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에 희생된 친구가 너무 안타깝습니다.
[질문]
제 친구가 이태원에서 사고를 당해 하늘나라에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고 전혀 믿기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아요. 친구의 소식을 듣기 전에는 무분별하게 sns에 떠도는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저녁에 친구가 죽은 것을 알고 나서부터 영상 속의 죽어가는 사람들의 창백한 얼굴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친구의 얼굴과 희생자들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혼자 머리를 감을 때도, 샤워할 때도, 깜깜한 밤에 잘 때도 너무나 두렵습니다. 죽어가는 모습들이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태원 이야기나 뉴스만 나와도 숨이 잘 안 쉬어지며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뛸 정도로 충격이 컸습니다. 지인의 권유로 상담을 받고 있으나 계속해서 인생이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그 친구는 제가 초등학생 때 전도해서 초등학교까지는 교회를 다녔기에 정말로 천국에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제가 학교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연락만 하고 교회는 안 다닌 걸로 알아요, 하나님께서만 아시겠지만 긍휼히 여기셔서 제발 천국에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만약 천국에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라는 염려도 생깁니다. 그냥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로도 친구한테 미안하고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생깁니다. 제가 감히 친구의 사후 운명에 대해 생각하는 것부터 끔찍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참으로 힘든 마음이 느껴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저뿐 아니라 어느 누가 아무리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드려도 별다른 도움이 안 될 것입니다. 어쨌든 진솔하게 상의해주셨으니 최대한 객관적이고 원론적인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불안 증세를 겪게 된 원인과 증상은 크게 두 가지인데 원인에 따라 각기 해결책도 달라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사고 당시의 참상이 자꾸만 떠오르며 감정 이입이 되어 너무 괴롭고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친구의 영원한 구원 여부가 걱정되는 것입니다. 전자는 형제님 개인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후자는 성경에 계시 된 하나님의 영적 진리를 정확히 알아서 자신의 믿음이나 마음의 상태를 다시 추슬러야 할 것입니다. 이 둘은 동시에 이뤄져야 하나 먼저 믿음부터 온전히 세우면 정신과적 치유도 더 신속하게 쉽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불안 증세에 대한 해결책
첫째 원인에 대해선 일차 댓글로 답변드렸듯이 정신의학적으로 불안장애로 인한 일종의 패닉이 생겼으니 계속해서 전문가 혹은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으셔야 할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의사의 판단에 따라 당분간 약을 드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약이 아주 효과적이고 부작용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수시로 나타나는 극도의 불안 증세부터 없애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불안이 조금 진정되거나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정상적으로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직접 참사 현장에 있은 것도 아니고 전해 들은 친구 소식만으로 너무 괴로워하시니까 평소에도 마음이 아주 여리고 예민한 것 같습니다. 참혹했던 당시 영상을 본 기억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 첫째 원인이므로 더더욱 전문의 상담과 투약이 좋은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다른 한 편 의지를 동원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잊어버리거나 떠오르는 잔상을 지우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런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곧바로 밖으로 나가서 다른 일에, 사람들을 만나 잡담하여 놀거나 힘에 부친 운동을 하거나 취미 활동에 집중하는 등, 정신을 쏟아붓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과거의 기분 좋았던 일을 떠올리거나 장차 소망하는 일에 대해 아름다운 그림을 미리 상상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무래도 저녁에 혼자 있을 때가 제일 문제인데 낮 동안에 육체적 에너지를 소진해 곧바로 잠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잠이 잘 오지 않으면 당분간은 소량의 수면제를 드셔도 됩니다. 정신과 의사가 처방하는 약에는 대체로 수면제 성분이 들어 있어서 만약 그 약을 드시게 되면 수면제를 따로 드실 필요는 없습니다.
혹시라도 평소에 작은 일에도 자꾸 불안해지는 습성이 있다면 이참에 그것까지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방향으로 활용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누구에게나 불시에 온갖 엄청난 재앙이 닥치니까 모두가 정도만 다르지 조금씩 불안장애 증세를 보입니다. 삼풍 백화점, 세월호, 펜데믹, 이번 사태 등으로 가뜩이나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한국인들에겐 그 트라우마로 인한 우울증이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런 정서적 부조화 증세들은 믿음과 별도로,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생긴다는 뜻임, 두뇌 홀몬의 불균형 때문에 나타나는 육체적 질환에 속하므로 굳이 쉬쉬할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전문가에게 솔직하게 모든 증세를 자세히 상의할수록 치유가 쉽고 단기에 이뤄집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아래에 링크한 이전 칼럼을 참조하십시오.)
누구의 잘못인가?
친구의 구원 문제에 대해 답변을 드리기 전에 먼저 몇 가지 사항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습니다. 첫째 이번 일은 절대로 하나님의 형벌이거나 간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고 귀신 흉내를 내니까 죽음의 벌을 내린 무서운 존재라거나, 혹은 그런 참극을 미리 막아주지 않은 냉정한 분이라고 원망해선 안 됩니다. 그렇다고 사탄이 일으킨 재앙은 더더욱 아닙니다. 세상만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시지만 이런 경우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긴, 그것도 하나님의 통치에 속함, 차원일 뿐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책임 소관입니다.
둘째는 서양 축제를 무차별로 따르고 유흥으로 즐긴 청년들 본인의 잘못이라고 정죄하거나 자기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수수방관해서도 안 됩니다. 신자도 그런 축제에 직간접으로 참여하고 싶어 할 정도의 청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문화일 뿐으로 누구도 인위적으로 금지할 수 없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순전히 인간의 잘못과 부주의로 생긴 인재(人災)입니다. 무엇보다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측하고 미리 대비했어야 할 경찰을 비롯한 관련 당국의 잘못이 가장 큽니다. 반드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져야 할 자 문책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시스템을 정비해야 합니다. 이번만은 용두사미로 끝내선 안 되며 일반 국민도 모든 행사에서 아무리 비용과 수고가 많이 들고 일부 불편한 경우가 생기더라도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확고한 인식을 가져야 하고 당연히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셋째는 이번 일을 정치적 음모론으로 발전시켜 정권 교체 등의 공작으로 몰아가선 안 됩니다. 기독교계에까지 번진 보수와 진보 간의 극렬한 정치적 논쟁에 한쪽 편을 들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이런 비극이 일어날 때마다 정권을 바꾸면 우리가 믿고 그 울타리 안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야 할 국가의 토대가 수시로 무너집니다. 그런 불행한 사태는 얼마 전의 대통령 탄핵 한 번으로 족합니다. 이제부터는 이전의 국가적 불행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정말로 성숙한 시민 의식에 따라 어떤 재앙도 민주적 합법적 합리적으로 처리하고 정확한 원인 분석과 개선책을 마련하여서 철저히 시행하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국민의 일시적 감정이나 섣부른 정파적 판단에 따라, 그것도 일부 국민의, 국가의 공적인 업무가 좌우되어선 안 됩니다. 어느 정파가(단 하나님을 부인하고 기독교를 핍박하며 유물사관을 주장하는 공산주의는 절대 안 됨) 정권을 잡든 삶의 모든 차원에서 인권, 자유, 평등, 복지가 최대한 보장되는 법과 시스템에 따라 나라가 굴러가도록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넷째는 이번 사태가 희생자의 가족이나 친지에겐 오랫동안 깊고도 큰 트라우마로 남을 것입니다. 섣불리 위로하거나 권면하려 들어선 안 됩니다. 함께 있어 주고 그들이 구체적으로 원하는 일만, 물론 그중에 상대에게 유익하고 자신의 형편상 들어줄 수 있는 일만 도와주어야 합니다. 제가 앞으로 드리는 말씀도 특별한 위로나 해결책이 절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 성경적 원리에 입각한 답변이라 혹시라도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친구의 구원 여부
친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 기준은 알다시피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였느냐 여부에 달렸습니다. 그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 안에 들어서 성령의 간섭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그래서 다른 이의 구원 여부는 목사라도 논할 수 없고 논해서도 안 됩니다. 친구가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다는 소식이 잘못되었거나, 혹시 그랬다 쳐도 일시적으로 그랬거나, 교회 출석과 무관하게 혼자서 순전한 믿음을 유지했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비관적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물론 진실은 하나님과 본인만 아는 것이나 형제님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편이 지금의 형제님에게 좋다는 뜻입니다.
저는 너무나 부끄럽게도 불신자 아버님을 미국에 이민 와있는 바람에 전도는커녕 임종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버님만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지금 한국에 불신자 형제도 둘이나 남아 있습니다. 저와 초등 중고등 대학교까지 함께 다닌 유일한 한국 친구가 극렬한 안티크리스천으로 결국 술을 너무 즐기다가 일찍 죽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장례식에도 참석 못했고 그 친구만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쓰려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더 좋은 곳에 갔으니 계속해서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억지로 마음을 바꾸는 것은 신자에겐 해당될 수 없습니다. 제가 인용한 분들은 성경적으로 따지면 분명히 천국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엄연한 사실을 생각하면 할수록 더 괴로워지고 다른 일까지 못 하게 되므로 가능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어찌 보면 아주 이기적인 방책이지만 그런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마다 의도적으로 다른 일에 집중하려고 시도합니다.
무엇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는 말씀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미 영원한 운명의 판가름은 하나님에 의해서 완전히 결정됐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전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살고 죽음의 문제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라 인간이 눈곱만큼의 영향도 끼칠 수 없습니다. 이미 완전히 끝난 과거의 일로 계속 괴로워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소용도 없는 일입니다. 연약한 인간이 그런 감정이 자연스레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이해할 수 있으나, 이미 생긴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본인에게 달린 것입니다. 나쁜 생각에 묶여 있기보다는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하고 그럴 수 있습니다. 최소한 잊어버리기나 무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경우를 대비하라고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아주 좋은 선물을 주신 것 같습니다. 무조건 의지적으로 잊어버려야 한다는 단순한 뜻은 아닙니다. 대체로 사람은 괴로운 생각이 자꾸 떠오르면 자기방어 기제가 발동되어서 잊어버리려 하거나 다른 생각으로 전환하려 듭니다. "세월이 약"이라는 속담처럼 시간이 흐르면 점점 잊어지게 됩니다. 조금 느긋한 마음을 갖고서 다른 일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크게 관심 갖지 않게 됩니다.
아직도 살아있는 이유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마22:32b)는 말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꼬투리를 잡으려고 아주 비현실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후사가 없이 죽은 맏형의 형수가 계대결혼법(신25:5-10)에 따라 동생들과 재혼했으나 계속 자녀가 없어서 결국 칠 형제와 다 결혼했다면, 천국에서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고 따졌습니다. 주님은 부활 때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아니하므로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대답하면서 덧붙인 말씀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영역에 관심을 두거나 걱정하지 말고 대신에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자라면 한 명의 예외 없이 질문하신 것과 비슷한 경우를 겪습니다. 갑작스런 재앙으로 부모 형제는 물론 가까운 사람이 졸지에 목숨을 잃습니다. 성경의 영적 진리를 알아도 여전히 하나님이 야속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어폐가 있지만 전적으로 인간의 잘못이므로 하나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게 허용하신 뜻은 남아 있는 자들로 그런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것이며 더 중요하게는 그러니까 더더욱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누구나 결국은 죽게 마련이나 아직 이 땅에 살려두는 것은 그 은혜에 감사하여 그분의 거룩하신 뜻을 자신과 자기 주변에 실현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죽은 자는 이미 죽은 자이고 살아있는 자라도 거룩하고 온전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고 죽음에 관해서 신자라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간의 죗값만 감당한 것이 아니라 이런 불행하고 갑작스런 육체적 죽음마저 감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 억울하고 고통스럽게 죽으신 당신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서 모든 인간에게 부활의 소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어떤 인간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라는 불행은 영광스런 부활로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만이 그 영광을 누릴 수 있기에 살아남은 자들이 더욱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베드로의 장모는 주님의 사역의 큰 후원자였다고 설명합니다. 그럼 베드로의 친부모는 예수를 믿지 못하고 일찍 죽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가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완전한 주님의 제자가 된 후에 믿지 않고 죽은 부모님은 물론 친지에 대해서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신자들 모두가 동일한 아픔을 지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선 하나님이 그 집안에서 자기를 택하여 구원해주신 그 절대적인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 그래서 더더욱 산 자의 하나님께 충성 순종하면서 순교하기까지 다른 사람에게 참 생명의 부활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형제님이 “제가 감히 친구의 사후 운명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것부터 끔찍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요”라고 하신 말씀은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우선 제 아버님의 경우에 저로선 평생토록 고인은 물론 하나님 앞에 도무지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괴로워해도 이미 제 손을 완전히 떠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구원하시려 택해서, 사실은 완전히 무신론이자 불교를 믿었던 우리 집안의 구원을 위해서 저를 들어 사용하려고 때가 찼기에 저부터 구원해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은 물론 제 주변에 붙여준 모든 이에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형제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죽은 친구를 진정으로 위하는, 최소한 하나님이 형제님에게 이 일을 통해서 바라는 일일 것입니다. 정말로 하기 어려운 말씀이지만 끝으로 한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냉정히 말해서 형제님 주변에 더 불쌍하고 끔찍한 상태로 죽은 혹은 죽어가는 자들, 그중에서도 복음을 모르는 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들은 외면하고 죽은 친구만 계속 염려하면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5:46)는 주님이 꾸짖은 경우에 해당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다시 요약하자면 끔찍한 참상이 자꾸 오버랩 되어서 생기는 공포는 전문가와 상의하여서 스스로 잘 해결하셔야 합니다. 친구의 구원 여부는 오직 하나님께 맡기고 산 자의 하나님께 순종 충성하셔야 합니다. 냉정하게 들릴지라도 다른 길은 없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지혜로 속히 다시 일어나시길 간절히 소원하옵고 그렇게 기도하겠습니다. 샬롬!
(11/9/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