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50:22,23 신자의 감사는 달라야 한다.

조회 수 566 추천 수 8 2009.09.18 00: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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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감사는 달라야 한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가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편 50:22,23)


추석의 의미는 그 해에 풍성히 수확한 것에 감사하여 가족과 친척끼리 모여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가 생기려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어야 하고 또 그 좋은 일을 베풀어 준 어떤 객관적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추석은 당연히 천지 만물을 만드셨고 지금도 운행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열심히 개간하여 씨를 뿌리고 퇴비를 주며 제초하더라도 비가 조금만 오지 않거나 조금만 많이 와도 인간이 일 년 내내 노력한 것보다 그 수확량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큽니다. 이번 한국의 태풍 마리만 보더라도 한 해에 열심히 경작한 것들이 한 순간에 수포로 돌아갔지 않습니까?

그래서 고대인들은 땅의 신, 바다의 신, 바람의 신, 비의 신들을 섬겼고 또 추수를 감사하는 명절도 세계 모든 민족에게서 다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수 때는 반드시 자기들 신에게 먼저 제사를 드린 후에 그 수확물로 음식을 만들어 나눠먹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지금보다 지성이 덜 깨여서 그랬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최소한 바람만 한 번 잘못 불어도 그 해의 수확이 완전히 망치는 데 반해 인간의 힘은 너무나 미약함을 겸손하게 인정한 것입니다. 나아가 추수 뿐 아니라 모든 인생사를 인간이 주관하지 못하기에 어떤 인간도 자기 존재와 삶과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에 와선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자기 마음먹은 대로 이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태풍, 가뭄, 홍수, 같은 자연의 거대한 힘과 자기의 생업과 점차 관련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무실과 공장에서 인간이 만든 기계를 가지고 물건을 생산하고 판매하니까 마치 인간이 그 전부를 다 만들어 내었고 또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이지 않습니까?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원재료인 철광석과 또 제련용 용광로를 지필 석탄이나 석유를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 개인을 따져 봐도 출생과 죽음은 자신의 의사와 아예 무관하게 이뤄집니다. 자기 인생의 시작과 끝을 자기가 전혀 통제하지 못하는데도 그 인생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마치 부모가 컴퓨터를 사주었는데도 현재 자기 소유이므로 부모가 자기에게 해 준 것이 없고 심지어 컴퓨터도 자기가 샀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소치입니다.

모든 인생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자 은혜일뿐입니다. 부모가 자기에게 생명을 준 것이 아닙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부모는 조부가, 조부는 조조부가 낳아 준 것이지만 그 고리를 계속 추적해 올라가면 반드시 창조주 하나님과 맞닥트리게 마련입니다.

그렇지 않으려면 인간은 우연히 진화되었고 그 조상이 원숭이라야 하고, 원숭이는 고래가 조상이며, 또 고래는 궁극적으로 작은 박테리아가 조상이어야 합니다. 그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박테리아를 모셔 놓고 감사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사실은 지금도 진화 중이라 구태여 감사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인간이 우연히 진화된 것이라면 지금 상태가 어떤 단계의 진화에 해당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과격한 비유이긴 하지만 아직 진돗개가 되지 못하고 똥개 수준 밖에 안 되었을 수 있는데 똥개가 똥을 먹는다고 탓할 수 없지 않습니까?  

바꿔 말해 추석이 단순히 조상신에게 감사하는 전래의 명절이거나 오랜 만에 가족 친척끼리 모여 정겨운 회포를 푸는 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만약 추수할 땅을 조상에게서 하나도 물려받지 않았다면 그 수확에 대한 감사를 구태여 그들에게 돌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또 추석이 맨 처음 생길 때는 가족 친척 모두가 한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오랜 만에 모여 서로 안부를 물을 필요도 전혀 없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한국 민족 고유의 좋은 풍습을 따르기 위해 추석을 쉰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구체적 날짜와 풍습만 다르지 추석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한국만의 전통이 절대 아닙니다. 또  세계 모든 곳에서 추석을 처음 만든 사람은 오직 수확을 주신 하늘에 감사했을 뿐입니다. 신자뿐 아니라 인간이라면 추석에는 창조주 하나님에게 반드시 감사를 드리며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님을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배제하고 단지 조상이 전해준 명절이니까 추석을 지킨다는 것은 아주 큰 자가당착입니다. 원숭이를 조상으로 모시면서 원숭이가 만들었을 리 절대 없는 추석을 쉬려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태풍 마리가 지나가는 길목에 논과 밭이 있는데도 내 힘으로 얼마든지 태풍을 막고 전혀 손해 입지 않을 수 있다고 허풍 치는 것입니다. 자신의 출생과 죽음마저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것과 같습니다.  

자연 현상을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아도 또 세상 되어가는 만사를 잠시만 논리적으로 따져 봐도 이 세상의 주인인 창조주 하나님이 따로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증거를 찾기가 오히려 더 힘들기에 불신앙은 도무지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불신자는 하나님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실은 고의로 그분을 대적한 것입니다. 또 고의로 그분을 대적했다면 그 결말은 그분의 심판이 기다릴 뿐입니다. 아니 이 땅에서부터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전혀 받지 못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바닷가 모래 한줌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 알량한 지식과 의지와 감정에 의거해서 날마다 시들어가는 육신의 힘으로만 이끌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어떤 평강과 자유함도 없습니다. 인생의 분명한 의미와 가치와 목적 없이 그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세파에 떠밀리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가는 대로 따라 가면서도 끝까지 자기 인생을 자기가 통제한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상을 뒤집어 그 솔직한 속내를 보면 나이가 들수록 더 초조 불안해지고, 입술에서 저절로 새어 나오는 것이라고는 자기 인생이 헛되고 또 헛되다는 한숨뿐입니다. 마지막 죽을 때는 없을 무(無)자 한 마디만 남기고 갑니다. 그럼 뭐 하러 그 수많은 사람들과 온갖 상처를 서로 주고받으며 그리도 고생하며 그 인생을 살아야만 합니까?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잊어 버렸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잊어버린 것은 부인하며 대적한 것과는 다릅니다. 이전에는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동물 희생을 바치며 번제를 드렸습니다. 나아가 통칭 ‘쉐마’라고 부르는 성경 구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6:5)는 말씀을 적은 종이를 담은 작은 상자를 어깨나 미간에 달고 다녔고  또 집의 문설주나 곳곳에 써 붙여 놓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잊었을 리는 만무합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하나님을 잊었다는 정확한 뜻을 설명해 놓았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제사조차 드리지 않았다면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했을 것이기에 분명 제사는 드렸습니다. 대신에 감사가 빠진 제사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고래로 내려온 종교적 관습인지라 때가 되면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린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대해 진정으로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에도 추석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보리 추수의 첫 단을 드리는 초실절, 밀의 첫 수확을 바치는 칠칠절, 수확한 모든 곡식을 창고에 들이기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감사하는 장막절 셋이나 있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께 은혜 받아 특별히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마다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말하자면 아무리 이스라엘의 제사가 타락하여 이런 감사절마저 습관적으로 드렸다 해도 바로 눈앞에 보이는 풍성한 곡식을 보고선 잠시나마 진정한 감사를 드리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뜻이 됩니까? 추수 외에 평소에 하나님이 베푼 은혜가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인생과 삶에 하나님을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급한 일이 생기면 찾고 또 그 일이 해결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되어져 가는 형편이 자기 마음에 차면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분을 외면한 것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하나님을 믿기에 꼬박꼬박 주일 예배에 참석은 하지만 여전히 자기 욕심대로 자기 인생을 통제해 보겠다고 덤빈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잊은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이스라엘에게 바라는 뜻을 잊은 것입니다.

신자의 감사는 세상 사람들의 통상적인 감사와는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받고 싶어 하는 제사는 불신자나 이방신을 믿는 자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세상의 모든 민족이 나름대로 자기들 신에게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에게 받은 은혜에 대해선 누구나 성경이 요구하지 않아도 쉽게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좋은 선물을 받고도 감사하지 않으면 “은혜도 모르는 짐승 같은 놈”이라고  비난하지 않습니까? 개미나 꿀벌처럼 집단 공동생활을 하도록 만들어진 동물을 빼고는 단순한 호의나 혹은 남이 불쌍하다는 이유로 짐승이 다른 짐승에게 자기 가진 것을 나눠주지 않습니다. 설령 나누어도 자기 가족에 한하며 또 나눠 받아도 감사는 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짐승과 달리 감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인간끼리 서로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진정한 사랑과 감사가 없다면 인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짐승입니다. 원숭이가 바나나 나눠 먹고선 서로 인사하며 감사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원숭이가 자기 조상이라고 믿는 진화론자 즉 창조주를 부인하는 자들이 서로 나누고 감사한다면 조상의 뜻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자기 주관을 따르지 않고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한 셈입니다. 이 사실만 봐도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아님에도 끝까지, 도저히 스스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전무한 죽음 앞에 갈 때까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그 완악한 고집을 버리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건대 좋은 것을 받고 감사하는 일은 미친 사람이 아닌 다음에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고귀한 존재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선 너무나 자연스런 반응일 뿐입니다. 신자는 반드시 아니 참 인간이라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제사를 그분이 원하는 감사와 함께 드려야 합니다.

추석 감사 예배가 단순히 그해 수확한 것에 대한 감사로만 그쳐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 감사가 신자에게도 가장 우선적이고도 필수적이긴 해도 다른 종교에선 몰라도 기독교의 참 감사의 내용은 그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욕심대로 살면서 받은 것만 감사했기에 하나님을 잊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참 감사란 당연히 자기 인생에 하나님 뜻대로 살았던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습니까? “세계가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애굽기19:5,6)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하고 섬기면서 그분의 계명대로 거룩하게 살되 특별히 세상 열국 중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 하라는 것입니다. 그 분의 무한하고 조건 없는 사랑을 이웃 나라에 전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라는 것입니다. 성도 개인적으로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겨서 그 이웃도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열심히 믿되 자기들 형편을 나아지게 만들어 주는 분으로만 섬겼습니다. 제사상 나라의 소명은 실현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합니다. 불쌍한 이웃을 하나님 사랑으로 섬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열방에 하나님을 증거 했던 제사장으로서의 열매를 감사함으로 바쳐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께 자기 원하는 것만 받으려했던 것입니다.  

신자가 추석에 하나님께 드릴 진정한 감사는 올 한해에 그분 뜻대로 정말 이웃을 제대로 섬긴 일이 있는지 점검한 결과여야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기 선행을 자랑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몰랐을 때는 정말 원숭이를 조상으로 섬겼는데 이제는 살아계신 거룩한 하나님을 알고 믿게 해 준 것부터 감사해야 합니다. 천하 죄인의 괴수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나아가 참으로 부족하고 연약한 자기를 세상과 사람 앞에 빛과 소금으로 세워서 이웃을 섬길 수 있는 마음과 여유를 허락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훨씬 더 큰 축복임을 깨닫게 해 준 은혜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죄악에 빠져 하나님을 외면하는 정말로 어리석고 미혹된 사람들을 바라 볼 때마다 너무나 불쌍해 애끓는 마음이 자연히 생기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오직 먹고 마시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서로 자기가 최고라고 우기는 세상을 바라 볼 때에 참으로 안타까워 눈물로 금식하며 기도한 것을 두고 감사해야 합니다. 사단이 지배하는 이 땅에 예수님의 사랑과 권능을 더 많이 증거할 수 있는 일에 미력하나마 쓰임 받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요컨대 신자는 남에게서 받은 것보다는 자기가 남에게 베풀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힘들고 지친 이웃을 찾아가 주님 사랑으로 섬길 수 있는 것이 자기 인생의 참 기쁨과 목적으로 바뀌어 있어야 합니다.  

간혹 신자들 가운데도 자기를 희생하며 자식이 잘 되는 것만 인생의 목표로 삼는 자가 있습니다. 그것은 불신자, 다른 말로 하면 원숭이에서 진화된 자들도, 아니 원숭이조차 그렇게 합니다. 그것으로 신자가 된 아니 인간다운 증명이 절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바라는 뜻을 대별하면 두 가지 뿐입니다. 하나님 당신을 사랑하라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잘 되기 위해서라도 자연히 하나님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된 실질적 증거는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새로운 아니 진정한 감사를 바치기 원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내 가족과 친척이 아닌, 말하자면 나와 혈육뿐 아니라 이해타산으로 따져도 전혀 무관한 이웃에게 베풀었던 사랑과 섬김이 얼마나 있었는지 우리 모두 되돌아보기를 원합니다. 단순히 그 처지가 딱하고 불쌍해서 내 여유분에서 나눠준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인생을 강하게 붙들고 있는 것이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데 반해 그 사랑 안에 들어오지 못한 이웃들이 정말 불쌍해진 경우를 말합니다. 그래서 내 형편과는 상관없이 그들을 찾아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긴 열매가 있는지 되돌아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열매를 하나님 앞에 자랑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참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주셨고 진정한 사랑과 감사를 깨달아 실천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를 미처 몰랐던 이전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그 은혜와 또 그런 일을 현재 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단지 예수를 모른다는 한 가지 이유로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렸고, 또 하나님을 완악하게 부인하며 멸망으로 치닫는 세상이 너무나 안타까워 잠을 설치게 된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한 마디로 받은 것보다 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혹시 그런 감사가 부족하거나 없다면 내년 추석에는 반드시 그런 감사를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내 신앙을  올바르게 다시 세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잊지 않고 항상 기억하여 참 사랑과 감사를 실현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9/25/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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