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55:22 끈질긴 신자와 담백한 신자

조회 수 664 추천 수 6 2009.09.18 00: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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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신자와 담백한 신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려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현실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한 성도가 꿈을 꾸었습니다. 수많은 신자들이 등에 짐을 잔뜩 지고 있는데 그 짐을 덜어주어야 할 예수님이 그들의 등에다 짐을 자꾸 더 얹어 주고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예수님께 그 성도가 왜 짐을 벗겨주지는 못할망정 더 쌓아주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는 그들의 역경이 쌓여 나의 도움 없이는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까지 짐을 쌓아줄 것이다. 그러다 그들이 절망 가운데 나에게로 돌아오면 그 때에는 내가 그들과 함께 짐을 지고 갈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고초와 시련이 닥치면 신자들은 처음에는 일단 자기 힘으로 해결해 보려 합니다. 그러다 조금 힘에 부대끼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가파른 길을 오를 때에 동료가 앞이나 뒤에서 끌고 밀어주면 쉽게 오를 수 있듯이 하나님이 살짝 밀어만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문제는 악화되어 갑니다. 점차 자신의 능력의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젠 새벽기도에 개근하면서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서 정말로 눈물로 간구합니다. 울부짖는 소리는 높아가고 모든 사람이 다 돌아갈 때까지 혼자 남아서 기도합니다.

그런데도 나아질 기미가 전혀 안 보이고 또 더 큰 다른 문제들이 함께 겹칩니다. 사방은 점차 막히면서 자신의 목을 조여오고 탈출구는 아예 보이지 않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절망이 앞서며 기도할 힘마저 빠집니다. 도저히 견디다 못해 마지막으로 시쳇말로 “하나님 날 죽이든지 잡아 잡수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라고 완전히 손을 놓으면 이상하게 그 다음부터는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합니다. 어지간한 신자라면 다 몇 번씩 겪었던 일이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손을 놓았을 때에 우리가 놓은 것은 정확하게 무엇입니까? 바로 직전까지 끝내 움켜쥐고 버리기 주저했던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기도하는 것을 중단하기로 한 것도 아닙니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던 그 문제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찢어버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문제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주시든지 아니면 아예 끝까지 해결 안 해주시더라도 저는 더 이상 염려 걱정하지 않을 것이며 어디로 저를 인도하든 그대로 기꺼이 따르겠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짐을 완전히 맡겨버린다는 뜻은 기도만 하고 손을 놓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고집했던 자기 방식을 완전히 포기하고 하나님의 방식을 무조건 따르겠다는 항복 선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신자들이 그런 경험을 수차례 해놓고는 또 다시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실패했던 전철을 똑 같이 밟기 시작합니다. 너무나 어리석기 짝이 없지 않습니까?  그 만큼 자신을 중심에 놓고 싶어 하는 완악한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일을 이끌고 가고 싶은 미련을 신자가 되어서 그것도 터지고 또 터져서 도저히 어쩔 수 없을 때까지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죽기까지 우리 모두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편의 저자 다윗은 짐을 맡기라 그러면 ‘영영히’ 요동함을 허락지 아니하신다고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반복해서 실패하는데 그는 영영히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어째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까?

그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매번 끝까지 버티다 버티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져야 비로소 내 방식을 포기하려 듭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에게도 우리와 동일하게 고난은 수도 없이 겹쳤습니다. 아니 그만큼 수많은 고난을 겪은 인물도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이 닥칠 때마다 아예 처음부터 자기 방식을 고집하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쉽게 말해 그는 힘든 일이 생기자마자 “여호와 하나님 이 일로 나를 죽이든지 잡아먹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는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든 기꺼이 따르겠습니다.”라고 아예 항복 선언부터 먼저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청해보다가 안 되니까 항복한 것이 아니라, 즉시로 항복했더니 하나님의 도움이 자연히 뒤따라 온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짐’의 히브리어 용법은 단순히 힘든 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겪는 고난을 말합니다. 요컨대 다윗은 하나님이 성도에게 허용하는 고난은 반드시 그분만의 절대적인 섭리 하에 특별한 뜻이 있어서 일어난다는 것을 확신했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고난의 구덩이에서 건져주는 Helper로서 찾은 것이 아니라 구덩이 자체를 마련해 주신 분으로 알고 그 구덩이 속에서부터 그분의 계획을 물은 것입니다.

여호와께 짐을 맡긴다는 것이 인간이 전적으로 무력하다는 단순한 항복 선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금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너무나도 세밀하고도 풍성한 은혜가 베풀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주님과 함께 그 짐을 나누어지며 걸어가겠다는 헌신과 실제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한 순간에 기도하여 문제가 뻥 뚫리는 식은 주님은 거의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예순님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로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자기의 짐을 예수님께 벗어주지만 예수님이 다시 지어주는 짐을 지고 멍에를 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것이 가볍고 쉽다고 하니까 무술영화처럼 큰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다가 작은 것으로 바꾸니까 날아갈 것 같아지는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큰 고난을 쉬운 고난으로 바꿔주면 인간은 또 다시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 든다는 것을 주님은 너무나 잘 아시기에 오히려 큰 고난에 그대로 둘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짐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윗처럼 고난이 생기자마자, 아니 언제 어디서든 신자가 자기 방식을 고집하겠다는 마음을 버리는 일입니다. 신자마저 끝까지 그렇게 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짐이 됩니다. 그것이 어쩌면 가장 힘든 짐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버리기 위해선 반드시 주님께로 나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벗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다 감당하신 주님의 권능과 은총을 다시 확인한다면 자신의 짐을 자기가 계속 지고서 힘들어 할 이유는 더 이상 없습니다. 그 영원한 사랑을 재확인 하는 것이 주님의 짐이자 멍에를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짐을 벗고 주님의 것으로 대체하고 나면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현실적인 짐과 멍에는 여전히 남아 있어도 “마음의 쉼”을 주신다고 합니다. 본 시편의 다윗의 표현으로 하자면 영영이 요동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짐을 맡긴다는 것이 자칫 세상만사를 하나님이 전적으로 주관한다는 객관적 진리로만 받아 들여선 안 됩니다. 신자 자신의 실제 삶의 모든 세밀한 부분까지 주님이 주인이 되어 나를 너무나도 거룩하고도 영광스런 자리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확신과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손을 잡고 기꺼이 걸어가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주인 되심이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는 나의 주관적 체험이 되어야만 영영이 요동치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자기 방식을 순순히 포기하고 하나님의 방식에 기꺼이 따르겠다는 준비와 결단이 완전히 섰을 때만 움직이십니다. 그 전까지는 그런 고백이 나오도록 오히려 자꾸 짐을 더 쌓아 주십니다. 이 원리를 확신하고 실패한 전철을 밟지 않을 때만 요동하지 않고 마음이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끝에 가서야 손을 놓는 끈질긴 신앙 체질입니까? 처음부터 내 손을 놓아 버리는 담백한 신앙 체질입니까?

1/25/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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