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분별하려면?
마태복음 강해 (#172)



http://youtu.be/Tt4NB_opjHQ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諫)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16:21-23)


사단의 시험과 유혹

많은 신자들이 사단의 시험과 유혹은 항상 부정적인 양상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돈을 밝히게 하거나 성적 타락에 빠지게 하거나 교회 모임에 게으르게 만드는 것같이 말이다. 그래서 그 반대로 선하고 경건한 일을 하고 있으면 당연히 사단과는 등을 지고서 하나님 쪽을 향해 서있다고 여긴다. 오늘의 본문은 그런 우리의 인식이 틀렸음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이 유대 관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삼일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가 그리 마옵소서 그 일이 결코 주께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간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깊은 뜻을 아직 온전히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순수하게 스승을 사랑했고 그 죽음을 염려했었다. 실제로 마지막 날 밤에 칼로 대제사장 하속의 귀를 벨만큼 스승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와 열정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자 주님은 그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야단쳤다. 베드로가 사단이라는 뜻은 물론 아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단이 바라는, 어쩌면 시키는 대로 말을 했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의도는 분명히 선했고 도덕적 종교적으로 하자가 없었음에도 사단에게 넘어갔다면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 이유를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신자의 경우 예수를 믿은 후론 말씀을 열심히 보고 기도도 간절히 한다. 죄에서 멀리하려고 노력하며 고의로 악한 일을 시도하는 적은 없다. 거기다 어디까지가 사람의 일이며 어디서부터 하나님의 일인지 분간하기가 참 어렵다. 귀신 들린 것 같이 비정상적이고 기괴한 모습을 보인다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예수를 믿은 신자는 더 이상 사단의 권세에 완전히 붙잡히는 일은 절대 없다. 단지 일시적으로, 그것도 의로운 일에서 자주 그러니 더욱 분별이 힘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더 자세히 살펴볼 수밖에 없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대답

먼저 주지해야 할 사항은 본문에 대해 지금껏 오해하고 있는 측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때로부터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비로소 가르쳤다고 하니(21절),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해서 가르친 것이라고 한다. 그가 예수님의 정체성을 제대로 깨달았기에 즉, 복음을 이해할 수준이 되었기에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는 잘못이다. 당장에 당신의 가르침을 오해하여 예수님께 야단을 맞았는데도 그런 해석이 옳다고 수긍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정확히 말하면 그 해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복장과 헬멧을 차려입은 소방관이 유치원에 와서 내가 누구인지 물었다. 모두가 소방관(fireman)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다시 그럼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지라고 묻자 가장 먼저 손을 든 유치원생이 물에 빠진 고양이를 구해주는 일을 한다고 대답한 것과 같다.  

알다시피 미국에선 어떤 급한 일이라도 911에 전화하면 소방관이 항상 함께 온다. 중병이 걸린 환자도, 교통사고에도 그렇다. 이 유치원생은 강에 빠진 고양이를 소방관이 구해주는 것을 보았던 자기 경험에서 대답한 것이다. 소방관의 본업이 불을 끄는 것(fire-fighter)임에도 아직 그런 현장을 보지 못했기에 조금은 엉뚱한 대답을 한 것이다.

베드로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물었다. 그는 예수님의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 그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라고 문자적으로는 분명히 정답을 말했다.  그는 예수님이 오병이어 기적을 베풀고, 나면서 불구자를 고치고,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까지 살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예의 유치원생처럼 자기가 보고 겪은 경험에 비추어 예수님을 로마 제국의 지배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현실적 정치적 메시아로만 기대했던 것이다.    

베드로의 진짜 잘못과 예수님이 야단친 참 의미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거의 모든 신자들이 결정적인 오류를 또 범하고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달라고 바랐던 소망이 잘못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이 또한 선하고 의로운 것이다.

비유컨대 한국인들이 일본의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를 종식시켜 달라고 바라는 것이 왜 나쁜 일이 되는가? 아주 의로운 일이다. 나아가 바로 하나님의 뜻이자 그분의 일이다. 실제로 당시 나라 잃은 슬픔과 장래에 아무 소망이 없는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예수를 믿게 되었다.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영적 부흥도 그 당시에 있었다. 무엇보다 8.15 해방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이나 바벨론 포로귀한처럼 한국인들의 수고와 노력과는 전혀 무관하게 오직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간섭으로 이뤄졌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로 약 4백년간 하나님의 계시는 끊겼다. 우상 숭배하는 이방민족들에게 계속해서 시달림을 받았다. 하나님의 구원이 절실해졌다. 유대에는 메시아를 대망하는 사상이 절정에 이른 상황이었고 베드로도 그런 소망을 가진 유대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이스라엘 구원에 대한 소망이 나쁘거나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베드로가 범한 잘못이 조국 이스라엘의 로마 지배에서 해방을 소망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들이 갖고 있는 모든 문제와 고통이 다 해결되리라 착각한 것이 잘못이다. 또 그것이 바로 사단에게 넘어간 본질이다.    


사단을 왜 거짓의 아비라고 칭하는가? 거짓이 곧바로 들통이 나면 농담이나 장단이 된다. 끝까지 거짓인줄 몰라야 진짜 거짓말이다. 사단은 비진리를 진리인양 속이고 또 끝까지 그것을 붙들게 만들기에 거짓의 아비인 것이다.

사단은 지금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어떤 인간도 부인할 수 없고 하나님마저 인정하는 절대적으로 선한 일에 베드로의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게 만든 것이다. 이제 그 일을 하기 위한 예루살렘 입성을 눈앞에 둔 시점에 갑자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겠다고 하니까 예수님께 3년이나 직접 배웠던 그였지만 도무지 수용할 수 없는 너무나 엉뚱한 말씀으로만 여겨졌다.

예수님이 그에게 사단아 뒤로 물러가라고 야단친 이유도 그의 진짜 잘못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로마에서 해방된다고 해서 절대로 근본적이고 영원한 해결책이 되지 않음을 알라는 뜻이었다. 베드로야 네가 지금 사단에게 속고 있으니 제발 정신 차리라는 것이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되었어도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6.25 전쟁의 비극을 겪었고 4.19, 5.16, 5.18 같은 격동기를 거쳤다. 지금은 남북뿐 아니라 동서로, 소득 계층 간에, 세대별로 갈가리 찢겨져 있다. 내 생각은 물론 감정이나 심지어 취향과 유행에 동조하지 않아도 단순히 반대파가 아니라 원수처럼 대한다. 한국이 지금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졌고 인권과 평등도 괄목하게 신장되었고 경제적으로 거의 선진국이 되었는데도 사람들의 심성이 지금처럼 완악하고 사악해진 적이 없다.

이스라엘 또한 마찬가지다. 로마 제국이 멸망했음에도 유대인들은 전 세계 방방곳곳에서 유랑 생활을 했다. 히틀러에 의해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을 겪었다. 지금도 아랍권에선 Map-out 즉, 지도에서 지우기 위해 나라 자체를 멸절시킬 대상으로 삼고 있어 한 시도 평안할 날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직도 자기 민족만 부강케 해주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으면서 자기들은 세상에서 가장 의롭다는 극도의 교만에 차있다. 말하자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노아 심판 때나,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단의 근본적인 거짓말

현실적인 만사형통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이 겪는 제반 고통과 문제의 근본 원인도 물질의 결핍이나 육신의 질병 같은 것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근본 원인을 알려면 아담이 최초로 사단에게 속아 넘어간 상황에서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그 일은 무엇보다 에덴동산에서 하나 부족한 것 없을 때에 일어났음에 주목해야 한다. 먹고 마실 것은 충족했고 자연 재앙도 없었다. 하나님과 직접 교제 동행하는 은혜는 풍성했다. 하나님은 아담더러 당신께만 시선을 고정시키라는 요구 하나만 했다. 아담은 그 요구가 조금 신경이 쓰였을 뿐이다.

사단은 바로 그 점을 파고들어 갔다. 그 한 가지 요구가 부당하게 여기게끔 만들었다. 하나님이 자기만 바라보라는 데는 사실은 인간의 발전을 제약시키려는 숨은 의도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인간을 당신의 노예로 삼으려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질투 시기하여서 거짓말을 한 것이니 하나님에게 속지 말라고 한 것이다. 거짓의 아비가 오히려 하나님이 거짓말쟁이라고 인간을 속였던 것이다.  

그래서 아담더러 너희가 하나님을 부인하면 곧바로 이 땅의 주인이 되어서 무엇이든 제 멋대로 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과는 도저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너무나 신나고 기쁜 삶을 살 수 있다고 유혹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이 그렇게 행복해지는 것을 시기하여 엄격히 금지하지만, 사단 자신은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 절대 말리지 않을 것이며 너무나 좋고 기쁜 일이라고 속삭였다. 이 얼마나 교묘한 속임수인가?

이처럼 사단이 인간을 속인 내용이 “물질이 풍요해지면 인간의 행복은 보장된다.”는 점이 아니었다. 물질의 풍요와 궁핍과 관계없이 외부의 다른 어떤 제약도 없이 인간 혼자서 무엇이든 스스로 행할 수만 있다면 행복해진다는 것이었다. 또 그런 좋은 일을 방해하는 존재는 하나님 외에 이 땅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거부하라, 그러면 네가 네 인생과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또 그것이 바로 인간이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행복과 만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할 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했더니 그 결과는 정반대의 비참한 실패로 나타났다. 사단이 장담하던 행복과 만족은 전혀 생기지 않고 오히려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휩싸였다. 인간 스스로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초조함, 불안함, 갈급함, 공허함을 없앨 수 없었다. 아담이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는 것은 당시로선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최선을 다해 동원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기만 했다. 인간들끼리 서로 반목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얼마 전까지 벌거벗었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만큼 숨길 것 하나 없었던 부부 사이에도 상대를 비방하기 바빴다. 또 인간이 겪는 세상의 모든 모순, 갈등, 잘못, 죄악의 원인을 하나님 탓이라고 핑계 되었다.  

사단의 더 큰 거짓말

더 불행한 사실은 인간이 사단에게 얼마나 철저하게 속고 있는지 전혀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단이 인간 영혼에 심어놓은 죄악의 뿌리는 너무나 견고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마저 부인하고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제멋대로 행하는 그 재미에 푹 빠지게 된 것이다. 일부 양심적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기에 간혹 죄를 지으면 죄책감을 느끼긴 하지만 그조차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게 되었다. 죄에서 구원받는 문제를 감히 인간 주제에 주관하겠다는 것이다. 또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보아 부끄러울 것 하나 없이 당당하다고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악과 금령을 주신 뜻이 무엇인가? 오직 하나다. 당신께서 인간과 일대일의 인격적 관계를 맺어 교제 동행하겠다는 것이다. 그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신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홀로 자존(自存)하는 영원하고도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당신은 세상 만물의 창조자요, 모두에게 호흡을 주시는 보존자요, 어떤 위험에서도 건지는 구원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모든 것을 당신께 전적으로 의존하라는 것이다. 당신을 떠나면 살아도 죽은 것이요, 당신과 함께라면 세상에서 아무리 죽은 것처럼 보여도 가장 풍성하고 활기차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더러 당신의 사랑의 품 안에만 머무르라는 것이다. 그럼 인간의 모든 것을 당신께서 책임져 주시기에 인간이 할 일은 그분께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는 것뿐이라는 뜻이다. 종교적 맹종을 요구하는 계명이 아니다. 당신과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면 너무나 풍성하고 즐겁고 아름답고 기쁘고 거룩한 인생길이 된다는 것이다. 당신께서 모든 것을 다 책임질 테니 제발 나와 함께 걷기만 하자는 것이 선악과의 뜻이었다.

사단이 거짓의 아비인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인간의 삶이 갈급하고 공허하며 모순과 죄악이 가득 차게 된 근본원인은 인간이 하나님을 부인한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단은 인간으로 하나님과 무관하게 현실의 여건이 풍족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사단 은 인간으로 하나님을 거역토록 하여 모든 문제 속에 빠트려 놓고는 그 근본원인을 잊게 만든 것이다. 대신에 현실의 보이는 것에만 관심이 고정되도록 한 것이다.  

사단을 속인 예수님

역설적 표현이긴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던 까닭은 거짓의 아비인 사단을 속이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사단은 예수님이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베풀고, 나면서 불구자들을 고쳐주고, 심지어 자기의 부하인 귀신들을 쫓아냄을 보고도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와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것이 풍족해지면 행복할 것이라는 자기가 심어준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이적을 베풀고선 그 자리에서 은밀히 떠나버리고, 또 그런 이적을 통해 받은 은혜를 남들에게 비밀로 하라고 당부했다. 거기다 재물을 마음의 보물로 삼지 말고 하나님만을 보물로 모시고 하늘에 소망을 두라고 가르쳤다. 사단으로선 자기가 심어 놓은 거짓이 탄로 나지 않을까 점점 불안해졌다.    

그래서 유대 관원들을 선동하여 엉뚱하게도 종교적 죄목으로 십자가에 죽게 했다. 예수가 이 땅에 없어지면 더 이상 그런 가르침을 할 수 없게 되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본문의 경우도 베드로더러 메시아라면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해방시켜야 마땅하다는 생각에 집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야 자기가 인간의 영혼 뿌리 깊게 심어 놓은 거짓말이 영원한 거짓말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그것이야말로 사단의 어리석은 오산이었다. 인간의 영을 창조하신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영을 새롭게 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어서 이 땅에서 없어져도 당신이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어 당신을 믿는 자들로 사단의 거짓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와 동시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자체가 지니는 메시지 또한 사단의 정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사단이 처음 인간을 속일 때에 하나님은 너희를 진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다. 인간이 하나님이 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여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하나님이 속인 것이니 거부하고 배역하라고 부추겼다.  거짓의 아비가 도리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덮어씌운 것이다. 또 하나님은 무한한 긍휼과 이미 예비 해놓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인간을 곧바로 죽이지 않았으니 그 거짓은 들통이 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은 정말로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당신의 온 몸으로 선포하셨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말로 죽는데, 하나님의 손을 놓는 순간 인간 스스로는 무엇을 해도 참 만족과 안전과 기쁨과 자유와 평강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절대로 내 손을 놓지 말라, 그러면 너희에게 남는 것은 초조와 불안과 공허와 갈급함뿐이라는 것이다. 너희는 나만 믿고 모든 것을 내게 의존하라,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고 제발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나님 당신께서 배역한 인간에게 간청한 것이다.      

예수님이 사단을 속였다고 해서 가식, 거짓, 위계를 동원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거짓 밖에 모르는 사단인지라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가 드러나자 꼼짝 못하고 자기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가 세워지자 사단의 거짓이 밝혀졌고, 하나님의 빛이 비취자 사단의 어두움은 물러갔고, 하나님의 생명이 주어지자 사단의 죽음은 패배 당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는 그분은 우리를 지으시고 지금도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있던지, 심지어 죄악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그분은 당신께서 우리의 죄 값을 감당하시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 너희는 나의 자녀요 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내가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다. 또 그러기 위해서 절대로 내 품을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다. 아담에게 주셨던 선악과 금령과, 실은 놀라운 사랑의 언약임, 동일한 은혜와 권능을 당신께 돌아오는 모든 이에게 베푸신다는 것이 그분의 진리다.

그에 반해 사단의 영원한 거짓은 무엇인가? 현실에서 형통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작은 거짓말이다. 불신자들도 이 땅에서의 풍족함이 인간의 행복을 결코 보장하지 못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사단은 그 작은 거짓말은 현실의 화려함으로 치장해서 신자들까지 포함해 모든 사람들로 보지 못하게 했다. 더 큰 거짓말은 뒤에 숨겨져 있다. 세상 사람들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광채가 비취는 것을 가로막고서 하나님을 거부하면 바로 정녕 죽음이라는 진리를 모르게 만들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던 이유가 바로 그 사단의 첫 째 가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거짓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본문의 경우도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 위에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가르친 것이 아니다. 그의 위대한(?) 착각을, 입술로는 정답을 말했지만 내용상으로는 전혀 오답이었던,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 비로소 참 복음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 일과 사람의 일

그런데 여전히 어리석은 우리들에게 문제는 남아있다. 신자는 분명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즉, 하나님의 사랑의 품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자다.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거짓에서 진리로 옮겨졌다. 신자 스스로 그분의 품을 떠날 생각도 추호도 없다. 그런데도 수시로 사단의 시험과 유혹에 넘어진다. 그것도 하나님의 일에서 그러니 그 실패가 더 비참하게 여겨진다. 서두에 말한 대로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의 구분이 어렵기만 하다.

예컨대 부부 싸움을 할 때에 처음부터 상대가 싫고 미워서 싸우자고 덤비지 않는다. 불신자도 이혼을 전제로 싸우는 법은 없다. 가정을 바로 세우고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하려고 하지만 부부 사이에 그 방법론이 서로 달라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아서 싸우게 된다. 그러다 말투와 태도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감정은 물론 자존심이 상해 이혼으로까지 번진다.

교회도 그렇다.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일과 교회 안의 교인들을 양육하는 일, 둘 중에 어디에 중점을 두어 헌금을 더 많이 배정할 것인가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된다. 마찬가지로 자기들 주장을 끝까지 우기다가 파당이 생기고 분쟁을 낳는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면 사단에게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가 너무나 자주 곤혹해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미 정답이 다 나와 있다. 어느 쪽이 하나님의 일인지 판단하기 힘들면 판단하지 않으면 된다. 하나님이 직접 인도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후에 잠잠히 기다리면 된다. 되어져 가는 여건과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양당사자가 합의할 수 있는 인도하심이 나타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 하나님은 언젠가는 반드시 당신의 방식으로 당신의 뜻을 신자들이 깨닫게끔 명료히 드러내신다. 신자가 진정으로 당신의 거룩한 손을 붙들고 함께 가겠다는데 당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으실 리가 있겠는가?    

본문에서 베드로가 저지른 결정적인 잘못도 바로 이럼 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로선 비록 이해하기 어렵고 심정적으로 수용이 안 되더라도 잠잠히 기다려야 했다. 최소한도 풀어서 설명해달라고 했어야 했다.

방금 스스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면 더더욱 그래야 했다. 그 일이 미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은 자기가 나서서 막겠다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의 아들이 하시는 일이 틀렸다는 뜻이지 않는가? 거기다 자기가 나서서 그 틀린 하나님의 일 대신에 올바른 하나님의 일을 자기가 해주겠다는 것이다. 정말로 사단에게 넘어간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신자는 그분이 가신 길을 뒤에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기도했으니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아니 인간 전부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당신의 자녀가 되어서 당신과 손을 잡고 가자는 것이다. 그럼 신자가, 아니 인간이 반드시 가장 먼저 행해야 할 일도 바로 그것이다.

자녀를 양육하면서 엄마는 아이를 아이비리그에 보내려고 공부를 열심히 시키려 하고, 아빠는 공부에 취미가 없으면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놓아두라고 한다. 둘 다 나쁜 일이 결코 아니다. 선하고 의롭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의견대립으로, 혹은 적절한 선에서 조정 타협하는 것으로 그치면 사단에게 넘어가는 일이다.

아이가 먼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해야 한다. 그분만이 자기 인생의 목표요 소망이 되게 해야 한다. 그분의 손을 잡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자기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며 무슨 일에나 요동치 않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가 아이비리그에 입학할지, 자기 소원과 재능대로 다른 길로 가게 할지는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또 책임져 주신다. 무엇보다 그러기 위해선 부모부터 하나님만이 자신의 전부로서 처음이자 끝이 되는 본을 실제 삶에서 자식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의 분쟁도 마찬가지다. 제자훈련이나 지역사회봉사 둘 다 하나님의 일이다. 아주 선하다. 그러나 그런 의견대립으로 분쟁이 생기면 그 일들을 하지 않으면 된다.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일이다. 어느 쪽이든 상처를 받지 않아야 하고 혹시라도 그러면 끝까지 포용하고 관용하여 사랑으로 기다려주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듯 성도와 이웃을 사랑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종교적 행사를 얼마든지 그만 두는 것이야말로 그분의 일이다.

인간 사회에서 아무리 선하고 의롭다고 인정받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아 인간 스스로 행하려고 하면 사람의 일이 되고 너무나 쉽게 사단에게 넘어가버린다. 반면에 현실에선 아무리 열악하고 궁핍해도 진실로 하나님만 소망하며 실제로 그분과 함께 걸어간다면 그만큼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일도 없다.  

5/26/2013


운영자

2013.05.28 19:16:48
*.190.210.70

타이핑이 늦어져서 우선 오디오만 먼저 올립니다.
추후 타이핑이 끝나는대로 설교문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샬롬!

운영자

2013.06.12 14:15:17
*.190.210.70

강해 #173, #174의 설교문도 이제서야(6/12) 올렸습니다.

사라의 웃음

2013.06.12 23:08:53
*.109.85.156

우리 영혼에 뿌리깊은 사단의 거짓, 견고한 진과 같은 사단의 거짓들을 알지 못해 헤매이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며 그 거짓에서 벗어나 당신의 품 속에 영원히 있으라시며, 아니 영원히 품으시고 인도하실 것임을 약속하시고 또 약속하시는 사랑.

사랑이시건만 책망이라 착각하고, 사랑이시건만 간섭이고 통제하심이라 착각하고, 여러 모양의 어리석음들과 오해들...그러나 모두다 아울러 품어주시며 인도하여 주시는 십자가 사랑 이야기를 너무도 섬세히 풀어 설명하여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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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교회에 만연한 고르반 (마14:34-15:9) 마태복음 강해 (161) http://youtu.be/OB9sbUBgzoM “저희가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그 곳 사람들이 예수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다만 예수의 옷 가에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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