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6:41-50) 마지막 적그리스도를 이기는 간단한 방안

오병이어 기적 시리즈 (11)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6:41-50)

 

네 번의 “진실로 진실로”.

 

오병이어는 네 복음서가 모두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기적입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에게 준 충격과 감동이 컸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준 만나와 비견될만한 표적이었으며 성경도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와서 이스라엘을 구원해준다고 예언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이튿날 일찍부터 열성적으로 몰려온 것은 아주 타당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숨은 의도를 알아보시고 첫마디에 거절하셨고 서로간의 대화가 계속 어긋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오다가 본문에 이르러 처음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예수에 대해 수군거렸는데(41절) 불평하다 투덜거리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된 계기는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38절) 그들은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요셉과 마리아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하나님이 보내신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면서 실제로 하늘에서 왔다고 선언하니까 도무지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들이 생전처음 듣는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이라 마치 “소귀에 경읽기” 같은 상황이 되었고 실제로 말씀이 너무 어렵다고 다들 떠나가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백성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지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럼 무슨 뜻이 됩니까? 주님의 말씀이 절대적 진리이거나 정말로 어불성설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이렇게 저렇게 말씀하셨다고 자기들이 계시 받은 대로 옮기기만 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절대적 진리를, 그것도 하나님만이 주관하시는 구원에 관한 진리를 직접 계시하고 실행하는 주체가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주님은 오병이어 논쟁을 통해 네 번(26,32,47,53절)에 걸쳐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라고 즉,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라고 선포했습니다. 주님은 지금 인간으로서 결코 취해선 안 되는 표현과 방식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언뜻 보면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각기 다른 말씀으로 구원을 얻는 여정을 순서대로 밝힌 것입니다. 본문 47절을 포함해 세 가지 진리를 순서대로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얻은 구원이 주님이 가르치신 내용과 일치하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표적부터 보라.

 

첫 번째 구원 진리로 당신을 찾는 것이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므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했습니다.(26,27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쫓아오자 곧바로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을 왕으로 삼으려 한 것은 지금으로 치면 믿음을 가져 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거절했으니 믿음을 갖는 동기가 잘못되었으니 바르게 고치라고 깨우쳐준 셈입니다.

 

그럼 떡을 배부르게 받아먹기 위해서 믿음을 가져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현실 삶의 형통과 본인의 출세를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빌리려는 것은 아무리 교회 생활에 충성해도 교회의 멤버는 되어도 기독교 신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에 주일학교 출석한 경험이 없이 불신자였다가 성인이 되어서 교회에 출석하는 자의 대부분은 현실의 고난을 해결 받으려는 목적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전까지는 세상만사를 자기 마음먹은 대로 자기 능력으로 너끈히 해결해 낼 수 있다고 믿었는데 도무지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맞닥뜨렸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도움이 아무 소용이 없고 죽을힘을 다해도 사태는 점점 나빠지니까 뭔가 초월적인 권능에 의지하고 싶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로 찾아오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그 배경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역사했기 때문에 사실상 선한 일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나의 문제와 고난을 알고 있다면 제발 해결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매달립니다. 놀랍게도 간절히 기도하면 난공불락 같았던 문제들이 순순히 해결됩니다.

 

기도가 응답이 되었다는 것은 불신자의 입장에선 일종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방이 다 막혀 출구라곤 전혀 없었고 단지 기도만 했는데도 둘러싸고 있던 장애가 다 사라졌습니다. 현실에서 자기가 동원한 수단과 아무 관계없이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하나님의 신령한 능력이 작동해준 것이라고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했기에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내 기도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세상만사는 인간들이, 자기 인생은 자신이 주인이 아니며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존재가 주관 통치한다는 진리를 알게 해준 것입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범사에 당신을 믿고 의탁하며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요한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주님이 베푼 기적 중에 일곱 개만 선별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

 

그는 의도적으로 기적(miracle)이라는 용어 대신에 표적(signs)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표적의 헬라어 ‘세메이온’은 지시, 신호, 표시, 전조, 상징 등의 뜻을 갖습니다. 표적의 첫째 역할은 예수님을 찾아갈 수 있는 표지판이라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도 도무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그 기적을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임을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런 축복을 항상 달라고 요구했는데 표지판이 지시한대로 가지 않고 그 표지판만 계속 더 보여 달라는 꼴입니다. 오병이어의 표지판으로서 의미가 아예 없어졌습니다. 교회에 출석해서 계속해서 현실문제만 해결하려 들면 이와 똑같은 꼴이 되므로 주님도 똑같이 거절할 것입니다. 구원여정의 첫째 진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깊이 알아나가는 것이 신앙을 가져야 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떡을 먹으라.

 

그래서 예수님이 두 번째로 “진실로 진실로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32,33절) 그 생명의 떡은 바로 당신이므로 당신을 믿어야만 하나님과 영원한 생명의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표적이 갖는 둘째 역할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은 자는 그 이름에 힘입어 생명을 얻게 된다고 말한 대로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는 기도해서 해결 받아도 또 다른 고난이 계속 닥치기 마련입니다. 모세가 준 만나나 예수님이 오병이어에서 주신 떡들은 한 끼 먹고 나면 금방 다시 배가 고파집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이마에 땀을 흘려야만 이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의식주에 관한 사항은 아주 비상한 경우이거나 특별한 목적이 없는 한 하나님이 굳이 개입해서 해결해주지 않고 신자가 평생 스스로 마련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현실의 형통과 출세를 보장해준 적이 없습니다. 대신에 가족도 버리고 자신을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했습니다. 당신을 따르면 머리 둘 곳도 없는 좁고 협착한 길을 가야할 것이며 그 길을 찾는 자도 소수라고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당신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가 살 것이며 자기를 위해 자기 목숨을 살리는 자는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 전부가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믿음이자 생명의 떡을 먹은 증거입니다.

 

혹시라도 물질이 나쁘다고 여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기 전에 물질계의 질서와 체계부터 제정했습니다. 인간이 먹을 양식과 거주할 환경을 완비하여 인간에게 베푸신 후에 심히 기뻐했습니다. 물질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소중하고 좋은 것입니다. 신자도 물질을 사용해 자신의 생명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이 땅의 육신적 생명을 풍성하게 유지하는 존재로 그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인간으로서 이 땅에 실존하게 된 고유의 의미와 가치를 반드시 찾아서 실현해야 합니다. 내가 이 땅에 그냥 버려진 물질적 존재인지, 아니면 어디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이 땅에서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정답을 얻어야 합니다.

 

자기가 물질에서 우연히 진화된 .존재가 아니라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 둘 중 하나뿐이지 중간 입장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창조했다면 그분만의 나를 향한 거룩한 목적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그럼 또 비록 세상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이 손 놓고 계신 것 같아도 자기는 절대로 그분께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오병이어를 일으킨 첫째 목적도 예수님이 현실 형통을 보장해주지는 않아도 당신의 백성들과 항상 함께 하면서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에 궁핍한지 다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리고 힘들어 할 때에 주님이 더 안타까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들 중에서 가장 먼저 얻어야 할 정답은 인간만 모든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주는 떡을 먹어야만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존재가치가 온전히 실현됩니다. 죽음 이후에도 그 영적 생명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시작해서 그분에게서 끝이 나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럼 출생과 사망의 중간 과정인 이 땅의 삶도 그분 안에서만 영위해야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해답입니다. 구원여정의 둘째 진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실제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을 먹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출생을 알라.

 

주님이 세 번째로 진실로 이른 말씀은 당신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는 것(47절)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이므로 당신을 믿는 자는 영원한 구원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가졌다는 원어는 현재시제로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두 번째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입니다. 지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당신께 보내주어야만 당신을 믿을 수 있고 또 반드시 당신께서 마지막 날까지 지켜서 살려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38,39절) 영생을 얻기 위해 당신을 믿어야만 하는 이유인데 44절에서 그 내용을 다시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이 아버지를 보았는데 당신이 바로 아버지를 직접 본 자라고 덧붙였습니다.(46절)

 

알다시피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직접 본 인간은 절대 살 수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이 종교적 의미를 담아 수사학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 그것도 나의 아버지라고 표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당신이 하늘에서 직접 내려왔다고 말한 위에 이제는 하나님을 직접 보았다고 말합니다.

 

가뜩이나 하늘에서 왔다고 해서 수군거리고 있는데 이젠 죄송한 표현이지만 주님을 완전히 실성했다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그들에게 일으킨 파장은 오병이어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컸을 것입니다. 오병이어 표적에서 받은 충격과 감동은 다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율법과 관습대로 하자면 돌을 들어 주님을 쳐야할 판이지만 바로 어제 오병이어로 떡을 받아먹었으니까 참아주고 그냥 떠나간 것입니다.

 

주님은 맨 처음 떡을 먹어 배부른 까닭이 아니라 표적을 본 까닭으로 당신을 왕으로 삼으라고 미리 못 박았습니다. 지금 당신께서 선포하신 이 충격적인 말씀이 정말로 믿어져야만 즉,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당신의 백성이 되어서 당신의 통치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군중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삼년 간 동고동락하며 천국복음에 대한 가르침을 직접 받았고 온갖 기적의 현장에 동참했고 자기들도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막16:11)고 말합니다. 안식 후 첫 날 아침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막달라 마리의 증언을 듣고도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생전에 제자들에게 당신이 십자가에 죽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을 여러 번 가르쳤는데도 아무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제자들도 주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믿지 않았거나 끝까지 설마 그럴까 의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직접 오셨다면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구해주어야지 왜 그냥 아무 말도 없이 죽었다가 또 그냥 다시 살아나기만 했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이 죄인을 구하러 왔지 의인을 구하러 왔다는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제자들도 자기들은 의인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여전히 미심쩍어 하는 제자들 눈앞에 육신적으로 나타나 당신께서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당신을 배반하고 도망간 죄를 용서해주고 성령이 각 사람에게 직접 내주해주자 비로소 주님을 온전히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제자로 택했을 때부터 아니 그 전에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구원으로 예정되었지만 성령으로 간섭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신시켜줌으로써 비로소 구원이 확정된 것입니다.

 

주님은 본문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다 떠나도 아랑곳 하지 않았고 끝까지 제자들만 보살폈습니다. 당신께서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이 보내준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려는 뜻이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일이 성령으로 역사하여 당신과 왕과 백성, 아버지와 자녀, 신랑과 신부라는 친밀한 관계를 맺어주었습니다. 구원 여정의 세 번째 진리는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믿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단순히 기도에 응답해주는 절대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러 직접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본문의 유대인들은 예수는 인간이지 결코 하나님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생명의 떡인 예수님을 등지고 떠났습니다. 그들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고 율법대로 선하게 살았으며 심지어 어제도 예수님에게 직접 천국 가르침을 받았고 오병이어 기적까지 누렸지만 구원과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에도 본문의 유대인들과 같은 믿음에 머무는 신자들이 아주 많습니다. 교회에서 모든 면에서 본이 되며 예수님에 대한 교리와 성경지식도 넘치며 실제 삶도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정도로 의롭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선 미심쩍어 하며 무엇보다 주님과 개인적으로 대면한 체험이 없습니다.

 

도마는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그에게 손의 못 자국과 허리의 창 자국을 보여주자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도마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제자들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라고 선언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에게 진실로 진실로 이르시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직접 볼 수 없고 못과 창 자국을 만질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말씀을 통해서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 고난 때문에 교회에 출석하여 처음 얼마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서 주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확인했습니다. 그 다음은 그렇게 기도 응답해주는 이가 과연 어떤 분이며 왜 응답해주는지 알아야 하는데 말씀을 통해서 배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만나서 알아보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주님 지금 저에게 직접 오셔서 말씀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말씀을 보셔야 합니다. 그럼 사람마다 다르지만 하나님이 택한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가 맞다면 반드시 주님과의 인격적 대면이 일어납니다. 단순히 나는 너무나 큰 죄인이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그 형벌을 감당했다는 진리에 동의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어느 순간 말씀이 살아 역사하여 내 심령 깊숙이 꽂히고 그 넘치는 권능과 은혜에 사로잡혀서 나 같은 죄인을 당신께서 죽기까지 사랑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

 

말하자면 온 몸에 소름이 끼치고 머리에 뭔가 꽝하고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의 너무나 가난한 영적인 실체를 마주치고 애통해 하면서 절로 주님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이 일이 사람에 따라 점진적으로 일어날 수 있고 단 번에 그럴 수 있고 각자가 그런 은혜를 받는 방식과 말씀도 각기 다 다릅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정말로 예수님이 찾아와서 직접 육성으로 나에게 말씀해주셨다는 확신이 듭니다. 십자가 은혜를 받지 않았다면 자신은 그야말로 추악한 죄악 덩어리로 진노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었다는 처절한 자각이 생깁니다. 그래서 주여 이 가난하고 비참한 자를 홀로 버려두지 마시고 당신의 자녀로 받아주시옵소서라는 진심어린 고백을 저절로 하게 됩니다.

 

믿음의 공통적인 열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한 체험은 각기 달라도 공통적인 결과가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알고 있고 사랑하고 계시며 말씀과 기도를 통해 나를 세상에서 따로 불러내었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대면이 있고 난 후의 나는 그전의 나와 완전히 달라졌기에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확신과 실천이 반드시 따른다는 것입니다. .

 

구원이란 영혼을 사탄의 멍에에서 풀어내어 영원한 생명을 부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영과 영의 교통이 반드시 먼저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에 미심쩍어 했으나 그들의 심령에 성령이 역사하자 비로소 온전히 믿게 되었습니다. 그와 똑같은 역사가 이천 년 후의 우리에겐 말씀과 기도를 통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보지 않고도 믿음을 선물로 받은 것인데 그러니까 오히려 그 믿음은 더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본문까지 세 개의 구원에 관한 절대적 진리를 한 마디로 줄이면 우주의 주인이자 통치자이신 예수님이 항상 나와 함께 계시고 마지막 날까지 참 생명으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그렇다면 우리를 대적하여 무너뜨릴 존재는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세상 앞에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날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자 권능인지 실감하십니까?

 

사실은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믿게 되었고 항상 함께 동행 하고 있다는 것만큼 최고 큰 표적이 없습니다. 그렇게나 말도 안 되었던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게 되었다는 것이,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화려해도 추한 냄새가 나는 세상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내 자신이 스스로도 너무나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럼 아무리 세상이 나를 넘어뜨리려 해도 더 이상의 표적이 필요 없으며 주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지 않습니까?

 

최근 세태가 너무 어수선하고 세계 곳곳에 종말적인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너무 피폐해지고 하나님은 부인되고 절대적 진리와 선은 실종되었습니다. 이제 곧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할 정도입니다.

 

요한은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요이1:7)라고 선언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육체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고 또 이천년 후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를 개인적으로 만나주신다는 사실을 부인하면 적그리스도입니다. 마지막 적그리스도도 동일합니다. 그럼 그를 이기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왔다는 진리로 그와 맞서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당신을 믿으면 영생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죽음과 맞바꾸어 영생을 얻은 우리와 적그리스도는 도무지 비교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닙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령의 간섭으로 주님을 만나 주님을 믿는 자에게 정말로 주님이 마지막 날까지 함께 하십니다. 그럼 적그리스도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능력으로 그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이 우리로 이기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지금 이 세 진리대로 구원을 얻었다면 말입니다.

 

지금 정말로 영생을 소유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길 원합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일대일로 만나서 인생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경험을 했고 지금도 그 바뀐 인생으로 살고 있습니까? 단순히 현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교회 출석하고 그 뒤에 여러 도덕적 종교적 가르침이 좋아서 그대로 따르고만 있습니까? 혹시라도 신앙이 단순히 고난을 없애거나 미리 막아주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닙니까?

 

(7/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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