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으로 가득 찰 새해

조회 수 492 추천 수 53 2010.01.01 19: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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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으로 가득 찰 새해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2:3)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지난해가 완전히 저물었다는 뜻입니다. 마침 어제 읽은 오늘의 양식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레이 스테드만 목사는 언젠가 설교를 통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항상 한 해의 마지막 날이면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히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절감합니다. 우리가 돌아보거나 회상할 수는 있겠지만 지나간 과거 속으로 한 치도 되돌아 갈 수 없습니다.”

지난해는 이미 과거가 되었습니다. 과거와 접촉가능한 길은 오직 회상뿐입니다. 머릿속에서 추억을 더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습니다. 대신에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만이 직접 행동으로 맞부딪혀야 할 대상입니다. 추억만 더듬으면 새해의 삶을 포기하는 꼴입니다. 아무리 힘들었던 지난 일도 머리에서 씻어버리고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지난해는 세계적 경제난으로 갑부가 아닌 다음에는 누구에게나 아주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러지 않은 해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 했던 지난해가 물러가고 희망찬 새해가 돋았습니다.”라는 표현은 신문과 방송에 매년 등장하는 상투어이지 않습니까?

땅은 예수님 다시 오시기까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수밖에 없으며 인간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만 합니다. 올해도 여전히 다사다난하리라고 단단히 각오해야만 합니다. 말하자면 각양각색의 고난들도 우리를 집어 삼키려고 첫날 아침부터 출동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희망찬 새해를 뒤집으면 환난에 가득 찰 새해 아침이 밝았다는 뜻입니다.
        
정초부터 비관적 이야기로 기죽이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출발점에서부터 인생사의 실체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어떤 종류든 고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새해 소망마저 없다는 뜻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묶어 두는 수 말고는 온전한 소망이 실현될 가능성이 전무(全無)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 사실은 인간은 소망을 먹고 커가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거주하는 여건 자체가 그러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우선 사방의 공간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수밖에 없으니까 더더욱 그것들을 이겨낼 소망을 가져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환난에 파묻혀서 절망의 나락에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주위 공간에 패배하면 자기 인생도 패배할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또 지난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는 시간적 의미도 동일합니다. 인간은 항상 미래를 살아야 하는 아니 그렇게 살고 있는 존재입니다. 과거는 당연히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현재에 최선을 다한다는 말도 어폐가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라도 지정의로 인식하면 이미 완전한 과거로 바뀐 이후입니다. 외적 활동이 아닌 내면의 사고도 감지하는 순간 과거입니다.  

쉽게 말해 시간은 단 일초의 멈춤은커녕 지체도 없이 쉴 새 없이 밀려옵니다. 시간적으로는 미래가 인간을 집어 삼키려고 계속 덤벼드는 꼴입니다.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온갖 환난을 겪으면서 말입니다. 인간이 몸담고 있는 시간의 영역에서 과거와 현재는 그림자일 뿐 그 실체는 미래 하나뿐입니다.

결국 시공간 어느 쪽을 따져도 소망을 품고 살아야만 하는 것이 인간인 셈입니다.  다른 말로 소망이 없는 인간은 살아도 죽은 인간일 뿐입니다. 물론 동물에게도 동일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습니다. 공간적으로는 약육강식의 룰대로 무한경쟁을 벌려야 합니다. 시간적으로도 당연히 미래만 닥칠 뿐입니다. 그렇지만 동물의 소망은 오직 후손의 번식뿐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생물을 창조하신 후에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복만 주셨습니다.(창1:21)

반면에 인간은 생육, 번성, 충만 외에 두 가지의 복을 더 받았습니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창1:28) 이 땅의 주인은 물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들어 당신의 대리인으로 세웠습니다. 이 땅의 모든 것과 동료 인간들과 하나님의 뜻대로 아름답고 선하고 진실 된 관계를 이어나가야 합니다.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어야 하는, 아니 아예 그렇게 지어진 존재인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둔다는 구체적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열심히 믿고 뜨겁게 기도하면 미래에 준비된 환난이 줄거나 피해간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신자에게 환난을 적게 혹은 없게 하신다면 그분의 공의는 사라집니다. 인간이 경배할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이 창조 시에 의도한 뜻에 맞추어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마련되어진 공간과 시간 양쪽 다를 오직 그분의 소망을 품고서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제거하거나 극복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천연재해의 피해를 최소한 줄이고 땅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개발을 수행해야 합니다. 지구 환경을 더 아름답게 보존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만 집중하면 반쪽 소망만 실현하는 셈입니다. 대다수의 신자들까지 포함하여 인간은 자기 주변 환경만 풍성하게 바꾸면 미래의 환난이 줄거나, 혹시 닥쳐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자신의 만족과 행복과 안전을 공간 차원에서만 구하는 것입니다. 예측 못할 환난을 숨기고선 쉴 틈 없이 다가오는 시간에 대해선 소망을 실현하기는커녕 품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에 복을 주셨습니다. 처음 6일 동안은 공간과 그 안에 거주하는 동식물(여전히 공간을 차지하는 존재임)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 마지막 날에 당신이 창조하신 시간에도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일곱째 날을 따로 택해 복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주일 전체 즉, 시간 전부에 다 복을 주셔야지 왜 하필이면 그 날만 구별해 복을 주셨습니까? 신자가 주일날 교회에 출석해 복을 빌면 들어주겠다는 뜻입니까? 주일 성수를 잘하면 복을 더 받는다는 뜻입니까?

그런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작 중요한 뜻은 다른 데 있습니다. 일주일의 엿새는 여전히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포함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미래는 여전히 환난을 품고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새해에도 환난에서 신자만 예외가 될 수는 결코 없으며 이마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는 주일을 보냄으로써 그분 안에서만 참 안식을 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주일성수가 기독교의 의무규정이라는 종교적 차원이 아닙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 땅 즉, 자기가 속한 모든 공동체와 그 공간적 여건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아름답고 선하며 진실 되게 가꿔나가야만 시공간 양쪽 차원에서 공히 그분의 소망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그래야만 인간이 동식물과는 다른 참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생육, 번성, 충만한 위에다 진정한 의미의 정복과 통치를 하나님 대신에 이 땅에 실현해야만 합니다. 또 그 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경륜을 깨닫는 신자만이 감당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신자마저 공간만 아름답고 풍요롭게 변화시키려 들면 즉, 자기와 가족만 생육 번성 충만하려 하면 불신자 아니 동식물과 같은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것입니다.    

신자는 시간도 거룩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계속 경건한 종교적 활동에 매달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올해도 환난을 잔뜩 숨긴 채 단 일초도 쉬지 않고 다가오겠지만 하나님 소망으로 감당해 내어야 합니다. 문제는 여전히 많은 신자들이 공간만 다스리려는 어리석음을 범할 것입니다. 우연히 R. T. 캔달이 지은 “기쁨을 묻다”(예수전도단 2006년 발간)라는 책을 읽다 동일한 맥락의 진술을 발견했습니다.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터널로 진입한다. 즐겁게 노래하던 라디오가 지지직거리는 소음만 내뿜기 시작한다. 그곳은 뿌연 매연으로 가득하다. 언제쯤 그 터널에서 벗어나 다시 햇빛을 즐기며 드라이브를 할 수 있을지, 언제 다시 라디오에서 즐거운 음악이 흘러나올지, 창문을 열고 목을 길게 빼보지만 이 좁고 어두운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에서도, 계속 가다 보면 저 멀리 한 줄기 빛이 비취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빛은 점점 눈앞으로 다가오고 결국 우리는 그 터널을 빠져 나온다.

하나님이 보내신 모든 시험도 이와 같다. 우리는 언젠가 시험의 터널 끝에 다다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련도 결국은 끝나는 법이다. 시련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솔직하게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이 시험을 통과했는가, 아니면 탈락했는가?’ 시련을 받아들였다면 통과한 것이다. 시련을 피하려고만 했다면 시험에서 떨어진 것이다.

시련은 터널처럼 갑자기 끝나곤 하는데(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 불평과 투덜거림이 한창일 때 끝이 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시련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부끄럽지만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시련이 끝난 후에는 이전보다 나아진 점이 전혀 없었다. 시험이 끝나도 아무 기쁨도 감동도 없었다. 예정론을 신봉하는 사람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나서 무덤덤한 얼굴로 ‘예정했던 시련이 끝났다니 기쁘군.’하고 말했다는 예화처럼 말이다.

시련이 끝난 후, 내가 그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알게 될 때는 정말 후회스럽다. 시련(시험)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터널에서 벗어날 때 그만큼 성장한다. 그것만큼 기쁘고 감사한 일도 없다."(105,106 p)

터널이 갑자기 끝나듯이 환난도 언젠가는 순식간에 끝나기 마련입니다. 올 한해도 다사다난하겠지만 2011년 새해 아침에는 어김없이 과거로 파묻힐 것입니다. 그런데 환난이 끝나기만 간구하면, 그래서 그 끝나게 한 것으로 믿음의 소임이 다한 양 간주하면 공간만 다스린 것입니다. 반쪽 신앙생활을 했고 믿음이 성장한 측면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끝까지 떼쓰는 억지 말고는 말입니다. 죽기 살기로 시련만 피하고 보자는 신앙입니다.  

신자는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시간도, 그것도 환난을 가득 품은 미래도 다스려야 합니다. 그 길은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찾고 실현하고 누리는 것뿐입니다. 올해도 시련이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리라고 새해 아침부터 단단히 각오를 하는 대신에 그 시련 가운데서 기쁨과 감사를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시련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맞서 싸우면서 그 안에 진짜 보석같이 숨겨진 하나님의 놀랍고도 신비한 경륜을 분별해 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숨 쉬며 살아갈 공간뿐 아니라 시간에도 복을 주셨습니다. 양쪽 다 그분 뜻대로 정복하고 다스리는 신자만이 그분의 온전한 복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새해 아침에 정작 해야 할 결단이자 그분의 놀라운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길입니다. 일곱째 날을 따로 떼어 복을 주신 온전한 이유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요컨대 올해만은 저를 비롯해 우리 모두가 시련을 피하기만 하기보다는 그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기쁨을 발견하는 데에 주력하자는 뜻입니다. 어차피 시련은 닥치고 또 언젠가는 갑자기 그칠 것 아닙니까? 또 터널을 피하려고만 하다가 즉, 떼만 쓰다가 불시에 천국가면 하나님께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1/1/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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