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때는 언제 차는가?

조회 수 505 추천 수 29 2009.11.11 18:09:59
하나님의 때는 언제 차는가?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3-6)


바울은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의미를, 즉 복음을 아주 간략하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동정녀에게서 성령으로 나게 하시되, 율법의 제약을 받는 모습으로 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신 목적은 그 사실을 믿는 자로 당신의 아들의 명분을, 아들은 아니지만 아들과 같은 대우를, 얻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직접 오셔야만 했던 이유는 죄를 전혀 범하지 않은 흠 없는 제물로 바쳐져 유효한 영단번(永單番: once-for all)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여자에게서 성령으로 나셔야 했던 이유는 완전한 인간으로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어 완전한 죄의 심판을 받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율법 아래 나게 한 것은 율법의 역할을 밝히 보여 죄인들을 십자가로 이끌고 또 당신께선 율법을 온전히 지켜 율법의 뜻을 완성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 당신께서 죄는 철저하게 저주하되 죄인은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 앞에 항복하고 당신 앞에 겸비하게 무릎 꿇고 나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로 구원은커녕 회개도 온전히 할 수 없음을 성령으로 깨닫게 해서 믿음으로 당신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를 당신의 아들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절망에 빠져 탈출구가 없는 인류에게 천국 가는 길을 활짝 여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꼭 이천년 전, 본문 표현대로 하면 “때가 차매” 보내어야만 했습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당시 유대 사회는 메시야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또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충분한 여건도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로마의 지배로 전쟁 없이 안전하게 세계 여행을 할 수 있었고 또 헬라어가 공용어가 되어 있어서 복음을 전파하기 용이했습니다. 나아가 도덕적으로 극도로 타락했기에 “회개하라”는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쉽게 찔림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반드시 성경이 말하는 이유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문대로 사람들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서 종노릇”하고 있어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할 수 있는 때였습니다. 역으로 말해 사람들이 세상학문에 가장 많이 종노릇하고 또 율법에 가장 많이 묶일 때까지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는 것을 유보하고 기다렸다는 뜻입니다.    

‘세상 초등학문’은 인간의 철학과 사상입니다. 또 당시 이방인들, 즉 참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갖고 있던 우상과 천체와 온갖 영들을 숭배하던 미숙한 종교지식입니다.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알고 율법까지 받았기에 구원이 보장된 것처럼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유대교 지도자들이 율법의 세밀한 규정을 많이 만들어 사람들에게 무거운 종교의 멍에를 지게 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들이 죄로 타락한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하나님의 진리는 배제한 채 스스로 자기 잘난 것을 마음껏 자랑했던 때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 아닙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진리에 순종하고 있으면 구태여 직접 오실 이유는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전혀 필요 없고 스스로 다 할 수 있다고 설치는 것이 한계에 다다르면 아무래도 직접 개입하실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날의 상황이 같은 맥락에서 때가 찬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한 편에선 인간의 헛된 철학과 사상이, 그것도 하나님은 아예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극도로 왕성해진 반면에 다른 한 편에선 종교는 범람하되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그것도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가장 심하게 부인되고 있지 않습니까? 바꿔 말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가 점점 막바지에 다다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지 않습니까? 정말로 우리 모두 깨어 준비하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6/26/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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