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생각이 어떠하뇨 대답하여 가로되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나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마26:63-68)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유대 공회에서 심문을 받으면서 대제사장 가야바로부터 당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여부를 밝히라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단순히 그렇다고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두 가지 사건을 너희들이 보게 되면 자신이 메시야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선 인자(메시야의 별칭)가 권능의 우편에 앉는다고 했습니다. 당신이 하늘 보좌의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세상을 다스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고 했습니다. 이 땅을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는 뜻입니다.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을 넘어 그분과 동격으로 설명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대제사장은 당장 옷을 찢으며 “참람(blasphemy-신성모독)하도다”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언뜻 보면 너무 신경질적인 반응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신성을 수호해야할 대제사장으로선 진짜로 하나님을 모독한 발언을 했다고 간주했고 율법에 의하면 사형에 해당하는 죄이므로 당연히 자기 옷을 찢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메시야에 대한 인식은 각 종파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동양적 범신론 사상에선 인간이 곧 하나님이 될 수 있지만 창조주 유일신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은 그런 생각은 꿈에도 못합니다. 야훼 하나님의 이름도 부르지 않고 성경을 필사할 때에 그 단어가 나오면 옷깃을 여미며 붓을 다시 씻었던 그들에게 한 인간이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심판주로 다시 오겠다는 선언은 가히 폭탄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C. S. 루이스는 “유대인들의 언어에서 하나님은 세상의 외부에서 그것을 창조했으며 다른 어떤 것과 무한히 다른 존재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그 사실을 이해했을 때 우리는 이 사람이 말한 내용이 쉽게 말해서 인간의 입술로 말해진 것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은 미친 자 아니면 자기 말 그대로 그리스도 둘 중 하나”라고 말한 것입니다.
유대 공회는 예수님의 이 신상발언을 가지고 하나님을 모욕했다고 정죄하고 사형 언도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직접 대놓고 모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만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뿐입니다. 인간은 절대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믿는 그들로선 예수님을 과대망상증환자 아니면 사기꾼 둘 중 하나로 간주해야 마땅합니다.
아무리 예수를 따르는 군중이 늘어나 종교적 기득권에 위협을 느꼈다 해도 대제사장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 자체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그들 또한 실제로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반증입니다. 예수님을 제거할 근거가 마땅치 않아 단순히 갖다 붙인 구실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권능과 말씀에 아주 심각하게 도전을 받은 것입니다.
정치적 권력자가 특별히 고대 사회의 왕이 왕권을 다투는 자를 죽일 때는 반드시 정치적 세력이 강하거나 실제로 왕의 혈통을 가진 자만 죽입니다. 만약 시골의 이름 없는 청년이 자기가 왕이 될 것이라고 큰 소리치고 다녀봐야 몇 차례 곤장만 때리고 내보내지 진지하게 상대해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을 인정해주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의 힐문을 들은 예수님의 첫 마디는 “네가 말하였느니라”였습니다. 말이란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반영하는 법이란 뜻입니다. 말하자면 네가 말한 것 자체로 이미 네가 인정하고 있으면서 왜 다시 묻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인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고 대신에 앞으로 너희가 보게 될 일 두 가지를 말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 문답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당시 대제사장과 유대 관원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완전히 인정은 안했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인식은 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모든 이적과 사역과 말씀들이 사실 그대로라는 뜻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그런 근거도 없이 이렇게 심각하게 반응할 리는 만무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복음서를 비롯해 성경의 모든 기록들이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확신 없이 읽을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예수님을 인간으로 인식하고 성경을 본다는 것은 결국은 미친 사람이 한 말을 믿고 따른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이라는데 그대로 안 믿고 그를 평범한 인간이라고 간주한다면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아무리 고상하고 심오한 도덕적 종교적 계명을 많이 말했고 또 사람들이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는 관심 없고 그런 계명만 따르겠다고 해도, 이 엄연한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미친 사람도 하루 종일 미쳐 있는 것이 아니라 멀쩡할 때도 간혹 있고 그럴 때는 진지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미쳐 있을 때에 더 심오한 말을 하지 않습니까? 미친 인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을 했는데도 그 말을 따르겠다는 자가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요한복음에만 "Ego eimi"(나는 ~ 이다.)라는 표현이 19번 이상 나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나는 세상의 빛이니”,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그래서 유대인들은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요10:33)고 하면서 예수님을 돌로 치려하였습니다. 요한복음 전체를 무시한다 해도 마태복음의 본문 기록만으로도 예수님의 정체성은 오직 하나님 아니면 미친 사람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메시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사건이 없었다면 성경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구약은 단순히 이스라엘 역사에 완전히 반(半)포르노 소설에다 범죄 대백과 사전이 될 것입니다. 신약은 단순히 하나의 도덕 교과서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배반은 설화(說話 Myth)요, 성전의 희생제사는 피 비린내 나는 이상한 사교(邪敎 Cult)에 불과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일반인들이 보는 기독교의 관점입니다. 좀 심하게 말해 그들이야말로 미친 자가 말하는 미친 소리를 그대로 믿는 미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의 모든 기록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일 때만 진정한 의미를 가집니다. 또 그런 인식을 가진 자만이 그 의미를 바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유대인들 가운데도 그 당시에 이미 그를 메시야로 인정한, 아니 믿고 따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유월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에 수많은 관중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열광적으로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들이 겨우 일주일 만에 “저는 사형에 해당 하니라”하고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쳤습니다. 왜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자기들에게 먹고 마실 것을 제대로 채워주지 않는다는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어떤 결론에 다다릅니까? 루이스처럼 논리적으로 따지면 몰라도 솔직히 오늘날에는 예수를 미친 자 취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순히 성경 기록을 한 자들이 엉터리로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보는 관점에 비추어보면 오직 두 가지 부류의 사람으로 나눠지지 않습니까? 도덕 선생과 메시야로 보느냐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메시야로 믿고 따르는 자 중에 그가 먹고 마실 것을 제대로 채워주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 얼굴에 침을 뱉고 때리려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이 분명히 하나님인줄 믿고서도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됩니까?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짓일 뿐 아니라, 예수님을 도덕선생으로라도 인정해 주는 것과 자기 뜻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배반하는 것과 어느 쪽이 더 신성모독에 가깝습니까?
요컨대 예수님의 정체성은 어차피 하나님 아니면 미친 자 둘 중 하나이지만 우리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이냐 말입니다. 다 같이 신성모독을 하되 그 정도가 심하고 덜하고의 차이밖에 더 있습니까? 그것도 신자 쪽에서 더 심하지 않습니까?
결국 인간의 정체성도 둘 중 하나로 나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는 자와 단순히 도덕 선생 혹은 한 종교의 창시자 인간으로 보는 자입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상한 회색분자가 많이 섞여 있습니다. 본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과연 예수님이 그를 보실 때는 어느 쪽이라고 할까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이 지금 바로 우리에게 이 질문을 하신다면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특별히 맨 뒤의 구절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를 담대하게 외칠 수 있습니까?
그 구절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이다”가 아닙니까? 쉽게 말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이지 않습니까? 매일 매 순간 이런 진정한 고백과 실제적인 헌신 없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라고 아무리 믿고 외쳐봐야 우리가 가야바 대제사장을 비난할 자격이 없으며 실제로 그와 다를 바도 하나 없습니다.
11/1/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