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62:1,2 영적교제의 본질

조회 수 651 추천 수 9 2009.09.18 00:4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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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교제의 본질


나의 영혼이 잠잠(潛潛)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개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62:1,2)


신자의 삶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삶을 꾸려가는 힘과 지혜 등 모든 것을 오직 그분께로만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가 그분과의 영적 교제를 너무 신령하고도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오해합니다.

말하자면 방언으로 몇 시간이고 기도하든지, 어떤 직통계시를 받든지, 신자의 감정이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으로 충만해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것을 영적교제가 도달해야 할 목표인양 생각합니다.

교제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일을 뜻합니까? 서로 이런저런 일들로 찌지고 볶으며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 사이가 항상 좋지만 않으며 좋고 나쁜 일들이 반드시 교차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 관계를 지속적으로 좋게 이어가겠다는 인식은 상호 갖고 있습니다. 만약 이 근본 인식이 흔들리면 사실상 교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제의 가장 핵심은 지속성입니다. 각자가 넘어지거나 서로 싸워가면서도 계속해서 함께 가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영적교제의 이상적인 상태로 간주하는 그런 상태는 성령이 충만해진 결과로 각종 은사가 나타났거나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교제 중에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교제 그 자체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과 어떤 영적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까? 성경 말씀을 읽고 열심히 묵상하고 있습니까? 뜨겁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고 있었습니다. 오직 자기의 구원은 그분께로만 나옴을 확신하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면의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정신 수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탐욕과 죄성을 자기 의지로 억누르며 더러운 것을 속에서 씻어내는 작업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 자꾸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떠올리거나 긍정적 낙관적 사고방식으로 바꾸려고 노력한 것도 아닙니다.

나아가 신비주의자들 같이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 속을 완전히 비우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외부의 어떤 기를 자기 속에 흡입하려 들거나 비워진 자기가 외부에 함몰 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자연과 일체가 되든지 자기가 신이 되거나 신이 자기 속에 들어오게 만들려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다윗의 외부는 오히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박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저희가 그를 높은 위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3,4절) 한다고 할 만큼 어지러운 혼돈 가운데 있었습니다. 대적들에 둘러싸여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속에서 조용히 정진하며 도를 닦을 여유라고는 생길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마도 바쁘고 고달픈 일들은 열심히 처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분주함 가운데 말하자면 지정의는 현실의 일에 따라가고 있지만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영혼만은 아무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구원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의 산성이자 반석이심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확신이 어떻게 해서 생겼습니까? 그 동안 계속해서 신령한 초자연적 체험을 한 것입니까? 끊임없이 스스로 수양하고 정진한 것입니까? 성경 기록을 아무리 살펴봐도 다윗의 생애는 도저히 그럴 짬이 없었고 또 그렇게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울에게 하나님의 신이 내려 초자연적 체험을 한 기록은 있을지언정 말입니다.

또 다윗이 주옥같은 시편을 많이 남겼지만 피난 중에, 배반을 당하고, 대적에 둘러싸여서, 죄를 짓고 난 후에 지은 것들이 주를 이룹니다. 말하자면 그는 현실의 삶에서 그것도 주로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었다는 뜻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 물으면서 그분과 씨름한 것입니다. 정말 교제라는 말 그대로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찌지고 볶으며 동행한 것입니다.

물론 실제 삶과 연관 없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소원하여 말씀보고 기도하면 그분의 뜻에 관한 계시뿐만 아니라 각종 은사와 은혜를 풍부히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과 관계없는 교제는 나중에 현실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수도승처럼 세속과 격리하여 말씀을 연구하거나 오직 기도만 하며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도승이나 신학자가 아닌 일반 신자가 하나님과 나누어야 할 영적 교제는 다윗처럼 근본적으로 현실의 일상사 속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삶의 이런저런 체험을 말씀에 비추어 묵상하며 그분의 뜻을 알고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따로 기도하고 말씀 보는 시간을 뗄 수 없으면 일하면서 심지어 대적에 둘러싸여 환난을 겪으면서도 그분을 묵상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영적교제가 도달해야 할 목표는 어떤 충만한 상태, 완성된 경지가 아니라 말 그대로 평생을 두고 지속적으로 하나님만 생각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분에 관한 생각으로만 나의 영을 채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건대 마음속으로라도 성경말씀을 암송하고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신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지만 그 자체가 영적교제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분께로만 오기에 다른 것에서 구원을 구치 않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영적교제의 요체이자 목표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자기 영혼이 잠잠히 주의 구원만 바라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置心)치 말찌어다.”(9,10절) 세상의 어떤 사람도, 어떤 권력도, 어떤 재물도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도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물이 늘어도 그것에 신경을 쓸(置心)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요컨대 진정한 영적 교제란 현실에서 아무리 힘든 일을 많이 당해도 주님 외의 것에 기대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그분의 구원을 잠잠히 기다려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치심치 않을 수준에 이를 때까지 그분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될 때까지는 힘든 일을 우리에게 계속 부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평생을 걸친 작업이 될 것입니다.

영적 교제에 있어서 완성된 수준 혹은 최고의 수준이 된다는 말은 아예 성립되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천재나 둔재가 없기에 자랑할 것도 부끄러워 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모든 신자는 오직 성령의 인도와 간섭을 바라며 자기의 영혼을 성령의 위로와 권면 안에 온전히 붙들어 매어 세상에서 아무리 힘든 일을 당해도 그 흔들리는 정도, 즉 진동의 폭과 주기가 줄어들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이 세상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과정 전체가 영적교제입니다. 주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걷고, 걷다가 지치고, 어떤 때는 쓰러지고, 다시 주님의 위로로 쓰러진 그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아니면 많이 뒷걸음 친데서 다시 되돌아오며, 또 걸어가다가 동일한 과정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사이에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다가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신자가 그분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결심과 그 실천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놓는 법은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감동의 절정을 맛보는 것도 때로는 아니 자주 필요합니다. 그것을 진정으로 소원하시고 이미 받은 은사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자주 사용하여야 합니다. 세상과 격리하여 자기와 하나님과의 별도 공간과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여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축복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언제든 영혼이 주님의 구원만 바라보는 것, 다른 말로 세상의 구원에는 의지하지 않겠다는 헌신과 실천이 항상 먼저여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주님께서 우리 속에 좌정하신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은사와 은혜를 충만하게 맛보게 해주십니다.    

1/31/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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