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6:60-65) 예정론이 오해 받는 진짜 이유는?

오병이어 기적 시리즈 (13)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요6:60-65)

 

너무 어려운 예수님 말씀

 

오병이어에 대한 논쟁은 주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일반 유대인들과 시작되었으나 본문은 제자들의 반응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주님이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쳤다고 했으니(59절) 백성들과 대화는 회당에서 마쳤고 제자들과만 따로 대화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에 관한 절대적 진리 네 가지를 가르쳤는데 한마디로 줄이면 당신께서 하늘에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당신의 살을 먹어야 하고 피를 마셔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아무리 비유라 해도 율법에 능통한 유대인 랍비라면 함부로 입 밖으로 내선 안 되는 내용입니다.

 

제자 중 여럿이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고 반응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도 듣지 못한다는 부정의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듣는다는 단어 ‘쉐마’는 단순히 상대가 말하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들은 내용에 적극 찬동하여 행동으로 옮긴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마찬가지로 순종한다는 의미도 있는 헬라어 ‘아쿠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넘어서 실제로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일은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해야겠다는 기본적인 인식은 있었던 것입니다. 문자적 의미로 식인종은 절대 될 수 없기에 영적인 의미가 있다고 짐작은 했어도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모르니 실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표현해야만 했던 주님만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고 피를 쏟을 것은 확정된 사실이었습니다. 그 죽음이 없으면 인류 구원의 길은 절대 없습니다. 오직 그 일을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당신의 십자가 죽음이 인류 구원의 핵심 요소이니까 정말로 실감나게 표현해야만 합니다.

 

나아가 예수님이 인간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숭고하게 희생했다는 사실만 객관적으로 믿는 것은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실제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올라가 죽어야만 합니다. 죄로 타락한 옛 자아가 완전히 깨트려지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먹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그 안에 생명이 없다고 딱 부러지게 선언한 것입니다.(53절) 이 문제는 포용적인 관대함으로 또 애매모호하게 추상적으로 설명할 성격이 전혀 아닙니다. 한 죄인이 예수님의 대속 죽음의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자기 전부를 맡기느냐 아니냐로 영원한 구원과 심판 둘로 나뉩니다.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면 구원이며 그러지 않으면 심판입니다.

 

내려 왔으니 다시 올라가야 한다.

 

주님은 스스로 그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61절) 제자들이 주님이 들리도록 말한 것이 아니라 종종 당신의 신적권위로 그렇게 했듯이 그들의 생각을 이미 다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라고 먼저 물었습니다.(61절) 걸림이 되느냐를 일부 영어 성경은 너희로 화나게 하느냐고 번역했고 헬라 원어로는 죄를 짓게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제자들로선 스승이 자칫 죄를 짓게 만들고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명령을 왜 주시는지 화가 날 정도로 이해가 안 된다는 불만이 생겼던 것입니다.

 

주님은 충격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62절)고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주님이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하신 말씀은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예표한 것입니다. 이제 승천까지 예고했는데 승천이 있으려면 당연히 부활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 표적을 보았고 그 의미를 설명한 구원의 네 가지 절대적 진리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도 들었으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주님의 말씀으로 설명한 내용은 못 믿어도 직접 승천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라고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까?

 

당시에 인간이 하늘로 올라간다면 상상도 못할 엄청난 이적입니다. 어쩌면 주님이 행하신 이적 중에 최고로 경이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껏 수많은 이적을 보았고 바로 어제 체험한 오병이어 기적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는데도 주님이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없습니다. 말씀하신 순서에 따르면 수군거리다 물러간 제자들을 대상으로 나중에 승천하는 이적을 보여주어도 믿지 않을 것이라는 뉘앙스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므로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먹으라고 명했습니다. 지금 당신께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이라고 말씀하신 일차적인 이유도 당신께서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여러 번 강조했기 때문인데(38,51,58절) 쉽게 말해 원래 계셨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또 다니엘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인 치신 인자라고 칭했고.(27절) 하나님을 직접 보았다고(46절) 했습니다. 비천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던 목적을 다 달성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하늘 보좌로 올라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이 논쟁에서 시종일관 강조하는 주제는 당신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중에 너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전 우주를 만드시고 다스리는 하나님으로서 이제 곧 너희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을 행하겠다고 미리 알려준 것입니다. 당신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세상을 사랑함을 보여줄 테니까 당신 앞에 진정으로 무릎 꿇고 진정으로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도 나처럼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너희들끼리도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라고 말한 것입니다.(63절) 먼저 육(flesh)은 인간의 육체(body)가 아니라 하나님을 배척함으로써 온전한 선과 사랑을 실현할 수 없는 인간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예수님을 알지도 찾지도 못하기에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씀과 영과 생명 셋을 일치시켰습니다. 요한복음 서두에서 밝힌 당신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한 것입니다. 지금 논쟁의 주제대로 당신을 믿어야만 생명을 얻는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예지예정과 예정예지

 

본문의 현장에서의 제자들을 비롯한 모든 유대인들이나 오늘날의 자연인들도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시고 인간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고 또 부활해 승천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한 인간이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믿기지 않는 것을 넘어서 아예 미쳤다고 반발할 것입니다. 거기다 승천을 보고도 믿지 못할 정도이므로 주님은 하나님이 보내주어야 믿을 수 있다고 계속 강조한 것입니다.(37,45,57,65절) 이미 살펴본 대로 하나님이 구원주기로 예정한 자만이 십자가 복음을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64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당신을 믿지 아니하고 물러갈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신 후에 그들은 물론 당신을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원받고 심판받을 자를 예정한 것이 아니라 누가 믿을 지 안 믿을지 미리 알기에 그 믿을 자만 구원으로 예정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신학적 용어로 예지예정이라고 하는데 죄송하지만 아주 궁색한 말장난일 뿐입니다.

 

구원의 조건은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고 오직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믿음 하나뿐입니다. 어차피 믿을 자는 구원 받기 마련인데 하나님이 구태여 택할 이유는 없습니다. 믿을 것을 미리 알고서 택했다면 하나님이 구원에서 하신 역할은 사실상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믿을 것을 미리 알게 된 자들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주어 구원하신다는 식으로 변명은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요3:3) 성령의 간섭이 먼저 있어야만 주님의 십자가 대속죽음이 믿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믿을 자를 미리 아시고 성령을 주셨다고 하면 구원의 순서가 뒤바뀝니다. 논리적으로는 성령을 주지 않았는데도 믿을 수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시간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은 당연히 과거 현재 미래를 한 눈에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믿을 줄을 미리 알았기에 성령을 주신다면 구원은 인간과 하나님이 힘을 합해야만 한다는 뜻이 됩니다. 믿음이라는 인간의 공적에 따라서 구원이 좌우됩니다. 그럼 믿은 자는 영적으로 우월하고 믿지 못한 자는 열등한 자가 되며 구원 후에도 인간이 잘못하면 취소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영적으로 죽어 있기에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홀로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65절, 37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보내주신 자들을 주님이 구원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보내주셨는데 어찌 미리 모를 수 있습니까? 보내주시지 않은 자들은 믿지 않은 자임도 당연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명확하게 예정구원을 가르치고 있기에 대놓고 부인할 수 없어서 아무 필요도 없는 신학적 이론을 하나 더 끼워 넣은 것입니다.

 

예정이 하나님을 너무 냉혹한 분으로 인식시키게 만드니까 그분의 사랑을 더 강조해보려는 선한 의도는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한다고 기괴할 정도로 냉정하게 구원의 절대적 기준을 둘로 딱 잘라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제자들마저 다 떠나는데도 전혀 만류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장래 일을 미리 안다는 것은 반드시 그 일이 이미 정해진 대로 진행되어야만 가능합니다. 말하자면 예지예정이라는 말 자체부터 변화무쌍한 인간의 활동이 개입되는 것을 부인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사전에 구원으로 미리 작정해 놓았기에 미리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신학적으로 예지예정과 대조하여 예정예지라고 말합니다.

 

성령을 주신다는 말 안에 이미 하나님의 선택이 들어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당신의 절대적인 뜻에 따라 당신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줄 자 안 줄 자를 예정해 놓았습니다. 성령을 줄 자를 예정해 놓았기에 미리 아신다는 말은 성립되지만 믿을 자를 미리 아시고 성령을 준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예정이 먼저 있은 후에 하나님은 피택자의 인생과 삶의 모든 정황에 역사하여서 당신의 때와 방식으로 구원으로 인도해주십니다. 성령이 역사하여 인간이 자의로 기꺼이 믿기로 결단하게 만들어줍니다. 인간 쪽에서 보면 성령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기에 자기 의지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믿었다고 여겨져질지라도 그 전에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기에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택함 받지 못한 자는 억울하지 않는가?

 

그럼 또 “택함 받지 못한 자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너무 억울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너무 독선적이고 불공평하지 않는가?” 등의 반발이 나올 것입니다. 이 또한 예정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심판 받을 자를 따로 택하지 않습니다.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이 당신의 진노 아래 죽을 수밖에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어폐가 있지만 모두가 똑같은 사형수니까 하나님으로서도 누구를 심판으로 택할지 정할 수 없습니다.

 

본문 현장에 있는 유대인들은 물론 그 제자들을 보십시오. 한 결 같이 여호와 하나님 대신에 돈을 주인으로 삼고서 이 땅의 현실적 안락만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세가 준 만나를 항상 먹게 해달라는 한 가지만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은 아무리 먹어도 썩어 없어질 육신을 위하는 것이므로 당신을 믿어서 영생을 구하라고 가르쳤는데도 다 물러갔습니다.

 

당시 세상에서 유일하게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민족으로 율법대로 경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제자들도 부활했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서 주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았고 오순절에는 나머지 제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자 비로소 복음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영적으로는 전적으로 타락했기에 하나님은 구원을 줄 자만 따로 택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자를 끝까지 당신께서 살리신다고 강조한 까닭입니다. 보내주신 자만 구원 받을 자이며 심판 받을 자는 따로 보내줄 필요가 없습니다. 이젠 또 구원으로 택함 받은 자들만 하나님이 편애하신 것 아니냐고 따질 것입니다. 과연 신자들이 하나님의 특혜를 받았는지 한 번 진지하게 따져봅시다.

 

마태는 페르시아에서 폭도의 칼을 맞았고 마가의 두 다리를 말이 찢었고 누가는 잔혹하게 목이 매달렸고, 베드로와 빌립과 시몬과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바돌로메는 산 채로 껍질이 벗겨졌고 도마는 인도에서 말 다섯에 묶여 사지가 찢어졌고 야고보는 헤롯에게 목이 잘렸고 맛디아도 예루살렘에서 목이 잘렸고 작은 야고보는 톱으로 몸이 두 동강 났습니다. 예수님 동생 야고보와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고 유다는 기둥에 묶여 화살을 맞고 죽었습니다. 요한은 자연사했지만 밧모섬 감옥에 유배되어 쓸쓸히 죽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도들은 물론 수많은 초대교회 신자들도 순교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미리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면 스스로 믿겠다고 나설 사람이 한 명이라도 과연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형통과 출세라는 특혜를 주려고 구원으로 택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당신과 화목 시키기 위해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맡아서 세상 끝 날까지 땅 끝까지 어떤 위험도 박해도 무릅쓰고 전하고 가르쳐서 제자를 삼으라고 택해준 것입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현실적 궁핍이나 출세를 못한 것을 신자가 겪을 고난으로는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의 고난은 세상의 부패한 세력에 맞서 싸움으로써 박해를 받거나 세속적인 흐름을 거슬러 살려니까 겪을 수밖에 없는 온갖 현실적인 불이익과 차별들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주님만 따라가기 위해서 기꺼이 그런 고난들을 감수했고 복음 외에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한 자들이었습니다.

 

당시는 교회를 빨리 세워야 하고 로마의 핍박이 심했기에 어쩔 수 없었고 지금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으니까 사정이 다르다고 반발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 때도 순교할 자만 순교했고 그러지 않은 신자들도 많았습니다. 거기다 금세기의 순교자 숫자가 역사상 가장 많다고 합니다. 정말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간다면 현실의 풍요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순교까지 책임지시는 예수님

 

그렇다고 예수님이 아무런 사전 경고도 하지 않고 무조건 택한 후에 꼼짝없이 순교 같은 고난을 당하도록 강요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럼 진짜 독선적인 하나님이 됩니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도는 당신과 같이 가시밭길을 걸어가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여러 번 예고해주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16;24)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12:25)

 

초대교회 제자들은 막상 핍박이 닥치자 주님의 이전 가르침을 떠올리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들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두려움이 닥치고 고통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령님이 함께 해주시기에 어떤 고난도 심지어 죽어가는 고통도 감당해낼 믿음과 능력을 받았습니다. 성령님이 천국에 이르는 길에도 손을 잡고 동행해주셨습니다. 스데반이 평안한 가운데 천국에 계신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던 것과 동일한 죽음을 맞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 줄 자만 택하여 땅 끝까지 가라는 선교사 임명장을 주신 것입니다. 예정은 그래서 결코 비정하지도 불공평하지도 않습니다. 택함 받은 자들이 준행해야 할 소명은 너무나 거룩하고 신령하므로 그 무게는 엄청났습니다.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는 세상으로부터 온갖 핍박이 따르며 때로는 순교까지 감당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교회 나오라고 전도하면 기껏 술 담배 끊기 싫어서 즉, 지금껏 방탕하게 살았던 삶을 청산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싫다고 합니다. 자기 힘으로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겨야 겨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나와선 이신칭의 교리는 수긍 동의합니다. 천국보험증서를 받은 것만 좋아하지 땅 끝 선교사 임명장을 받았다는 사실은 모릅니다. 땅 끝이 사실은 아프리카 오지나 무슬림 지역이 아니라 단순히 주변의 이웃인데도 말입니다. 대신에 내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믿었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실행했으니 항상 만나를 풍성하게 먹게 해달라는 요구밖에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동역자이자 하나님의 대사로 세상에서 불려 나왔다는 소명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을 냉정하게 외면하고 계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하나님은 택한 신자더러 십자가 복음을 전하게 해서 불신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세상이 즉, 자연인들이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과 십자가 구원진리를 절대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열두 명의 제자를 마지막까지 남겨서 복음을 불신 세상에 전하는 최초의 메신저로 세운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맡겨진 불신자의 구원

 

물론 그렇게 전도 받아서 예수를 믿게 되는 사람도 이미 구원으로 택함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자를 또 누구를 구원으로 작정해 놓았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삼위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럼에도 영원불변한 한 가지 진리는 하나님은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길 원하시고 그 일을 신자를 통해 이뤄나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들로 정말로 끝까지 목숨을 걸고 순종 헌신하게끔 당신께서 이끌어주십니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기쁨 평강 자유 만족 안식이 따르는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비유를 하자면 먹을 것이 넘치도록 있는 곳을 발견한 거지가 신자인데 그럼 그곳을 모르는 동료 거지에게 당연히 어디인지 가르쳐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은 후의 삶이 너무 좋으면 바울처럼 전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고통스러워질 것입니다.

 

신자는 절대적 진리가 있고 오직 선은 하나님께로만 오므로 그분을 주인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거룩하고 신령한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어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이 땅을 거룩하게 통치하고 계심을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로 자신을 살리는 영이지만, 로마 제국의 풍요를 따라 안락하게 사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육인 줄 절감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세상 향락에 탐닉해보아도 참 소망은 생기지 않아 항상 갈급해 하던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많이 돌아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예수님을 몰라 죽음의 절망으로 떨어지는 자들을 보면 너무나 불쌍하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택함 받았음을 감사만 하지 않고 화목케 하는 직책을 언제 어디서나 어떤 모습으로든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실행하게 됩니다. 예정으로 택함 받은 은혜가 그 이후의 인생의 모든 일을 좌우하게 됩니다. 설령 마지막 죽음의 길이 사도들 같이 될지라도 담담히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몇 번 말씀드린 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았고 지독한 안티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회초리를 맞고서야 코가 끼듯이 교회로 끌려왔습니다. 로마서를 통해 복음을 전해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성령이 간섭하여 십자가 예수님 앞에 완전히 항복하며 엎드린 체험도 했습니다. 주님이 지난 모든 세월 동안 나를 그 자리에 이르게 하려고 넘치는 사랑으로 함께 하시며 간섭해 주셨다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택함 받았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하여서 주님만 따라가는 삶을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신자가 기도하는 대로 다 형통하고 출세할 것 같으면 당연히 예정은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신자들도 그런 신앙생활만 하고 있으니 예정이 교회 안팎에서 불합리한 것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예수님이 죽기까지 세상과 자기를 사랑한 것처럼 신자도 주님과 세상을 죽기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구원으로 예정하신 목적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만약 신자들이 초대교회 교인들처럼 살아가면 예정에 대해선 아무도 시비 걸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를 알고 미리 택했다는 사실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정말로 확신합니까? 그 사실 하나만으로 얼마나 가슴이 벅차오르는 엄청난 은혜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일대일 개인적으로 아시고 미리부터 계획을 세워서 세상에서 불러내시고 또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당신의 동역자로 세워주셨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지금도 그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성령님이 내주하셔서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으며 마지막 날에 영광스럽게 부활의 생명을 덧입혀주실 것입니다. 교리적 종교적으로 과장한 수사법이 결코 아닙니다. 엄연한 사실이자 진리입니다. 아니 매일 체험할 수 있는 삶입니다.

 

모두가 천하의 죄인인 인간에게 예정이 불공평하다고 비평할 자격은 없습니다. 신자만이 예정이 얼마나 엄청난 은혜이자 권능인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님께 보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내 같은 죄인에게 보내주셔서 영생의 선물까지 주신 것입니다. 그럼 우리더러 다시 세상에 나가라는 것입니다. 지금 화목케 하는 말씀을 들고 세상에 전도라는 미련함으로 다가가고 있습니까?

 

(8/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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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요6:30-33) 하나님은 인간을 저주할 수 없다. master 2021-09-04 17
45 (요6:28,29) 구원을 얻는 믿음이 있는가? master 2021-06-28 134
44 (요6;22-27) 물질이 썩는 진짜 이유? master 2021-06-28 110
43 (요6:16-21) “내니 두려워 말라.” master 2021-06-28 1621
42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비유에서 나무가 교회를 뜻하는지요? master 2021-04-05 74
41 (요7:37-43)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고 있는가? master 2020-12-26 398
40 요12:20-23 헬라인과 예수님 영광은 어떤 연관이 있는지요? master 2020-09-04 218
39 요15:16-20 코로나 사태가 신자들의 합심기도로 끝나지 않는다. master 2020-05-25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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