획대로 성공할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치는 것도 돈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에 대해서만은 자기가 최고 전문가라는 것입니다. 결국 본문의 권면은 돈을 주인으로 모시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주인으로 모시라는 뜻입니다. 또 그런 바탕에서 계획을 세우고 그분의 인도대로 따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에 속한 신분은 아니나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상적 생활을 영위해야만 합니다. 평생을 온전히 주님께 바친 전임 사역자가 아닌 이상 자신의 생업이 따로 있어야 하고 그 생업을 풍요롭게 키워나가야 합니다. 말하자면 새해 아침에 생업을 통해 돈을 많이 벌 계획을 세워서 실현되도록 열심히 수고 노력해야 합니다.

 

신자가 품을 소망은?

 

신자의 새해 계획이라고 불신자의 것보다 반드시 도덕적으로 더 우월해야 한다는 법도 없습니다. 불신자 중에도 자기를 희생하며 사회봉사를 평생의 목표로 삼고 헌신하여서 인간 사회에 큰 유익을 끼치는 분도 많이 있습니다. 신자의 계획에선 행하려는 일의 질적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그분을 그 계획의 주인공으로 모시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절대로 모든 이가 다 목사나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부르지 않습니다. 신자더러 당신이 지정해주는 거룩한 일만 해야 한다고 명령하지도 않습니다. 지금껏 경험했듯이 하나님께 나에 대한 계획이 무엇인지, 제가 하나님께 받은 소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간절히 기도해서 구체적인 응답을 받은 적이 없지 않습니까? 점쟁이나 무당처럼 이런저런 일을 누구와 동업하면 대박이 난다는 식으로 예언하는 언급은 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자로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그대로 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굳이 거창한 소명을 찾으려고 열심히 탐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이 신자 개인별로 특유의 재능과 은사를 주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신자 본인도 자신의 인생 경험을 통해서 자기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체적 직통 계시를 주실 필요가 없으니 자기가 잘 판단하고 계획하면 됩니다. 정말로 하고 싶고 남들보다 잘 할 수 있고 아무리 해도 싫증도 나지 않고 계속해서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자 자신의 직업이 됩니다. 

 

현실 삶은 하나님이 책임져 줄 것이니까 올해는 성경 통독 몇 회, 기도 큐티 모임 개근, 찬양대원으로 봉사할 것 등만 새해 아침에 계획하는 신자가 많습니다. 물론 의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 일들은 따로 생업이 없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만 해야 하는 전임 사역자들이 세울 계획입니다. 신자라면 교회 활동은 당연히 행해야 하는 일이므로 굳이 따로 계획을 세울 필요 없이 그냥 성실하게 참여하면 됩니다. 성경 통독도 몇 회 하겠다고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말고 지금 당장에 하루 한 페이지라도 꾸준히 읽으면 됩니다. 몇 번 실패해도 중단하지 말고 다시 한 페이지씩 읽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신년 계획에 포함시킬 성격이 아닙니다. 야고보가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가 행하는 생업에 하나님이 동행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신자라면 올해는 사기를 치거나 도둑질해서 큰돈을 벌겠다는 식의 계획을 세울 리는 만무하고 그런 일에 하나님이 동행해 주실 리도 절대 없습니다. 반면에 올해는 아들의 비싼 미국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을 만한 직장을 구해서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것은 아주 선한 일로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간혹 나중에 은퇴하고 선교사로 헌신하기 위해서 올해도 열심히 돈을 모아야겠다는 신자가 있습니다. 그 선한 의도를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대로 선교사로서의 재능과 은사를 받았는지 먼저 점검해봐야 하고 또 그렇다는 확신이 든다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을 계획부터 세워야 합니다. 돈을 번 후에 여유가 생기면 가겠다는 것은 본말이 완전히 전도된 것입니다. 본문처럼 장래 일을 속단하는 잘못도 범하는 셈입니다. 

 

선교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분은 돈 대신에 당신만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당신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 거룩하게 다스린다는 진리를, 아직도 돈만 주인으로 모시는 자들에게 생생히 보여서 알게 해주는 일입니다. 그런데 돈을 목표한 액수만큼 모은 후에 선교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선교에 돈이 필요해도 선교를 인간적 능력과 돈으로 행하겠다는 뜻입니다. 엄밀히 말해 자기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거룩하신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거룩하게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선교이고 또 그 일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당신께서 인도하고 수행하십니다. 굳이 아프리카까지 안 가도 되며 자기 생업을 행하는 바로 그곳이 선교지이며 그곳이 또 땅끝입니다. 선교를 가기 위해 열심히 일해 돈을 모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여유가 생겨야 선교가 가능하다고 여기고 훗날로 미루는 것이 큰 잘못입니다. 성경통독의 경우처럼 새해 첫날부터 따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곧바로 선교를 행할 수 있으며 신자의 매일 하루하루가 세상 끝날입니다. 아니 지난해부터, 정확히 말해서 예수를 믿은 직후부터 계속해서 선교사의 삶을 살고 있어야 신자입니다. 

 

신자가 자기 생업을 오직 하나님의 방식으로 운영하고 평소에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른 이를 섬기고 있으면 하나님도 당신의 이름을 걸고 당신을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 스스로 신자 주위에 증명해 보여주십니다. 그 모습도 반드시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며 생명을 살려내는 열매로 맺히게 됩니다. 야곱이 결론 내린 대로 선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선의 열매가 반드시 열리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를 신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데도 행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악이 됩니다. 

 

베드로가 실패한 원인은?

 

신자가 올해 무슨 일을 할 것인지 계획하기에 앞서 소원하는 그 일에 하나님이 정말로 동행하고 있는지 스스로 확신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문제는 많은 신자가 동행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수호신처럼 신자가 언제 어디를 가던 함께하여 보호해주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적용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삼위 하나님은 태초부터 오직 그리스도의 참 생명이 실현되는 방향과 모습으로만 인류의 역사와 당신의 백성 개인의 인생을 이끌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배제하고 전능한 성부 하나님만 동행하는 것처럼 여기면 사실은 불신자나 다름없습니다. 

 

비유컨대 부부가 한집에서 함께 살아도 인생관과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서 대화도 없이 방을 따로 쓰면서 배우자를 서로 무시하고 살면 절대 동행이 아니며 그냥 동거일 뿐입니다.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했을 때의 베드로가 주님과 동거는 해도 동행하지 않았던 대표적인 예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성부 하나님만 믿었기에 스승을 배반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로마의 폭정에서 해방되어서 다윗 왕국의 영광을 회복하는 너무나 의로운 소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삼 년간 유대 주류사회의 멸시를 참아내며 아무 보상이 없어도 예수님을 묵묵히 따라왔던 이유입니다. 로마에서 이스라엘이 해방되는 것은 분명 선한 일이나 다윗 왕국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으로 그치면 여전히 돈을 주인으로 모시는 믿음이며 하나님을 그 일을 달성해주는 수단과 통로로 이용하려는 시도에 불과해집니다. 

 

그가 스승을 부인한 이유는 당장 자기 목숨도 달아날 것 때문이었지만 자기의 현실적 소망이 달성될 가능성이 없어짐을 보고 절망에 빠진 것입니다. 그 후에 밖으로 뛰쳐나가 통곡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우선 스스로 자기를 봐도 너무 치사하고 비겁했으며 겨우 이런 정도 인간밖에 안 되었는지 놀라고 너무 어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절대로 행해선 안 되는 죄악을 저질렀다는 통렬한 회개 죄책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자기 소망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희망이 있을 때는 어떤 고난도 이겨냅니다. 권투 선수가 세계 챔피언 전을 앞두면 힘에 부치는 매일의 훈련은 물론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물 한 방울 안 마시고 몇 시간이고 뜨거운 한증탕을 들락거리는 체중 감량을 위한 극도의 고통도 이겨내듯이 말입니다. 큰 능력을 지닌 스승이 아무리 봐도 십자가에 죽고 세상에 없어질 것이 예상되니까 자신의 평생 소망을 이룰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더 이상 살아있어도 아무런 가치의 의미와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냥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제자들 중에 주님에 대한 신앙 고백을 최초로 한 베드로인지라 주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인 실체는 몰라도 이 땅에 실현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소망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그 주인이자 통치자 되시는 주님이 이 땅에 계시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그 천국을 세울 것인지 앞이 완전히 캄캄해진 것입니다. 주님이 살아계셔야 다윗 왕국이 되었던 주님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되었던 자기도 살든지 죽든지 함께 시도라도 해보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볼 텐데 그런 소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체포당해 한마디 대꾸도 못 하고 로마와 유대 관병들에게 온갖 핍박을 당하는 것을 보고는 자기 인생도 완전히 쏟아진 물로 끝났고 다시 담을 수는 절대로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사흘 후에 부활하시고 당신이 죽어서 이 땅에 없더라도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을 전혀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이 비었고 주님의 시신이 온데간데없다는 보고를 듣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만약 시신을 훔친다면 제자들뿐인데 수제자인 자기가 그러지 않았는데 그럴 수는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마리아가 헛것을 보았거나 로마 군병들이 치웠을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요컨대 그는 예수님이 완전히 이 땅에서 사라졌으니 더 이상 자기와, 정확히 말해서 자기 소원과 함께 동행해 주지 못한다고 지레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또 승천하신 후에는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예수님이 누구신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십자가 복음의 구원 진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확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현실적 안락과 자유가 아니라 죄에서 구원받아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이라는 점을 절감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내 양 떼를 치라는 소명을 받자 비로소 자기 인생의 목표를 주님의 뜻과 일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주님과 그 출발지와 목적지가 달라서 동거만 했으나 그제서야 그 둘이 같아지는 동행을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담대하게 외쳤고 실제로 십자가에 매달리는 순교를 감당했습니다.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육신적으로는 안개처럼 사라질 인생이지만 영적으로는 영원한 의미와 가치를 이 땅에 실현시키는 거룩한 인생이 된 것입니다. 

 

스승을 세 번 부인할 때까지는 성부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수호신으로만 모셨던 것입니다. 자신이 필요하고 궁핍할 때만 그분의 능력만 빌리려 한 것입니다. 부활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자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 이 땅의 역사와 자기 인생을 거룩하게 이끄시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고 그분의 역사에 동역자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에서의 정치적인 해방만 부르짖던 그가 그 후로 신자들에게 어떤 권면을 하게 되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3-8)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모든 신자는 산 소망을 품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야고보가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으나 이 땅의 안개 같은 인생도 예수를 온전히 믿음으로써 부활의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까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으니까 여러 시험을 받아서 잠깐 근심하게 되더라도 오히려 그 영광을 소망하며 크게 기뻐하라고 권합니다. 

 

새해에 세울 신자의 계획은?

 

이제 새해 아침에 혹은 첫 주간에 신자가 세울 계획이 불신자의 것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확실해졌습니다. 우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맘껏 소망하고 계획하십시오. 그리고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도 모색하고 그럴 수 있는 실력도 맘껏 갈고닦으십시오. 다시 강조하지만 신자는 세상에 속한 자는 아니라도 세상 안에서 모든 세상 여건과 제도와 관습 안에서 똑같이 일상생활을 해야 합니다. 불신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신자도 함께 누려야 합니다. 신자가 일반은총과 관계없고 오직 하늘나라의 영적인 일만 추구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일반은총을 무시하려면 물과 공기도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일반은총에 대한 새해 계획입니다. 

 

신자는 그 위에 특별은총에 대한 계획을 하나 더 보태야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불신자보다 더 형통할 수 있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일반은총이 전부이고 그것만 추구하는 불신 세상에 하나님의 특별은총을, 특별히 예수님의 죄 씻음의 영광을 증거해주어야 하는 그 소명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신년 계획도 그런 특별은총에 맞추어서 수립하고 수행해야 합니다. 망대를 세우고 전쟁을 치르기 전에 정확히 계산하여서 계획을 세우라고 가르치신 예수님 말씀의 결론에도, 자기 소유가 없어지더라도 먼저 당신의 제자가 되어서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명했습니다.(눅14:33-35) 

 

물론 계획이든 소망이든 가장 먼저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은사에 합당한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음치인 저는 가수가 아무리 되고 싶어도 그런 계획을 세워선 허사이고 하나님이 한 번 허락하신 짧은 인생을 완전히 허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어 놓는 셈입니다. 나아가 계획하는 일들을 하나님이 정말로 기뻐하여서 함께 동행해 주실지도 신자 스스로 곰곰이 따져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구체적으로 직통 계시를 해주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선일 줄 알고 행하지 않으면 악이라고 했습니다. 신자라면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이미 성경을 통해 익히 알고 있습니다. 돈을 주인으로 모시고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모신다면 어떤 생업을 해도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남은 일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뿐입니다. 

 

만약에 이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 달성 가능성도 당연히 100%이지 99.99%도 아닙니다. 더 이상 그 일의 성공 여부를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믿음을 정금 같이 연단시키려고 고난의 길도 통과시키고 세상의 방해도 허락하시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리고 내가 그분과 정말로 동행하고 있다면 그분이 책임을 져주십니다. 그럼 또 세 번 부인했을 때의 베드로처럼 절대로 중도에 포기해선 안 됩니다. 

 

미국 남부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한 크리스천이 매일 성경 말씀이나 신앙 격언을 주유소 간판에 바꿔 달았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Yes Lord”라는 두 마디만 내걸고 한참 동안 그대로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예가 즉, 달성 가능성이 백 퍼센트라고 확신한 것입니다. 그 주인은 굳이 다른 성경 말씀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절감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큰 고난을 거치면서 믿음이 정금 같이 변화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바울 사도의 말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2, 37-8)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예비 되어 있었기에 아담이 타락할 줄을 알고도 이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타락하자마자 여자의 후손이 와서 죄악의 원흉이자 기원인 사탄의 머리를 부술 것이라고 약속해주었고 때가 차매 동정녀 탄생으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그 약속을 완벽하게 지켰습니다. 이 땅과 인간을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에 의해서 예수님을 목표로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에 계시된 모든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야고보의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이라는 권면이 바로 신자는 어떤 경우든 하나님께 Yes Lord라고 반응하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바울은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마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음으로 내어주었기에 사망도 우리를 하나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불행은 없는데 죽음 이후에도 더 큰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면 신자에겐 이 땅의 잠시뿐인 고난은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나아가 바울은 장래 일도 그렇다고 합니다. 야고보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니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대신에 이미 알고 있는 선을 행하기만 하라고 했습니다. 신자가 올해 계획을 즉, 올해의 내일 일을 하나님의 선을 알고 그 선을 행하는 모습으로 세워서 수행한다면 하나님이 온전한 사랑으로 채워준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새해에 세울 진짜 계획이 하나 남았습니다. 생업은 이미 하고 있으니 그것을 발전시킬 계획은 쉽게 세울 수 있습니다. 생업을 자기 재능과 은사에 맞는 것으로 이미 선택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오래 행했으므로 상당히 익숙해졌습니다. 그 일이 세속의 죄악을 따르지 않는 이상 주님이 함께해 주실 것도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진짜로 계획할 일은 불신자와 달리 실제로 또 구체적으로 자기 삶에 특수은총을 누리고 실현하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현실축복을 더 많이 받으려는 계획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일반은총에 해당하는 현실적 신년 계획을 세워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올해만은 제발 이 소원을 이뤄주십시오”라고 그것만 기도하면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의 실패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생업의 확장 발전은 염려할 필요 없고 대신에 그 일을 통해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생명의 향기를 드러낼지, 그래서 주변의 죽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살려야 할지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짜야 합니다. 

 

예컨대 성경 통독 계획도 좋으나 성경에서 깨달은 진리를, 특별히 복음을 주변에 전해야겠다는 계획까지 짜야 합니다. 사랑으로 섬기거나 복음으로 전도할 대상부터 구체적으로 정해서 기도해주고 또 찾아가서 주님의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러다 기회가 닿으면 십자가 복음을 직접 전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다면 올해도 성경 통독은 작심삼일로 끝날 확률이 높아지고, 설령 성경통독을 달성했어도 야고보가 말하는 대로 허탄한 자기 자랑으로 그칠 것입니다. 

 

(1/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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