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8:18-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란?

조회 수 1262 추천 수 15 2009.10.26 00: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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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란?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이자 모든 신자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자신이 속한 가정, 학교, 직장, 사회 어디에서든지 또 필요하다면 선교사가 되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자기가 하는 일이나 전문적인 사역을 통해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또 그러면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신자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가복음의 평행 구절에선 그 권세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가 매직 파워를 가진 슈퍼맨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른다고” 했지 “믿는 자들은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능력은 그것을 소유한 자가 시행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자전거 타기, 수영, 언어 같이 한 번 배우면 평생을 두고 잊어버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표적은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사람에 의해 특별한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나님이 초자연적 간섭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미 소유하고 있어서 언제든 포켓에서 꺼내어 쓸 수 있는 능력과는 다르기에 “따른다”고 말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말한 대로 믿는 자에게만 나타나며 그것도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는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에게는 구원으로 초대하고 이미 믿은 자에게는 그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세우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상 명령과 함께 표적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전도할 때에 표적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실제 오지의 선교 현장에선 많은 표적이 따릅니다. 사단이 그때까지 자기 노예로 부리던 사람들에게 진리의 복음이 들어오는 것이 두려워 자기 모든 능력을 동원해 갖은  방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선 더 큰 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사단과 맞서 당당하게 싸우기만 하면 그 권세가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자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 위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했는데도 권세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단과 사람과 죄악에 져서 넘어질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많습니다.

물론 표적은 항상 나타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필요와 뜻에 의해서만 드러난다는 것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권세가 끝 날까지, 땅 끝까지 함께 한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으므로 언제 어디서든 그 권세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태와 마가가 기록한 내용이 서로 상충되는 결과가 됩니다. 아니면 우리 믿음에 문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둘 다 아닌 것 같아 신자들이 혼란스러워 합니다.  
    
그럼 제 삼의 원인이 있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이 거짓말 하셨거나 신자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세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선 표적을 능력으로 오해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수호신처럼 신자가 무슨 일을 해도 지켜주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신자와 항상 함께 하는 예수님의 권세는 다른 것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마16:19) 권세를 말합니다. 또 다시 신자가 자신의 문제를 기도하여 응답받는 능력을 말하는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 앞에 예수님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역으로 말해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권세인 것입니다. 음부에 붙잡혀 있는 영혼을 구해내는 권세입니다.

또 그런 기도를 하고 전도하고 있는 신자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권세입니다. 잠시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죄악에 빠져있어도 기도하면 흑암의 권세를 이겨내고 거룩하게 해주십니다. 다른 말로 신자가 현실의 경제적 궁핍으로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다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본인의 영적인 성결과 성숙을 전제로 들어주기도 안 들어주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예수님의 권세란 신자가 흔히 생각하듯 인간이 도저히 해내지 못하는 어렵고 큰일을 해치우는 능력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신자로 사단을 이기도록 하는 능력인데 이 또한 힘으로 사단을 이기게 해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유컨대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가게 하는 것이 한쪽에선 예수님이 다른 쪽에서 사단이 그 귀신을 붙들고 줄 당기기 시합을 하다가 예수님이 더 힘이 세어 귀신을 끄집어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4:15,16) 신자에게 함께하는 예수님의 권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분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바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이자, 하늘과 땅의 다른 모든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귀신들린 자를 두고 사단과 예수님이 힘겨루기 하는 것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그 귀신들린 자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 자기 종으로 부려먹을 욕심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사단을 언제 어디서든 이기는 이유는 그 능력으로도 아예 비교가 되지 않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귀신들린 자의 영혼마저 예수님이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주로 시인하는 믿음의 고백을 하자 음부를 이기는 권세를 주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사단에게 이길지 질지는 이미 선택과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사단에 대한 승리는 확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를 찾아서 누리느냐 못 누리느냐는 믿음만으로는 안 됩니다. 비유하자면 신자는 예수님을 믿어 자신의 주로 영접하는 순간 음부를 이기는 열쇠를 받아 포켓에 넣어 놓았습니다. 표적이 아니라 능력이 되었습니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것을 꺼내 쓰는 일이 귀찮고 싫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가운데 완전히 잠겨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신자가 되어서도 자신은 언제 어디서나 사랑하니까 자신의 문제만은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이 결핍된 채로는 아직 포켓에서 열쇠를 끄집어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신자는 모릅니다. 자기 포켓에 열쇠가 있으니 당연히 열리겠거니 생각한 것입니다. 그 열쇠를 포켓에서 꺼내어 직접 열쇠 구멍에 끼우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사랑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 대부분의 기도는 사실 그렇지 않으니 당연히 표적이나 능력이 나타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고전13;2) 했습니다. 또 요한 사도도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한다”(요일4:18)고 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을 때에도 틀림없이 어떤 축사를, 말하자면 기도의 형식은 취했을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과 제자들의 축사에 차이점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고상하고 심오한 내용이 들어가지 않은 것입니까? 열심과 정성과 심지어 믿음의 차이입니까? 근본적으로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의 영혼을 정말 사랑했고 제자들은 그러지 못한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권세입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권세를 갖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포켓에는 전지전능한 권세가 항상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것을 끄집어내어 쓰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그분의 사랑입니다. 다른 말로 신자가 그분의 권세에 동참할 수 있는 길도 결국 그분의 사랑 안에 잠기는 길 뿐이라는 뜻입니다.  

또 다시 주님이 나를 영원토록 사랑해주셔서 기도만 하면 나를 형통케 해주실 것이라는 분홍빛 환상에 젖어 들어선 안 됩니다. 주님의 사랑은 음부에 붙들린 모든 불쌍한 영혼을 구원해 내는 사랑입니다. 신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고 또 그럴 때에 당신의 권세가 함께 할 것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신자는 믿음의 고백을 하는 순간 영원토록 주님의 사랑 안에 이미 잠겨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따로 자신을 위해 받을 사랑이 없습니다. 이제는 그 사랑을 주위에 나눠주어야 합니다. 정말로 주위에 미혹된 영혼과 심지어 잠시 죄악에 빠진 자신마저 참으로 불쌍하고 안타까이 여겨야 합니다.

지금 그런 사랑의 마음으로 자신과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그런 사랑이 세상의 어떤 권세보다도 힘이 더 세다고 확신하십니까? 흔히들 모성애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인간끼리도 그러할찐대 왜 하나님의 사랑에는 의존하려 하지 않고 자꾸 그 능력만 그것도 무조건 무엇이든 해줄 것 같은 능력에만 목을 매달고 있습니까?

능력에 사랑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능력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십시오.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권세를 받았고 그 권세를 열심히 쓰고자 하는 소망과 열정이 있는 자신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천하에 정말로 두려울 것 하나 없을 것이며 이루지 못할 “사랑의 일”이라고는 하나 없을 것입니다.

11/7/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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